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 (4)
"저, 혹시 최욱 그놈이 누나한테 집적되는거 아니에요?"
"아냐! 그런 거! 최욱 그놈이 어디 감히 나한테까지..."
강한 부정이 되려 묘한 여운을 남긴다.
그리고 민예린의 표정에 잠시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보았다.
무엇인가가 있다!
"강석현! 오늘도 멋있었어! 눈물이 날 정도로...!"
그녀가 나에게 입을 맞춘다.
민예린의 입술은 달콤하다.
모든 근심을 날려버릴 만큼!
"가만히 있어 봐! 오늘 힘든 시합했잖아? 이젠 나한테 맡기고 가만히 있어, 응?"
촉촉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요염하게 타오른다.
그녀의 옷을 벗기려던 나를 제지한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란다.
한참 동안 내 입술을 탐닉하던 그녀가 나를 자신의 침실로 이끈다.
오피스텔의 전등이 모두 꺼진다.
침실의 작은 스탠드 하나 만을 남긴다.
희미한 불빛 속에서 그녀가 자신의 옷을 하나씩 하나씩 몸에서 떨어뜨린다.
이 어두운 공간에서 그녀의 하얀 나신만이 밝게 빛난다.
자신만 알몸으로 있는 것이 부끄러운지 그녀가 내 옷을 하나씩 벗겨낸다.
격전에 지친 내 몸뚱아리에 그녀의 입술이, 그녀의 손길이 원기를 불어 넣는다.
그녀의 보드라운 혓바닥이 내 가슴 근육을 천천히 핥는다.
강아지처럼 말이다.
조그만 내 젖꼭지를 입술로 머금고 혓바닥을 천천히 굴린다.
그녀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온다.
가뭄의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진 내 복근을 세심하게 어루만진다.
거친 훈련에 지친 근육의 굴곡 하나하나를 빠짐없이 위로해준다.
그녀의 따뜻한 배려에도 내 물건은 괜히 불쑥 화를 낸다.
그런 놈의 마음조차도 여인은 세심하게 위로해준다.
살기둥을 정성스럽게 받쳐 들고는 뿌리에서부터 촉촉한 혓바닥으로 빠짐없이 어루만진다.
놈은 진정하기는 커녕 더더욱 성을 낸다.
내가 괜히 미안할 정도로 말이다.
내 몸 위로 그녀가 조심스럽게 올라온다.
분기탱천한 놈을 한 손으로 꼬옥 잡고는 자신의 엉덩이를 살짝 든다.
"아아!"
나즈막한 여인의 탄식 소리가 고요한 오피스텔 안에 퍼진다.
내 몸이 활화산같이 뜨거운 용암속으로 들어가고야 말았다.
민예린, 그녀가 내 몸 위에서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잔뜩 성이난 내 물건이 그녀의 몸 속으로 사라졌다 나오기를 거듭한다.
그녀의 엉덩이가 조금씩 조금씩 빨리 움직인다.
마치 말이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리드미컬하게 움직인다.
나는 한 마리 야생마처럼 꿈틀거린다.
그런 거친 말에게 기수는 온몸을 밀착시키고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야생마는 미친 듯이 내달리고, 말위의 여인은 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필사적이다.
조금만, 조금만 달리면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 같다.
말과 기수는 이제 일심동체가 되어 목표를 향해 사납게 내달린다.
말 위의 여인이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흐느껴 운다.
고요한 침대 위에서 민예린, 그녀가 내 몸을 어루만진다.
거친 질주의 후유증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숨소리가 아직 거칠다.
"나, 석현 씨한테 할 말 있는데...!"
"말해요. 뭐든지..."
"아냐! 지금은 아냐! 석현 씨 결승전 끝나고 나서 이야기할게."
"......"
"내가 괜한 이야기 했나 봐! 나 같은 거 때문에 시합 망칠까봐 그러는 거야. 별일 아냐."
그녀가 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기분 탓일까?
내 가슴에 파고든 그녀의 얼굴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것 같다.
나는 단순한 놈이다.
머리가 나빠서 이 여인이 왜 이러는지 그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결승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실!
이 여인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
고등부 무대의 결승전은 이런 기분이었구나!
둔감하기로 소문난 나도 긴장이 된다.
그런 나를 시합을 몇 시간 남긴 시간에 체육관까지 찾아온 사람이 있다.
바로 최욱이다.
후배의 긴장을 풀어주시려는 세심한 배려일까?
재벌3세께서 부지런도 하시다.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다.
다섯 명의 광풍회 간부들과, 여자들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야! 깡석현!"
평소에도 거만한 인간이지만 여자들과 함께 있을 때의 최욱은 또 다른 사람이 된다.
주위 사람을 깔아뭉개는 방식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 놈의 스타일이다.
뭔가 일진이 좋지 않다.
결승전이 코 앞인데.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왜 찾아오지 않았어?"
"......"
나는 조용히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 뿐이다.
빨리 최욱이 떠나가기만을 바라면서 말이다.
"이번에도 석현이 네가 나서줘야겠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면 여자 앞이라고 한껏 허세를 부리는 것일까?
최욱이 잔뜩 무게를 잡고 말을 한다.
부탁일까?
아니면 명령일까?
"바쁩니다!"
"잠깐이면 돼!"
"시간이 없어요. 잠시도!"
"네가 뭐 한다고 바빠? 연애한다고?"
"......"
최욱이 특유의 교활한 눈빛을 흘리며 실실 웃는다.
이놈이?
알고 있었다.
나와 민예린의 관계를!
"너 연애한다고 바쁜 건 눈감아 주겠어. 대신 너도 나를 도와줘야지!"
"내가 연애하는게 최 선배님하고 무슨 상관입니까? 그리고 그건 제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입니다!"
"으핫! 뭐? 프라이버시? 무식한 놈이 힘든 영어도 쓸 줄 알고 제법인데? 너 민 마담이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이냐?"
"압니다."
"알긴 뭘 알아? 어디까지 아는데? 그년이 우리 아버지 이거라는 것도 알아?"
최욱이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실실 비웃는다.
피가 거꾸로 쏟는 느낌이다.
잘못하면 최욱 놈을 자리에 때려눕힐 뻔했다.
참자!
참아야 한다.
참을 인(忍) 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다.
최욱도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그것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을 것이다.
나에게도, 최욱에게도, 민예린에게도, 그리고 최욱의 아버지 '최대갑 회장' 에게도!
"야, 강석현! 너 선배 말이 말로 안 들려? 앙? 왜 대답이 없어?"
"......"
"선배가 시키면 '예, 알겠습니다!' 하고 하면 되는 거지 뭐 그렇게 토를 다는 게 많아? 내가 공짜로 너를 부려먹는 것도 아니잖아? 일만 제대로 하면 용돈도 주고, 끌어주고 그럴텐데 말이야. 요즘 후배 새끼들은 싸가지가 없어, 싸가지가!"
"......"
하필이면 최욱이 여자들을 데리고 왔다.
대학생인지, 아니면 연예인인지 모를 늘씬한 여자를 셋이나 데리고 왔다.
서울시내 고등학교 짱으로서의 위엄을 한껏 부리고 싶어 한다.
그것이 불운이었다.
나에게도, 최욱 녀석에게도!
"아무튼 너랑 민예린이랑 둘다 무사하고 싶으면 내 말대로 해! 엉?"
악명이 자자하신 광풍회 회장님께서 갖은 폼을 다 잡으시더니 이제서야 가시려고 한다.
강석현!
잘 참았다.
참을 인(忍) 자 셋을 기어이 채웠다.
그대로 참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집애 하나가 최욱의 멋짐에 탄복을 하며 쓸데없이 참견을 한다.
"욱이 오빠! 그런데 민 마담이 누구야?"
"어! 우리 꼰대랑 떡 치다가 돈 좀 뜯어내서 카페 차린 여자야. 얼굴이 반반한 년인데 꼴에 남자 꼬시는 재주는 있나 봐. 저런 애송이까지... 우욱!"
최욱은 자신이 내뱉던 말을 끝내지 못했다.
스프링 처럼 튀어나온 내 어퍼컷을 배어 얻어맞고는 아침에 먹은 것을 바닥에 늘어놓는다.
자식!
아침부터 많이도 처먹었다.
"꺄악!"
여자애들이 비명을 지른다.
보디가드로 따라온 광풍회 놈들은 병풍같이 서 있기만 한다.
야수와 같은 내 눈빛에 잔뜩 쫄아 버렸다.
"어이! 최선배! 아가리 한 번 더 열면 그때는 네놈 아구창도 마저 돌려 버린다!"
"이놈! 강석현! 웩! 웩!"
끝까지 위엄을 잃지 않으려는 최욱의 강력한 의지도 목구멍을 넘어오는 토사물 앞에서는 허사다.
광풍회 놈들이 최욱을 들쳐 없고 나간다.
"야! 이거 토한 거 깨끗이 치우기 전엔 못 가!"
한 놈이 찔끔하더니 대걸레를 찾느라 분주하다.
참았어야 했나?
그랬으면 인생이 좀 바뀌었을까?
아니다.
다시 한 번 그런 일이 벌어져도 내 선택은 같을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니까 내가 강석현이다.
나란 놈은 그런 식으로 생겨 먹은 것이다.
그리고, 내 선택에 후회는 없다.
전혀!
***
"어이, 석현아! 너 얼굴이 왜 그래? 긴장하지 마! 편안하게 하자구!"
나를 본 관장님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노력하신다.
사실, 관장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괜히 죄송하다.
내 가슴을 채우고 있는 것은 긴장감이 아니라 분노다.
그리고, 이 분노를 오늘 나와 링에서 맞붙게 되는 상대에게 쏟아붓고 말았다.
1라운드 공이 울리자마자 저돌적으로 치고 들어갔다.
처음 1분은 탐색전을 펼치라는 관장님의 말씀을 또 무시하고 말았다.
거듭 죄송하다.
성질이 더러운, 인내심 없는 제자를 들인 관장님의 불운이다.
눈앞에 불꽃이 번쩍한다.
녀석의 카운터를 제대로 맞았다.
"야! 강석현! 조심해! 녀석은 왼손잡이에 카운터가 전문이야! 그렇게 들어가면 안 돼! 우선 잽으로 상대를 견제한 다음에 석현이 네 스타일로 시합을 풀어 나가야..."
이제야 기억이 난다.
이녀석은 사우스 포였다.
그러니 당연히 카운터에 능한 놈이다.
절대 무모하게 들어가면 안 되는 상대다.
하지만 세상은 머리로 사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가슴으로 살아 간다.
지금 나는 내 가슴이 시키는 대로 그렇게 싸우려 한다.
내 가슴속의 답답함을 모두 쏟아버릴 생각이다.
크게 휘두르는 내 훅이 녀석을 건드리기 전에 녀석의 날카로운 스트레이트가 내 얼굴을 때린다.
다행히 얼굴을 슬쩍 틀어서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
포인트는 분명히 잃었겠지만!
한 방만 걸리라는 식으로 저돌적으로 돌진해서 양훅을 휘둘렀다.
한 방!
두 방!
바람을 가르는 소리는 좋았으나 그것이 전부다.
아웃복서에게 가장 금기시 되는 짓만 골라서 하고 있다.
세 방!
네 방!
처음에는 번번이 빗나가기만 하더니 조금씩 녀석의 가드 위를 때리기 시작했다.
제법 충격이 있는지 녀석이 함부로 가드를 풀고 자신의 장기인 카운터펀치를 날리지는 못한다.
"석현아! 너무 무모해! 원투 스트레이트 부터 시작해! 하나씩, 하나씩!"
다섯!
여섯!
그런데 그 무모한 펀치가 먹혀들기 시작한다.
녀석이 가드를 풀지 못한다.
한 여름의 소나기 같은 내 훅 세례에 머리가 울린 모양이다.
발놀림이 현저하게 둔해진다.
그런 녀석을 코너에 몰아붙인다.
일곱!
여덟!
아홉!
무자비한 소나기 펀치를 녀석에게 퍼부었다.
아무리 단단하게 가드를 올려도 빈틈은 있다.
아주 가끔씩 그 틈에 묵직한 훅과 어퍼컷을 꽂아 넣었다.
녀석이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심판이 끼어들어 마구 펀치를 휘두르는 나를 뜯어말린다.
1라운드 종료를 11 초 남겨놓고서 주심이 시합을 중지시킨다.
강석현의 K.O 승이다.
최 관장님이 나를 번쩍 들어올린다.
어디선가 카메라 셔터가 연속해서 터진다.
내가 이겼다.
아마추어 밴텀급 챔피언이다.
비록 국가대표들은 모두 빠진 고교생 위주의 대회지만 그래도 우승은 우승이다.
이제 당당히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할 자격이 있다!
하지만 시합 전, 최욱 놈과의 그 사건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놈은 보복을 하려 들 것이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여자 앞에서 모욕을 당하는 것만은 죽어도 참지 못하는 그놈의 성질을 나도 잘 안다.
이제 어쩔 수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질 수 있다고 각오를 다져 본다.
애송이의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