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원투 스트레이트
"오! 히트맨(Hit man)! 왔구나! 오늘도 잘 해보자!"
최 관장님은 나를 히트맨이라고 부르신다.
우리말로는 '저격수' 란다.
디트로이트의 코브라 '토머스 헌즈(Thomas Hearns)' 의 별명이다.
아무리 별명이라고는하나 일개 아마추어 복서에게는 민망할 정도로 과분한 호칭이다.
나를 가르치는 최관장님은 이상한 분이셨다.
처음부터 나를 좋게 보아주셨다.
약골이었던 나에게 천부적 재능이 있다며 좋아하셨다.
깡마른 체격은 체급 경기에서 체중조절에 이상적인 체격이라며 칭찬받았다.
펀치력이 약한 편이었지만 그것은 체중이 증가하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라며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나한테도 재능이란 것이 있었구나!"
내 평생 처음 받아보는 칭찬이었고, 격려였다.
어쩌면 그 칭찬이 나를 변화시켰는지도 모른다.
플라이 급으로 출전한 아마추어 중등부 경기에서 나는 두각을 나타내었다.
플라이 급 치고는 큰 키에서 쉴 새 없이 뻗어 나오는 잽은 상대방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고 잽과 섞여서 나오는 원투 스트레이트는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중등부 아마추어 경기에서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쉬운 것은 결승전에서 패했다는 것이다.
처음 출전한 대회이니만큼 거듭되는 시합에 체력이 바닥난 것이다.
그 결과는 판정패였다.
처음으로 우승을 맛보고 싶었던 소년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시합이 끝나고나서는 허탈함에 도저히 링을 내려올 수가 없었다.
조금 더 힘을 냈어야 했는데, 몇 번만 더 주먹을 뻗었으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바보같이 엉엉 울고 말았다.
관장님이 위로해 주셨다.
"봐라, 석현아! 복싱이 쉬운 게 아니지? 너, 체력은 자신 있다고 생각했지?"
"......"
"그게 오만한 거야. 복싱은 말이야, 뜀박질하고는 달라. 몇 번만 헛 스윙을 하면 금방 힘이 빠져. 자기도 모르게! 시합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안 돼. 그건 연습 중에 해야지."
"......"
"나는 석현이 네가 자랑스럽다. 우리 체육관에서 너처럼 빨리 느는 얘는 없었어. 넌 앞으로 키가 많이 크게 될 거야. 몸도 불어날 거고... 내가 보기엔 너는 페더급, 아니 라이트 급 선수일 때 가장 힘을 잘 쓸 수 있어! 서두르지 말자! 넌 할 수 있어! 내가 장담해!"
과분한 격려를 받았고, 다행히도 최 관장님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이 되어서 나는 밴텀급으로 체급을 올렸고 꿈에 그리던 아마추어 복싱 중등부 우승을 차지했다.
주먹도 제법 매워졌다.
이제는 솜 주먹이 아니었다.
혹자들은 나에게 '한국의 사라테(Carlos Zarate)' 라는 과분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지도자들도 생겨났다.
소위 스카우트 대상이 된 것이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나 '강석현'이 말이다.
S체육고등학교에서 나를 오라고 했다.
수많은 국가대표 복서들을 배출한 복싱 명문고등학교다.
"강석현! 우리 학교로 와라! S체육대학 입학까지 보장하마!"
"감사합니다만, 저는 배우던 체육관에 아직 배울 것이 남아 있습니다."
"허, 좋은 말로 할 때 와. 다, 너를 위해서야. 너도 국가대표 한 번 해야지? 석현이 너 실력이면 충분히 가능해. 먼저 우리 학교로 와야 하겠지만 말이야."
"죄송합니다. 저는 저희 관장님에게 배워야 합니다."
"겨우 최 관장 때문에 복을 차 버리겠다는 거냐? 그 사람은 동네 체육관 관장이야! 코흘리개들 돈이나 받아먹는 놈이라구! 메달은 커녕 국가대표 하나 배출 못하잖아? 좋은 학교에서 좋은 코치한테 배워야 좋은 선수가 되는 법이야."
"저에게는 최고의 코치이십니다."
"뭐? 최 관장이? 허, 지나가는 개가 다 웃겠네! 그 사람 할 줄 아는거라고는 박수치고 격려하는거 밖에 없잖아? 삼류 코치야, 삼류! 강석현, 너는 일류가 될 생각이 없는 거야?"
최 관장님이 할 줄 아는 게 박수치고 격려하는 것 밖에 없다구?
당신이야 말로 삼류다.
오늘의 강석현을 만든 것은 그 '격려' 이니까.
나에겐 최 관장님이 일류 코치다.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누군가를 상상할 수조차 없다.
"죄송합니다. 결심했습니다. 최 관장님한테 계속 배우는 걸로..."
"너, 후회하게 될 거다. S체고와, S 체육대학의 인맥을 얻지 않으면 국가대표는 꿈도 꾸지 마라! 알겠지?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후회 안 합니다. 결심했습니다."
덕분에 명문 S 체고가 아니라 이곳 광산상업고등학교에 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고등부 웰터급 3위 복서와 스파링이 아닌 원터치 맞짱을 뜨게 되었다.
아무렴 어떤가?
감내해야 한다.
개인주의자의 숙명 같은 거다.
'쉭! 쉭! 쉭!'
박태식의 훅이 허공을 가른다.
박태식은 유명한 하드펀쳐(Hard Puncher)다.
다른 건 몰라도 펀치력 하나는 일품이라고 소문이 난 복서다.
그리고 나는, 소위 테크니션이다.
테크닉만 좋다. 펀치력은 다소...
"야! 태식아! 저 놈은 솜주먹이야! 솜주먹!"
광산상고 옥상에 모인 관중들이 열렬히 박태식을 응원한다.
이 대결에서 나는 철저한 악역이 되고 말았다.
박태식이 내게로 파고든다.
자신의 주무기인 양 훅을 휘두르면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
사이드 스텝을 밟으면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밴텀급과 웰터급의 대결이다.
실제 시합은 불가능할 정도의 체급 차이다.
파워와 내구성을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한 체중 차이다.
하지만 자신있다.
체육관에서 페터급이나 라이트급 선배들과 스파링을 뛴 경험이 있다.
선배들이 경량급의 나를 스파링 파트너로 삼은 데는 그 이유가 있다.
내 큰 키 때문이다.
한계 체중 54kg 의 밴텀급이지만 173cm 의 신장에서 내려꽃는 스트레이트는 중량급 선배들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란다.
아마추어 복싱에서 가장 점수를 따기 좋은 주먹은 역시 스트레이트다.
밴텀급 치고는 장신인 173cm 에서 내려꽂는 원투 스트레이트!
이것이 내 주무기다.
상대인 박태식은 웰터급 치고는 키가 크지 않다.
170cm 를 겨우 넘을까?
밴텀급인 나보다도 약간 작다.
더구나 팔 길이는 나하고 차이가 꽤 난다.
그 대신 근육이 잘 발달한 복서다.
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
이런 놈의 주무기는 십 중 팔구는 양 훅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파이터일 수밖에 없다.
가드를 단단히 하고는 턱 밑으로 파고드는 인파이터 복서!
가벼운 잽은 가드로 흘려버리고 내 주무기인 원투 스트레이트는 더킹과 위빙으로 흘려버리고는 내 턱에 훅 한방을 꽃아 넣으려 할 것이다.
내 예상대로다.
박태식과의 싸움은 내 예상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흘러간다.
나의 잽과 스트레이트를 안면에 계속 허용한 박태식의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구경꾼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선수인 박태식은 짜증을 내며 욕설을 내뱉는다.
화를 낸다는 것은 패배를 자인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박태식에게 웰터급은 무리다.
저 스피드로는 수준급 아웃복서의 발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최 관장님이었으면 뭐라고 하실까?
아마 감량을 해서 라이트 급으로 체급을 낮추라고 호통을 치지 않았을까?
펀치력을 키우려고 스피드를 버리다니,
한심하다.
어리석다!
감량의 고통을 피하고자 체급을 올리는 어리석은 길을 갔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 정도의 정신력을 가진 나태한 놈의 주먹에 맞고 쓰러질 정도로 내가 약해빠진 놈은 아니다.
나는 깡석현이다!
빨리 끝내 버릴까?
아니다.
아직은 좀 더 녀석의 발을 무디게 만들어야 한다.
지쳤다고는 하지만 녀석은 웰터급이다.
괜히 서둘다가 럭키 펀치 한 방을 얻어맞게 될지도 모른다.
내 공세에 이미 지쳐버린 놈의 주먹을 왜 그렇게 무서워하냐고?
내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안된다.
피하고 싶다.
복싱 하는 놈이 얼굴에 피멍 쯤 드는 것을 왜 두려워하냐고?
우리 할머니가 걱정을 하시니까!
오늘은 고등학교 입학식이다.
시합도 없는 날이다.
이런 날 얼굴에 상처라도 나 가지고 집에 들어간다는 것은 '할머니, 나 오늘 학교에서 싸웠어!' 라고 광고라도 하는 행위다.
할머니는 내가 복싱을 한다는 사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하신다.
"내가 못나서 우리 이쁜 손주가 저리 험한 운동을 하는구나! 이를 어이할꼬...!"
내게 남은 유일한 혈육인 할머니다.
할머니가 우는 것은 보고 싶지 않다.
"석현아! 우리 강아지야. 권투라는거 그거 때려치우고 공부해라! 공부가 싫으면 기술을 배우고..."
"아! 할머니! 복싱은 스포츠예요, 스포츠라구요. 보기에는 거칠어 보이지만 얼마나 예의를 중시하는 운동인데요? 그리고 복싱도 잘 하면 대학 갈 수 있어요. 내가 공부로는 대학을 가기 어렵겠지만 복싱 실력으로는 충분히 갈 수도 있다구요!"
"그게, 정말이냐?"
"그럼요. 운동 선수들도 대학을 간다구요."
"아이고! 그거 좋겠구나. 우리 손주가 대학생이 되면 얼마나 좋을꼬?"
"할머니! 내가 대학생이 되는게 그리 좋아요?"
"그럼, 좋다마다! 모름지기 사람은 배워야 쓰는겨! 밥을 굶더라도 배울 건 배워야지! 그리고 참한 여대생 처자랑 결혼 까지 하면 이 할미 더 이상 소원이 없겠다."
"......"
솔직히 그건 자신이 없다.
대학 가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인데...
더구나 여자가 대학까지 갔다면 얼마나 똑똑하단 말인가?
그런 여자는 내 능력 밖이다.
그리고 그리 똑똑한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나 같은 놈한테 시집을 온단 말인가?
그냥 대학생이 되는 것으로 만족이다.
사돈의 팔촌까지 둘러봐도 4년제 대학 나온 친척은 없더라.
차라리 세계 챔피언이 되는 편이 훨씬 쉬울 것이다.
나비같이 날아서 벌 같이 쏘아주면 된다.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 처럼, 토머스 헌즈(Thomas Hearns)처럼, 카를로스 사라테(Carlos Zarate)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