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민 마담 (2)
"석현 씨, 배고프지? 잠깐만 기다려! 내가 스테이크 구워 올게."
민예린이 주방으로 사라진다.
마치 날아가듯이...
"잘 먹네! 더 구워다 줄까?"
"아, 아뇨! 괜찮아요. 체중 조절 때문에 더 먹으면 안 돼요!"
"그렇구나! 아마추어 복서라면서? 올림픽 나갈 거라면서?"
"꿈은 그렇긴 한데, 쉽지 않아요. 국가대표 선발 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구요."
"그런데 왜 광산상고에 다녀? 권투부가 있는 학교도 아니잖아?"
이상한 일이다.
오늘 처음 만난 여자한테 내 지난 이야기가 술술 나온다.
내가 이렇게 입이 싼 놈이 아닌데...
"그래? 그러면 장학금 같은것은 한 푼 못 받고 학교를 다니는 거야? 지금이라도 전학을 하는건 어때? 운동선수에게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데!"
"어려워요. 복싱계 실력자한테 완전히 찍혀서..."
"다니는 체육관도 형편이 좋지 않다면서? 집안 형편도 어렵고..."
"어떻게 되겠죠. 신문 배달도 하고,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최욱 같은 놈이랑 얽히지 마!"
"알아요.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네요. 그나마 학교라도 무사히 졸업하려면 그놈 원하는거 하나, 둘 정도는 들어주고 그래야 하나 봐요."
"하긴, 최욱이 그 놈이 너네 학교에서는 왕이지?"
"아마도,..."
"참, 그놈의 돈이 원수네. 그치?"
"어쩔 수 없죠."
"석현 씨는 꿈이 뭐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니면 세계 챔피언?"
"난 그냥 복싱이 좋아요. 금메달도 챔피언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냥 싸우는 게 좋아요."
"응? 석현 씨는 진짜 타고난 싸움꾼이네? 싸움이 그렇게 좋아?"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러니까 싸우는 게 좋은 게 아니고, 뭐랄까? 몸과 몸이 서로 부딪혀서 누가 더 강한지 결판을 내는, 그런 점이 좋아요."
"으흥? 이해가 갈 듯 말듯 그러네? 그러니까 남을 괴롭히는 그러는 싸움이 아니란 말이지? 순수하게 누가 더 강한지 겨루는 그런게 좋은거란 말이지? 몸과 몸으로... 돈이나 권력, 그런 순수하지 못한 건 제외하고 말이야!"
"마, 맞아요! 제게 하고 싶었던게 바로 그 말이에요! 그런데 말씀 참 잘하시네요. 조리 있게...똑똑하신 거 같아요."
"깔깔! 석현 씨, 말하는 거 보니까 아직 고등학생 맞네! 완전히 얘네! 몸은 어른인데! 후후!"
민예린이 웃는다.
괜히 나를 바보 취급 하는 것 같아 부끄럽다.
"제가 원래 말을 잘 못해요. 실업계 다니는 무식한 권투쟁이라..."
"아니, 그런 뜻이 아니예요. 석현 씨 엄청 카리스마 있었거든? 링 위에서. 그런데 링 밖으로 나오니까 순수한 소년 같아서 그래요."
"......"
"바보! 매력 있다는 이야기야!"
"정말요?"
여자가 다시 내 입술에 입을 맞춘다.
내가 매력이 있단다.
나는 여자랑은 인연이 없는 줄 알고 살았는데 말이다.
여자의 입술이란 것이 이렇게 부드러운 것이구나!
여인이 내 입술을 빨아당기고, 내 영혼까지도 빨려 들어간다.
뜨겁고 달콤한 입술 속으로...
민예린이 내 품에 안긴다.
보드라운 고양이 같은 여자다.
좋은 향기가 난다.
은은한 여인의 향기에 코 끝이 간지럽다.
용기를 내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
비단결 같은 피부가 이런 것이었다.
손가락 끝에 닿는 살결이 내 손가락에 전기를 흘리고 있다.
여자도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석현 씨, 여자 친구 없어?"
"......"
여자 친구라니!
그런 호사스러운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그저 아마추어 복서이고 다른 것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
아니 생각의 문제가 아니다.
멀쩡한 여자가 나 같은 놈을 좋아하겠는가?
"대답이..., 없네? 여자친구 없어? 없구나!"
민예린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이 웃음의 의미를 모르겠다.
비웃는 것일까?
그러기엔 너무 깨끗한 미소가 아닌가?
아무튼 어렵다.
여자는...
"처음이지? 여자를 품어 보는거..."
나도 모르게 민예린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고백하자면 모든 것이 처음이다.
여자랑 키스를 한 것도, 여자의 가슴을 만져본 것도, 그리고...
민예린이 내 가슴팍으로 파고든다.
어렸을 때 키우던 암고양이 같다.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보드라운 털이 내 손바닥을 간지럽힌다.
"석현 씨에겐 내가 매력 없나 보다!"
민예린이 내 손을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 당긴다.
탱탱한 고무공같은 여자의 가슴에 내 손바닥에 잡힌다.
나도 모르게 움켜쥐고 말았다.
"석현 씨, 살살! 난 너무 거친 거 싫어! 천천히, 응?"
내 손에 와닿는 여인의 살결은 너무도 부드럽다.
그 부드러움 속으로 자꾸만 빠져든다.
"나, 더워! 옷 좀 벗겨 줄래?"
그런가?
이 예쁜 여인도 더운 것이가보다.
나처럼...
천천히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겼다.
서둘지 않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을 했는지 모른다.
쉽지 않다.
브래지어란 것을 어떻게 벗겨야 하는지 모르겠다.
민예린이 살포시 웃으며 나를 도와 자신의 브래지어를 끌러 준다.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천 조각이 그녀의 매끄러운 살결을 따라 흘러내린다.
탐스러운 복숭아 같은 가슴이 살짝 출렁인다.
그리고 포도알 같은 젖꼭지가 탐스럽다.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뭐 해? 석현 씨! 그렇게 쳐다보기만 할 거야? 그런 눈으로 보면 나, 부끄럽다구!"
여자가 다시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손이 내 가슴팍을 더듬는다.
나도 모르게 내 손이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있다.
이 보드라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옷 마져 벗겨줘. 치마하고, 팬티..."
마치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그녀가 시킨대로 하고 있다.
여자의 치마가 그녀의 매끈한 다리를 따라 떨어진다.
검은 색 스타킹의 감촉이 서늘하다.
그리고, 그 밑에는 뜨거운 여자의 피부가 열기를 뿜어댄다.
혹시라도 찢어지기라도 할까봐 조심해서 그녀의 검은 스타킹을 벗겨 내었다.
새하얀 그녀의 다리가 샹들리에 불빛 아래 빛을 낸다.
이제 그녀의 여체를 감싸고 있는 천 조각은 단 하나만이 남았다.
내 얼굴이 너무 뜨겁다.
괜히 긴장도 된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여자의 팬티를 벗겼다.
새하얀 피부와 검고 무성한 수풀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괜히 숨이 턱턱 막힌다.
소파에 기대고 있는 여자가 자신의 다리를 살짝 벌린다.
검은 수풀 밑으로 보이는 붉은 입술이 나를 재촉하는 것 같다.
"석현 씨, 이제 들어 와. 나 지금 젖어 있어. 그냥 들어와도 돼!"
민예린이 내 손을 잡아 끈다.
내 몸을 그녀의 위에 포개었다.
내 다리 사이에서 내 물건이 잔뜩 성이 나 있다.
민예린이 그놈을 잡고는 자신의 몸으로 끌어당긴다.
다른 손을 내 목에 휘감고는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그녀의 손이 내 물건을 자신의 몸 깊숙이 집어넣는다.
상상도 못한 뜨거움이다.
마치 용암 동굴 속에 빠진 것만 같다.
그녀의 팔은 내 목과 등을 휘감는다.
그녀의 두 다리는 내 허리를 뱀처럼 휘감고는 조여 온다.
그리고, 그녀의 뜨거운 용암 동굴이 나를 조여 온다.
그 동굴 속에서 녹아버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녀의 엉덩이가 리드미컬하게 움직이며 나를 리드한다.
나는 그 움직임에 맞춰 춤을 추듯 움직였다.
그녀의 움직임이 조금씩 빨라진다.
나도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서 움직임을 빨리한다.
민예린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녀는 내 목을 미친 듯이 끌어안는다.
여자의 뜨거운 몸이 수축하고 또 수축해서 내 몸을 조인다.
그리고 경련을 일으킨다.
나도 견디지 못하고 그녀의 뜨거운 곳에 내 참아온 열정을 쏟아내고 말았다.
******
민예린의 붉은 입술이 내 입술을 살포시 빨아당긴다.
꿈같은 시간이다.
내 인생에도 이런 시간이 오기는 온다.
그리고, 꿈은 끝이 났다.
끝이 있으니까 꿈인 것이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석현 씨, 벌써 가려는 거야? 좀 있다가 가지그래?"
자신의 품에서 벗어나 주섬주섬 옷을 껴입는 나를 보며 민예린이 아쉬워 한다.
"저, 좀 있다 신문 배달 가야 돼요. 조간이라서..."
"아, 그렇구나! 석현 씨는 바쁘구나! 내 생각만 하고 있었네? 먹을 거라도 좀 만들어 줄까?"
"아니에요. 신문배달 끝나고 나면 빵하고 우유가 나와요. 그거 먹으면 돼요."
"내가 섭섭해서 그러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오믈렛 만들어 줄게."
맛있다.
세상에는 정말 맛있는 것이 많다.
이 오믈렛이 그렇다.
맛이 있다고 한 입에 털어먹기에는 너무 아깝다.
천천히 맛을 음미해 본다.
그런 나를 보고 민예린이 웃는다.
"맛있어? 먹을만 해?"
"네, 사장님 요리 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피이, 또 그런다."
"네?"
"사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아, 깜박 했어요. 내가 원래 잘 잊어 먹어요."
"그럼, 다시 불러 봐. 누나라고..."
"누.나."
"한 번 더, 응?"
이상하다.
아무리해도 누나라는 말이 입에 달라붙지 않는다.
이 여자는 나랑 다른 세상에 사는 것만 같다.
그런데 어쩌다 이리 된 것인지 모르겠다.
"에이, 석현 씨, 나를 누나라고 부르기 싫구나?"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닌데..."
"석현 씨는 어떤 여자 좋아해? 이쁜 여자? 착한 여자? 아니면 섹시한 여자?"
"난, 대학 나온 여자..."
"응? 특이하네? 대학이 그렇게 중요해?"
"사실, 우리 할머니 소원이라서..."
"깔깔! 재미있네, 재미있어! 석현 씨, 효자구나?"
"......"
무슨 말을 못 하겠다.
이 여자 앞에서는... 괜히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나만 바보가 되는 느낌이다.
"누나라고 안 불러도 좋아! 대신 우리 동맹 맺자!"
"동맹이요?"
"그래, 서로가 필요할 때 돕고 살자는 말이야. 석현 씨 인생이 안 풀릴 때 나를 찾아와. 내가 석현 씨를 힘껏 도와줄게. 그리고, 내가 석현 씨를 필요로 할 때 내 곁에 있어주고... 괜찮지?"
"네. 나야 뭐,..."
나한테 이미 특별한 여자가 되고 말았다.
동맹도 좋고, 누나도 좋다.
아무렴 어떤가?
"좋아! 난 오늘부터 강석현의 팬클럽 회원이야. 석현 씨 시합 있을 때 보러 갈게. 괜찮지?"
"......"
대답을 하지 못하겠다.
괜히 쑥스럽다.
사내들만 바글거리는 복싱 경기장에 이렇게 이쁜 여자가 나를 응원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그리고, 동맹 맺은 기념으로 충고 하나 해줄게. 최욱 그놈 조심해. 위험한 놈이야!"
민예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민예린이 자신의 붉고 촉촉한 입술을 내게 밀착시킨다.
그녀의 입술이 다시 내 입술에 와서 부비기 시작한다.
이런 달콤함이라니...
******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가난한 아마추어 복서이고, 여전히 신문 배달을 한다.
복싱은 아직도 나의 전부이다.
그 전부를 걸고 승부를 보아야 할 날이 다가오고 있다.
전국 아마추어 복싱 고등부 선수권 대회!
내 고교 선수로의 데뷔전이다.
그리고 어쩌면 은퇴 무대가 될지도 모른다.
온 세상이 1988년 서울 올림픽으로 시끄럽다.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꿈의 무대이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이후로 처음 치러지는 복싱 최강자를 뽑는 자리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이 불참했고, 1984년 L.A 올림픽에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불참했었다.
이번 올림픽은 진짜다.
복싱 강국의 선수들이 모두 참가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 무대에 서고 싶다.
내 주먹을 그들과 겨루어보고 싶다.
그것이 전부다.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으면 먼저 국내 예선을 통과해서 국가대표가 되어야 한다.
내노라 하는 실업팀 선수, 대학생 선수들이 버티고 있다.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그들과 예선전을 가지기 위한 길은 단 하나!
이번 여름의 고교 선수권 대회 우승 뿐이다.
그래야 겨울에 펼쳐지는 국가대표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질 수 있다.
혹시라도 국가대표로 선발된다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바로 직전에 열리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무대에 설 수 있다.
나는 내 형편을 잘 안다.
이번 고교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복싱을 접을 생각이다.
그리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이다.
주산 자격증도 따고, 타자 자격증과 부기 자격증도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은행이나 농협같이 좋은 직장은 아니라도 어딘가는 취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한다.
내가 만약 복싱에 재능이 있다면, 이번 대회에서 그 재능을 드러내어야 한다.
이 대회가 지나면 이제 기회가 없다.
이번 대회까지가 나의 한계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한다.
나에게 남은 재능이란 게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