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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설유연 (21/88)



〈 21화 〉설유연

나이트클럽의 주차장에서는 최욱을 위해 준비된 차들이 시동을 걸고 질주를  준비를 하고 있다.


최욱이 용감한 기사의 흉내를 내며 설유연을 차에 모신다.


최욱의 똘마니 놈들이 그런 최욱을 모신다.

이제 되었다.


내 임무는 여기까지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박선호의 불알을 놓는 순간 놈들의 연장이 나를 향할 것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이러고는 있을 수 없다.


박선호가 탈진해서 쓰러지기라도 해도 끝이다.

인질로서의 생명은 다 한 것이니까!


순간을 잘 포착해야 한다.

나는 여기서 깡패 놈들의 손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추호도!




******




왼손에는 쌍란, 오른손에는 여배우의 어깨를 감싸 안고는 깡패 놈들과 대치하고 있다.


나를 노리는 놈들의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간다.


조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다가 쌍란을 터뜨릴 뻔했다.

그때마다 쌍란의 주인 되시는 양반께서는 고개를 닭처럼 쳐들고서는 쾌락, 아니 고통에 전율을 하신다.

오른 편의 여배우께서는 겁에 질려 자꾸  품으로 파고드신다.

그녀를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 하시던 정의의 기사께서는 사시미칼에 크게 위축되셨나 보다.


자꾸 애처로운 눈으로  눈치만 힐끔힐끔 보신다.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 걸까?


"야! 깡석현! 시간 조금만 벌어주라! 우리가 여기서 벗어날 때까지만! 응?"

"몇 분이요?"

"오 분! 아니 딱 삼 분만!"


"......"

최욱 이놈의 생각은 역시 최욱답다.

나를 희생양으로 남겨놓고는 쏙 빠져 도망가겠다는 거다.

"석현아! 제발! 이 은혜 잊지 않을께!"


"삼 분만 이놈 불알짝 잡고 있으면 되는 거죠? 이걸로 선배랑 내 사이의 계약은 모두 이행된 겁니다! 약속 시키슈!"

"그럼, 그럼! 당연하지!"


"알았소! 가슈!"

"진짜 가도 돼?"


"시간 잴 겁니다. 빨리 가슈! 하나, 둘, 셋..."

혹시나  마음이 변하기라도 할까 봐 불안에 떨고 있다.


이윽고 최욱은 설유연의 손을 잡아 끌고는 자신의 외제 스포츠카에 오른다.

여덟, 아홉, 열, 열하나,...


정확히 일백팔십 초를 그러고 있었다.


최욱의 스포츠카는 내가 박선호의 쌍란을 잡고 있는 덕분에 사시미 칼과 야구 방망이가 난무하는 틈을 유유히 빠져 나간다.

되었다!


이제 나만 빠져 나가면 된다.

그런데 어떻게?

이제 놈들의 타겟은 나 하나로 좁혀진다.


내가 쌍란을 놓는 순간 나는 벌집이 될 판이다. 알을 놓는 순간 달아나야 한다!

허허실실!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방에서 나를 노리고 있지만 두어 놈만 때려눕히면 포위망을 뚫을 자신이 있다.


그 다음이 문제다.


 길로 나가면 놈들은 자동차로 쫓아올 것이다.

좁은 골목길로 달아나면 된다.


다행히 나에게는 여기까지 타고 온 자전거가 있다.


신문 배달할 때 쓰는 짐자전거 말이다.

그놈을 잽싸게 타고 도시의 뒷골목으로 달아나면 쫓아오지 못한다.


나에게 잡혀있던 박선호를 놈들에게 기습적으로 떠밀었다.


그리고는 자전거를 향해 뛰었다.

나를 막아선 놈들에게는 훅 한 방씩을 먹여 주었다.


이름하여 히트(Hit) & 런(Run)이다!



얼마나 달렸을까?


좁고 좁은 골목길을 돌아돌아 달렸다.

나를 쫓던 놈들의 함성 소리는 조금씩 멀어진다.


돌고돌아 다시 큰 길로 나왔다.


어깨가 욱신 거린다.

아까 낭만검객 이상훈에게 얻어맞은 곳이다.

한 블록 더 내려가서  길로 나올 것을 그랬다.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나를 쫓고 있었다.

중앙선을 가로질러 역방향으로 자전거를 달린다.

놈들이 불법 유턴을 시도해 보지만 서울의 교통 사정은 만만치가 않다.

일단 시간을 벌었다!


조금 더 달린 후에 다시 골목길로 들어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질주를 시작했다.

 앞에서 빨간색 프라이드가 비상등을 깜박이며  앞을 알짱거린다.


젊은 여자가 승용차 창문을 열고는 빨리 타라고 손짓을 한다.

설유연이다!


 돌아온 것일까?


설마 최욱이가 나를 구하려고?


그럴 리가!

저 차를 타면 달아날 수 있다.

일단  도움의 손길은 잡고 나서 생각을 해야 한다.


멈칫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다.

자전거를 버리고 허겁지겁 조수석에 올라탔다.

차 안에는 설유연이 혼자서 차를 운전하고 있다.



설유연이 두 손으로 핸들을 꽈악 잡는다.


입술을 앙다물고는 전력으로 달린다.

빨간  프라이드가 서울의 밤길을 신나게 질주한다.




차 안에는 음악 소리만 크게 울려 퍼진다.

설유연은 자신이 왜 여기 혼자 자신의 차를 몰고 나타났는지, 최욱은 어디에 두고 혼자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나도 굳이 그런 자잘한 일들이 궁금하지 않다.

그저 귀에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음악이 좋을 뿐이다.

우리는 음악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선호도 최욱도 지금의 우리랑은 상관없는 놈들이다.






"이 노래가 무슨 노랜지 알아?"

"몰라!"

"피이! 음악 안듣고 사나 보다. '퀸(Queen)'의 'We will rock you!' 도 몰라?"


"난, 외국 가수는 마이클 잭슨 밖에 몰라!"


"깔깔!"

"노래 좋아! 그런데 무슨 뜻이야? 내가 영어는 못하는 과목이라..."


따지고 보면 영어만 못하랴?
수학, 국어, 과학?
아무튼 그렇다.

"우린 너희를 박살 내 버릴꺼야!"

설유연이 욕설을 퍼붓듯이 앞을 보고 소리를 지른다.



"응? 그런 뜻이야? 쎈 노래구나!"

"헤헷! 그렇지? 지금 내 기분이 그래! 딱 이 노래처럼 하고 싶어! 그쪽도 그렇지?"


"뭐, 조금은!"

설유연이 노래에 맞춰 발을 구르고, 손으로 핸들을 두들긴다.


이 여자, 이런 여자였구나!


"내 원래 꿈은 가수야! 어쩌다 보니 배우가 되긴 했지만!"

"......"


"사실 배우도 아니야. 몸값 비싼 접대부지 뭐!"


"......"

"나, 퀸 노래 좋아해! 특히 이 노래!"

카 오디오에서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린다.

클래식 같기도 하고 오페라 같기도 하고,... 특이한 음악이다.

"March of black Queen 이라는 노래야! 처음 들어 보지?"


"응."

내 귀에 익은 노래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왠지 이 여자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고 싶다.

'나는 무식하오!  귀에는 모든 노래가 새롭소!'라고 말하게 되면 서로가 민망하지 않을까?


"음악 좀 안다는 사람들도 퀸의 초창기 음악은  몰라! 비틀즈의 후기 음악을  모르듯이... 좋은 음악이 참 많은데 말이야!"


"......"


"보헤미안 랩소디는 알지?"


"으, 으응!"

"평론가들이 말하길 '보헤미안 랩소디' 가 처음으로 시도되는 오페라 형식의 퀸의 노래라는데 무식한 말씀이지! 이미 똑같은 형식의 6분이 넘는 긴 노래가 보헤미안 랩소디 전에도 이미 시도되었는데 말이야!

"......"


무식한 나는 대화에 끼어들 이야기도, 재능도 없다.

그냥  여인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쩌면  여인도 내가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들어주기만 하기에 신이 나서 떠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기는 한강 고수부지다.

가로등이 없는 어둑한 강가 어딘가에 그녀가 자신의 빨간색 프라이드 승용차를 세워두고는 한참을 음악 이야기를 떠든다.



"난해하면서도 현학적인 가사! 무엇보다도 세상을 신나게 조롱하는 것 같애! 아무튼 나는 이 노래가 좋아!"

우아한 장미향이 내 코를 간지럽힌다.


깜짝 놀랐다.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다.

머리를 뒤로 젖혀서 피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

긴장이 풀린 것일까?


아니면 나는 복싱 선수로서는 실격인 걸까?


그것도 아니면 그녀의 향기를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일까?

 입술을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덮는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혀가  입술을 간지럽힌다.

코 끝이 알싸하다.

재채기가 나올 것 같다.

그녀의 손이 내 목을 껴안는다.


잠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망울이 촉촉하다.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이! 자꾸 달아나지 말구! 가만히 있어 봐요!  노래 끝날 때까지만! 응?"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을 거칠게 부빈다.

새로운 노래가 오디오에서 흘러나온다.

"이 노래도 모르지?"


"......"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이라는 노래야! 이 노래가 끝날 때까지만 이러구 있어 줘! 자꾸 달아나면 내가 너무 비참해지잖아! 응?"


Stairway to Heaven!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란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히 보았다.

설유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의 달콤한 입술을 차마 거부하지 못했다.


그리고, 하나 더!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이 10분이 넘는 아주 긴 노래라는 것도 몰랐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  기어이 끝이 난다.


영원히 내 입술에서 떨이지지 않을 것 같던 설유연도 자신의 붉은 입술을 내 입술에서 땐다.

그녀의 따뜻한 손길이  가슴 근육을 어루만진다.


치열한 격투로 굳어진 힘살을 풀어주겠다는 배려일까?

긴장감과 함께 몸에서 힘도 빠져나가는  같다.

어느 틈에 조수석 의자가 완전히 뒤로 젖혀져 있다.


나도 따라서 드러누웠다.


아아! 나른하다.

내 티 셔츠 밑으로 그녀의 손이 쑥 들어온다.

맨살을 만지던 여자의 손길이 내 젖꼭지를 간지럽힌다.

운전석에 있던 설유연이 어느틈에 내 몸 위에 걸터 앉아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흙먼지와 땀에 젖은 내 티셔츠가 보기 싫은가 보다.


급히  몸에서 끌어올려버린다.


아직 땀에 젖은 내 근육들이 창으로 들어온 가로등 불빛에 번들거린다.

붉은 입술이 내 가슴 곳곳에 낙인을 찍는다.

"어머! 여기 다쳤네? 어쩌다가..."

어깨 쪽의 살갗이 터진 것을 이제야 발견한 모양이다.

 이유를 묻던 여자가 입을 다문다.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다가 다쳤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난 것일까?

뒤늦게 발견한 상처에 호를 하고 호들갑을 떤다.

나는 돈을 받고서 내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이 아름답고 도도한 연예인 여자를 도운 것은 우연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 아름다운 여인은  상처를 영광의 훈장처럼 대해 준다.

"괜히 나때문에! 미안해!"


마치 내가 다친 것이 자신을 위해서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과한 공치사는 부담스럽다.

"왜 자꾸 도망을 가? 여자 친구 있나 보네?"


"......"

"그렇다고 나한테서 도망가는 남자 그쪽이 처음이야! 피이! 멋없게..."

"......"

"그러고보니 난 그쪽 이름도 아직 모르네? 이름이 뭐야?"


"강석현."


"아! 맞다. 아까 최욱이가 부르는  들었는데 금방 까먹었네! 미안해! 석현이는 내 이름 알지?"

"......"

"모르고 있었구나! 섭섭한데?  설유연이야. 이런  보면 난 아직 멀었구나! 나는 제법 유명하다고 착각하고 살았나 봐! 웃기지?"

"티브이에서 본  있어. 이름은 잘 몰랐지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의 입술이 다시 나를 덮쳐온다.

조금 더 뜨거워진 혀가 내  속을 파고든다.

내 코를 간지럽히던 장미향이 다시 나를 어지럽게 만든다.

"내 차에 오디오 괜찮지? 차는 고급차는 아니지만..."


"음악 듣기 좋아. 내 귀에도..."


"기획사에서 차를 사 준다고 할  최고급 카오디오를 고집했어! 덕분에 차는 처음 사준다던 중형차에서 프라이드로 바뀌었지만 말야!"

"......"


"주위에서 다들 미쳤다고 그러더라? 차가 좋아야지! 그깟 오디오가 뭣이 그리 중요하냐구?"

"......"


"하지만 나는 후회 안 해! 뭐든 하나를 가지려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거잖아? 나는 좋은 오디오를 선택한 거지 뭐!"


"......"


"남자도 차랑 비슷해! 뭔가 다들 아쉬운 구석들이 있더라구!"

"......"


"나는 백마 탄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었나 봐! 아주 어릴 때 부터!"

"......"


"그런데 왕자인줄 알았던 놈들이 알고보니 양아치들이네! 웃기지!"

"......"

"멋진 백마가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나를 구하러 온 기사님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그게 누군데?"

"피이! 몰라서 물어? 재미없게..."

"......"

"박선호는 무서운 사람이야! 괜찮겠어?"


"괜찮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오오! 우리 기사님이 용감하신데? 하긴, 걱정하면  하냐? 무섭던 아니던 이제 이미 일을 벌어져 버렸으니 걱정해도 소용없겠지? 그렇지?"

"......"


"석현아! 우리, 하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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