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ex wif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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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사무실이었다.
사방이 통유리로 둘러싸인 널찍한 사각 공간에는 말끔하게 정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식사 준비는 이상 없죠?"
"네. 호텔에 머무는 동안 최고로 엄선된 식사가 제공되도록 완벽히 준비했습니다."
"보안 쪽은요?"
"···이상 없습니다."
"객실이나 휴게 공간까지 모두 체크했어요?"
"···예."
"그럼 장소는 대충 정리됐고, 참석 멤버는요?"
"A조 총원 50명 중 42명 참석입니다. 이중 2명은 2회 연속 불출석으로 멤버 자격 박탈시켰습니다."
"B조랑 C조는?"
"B조 총원 55명 중 53명 참석입니다."
"C조는 총원 52명 중 49명 참석이었는데 마지막에 1명 추가 되었습니다."
"회장님께서 특별입단 시켜줬다는 그 친구 말이군요?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이도훈입니다. 금일 병원 측으로부터 알유클린 검사 이상 없이 통과했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모임 장소와 시간 역시 제가 전화로 직접 통보했고요."
"잘하셨어요. 시설팀은 가서 마무리 잘하고, 인원팀 실장님들만 잠시 회의실에 남아보세요."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은 바로 김희재의 심복 중 하나인 지실장이었다. 국내 공연 기획 분야에서 최고 중의 최고로 손꼽히던 그녀는, 김희재가 직접 스카우트해 현재의 회사로 넘어왔다.
<로얄 기획>이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이벤트 회사는 김희재가 직접 운영하는 코인 자동매매 프로그램 업체의 자회사로 등록되어 있었다.
정식으로 사업자 등록을 내고 운영되고 있지만, 실제로 로얄 기획은 외부에서 일을 수주 받는 경우는 창사 이래 단 한 건도 없었다.
모든 업무 계약은 오로지 모기업인 김희재의 법인하고만 이루어졌으며, 실제로 그들이 하는 일은 로얄 클럽이 안정적으로 운영 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서포터 역할이었다.
김희재는 오로지 로얄 클럽을 위해 국내 최고급 인재들을 모아 법인 하나를 뚝딱 세운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총괄 책임자는 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지차희 실장.
흔히 지실장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그녀가 김희재 대신 로얄 기획의 대표 임무를 대리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실제로 다른 실장들은 모두 지실장의 지시에 따라서만 움직였다.
시설팀 직원들이 회의실을 나가자 지실장이 인원 관리 역할을 하는 매니저 셋을 향해 따져 물었다.
"다들 원인 관리 똑바로 못 해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시정하겠습니다."
각각 여자 회원, 남자 회원들을 관리하는 매니저들은 다짜고짜성을 내는 지실장 앞에서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지실장은 김희재 앞에서는 깍듯하지만, 부하 직원들은 쥐잡듯 잡기로 유명했는데 이 때문에 그녀의 별명 또한 <뿔테 마녀>였다.
새하얀 얼굴에 빨간 립스틱, 그리고 테가 유난히 두꺼운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다닌데서 붙은 별명이다.
"내가 지금 무슨 얘기 하는 지 몰라서 물어요? 인원 비율 못 맞춰요? 회장님이 모임 때 1:2 성비 엄수하는 거 신경 안 쓰실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여성 회원들은 사정상 참석율이···."
"내가 지금 정실장에게 뭐라고 하는 게 아니잖아. 여성 회원이마흔 두명 참석이면, 남자 회원 쪽에서 인원을 줄여서라도 맞췄어야지!"
"저, 그게···."
남성 회원 한 무리를 담당하는 김실장이 억울하다는 듯 항변했다.
"아무래도 클럽의 특성상 남성 회원들쪽의 충성도가 무척 높은 편입니다. 장소를 일부러 멀리 잡고, 급작스럽게 일정을 통보해도 어떻게든 찾아오더라고요. 게다가 이번에 갑자기 새로운 멤버가 추가된 것도···."
"그럼 회장님이 잘못했다는 소리네요?"
"아, 아니 저는 그런 말이···."
"맞잖아? 무리하게 남자 회원을 받은 회장님이 잘못했네. 그 쵸? 안 그래도 있는 인원 감당도 못하고 있는데, 거기에 혹까지 얹었다는 소리 아니야!"
지실장의 앙칼진 목소리에 정실장이 바짝 엎드렸다.
같은 실장으로 불리지만, 회사 내에서 그녀가 회장을 대신 인사권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녀의 입김 한방이면 로얄 기회의 누구든 그날 부로 짐을 싸서 쫓겨나야 할 판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지실장님. 제가 주제 넘었습니다."
지실장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카로운 시선을 쏘아댔다.
"똑같이 실장, 실장 하고 불러주니까 아주 지가 동급인 줄 알고 말이야!"
"정말 죄송합니다."
"당신 올해 연봉 얼마야?"
"···예?"
"김철우 매니저 당신 말이야. 꼴랑 50명 넘는 회원들 관리하면서 1년 동안 회사에서 받아가는 돈이 대체 얼마냐고!"
"···2, 2억입니다."
"별 병신 같은 게."
노골적인 육두문자까지 튀어나왔지만, 회의실에 모인 누구도 감히 지실장에게 거역할 엄두를 못 냈다.
여기서 잘못 찍히면, 자신들의 모가지 역시 무사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다.
"애들도 아니고 성인 남성 꼴랑 50명 데리고 있으면서, 인원관리 못 하겠다는 소리가 지금 나온다고? 아주 그냥 회장님 돈으로 호의호식하다보니 배때지가 불렀지? 어? 니깟게 연봉 2억을 받아 처먹을 능력이 된다고 생각해?"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지실장이 대놓고 삿대질하며 모욕을 주었지만, 김실장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면목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지실장은 쉽게 분이 안 풀리는지 나머지 두 명의 실장에게도 서슬 퍼런 목소리로 경고했다.
"당신들도 정신 똑바로 차려! 인원 비율 못 맞추는 건, 당신들인원 관리팀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총괄인 내가 이런것 까지 일일이 신경 써야 해? 이럴 거면 그 많은 연봉은 왜 받아 가는데?
능력 없으면, 도저히 못하겠다는 변명하지 말고 짐 싸서 쳐 나가라고! 그 돈 주고 왜 당신들을 써야 하는 지 납득을 못 시킬 거면 썩 꺼지란 말이야!"
지실장의 일갈에 다른 매니저들은 책상만 쳐다보며 고개를 푹숙였다.
한 번 폭발하면 화를 쉽게 삭이지 못하는 지실장에게 하도 많이 당하다 보니 이럴 땐 차라리 잠자코 있는 편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일 잘한다고 큰 돈 주고 스카웃 해왔으면 능력을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변명이나 하고 앉아있고 말이야, 다들 알만한 사람들이."
"죄송합니다."
김실장이 얼굴이 빨개져서 털리고 있는데, 옆에 있던 다른 실장이 손을 들었다.
"저, 지실장님."
"왜요?"
그는 한실장이라 불리는 인물로 김실장과 마찬가지로 남자 회원을 담당하는 매니저였다.
"이번 모임인원은 이미 확정이 되었으니, 도로 물릴 순 없을 것 같고 아니면 이런 방법은 어떻습니까?"
"무슨 방법?"
지실장이 흥분을 가라 앉히고 귀를 기울이자, 한 실장이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남성 회원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면, 적당한 비율이 되도록 인위적으로 조정해보는 겁니다. 메인 게임이 벌어질 땐 1:2의 성비가 맞춰지도록요."
"호오, 어떻게요?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있으세요?"
한실장의 아이디어에 다들 귀를 기울였다.
사실 지실장 앞에서 개처럼 닦이고 있지만, 다들 자기 분야에서는 출중한 능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인재들이었다. 그러니 거금을 주고 회사로 데려온 것이고.
"그러니까 여성 회원 숫자에 맞춰 남자들을 초반에 몇 명 걸러내는 방식입니다. 일종의 예선전을 연달까요?"
"흠, 그럼 대충 초과 인원 스무명 정도만 정리하면 되겠군요.
하지만 멀리 강원도까지 불러놓고 본게임도 못 해보고 그냥 돌아가라고 하면 탈락한 회원들이 섭섭해하지 않을까요?"
"저희가 임의로 누군가를 자르면 당연히 불만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게임을 벌여 탈락시킨다면, 다들 수긍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남성 회원들이 납득할만한 방식이라는게···."
"제 생각에는 남자들이 납득을 하려면 그 선택을 주최측이 아닌 여자들에게 맡여야 합니다."
"여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죠?"
지실장의 목소리가 다시 나긋나긋해지자 한실장이 신이 나서 목소리를 높였다.
"회장님께서 일부러 성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지 그 핵심을 살펴보면 됩니다."
"그야···. 일전에 여러 방식으로 비율을 조정해 봤는데, 남자들은 경쟁이 붙을 때 최선의 역량을 발휘한다고···."
"그렇죠. 저희가 그렇게 찾아낸 비율이 1:2의 성비였죠. 지나친 경쟁률은 오히려 의욕을 떨어뜨리지만, 1:2 정도는 다들 해볼만 하다고 생각하는 최적의 비율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미니게임 형식으로 여성들에게 초반에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실장 말은 1:2의 비율을 넘는 초과인원의 남자들은 본게임 전에 미니게임으로 여성들이 선택해서 고르게 하자는 거죠?"
"네. 정확합니다."
그때 잠자코 듣고 있던 김실장이 끼어들었다. 여성회원을 담당하는 직원이었다.
"흐음, 무슨 말씀을 하시는 줄은 알겠어요. 근데 다들 아시겠지만 클럽 모임이라는 것이 오래되면 나름 회원들간의 친분이 생겨 난단 말이죠. 저희 모임도 역사가 제법 되다 보니, 초기 회원들끼리는 굉장히 끈끈한 관계에요. 만약 여성회원들에게 탈락할 남자들을 고르라고 한다면 분명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좌우될 거예요.
그것은 절대 공정하지 않죠."
김실장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기 때문에 지실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고인물끼리 서로 챙겨주면, 늦게 들어온 회원들의 불만이 속출할지도. 이런 모임은 공정성을 잃으면 안 돼요. 누군가 특혜를 받거나, 반대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모임이 지속될 수 없어요."
두 사람의 우려에 의견을 제안한 한실장이 곧바로 말을 받았다.
"훌륭한 지적입니다. 당연히 고인물끼리 친분에 의해 누가 탈락하고 붙고는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이 테스트에 익명성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익명성이라면···. 설마 호텔에서 가장무도회라도 열자는 건가요? 모임 하루 전에 브라스 밴드가 섭외가 돼요? 보안은 또 어쩌고요?"
"아뇨. 예전에 이벤트처럼 진행했던 가장 무도회같은 거창한 방식이 아닙니다. 야외용 간이 화장실 같은 밀폐 박스 25개면 충분합니다. 그건 보안도 필요없고 당장 업체에 연락해서 제작 및 설치가 가능하니까요."
"흐음, 전혀 이해를 못하겠는데, 간이용 야외 화장실이 왜 필요 하죠?"
"꼭 화장실이 아니어도 됩니다. 탈의실 형태도 상관없고, 안이 보이지만 않으면 공중전화 박스도 무방합니다. 어쨌든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밀폐된 박스면 뭐든 상관없습니다."
"계속 해보세요."
지실장이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끼고 한실장을 채근했다.
"혹시 글로리 홀이라는 용어를 아십니까?"
"아뇨."
"글로리 홀이라면···."
"그거 아니에요? 칸막이 화장실에 구멍을 뚫어놓고 거기로 성기를 들이미는···."
"아! 그거!"
"맞습니다. 이건 일종의 테스트입니다. 쉽게 설명드리면 밀폐박스 안에 여자 한명이 들어가 있고, 4방향에서 남자들이 동시에 잦이를 들이미는 겁니다."
"호오."
"흐음."
"재밌겠는데?"
"그 상태에서 여성회원에서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글로리 홀로 들어온 4개의 성기 중 가장 마음에 안드는 한명을 탈락시키는 방식으로요."
"성기로만 진행을 하면 익명성이 보장되겠군요. 그리고 여자들이 직접 남자들을 뽑는 거니 예선에서 떨어져도 납득이 될테고요."
"맞습니다. 여자들 입장에서도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테니 딱히 손해볼 것도 없죠. 얼굴을 보고 하는 것도 아니니, 혹시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떨어뜨렸다는 부담감도 덜할테고요."
한실장의 아이디어를 모두 들은 지실장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말한 아이디어. 그거 내일 오전까지 준비 되겠어요?"
"대한민국에서 돈으로 안되는 일은 없습니다."
"좋아요. 회장님께서 돈 절대 아끼지 말고 진행하라 하셨으니, 글로리 홀 박스 25개 분 바로 진행 시키세요. 제작에서 설치까지 한실장이 전담하고 예산 집행은 총무에게 다이렉트로 전달해서 추진하는 걸로."
"알겠습니다."
"정실장님은 남자들 4명씩 조를 짜주세요. 누구나 납득할 수 있게 공평하게. 그리고 여자들의 배치는 김실장이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네."
해결 방법을 찾아낸 지실장이 회의를 종료했다.
"자자, 얼른 움직입시다. 한 달에 딱 한 번 일하는 회산데, 다들 밥 값 해야죠."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