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밤의 대통령 (1)
방귀 깨나 뀐다는 집안의 자식들은 놀기도 잘 논다.
몇 번이고 룸을 빠져나가 스테이지에서 몸을 흔든다.
그러다 지치면 들어와서 술을 마신다.
술과 안주는 무제한으로 공급된다.
그런데 최욱이만은 룸을 떠나지 않는다.
다른 것은 몰라도 춤 하나만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는 분께서 말이다.
보영 그룹 댄싱 머신께서 오늘은 가동을 멈추실 모양이다.
아마 겁을 먹은 것이 아닐까?
스테이지로 나가면 아무래도 사람들 틈에 섞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러면 진작에 경찰에 연락이라도 하는게 좋지 않았을까?
재벌 3세 께서 경찰정도는 동원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닌가?
경찰이 편을 들어주지 않을 상황인가? 그런 존재가 대한민국에 있을까?
신인 여배우 설유연 양께서는 댄스 삼매경에 빠져서 바쁘시다.
최욱은 그녀가 자신의 곁에 머물기를 바라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눈치다.
뭐 나로서는 상관없다.
최욱이가 이 룸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편이 훨씬 편하다.
스테이지를 떠나 룸으로로 돌아오던 설유연이 홀연이 사라졌단다.
아니, 대 놓고 누군가가 끌고 갔단다.
그것도 이 나이트 클럽의 다른 룸으로!
설유연과 함께 스테이지로 나갔던 이들의 증언이다.
최욱이 놈의 얼굴이 똥색으로 변하고 있다.
******
흔히들 말하기를 이 나라에는 대통령이 두 명 있다고 한다.
낮에는 탈모로 고생하시는 분이 대통령 직 수행에 여념이 없으실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밤에는 다른 분이 대통령 역할을 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언론사 대표라는 분을 밤의 대통령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워낙 화류계 여인들을 잘 다루셔서 붙은 별명이라고 한다.
이전에 아주 오랫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던 이가 그의 능란한 화류계 여성을 다루는 법을 보고는 탄복하셔서 붙인 별명이란다.
"낮에는 내가 대통령이지만, 밤에는 임자가 대통령이구만!"
그날부터 그분께서는 밤의 대통령 자리에 취임(?)하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낮의 대통령이 몇 번이나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밤의 대통령 직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계신단다.
그분의 아드님께서 신인 여배우 설유연 양을 끌고 가셨다고 한다.
"세상에 제일 무서운 것 중 하나가 언론이야!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거 몰라?"
나는 모르겠다.
신문사 사장이 그렇게 강한 자리라면서 신문 배달원 월급은 왜 그모양일까?
그리고 칼이 무섭지 펜이 뭐가 무섭다는 건가?
말장난이다!
나는 언론사의 무서움을 전혀 몰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나 같은 놈 때문에 생겨난 말일 것이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서 두렵지 않다.
나는 무식하니까!
지금 눈앞의 VIP 룸에 있다는 밤의 대통령의 아드님이 말이다.
오히려 좋은 기회다.
얼굴이 사색으로 변한 최욱이가 나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다.
"야! 최욱! 설유연은 그냥 포기해! 상대를 봐 가면서 덤벼야지! 네 상대가 아냐!"
"시끄러! 난 포기 못해!"
"최욱!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여자한테 집착하고 그래? 설유연 벌써 따먹었을 거 아냐?"
최욱의 친구들이 최욱을 만류한다.
"씨발! 아직 못 따먹었어! 아직 몸에 손도 못 댔단 말이야!"
"......"
순간 사나이 최욱의 순정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그러하시단다!
사람 쉽게 바뀌는 거 아니다!
"강석현! 설유연만 여기로 무사히 데려와라!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마!"
"뭐든지 말입니까?"
"그래! 사나이가 한 입으로 두 말하겠냐?"
"......"
이 사나이가 두 말씀 하시는 것을 워낙 많이 겪었다.
그래서 확실히 해 두어야 한다.
나는 사실 대통령의 아드님보다 최욱이가 더 무섭다.
이 놈은 뒤통수치는데 워낙 일가견이 있으니까...
"내가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하도록 허락 해 줘요!"
"그건 권투 협회에서 정하는 거 아닌가? 내가 무슨 수로?"
"선배가 S 체대 김 교수하고 통한다 는거 압니다."
"......"
내가 국가대표가 되어서 올림픽 출전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아, 알았어! 빨리 설유연이만 데리구 와!"
"그리고, 민 마담 건드리지 마세요! 한 번만 더 껄떡대면 그때는 선배를 죽일지도 모릅니다."
룸을 나서며 최욱에게 마지막으로 당부를 했다.
놈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협박?
경고?
당부?
그런것이 뭐가 중요한가?
어차피 결과는 같은 것이다.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심호흡을 하고 또다른 VIP 룸으로 노크와 함께 들어섰다.
내 뒤를 따라 최욱도 조신하게 들어온다.
녀석으로서는 엄청난 용기를 발휘한 것일지도 모른다.
"죄송합니다. 룸에 함께있던 우리 일행을 데려가도 되겠습니까?"
"넌 뭐야? 최욱이 똘마니구나? 최욱 자식은 어디 가고 너만 왔냐?"
VIP 룸 제일 안쪽에 오만하게 앉아있는 젊은 남자가 희죽대며 비웃는다.
20대 초중반의 사내다.
마른 체구의 평범한 놈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데 다들 이 남자를 어려워한다.
아직 대학생의 몸이지만 연예계 쪽의 숨은 실력자라고 한다.
그의 뒤에는 부친인 언론사 사주 박성훈이 있고, 박 씨 일가들 중에는 유력 정치인들도 여럿 있어서 그 누구도 그의 비위를 거스르기를 원하지 않는단다.
최욱 놈은 벌써부터 꼬리를 내린다.
이 룸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결기에 찬 표정도 잠깐 보이더니 다시 얼굴이 핼쑥해졌다.
더욱 최욱을 슬프게 한 것은 설유연은 사내의 곁에서 해맑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젠 나도 알 것 같다.
최욱 이놈은 이 젊은 사내를 흉내 내고 다닌 것이다.
최욱은 이 사내의 짝퉁에 지나지 않았다.
이 사내 박선호는 소위 여자 연예인 킬러란다.
장안의 기생들 머리 잘 올려주기로 소문난 언론가문 박 씨 일가의 일원답게, 연예계 여자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는 다고 했다.
이번에 신인 여배우 설유연을 두고 최욱과 경쟁이 붙은 것이다.
박선호는 여자 문제로 분쟁이 생기면 일 대 일 대결을 제의한다.
본인이 직접 나서도 좋고, 대리인을 내 세워도 된다며 상대에게 선택지를 준다.
문제는 박선호의 대리인이 터무니없이 강하다는 것이다.
저놈이 그놈이구나!
방안을 들어오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저놈이 그 유명한 낭만 검객 이상훈이다!
현재 대한민국 암흑가 최고수다!
큰 키에 다부진 체격!
무엇보다도 저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
낭만검객 이상훈은 종합 무도인이다.
복싱, 유도, 태권도, 브라질 유술인 주짓수 까지!
모든 무술을 섭렵한 달인이다.
그런데 왜 낭만검객이냐고?
이상훈은 검도의 고수다.
맨주먹 대결이 점차 사라지고 사시미 칼이나 야구 방망이로 무장한 떼거지들이 뒷골목을 장악해가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상훈은 맨주먹 대결을 선호한단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무서움은 칼을 쓸 때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오늘의 내 상대는 이 악명 높은 암흑가의 강자인 모양이다.
아이들 싸움에 어른을 끌어들인 셈이다.
낭만자객 이상훈의 눈에 나 같은 놈이 보일 리가 없다.
분명히 방심할 것이다.
그때 정확한 한방의 주먹을 급소에 적중시키면 이길 수 있다.
적의 방심을 노리면 승산이 있다!
놈을 방심하게 해야 한다!
서른이 조금 넘었을까?
낭만검객 이상훈에게는 모두가 애송이 들일 것이다.
나도, 그리고 그를 고용한 박선호도!
이상훈은 박선호에게 깍듯하다.
박선호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나와의 대결을 받아들였음을 알린다.
"도련님! 그럼!"
나 같은 애송이와 싸우면서도 이상훈은 전혀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는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내가 오늘 임자를 만나고야 말았다는 것을!
방심을 해야 공격적으로 나오고, 그래야 약점이 드러나는 법이다.
이상훈은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뒷골목 양아치들처럼 큰 소리를 치거나 허세를 부리지도 않는다.
더구나 유도나 레슬링 고수와의 대결은 피곤하다.
단 한 방에 상대를 침몰시키지 못하면 내가 땅바닥을 기게 된다.
그리고 그런 대결에서 복서는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방법은 하나!
한 방에 침몰시켜야 한다.
작은 펀치를 잘게 끊어치는 스타일은 지양해야 한다.
큰 펀치를 휘둘러서 적중을 시켰다.
노렸던 관자놀이에 정확하게 들어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상대를 침몰 시키지는 못했다.
이상훈이 내 손을 잡으려 한다.
가까스로 뿌리치고 백스텝을 밟아 거리를 벌렸다.
터프한 상대다.
내 펀치가 먹혀들지 않는다.
놈의 내구력은 내 공격력을 뛰어 넘는다.
"모두들 들어라! 이제부터 쓸데없는 잡인들은 모두 나가라! 지금부터는 사나이들의 대결이다! 괜히 제3자가 승부에 개입하면 그놈부터 조져버릴 거야! 테이블은 빨리 다 빼 내고! 의자도 치워 버려!"
낭만검객 이상훈은 나와의 싸움을 나름 사나이들의 신성한 행위로 받아들인 것일까?
돈 많은 놈들을 위한 용병 검투사들의 의미 없는 싸움질이 아니고?
아무래도 좋다!
그 낭만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이상훈의 부하 중 누군가가 맥주병으로 내 뒤통수만 한 대 갈겼어도 진작에 나는 아작이 났을 것이다.
승부가 길어진다.
나와 이상훈의 대결은 몇 번의 주먹질과 발차기를 교환한 후 소강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한 방에 승부를 보자는 전략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
치고 빠지는 스타일로 상대하지 않으면 이상훈의 억센 손아귀에 잡혀서 관절이 꺾어질 판이다.
이상훈도 결코 무리하지 않는다.
내 주먹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을 내린 듯하다.
내 카운터펀치를 철저하게 조심하며 신중하게 임한다.
잘못하면 전국구 보스가 애송이에게 망신을 당할 판이니까 그런 걸까?
"야! 강석현! 이 새끼 뭐 해? 빨리 놈을 쓰러뜨리지 않고!"
안달이 난 것은 최욱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인 배우 설유연 양은 지금 박선호의 무릎에 암고양이처럼 앉아 계신다.
최욱은 엄청난 굴욕감을 느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여자를 박선호가 차지하고 앉아 느긋하게 그녀의 육체를 쓰다듬고 있으니 말이다.
최욱은 그 분노를 나에게 퍼붓는다.
결코 박선호를 욕하지 않는다.
아니, 함부로 욕을 하지도 못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