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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 (1 ) < 데뷔전 > (11/88)



〈 11화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 대회 (1 ) < 데뷔전 >

 관장님은 대단히 좋은 복싱코치다.

하지만 최 관장님과 운동하면서 곤란한 것이 하나 있다.

체육관에 수준급의 복서가 없어서 스파링 파트너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설마 방법이야 없겠는가?

단지 조금 불편하고 눈치가 보일 뿐이다.


이 체육관, 저 체육관을 전전하며 스파링 상대가 되어주면 된다.


아웃복서를 원하는 이에겐 아웃복싱을 해주고,  빠른 카운터 펀처를 원하는 이에게는 그에 맞춰서 상대를 해 주면 되니까...


"최 관장! 이놈이 강석현이구나? 그 건방지다고 소문난 놈 맞지?"

"우리 석현이 건방진거 아냐!"


"에이! 그래도 지 새끼라고 편들어주는거 봐. 한눈에 봐도 건방져 보이는구만! 하하!""


"건방진게 아니라 똑똑한거야."


"알았어! 알았어! 본론으로 들어가자! 우리 재현이랑 한판 붙어줘! 괜찮지? 아! 걱정안해도 돼! 재현이한테 이야기해 뒀어! 어린 아마복서니까 조심해서 살살 다루라고! 흐흐흐!"




******






"재현아! 저 강석현 이란 놈에게 거리를 주면 안 돼! 붙어! 놈의 복부를 노려!"

백재현이란 복서는 펀치력이 좋아 보인다.

대신 발이 느린 것이 단점이다.


상대의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일까?

아니면 내 컨디션이 너무 좋은 것일까?

오늘따라 상대방의 움직임이 훤히 보인다.

 발을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백재현의 컴비블로를 모두 피해내었다.

백재현이 마지막으로 크게 훅을 휘두를 때 그의 턱이 내 사정거리에 들어왔다.


카운터 블로!

그의 주먹보다 반의 반 박자 정도 늦게 뻗은 내 스트레이트가 백재현의 턱에 정확히 들어갔다.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던 그가 앞으로 꼬꾸라진다.


"그만! 그만! 이건 스파링이야!"

스파링 파트너를 찾는다는 연락에 황급히 달려왔었다.

오늘 찾은 체육관에서 맞붙은 상대는 주니어 페더급이다.


그것도 프로 복서!

다음 시합 상대가 발빠른 아웃복서라며 나에게 그 역할에 충실해 달라고 했다.

헤드기어를 끼고 맞붙는 3라운드 스파링이었다.


그런데 그만 상대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3라운드를 채우지 못했다.

최 관장님이 무척 미안해 하신다.



"아, 미안해! 김 관장! 우리 석현이가 좀 흥분을 했나 봐. 카운터 펀치는 치지 말라고 했는데, 그만..."


"최 관장! 말이 다르잖아? 이 놈 발만 빠르고 펀치력은 없다더니...  체급 위의 프로 복서를 다운 까지 시켜? 그것도 헤드 기어를 꼈는데?"


"우리 석현이가 운이 좋았어. 백재현이가 석현이를 깔보고 들어가다가 카운터를 맞은 거야. 백재현이는 운이 나빴고."

"무슨 소리야? 내 눈을 속이려구? 이놈은 인파이터야! 그것도 정상급이란 말이야!"


"정상급은 무슨! 강석현 이놈, 아직은 애송이야! 고교 시합은 첫 출전이라구."

"아, 그러고 보니, 이 놈이 그놈이야? S체대 김교수가 아끼던 권순찬이를 K.O 로 눕혀버린 놈 말이야. 맞지?"


"그 때는 운이 좋았어. 상대는 중학생이었고..."


"어이구, 권순찬이가 보통 중학생이었나? 아주, 슈퍼 루키가 나셨구만! 최 관장, 두고 봐! 이 녀석, 고교 선수권에서 아주 두각을 나타낼걸?  한  키워 봐! 최 관장도 물건 한 번 만들 때 됐잖아?"


"알잖아? 실력만으로 되는 세상이 아니라는거."

"그래도 실력이 기본이지! 이놈은 물건이야!"


"흐흐! 고마워."


"이런 실력자가 일학년때는 뭐하다 이제야 나왔어?"

"1년간 자격정지 먹었어. 그거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속에서 천불이나!"


"중징계네? 어린 놈이 무슨 죽을 죄를 지었는데?"

"괘씸죄!"

"......"

"......"

"헐! 연맹 새끼들 하는 일은  나쁜 머리로는 이해불가내! 이해불가야! 그 새끼들 대가리에는 우동사리가 들어있는거 맞지?"

"내 잘못이야! 내가 연맹에 찍혔잖아.  벌을 우리 석현이가 대신 받는거지. 저놈에게 미안해 죽겠어. 선생을 잘못 만나 가지고..."

"야야! 그런 소리 하지마!  관장 너같은 코치가 어딨다고?"

"코치가 가르치기만 한다고 코치가 아니더라. 제자 앞길을 열어줘야 좋은 코치지. 이건 뭐 앞길을 막고만 있으니 원. 휴우!"



******





1987년!

그해 여름은 뜨거웠고,  투혼은 더욱 뜨거웠다.

1987년 6월의 민주화항쟁으로 나라 전체가 뜨거웠었다.




8월로 한  연기된 아마추어 복싱 열기도 날씨만큼이나 뜨거웠다.


복싱, 레슬링, 유도 등의 투기 종목은 대한민국의 전략 종목이었기에 메달 유망주를 찾고자 하는 정부와 언론의 관심은 대단했으니까...



고교 복싱, 특히 내가 참가하는 한계 체중 54kg 이하의 밴텀급은 플라이급 다음으로 선수층이 두텁다.

대진표에 이름을 올린 64명 중 1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총 여섯 번의 경기를 치러야 한다.


그야말로 살인적인 일정이다.


하지만 자신 있다.


몸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진다.


첫 시합 상대는 작년 4강 진출의 실적을 자랑하는 3학년 복서다.

발이 빠르고 잽과 스트레이트가 좋은 테크니션이라고 들었다.

이번 대회 우승후보 중의 하나다.


누구에게나 첫 시합은 곤혹스럽다.

하지만 오늘의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다.

체중 감량도 문제 없다.


평소 57kg 을 조금 넘는 체중이라 밴텀급 54kg 한계체중을 맞추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같은 밴텀급이었지만 중학교 3학년 때는 170cm, 고교 입학 후에는 172.5cm 였던 키다.
2학년이 되고나서는 조금 더 자라서 175cm 를 기어이 넘고 말았다.

"이거, 체급 올려야 되는  아니야? 결국 페더급, 아니 잘못하면 라이트급으로 뛰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어떡하냐, 석현아!"


관장님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키는 커졌지만 체중 관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사실, 중학교  밴텀급으로 출전하기는 했지만 것은 감량 없이 평소 체중에 맞춘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적당한 감량을 했다.

계체량 후 체중 회복으로 파워가 증가하는 리바운딩(rebounding) 효과까지도 톡톡히 볼 생각이다.



1라운드 공이 울린다.

"석현아! 천천히! 침착하게 해! 1라운드는 아웃복싱을 해! 치고 빠져! 포인트를 따자! 승부는 2라운드부터 걸어도 늦지 않아!"

 관장님이 목이 터져라 작전 지시를 하신다.

다 정해진 작전인데 뭐가 저리 할 말이 많으신지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관장님에게는 내 움직임이 불안하게 보였을 것이다.

시작과 함께 상대에게 다가가는 내 움직임은 아웃복서의 그것이 아니었으니까...

'와와!'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때렸냐구?


아니 맞았어!


상대의 원투 스트레이트가 깨끗이 내 안면에 터진다.


아마추어 복싱에서 가장 깔끔하게 득점을 하는 방법은 스트레이트를 얼굴에 적중시키는 거다.

나는 방금 점수를 잃은 것이다.


그것도 가장 깔끔한 방법으로!

상대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살짝 보인다.


마치 고교 복싱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같다.

고등학교 무대의 A급 복서의 스트레이트를 네까짓 놈이 견딜 수 있겠냐고 녀석의 표정이 나에게 묻고 있다.


어땠냐구?


별거 아니더라.


진짜다.


이 정도 주먹이면 몇 대를 맞아도 상관 없다.

내 맷집이 이렇게 좋았나?


아니면 녀석의 주먹이 솜방망이인 것인가?


얼굴에 클린히트를 허용했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는다.

서서히 놈과의 거리를 맞추려 한다.


녀석이 다시 공격을 한다.


조금 전에 재미를 보았던 원투 스트레이트다.

이번에는 내 가드에 모두 걸린다.


녀석이 슬쩍 물러선다.


아까 놈이 보였던 미소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나는 다가가고 놈은 잽으로 응수한다.


무용지물이다.

내 신장이 녀석보다 크다.

키가 큰 나를 상대로 잽이라도 제대로 맞추려면 저정도 거리로는 무리다.

내가 맹렬하게 돌진한다.

녀석도 내가 그러기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하지만  전에 내 스트레이트가 먼저 녀석의 머리를 출렁이게 만들어 버린다.

체중을 완전히 실어서 날린 펀치가 아닌데도 녀석은 충격을 받았다.

이제 알겠다.


내가 파워, 스피드 모두 녀석보다 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원, 투, 스리, 포, 파이브, 식스!


도합 여섯 번의 콤비 블로가 녀석의 안면과 몸통에 터진다.

녀석도 고교 3학년 생의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주먹을 날린다.

녀석의 몸통 공격은 이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겨우내 단련한 내 복부는  정도의 주먹을 견딜 자신이 있는 것이다.

가드도 아예 내려 버렸다.


녀석이 내 얼굴을 노리고 펀치를 뻗을 때에는 고개를 살짝 돌려서 피하며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함성 소리가 터져 나온다.


이유가 뭐냐고?

관중들이 제일 좋아하는 난타전이니까!

"석현아! 침착해! 서둘지 마!"


미안하지만 관장님의 지시를 듣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가 없었다.

내 몸에서 뻗어 나오는 기운을 나도 감당하기 어렵다.

오늘의 나는 누구도 말릴 수가 없다.

내 주무기인 원투 스트레이트가 녀석의 얼굴에 잇달아 터지자 녀석이 가드를 바짝 올리고 수비하기에 바쁘다.

그 틈에 내 어퍼컷이 녀석의 몸통을 사정없이 찍었다.


녀석의 숨소리가 거칠어진다.


웅크리는 녀석을 향해 소나기 펀치를 퍼부었다.

심판이 나를 말린다.


경기를 중단 시킨 것이다.



1라운드 K.O 승!


나의 고교 무대  데뷔전은 이렇게 끝났다.





확실히 고교, 그것도 전국 대회는 격이 다른가 보다.


겨우  경기, 그것도 일 회전을 통과했을 뿐인데 나에게 엄청난 관심들을 보여준다.


신문 기자까지도 나를 찾는단다.


이번 대회 최대 다크호스라나?

별일이다.


"축하해! 강석현!"

민예린이었다.


그녀가 복싱 경기장을 찾아왔다.

나를 보러, 아니 내 시합을 보러 온 것이다.

꽃다발까지 준비해 와서는 나에게 건넨다.


"배고프지? 나중에 우리 카페로 와! 고기 구워 줄게!"


민예린이 꽃다발을 건네주며 내 귀에 속삭인다.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샤워를 하고 체육관을 나서는 나를 신문 기자라는 양반이 잡는다.


"강석현 선수! 잠시 기간 좀  줄 수 있나요? 나는 대한 스포츠의 고일상 기잡니다."

살다 보니 별 일을  보겠다.

나 같은 놈을 인터뷰 하겠다는 건가?

겨우  경기를 이겼을 뿐인데?

"정식 인터뷰는 아니니까 긴장 풀어. 편안하게 이야기하면 될거야."


편안할 리가 있는가?


신문 기자라는데?

괜히 죄를 지어서 경찰서에라도 끌려온 기분이다.

다행히 내 곁에는 최 관장님이 계신다.

 대신 답변을 잘 해주시는 것 같다.

"강석현 선수는 아마추어보다는 프로 무대에 더 어울리는 스타일 아닌가요? 최 관장님 생각은 어때요? 탄탄한 기본기에 강력한 펀치, 더구나 상대 주먹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근성까지 갖춘  같던데... 저는 오랜만에 나온 물건이라고 봅니다! 마치 전설적인 K.O 왕 카를로스 사라테를 보는거 같았어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슈퍼스타가 나올 때가 되었습니다!"


"스타일은 비슷하긴 하죠. 하지만 우리 석현이가 사라테를 들먹이기에는 아직 보여준 것이 없어요."

"글쎄요? 아직 한 경기긴 하지만 충분히 보여준 거 같은데요? 사라테도 보였고, 최 관장님 선수 시절 모습도 겹쳐 보이고,... 아무튼 좋은 시합이었어요. 내가 복싱 취재만 10년이 넘습니다. 물건을 보는 눈 정도는 있지요."

"강 선수는 키가 있으니 결국 체급을 올려야겠지요? 페더급에서 라이트급 정도가 적절한 것 같은데..."


"그 점만은  기자님 판단에 동의합니다. 저도 예전부터 그렇게 느꼈지요. 석현이 이놈은 좀 더 체중을 늘리면 파워가 엄청나게 붙을거라는게 코치로서의 제 판단입니다."

"이야! 이거 기대가 큽니다! 빨리 프로에서 뛰는 모습을 보고 싶군요. 어쩌면 세계 챔피언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되는 유망주 아닙니까? 전설의 3체급 석권을 넘어, 4체급 석권까지 도전을 기대하고 싶군요!"

이젠 기자 아저씨까지 나를 보고 카를로스 사라테를 들먹인다.


내가 오늘 경기를 잘 하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너무 가셨다.

3체급 석권이라니!


그건 복싱계의 전설들이나 이룰  있는 업적이다.

아무도 이루지 못한 4체급 석권?

듣는 사람 민망하다.


기자라는 양반이 뻥이 너무 심하다.

현기증이 난다.

기자 아저씨하고 관장님이 나를 너무 오래 비행기 태운다.


제2의 카를로스 사라테도 좋고 3체급 석권도 좋지만 피곤해 죽겠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

빨리 어딘가로 가서 잘 익어서 육즙이 잘잘 흐르는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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