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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2006화 (1,986/2,000)

2006. ex wife-81-

* * *

"서른 넷이에요."

"정말요? 언뜻 봐선 20대이신줄···."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어려보이세요."

지안이 옅은 웃음을 지으며 임희경에게 가볍게 감사를 표했다.

사실 어려보인다는 얘기는 늘 듣는 편이라 별다른 감흥도 없었다. 다만 자신을 검진해주는 의사 앞에서 적당히 예의를 차리는것.

바로 이점이 세라와 지안의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지안은 세라와 단 둘이 있을 땐 상스러운 표현도 여과없이 분출하는 편이었지만, 하지만 적어도 지안은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제할 줄 알았다.

내키는 대로 마구 질러버리는 세라와 달리, 지안 쪽의 대인관계 지능이 더 높은 것이다.

이런 부분은 평소 이미지 관리에서도 드러났는데, 세라가 노출이 심하고 짙은 화장을 하는 편이라면, 지안은 꾸민듯 안꾸민 자연스럽고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지향하는 쪽이었다.

지안의 몸매가 세라에 비해 결코 꿀리지 않았음에도 굳이 대놓고 과시하기보다 은근슬쩍 보여주기 전략을 구사하는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지안의 고급스러운 이미지에 진료를 보던 희경도 어깨를 으쓱했다.

'특별 검진을 받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외모가 빼어난 편인가? 아까 도훈이도 엄청 잘생겼었는데···.'

본래 희경은 특별 검진을 전담하는 의사가 아니었다.

담당의가 갑자기 상을 당하는 바람에, 오늘만 땜빵 근무를 보고 있을 뿐 검진 대상자를 실제로 보기는 처음이었다.

같은 병원 소속임에도 특별 검진은 병원장의 지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임희경은 병원 내에 <특별 검진>이라는 종목이 있다는 것만 알 뿐 정확히 누가 무슨 목적으로 하는 지 알지 못했다.

다만 흘려 듣기로는 지금의 병원장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투자자가 사적인 의뢰를 맡기는 것이라는 정도?

'대체 정기적으로 성병 종합 검사를 받아야 하는 일이 뭐길래···.'

정기모임 참가 직전 검진 결과를 증명해야 하는 회칙 때문에, 로얄 클럽의 멤버들은 최소 1달, 최대 3달 간격으로 이곳 대물 비뇨기과를 방문했다.

거진 150여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하다 보니 한달에만 최소 100명 가까운 특별 검진 대상자들이 오고갔다.

희경은 처음 이들이 성매매업이나 유흥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무리봐도, 연령이 도저히 매칭되지 않았다.

남자도 그렇고, 여자 역시 30대가 많았다.

남자의 경우는 40대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다.

나가요 걸은 절대 무리, 호스트바에서 선수로 뛰기에도 너무 높은 연배였다.

희경의 두번째 추리는, 이들이 포르노 산업에 종사하는 소속 배우들이라는 것이었다. 배우들이 건강 관리를 위해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희경은 두 번째 가설도 스스로 납득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 성기삽입 방식의 헤어 포르노가 제작될 수 있느냐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설사 성인 배우들이라고 해도, 주요 부위에 공사를 친 뒤 삽입없이 연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성병 여부는 딱히 중요치 않았다.

희경은 많은 의문을 가졌지만,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았다.

어찌됐건, 대물 비뇨기과에서 <특별 검진>은 병원장의 최우선 지시사항이었고, 이에 대한 어떤 질문도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심지어 계약 사항 비밀 유지 조항의 첫번째로 들어간 항목이기도 했다.

희경은 딱히 지금의 병원에 불만이 없었기 때문에, 묵묵히 시킨 일만 해내면 그만이었다.

또 특별 검진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붙이긴 했지만, 딱히 불법적인 의료 행위도 아니고, 종합 성병검사를 당일에 바로 처리될 수 있도록 신속히 진행하는 프리미엄 서비스일 뿐이었으니까.

"최지안씨. 여기 문진표 좀 작성해 주시겠어요?"

"네."

지안이 펜을 받아 들더니 문진표의 항목들을 꼼꼼히 읽어내려 갔다. 겉으로는 담담한 척 했지만, 사실 지안은 검진 행위 자체가 몹시 귀찮았다.

'정말 별 거지 같은 걸 다 시키네. 내가 무슨 성병 보균자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지안은 괜히 의심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녀가 친구인 세라와 또 다른 점은 아무 남자와 뒹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녀도 내키는 대로 남자와 잘 때가 있지만 상대의 신원이 불확실한 경우엔 꼭 콘돔을 착용했다.

괜히 문란한 사내와 섹스를 했다가 병균이라도 옮으면 피곤하기 때문이다. 이는 철없던 고등학교 시절, 괜히 학교 선배와 관계를 했다가 사면발니가 옮아 고생한 뒤 생긴 버릇이었다.

고등학생의 나이에 병원을 들락거리며, 음모까지 모두 밀어야 했던 끔찍한 경험을 하고난 뒤 성병에 관해서라면 누구보다 철저하게 관리해 오고 있었다.

'내가 진짜 돈 많은 회장만 아니면···.'

지안이 불만을 꾹 누른 채 문진표의 항목을 작성하고 있는데, 임희경이 말했다.

"아래 보시면 기병력 확인란이 있으세요."

"기병력이요?"

"음, 그러니까 당뇨같은 지병이나 혈압을 따로 관리하는 지 확인하는 거예요.""저, 그런 거 없는데."

"네. 그럼 해당없음에 체크하시면 됩니다. 혹시 궁금한 부분 있으면 물어보시고요."

"네."

인내심이 슬슬 바닥난 지안은 기병력란 해당없음을 반복적으로 체크하다가 문득 임희경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근데 저처럼 특별 검진하러 온 사람들은 매달 이런 짓을 하나요?""네?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무슨 모임 때마다 맨날 이걸 요구하면···."

"모임이요?"

<특별검진>의 의미를 모르는 희경이 관심을 보였다. 지안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여기 로얄클럽 지정 병원 아니에요?"

"로얄 클럽···. 아, 네 그렇죠."

"암튼,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네요. 한 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매번 모임에 나갈 때마다 여기와서 검사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환자분은 오늘이 초진이라 그러세요. 매달 검사할 필요가 없는 항목도 있고, 다음 번엔 문진표를 작성하지 않으셔도 되니까 시간이 훨씬 줄어드실 거예요."

"듣던 중 다행이네요."

지안으로부터 우연히 '로얄클럽'이라는 이름을 들은 희경은 그동안 모호했던 퍼즐조각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클럽? 클럽 소속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성병검사를 받는 이유 라면···. 서, 설마!'

비뇨기과 전문의로서 경험칙에 따르면, 클럽 멤버가 단체로 모임 직전 성병 검사를 받는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었다.

'그 클럽이라는 게 섹스 클럽이었던 거야?'

우연찮게 특별검진의 진짜 목적을 알게 된 임희경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그럼 아까 대학생인 도훈이나, 지금 최지안이라는 이 여자도 섹스 클럽 멤버라는 건가? 세상에 저렇게 멀쩡히 생긴 사람들이···.'

입을 틀어 막고 싶을 만큼 놀란 희경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도훈에게 배신감이 들었다.

'하-. 어쩐지 나이에 비해 섹스를 지나치게 잘하더라니···. 어린애가 섹스클럽이나 다니고.'

희경이 살짝 분해 하는데, 문진표 작성을 마친 지안이 불쑥 물었다.

"맞다. 선생님, 이건 그냥 개인적인 질문인데 하나만 여쭤봐도 되나요?"

"네, 편히 말씀하세요."

"이곳이 확대 수술 전문 병원이라길래 여쭙는 건데요."

"네."

"혹시 물건이 아주 작은 남자도 확대 수술이 가능한가요?"

"아주 작다는 게 구체적으로···."

지안이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더니 새끼손가락을 펴 내밀었다.

"대충 이 정도?"

"음···. 그러니까 발기시 길이가···."

"아마 6.9cm보다 작을 거예요."

"음음···. 이론상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하는데는 딱히 문제 없는 길이긴 합니다."

"아뇨. 그게 아니라 확대 수술이 가능하냐고요."

"글쎄···. 비뇨기과 전문의적인 소견으로 말씀드리면 불가능에 가깝지 않을지. 근데 그건 왜 여쭤보시는지?"

희경의 의문은 타당한 것이었다.

상대가 남자거나, 왜소 콤플렉스가 있다면 궁금해 할 수 있겠지만, 지안은 여자였기 때문에 딱히 궁금해할 이유가 없었던 것.

"아니에요. 문득 생각나서요. 병원 이름도 대물 비뇨기과라고 하니까."

"아···."

"혹시나 수술이 가능했다면 제가 지금처럼 안 살았을수도 있을 것 같아서 랄까···.""예?"

"아니에요. 아무것도. 그럼 이제 뭐하면 돼요?"

"혈액 검사랑 소변 검사 순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혹시 평소불편한 점이 있으시다면 외음부 검사도 봐드릴 수 있고요."

"딱히 없어요. 보시다시피 워낙에 건강해서."

지안은 얼른 지겨운 검사가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 * *

"난 서른이야."

도훈이 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실제론 서른 넷이면서. 윤하랑 고등학교 동창인 주제에 누굴 속이려고?'

[제가 봐도 서른처럼은 안 보이는데 너무 무리수를 두는군요.]

'하긴 옛날에도 마누라랑 같이 다니면 마누라가 동생처럼 보이긴 했어.'

[그렇다고 그렇게 노안까지는 또 아닌것 같은데요?]

'아니 윤하 그년이 피부가 너무 좋아서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이었거든. 실제로 나랑 나이차가 많이 나기도 했지만.'

[웬일로 주인님이 전 와이프분 칭찬을 다···.]

'칭찬은 무슨 얼어죽을 칭찬. 그냥 피부가 좋았다는 건데.'

[죄송합니다. 제가 오버 했습니다.]

"내 나이 알려줬으니까 너도 이제 알려줘. 스물 다섯? 여섯? 맞아?"

"제가 몇살이건 아줌마보다는 한참 동생인데 이렇게 하고 싶으세요?"

도훈은 계속 띠껍게 굴었다.

그의 띠껍게 굴기 전략은 몸이 단 세라를 안달나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리니까 좋지. 남자들만 어린 여자 좋아하는 거 아니야. 여자도 어린 남자 좋아해. 막, 고등학생 이런 것만 아니면."

"제가 별론데요?"

"뭐, 뭐?"

"저한테 정말 이러시는 이유가 뭔데요? 전 아줌마한테 솔직히 관심 없거든요."

"풉-. 말하는 싸가지 봐? 내가 언제 너랑 연애 하재?"

"그럼요?"

"나랑 자자."

"뭐, 뭐라고요?"

도훈은 훅 들어오는 세라의 도발에 당황한 척 했다. 예상은 했지만 너무나 노골적인 작업이었다.

[미친 여자일까요? 어떻게 처음보는 주인님한테 바로 자자는 소리를···.]

'아무래도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 같지?'

[네? 처음이 아니라뇨?]

'세라 저년 말이야, 발정나면 아무 새끼나 걸리는대로 대준다는 소리야.'

[세상에 그런 여자도 있습니까?]

'있을 수야 있는데, 실제로 보니까 진짜로 또라이 같긴 하네.'

[저런 수법이 정말 통한다고요?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자자고 하면 남자들이 응할리가···.]

'보통 사람이라면 거절하겠지. 미친년이 장난 치는 줄 알고. 그래도 열에 서넛 정도는 하자고 할 걸?'

[정말요? 열에 서넛이나요?]

'상대가 남자니까 가능한 거야. 반대의 경우라면 성추행으로 고소 당하거나 그 자리에서 뺨이나 안 맞으면 다행이지.'

[당연히 그렇겠죠.]

'하지만 발정난 사내새끼들은, 눈이 돌아가면 뵈는 게 없거든.

세라보다 훨씬 못 생기고 나이 많은 여자가 제안해도 넙죽 받을 새끼들 무조건 있다.'

[성욕의 힘은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인류가 지금까지 멸종하지 않고 이어온 원동력이니까.'도훈은 세라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차피 응할 생각이었다. 다만 넙죽 받아주면 기고만장해질까봐 일부러 대답을 미루었다.

그 사이 세라가 계속 제안했다

"왜? 놀랐니? 순진하긴. 나 너 지금 꼬시는 거야."

"꼬시는 걸 이렇게 한다고요?"

"뭐? 그럼 정식으로 헌팅이라도 할까? 첫눈에 반했는데 번호라도 달라고? 그러다 다음에 차 마시고, 식사하고, 그 다음엔 술 먹고 모텔가서 섹스하는? 그건 너무 시간 낭비 아니니? 어차피 꼬시고 싶다는 건 같이 한 번 자고 싶다는 거잖아. 그니까 거두절미하고 바로 자자고. 어차피 별로면 두번 다시 안 보면 그만이고, 마음에 들면 계속 파트너로 지내면 되지. 어때?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깔끔하지?"세라의 말을 듣던 도훈은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죽고 나서 전 마누라의 문란한 외도를 하나 둘 알게 되면서 받았던 충격만큼, 또다른 충격이었다.

[세라양은 무슨 발정난 20대 사내애보다 성격이 급하군요. 저런 논리는 보통 남자들이 주로 생각하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렇지. 성욕이 20대 남자 이상이란 소리네. 근데 좀 충격이긴 하군.'

[너무 급진적이라서요?]

'아니. 세라가 저 정도로 음탕한 여자였으면, 윤하도 도긴개긴이라는 소리잖아. 난 대체 어떤 여자랑 살았던 건가 해서.'

[흐음. 어차피 다 지나간 일입니다. 괜히 전생의 기억 때문에 분노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난 지금 세라에게 화가 난게 아니야.'

[그럼요?]

'그냥, 내가 진짜 병신이었나 싶어서.'

[자책하지 마십시오. 주인님은 잘못한 게 없습니다.]

'그런 뜻이 아니야. 내가 저런 또라이 같은 년을 절친으로 둔 여자를, 평생 데리고 살겠다고 혼인 신고서까지 작성했다는 거잖아.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도장을 찍은 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을 정도로 스스로가 혐오스러워.'

도훈은 세라의 모습에서 윤하를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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