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ex wife-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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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터가 있든 없든, 초면에 너무 무례한 거 아닙니까?"
오랜만의 재회라기엔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었다.
세라와 마지막으로 만난 기억은 사망하기 1년 전 여름.
그날도 마누라는 알리바이를 만들 작정이었는지, 내가 일하는 직장 앞 커피숍까지 와서 세라를 인사시켰다.
-당신, 기억하죠? 제 친구 세라요.
-안녕하세요, 형부.
-아, 의상실 하신다던···.
-의상실 아니고, 디자이너 직영 숍이라니까요? 암튼, 오늘 세라 생일이라서 오붓하게 여자들끼리 재미 좀 보고 올게요.
-무슨 재미를 봐?
-정우씨는 별걸 다 궁금해 한다니까? 여자들은 또 여자들끼리 통하는 게 있어요.
-아하, 근데 웬일로 여기까지···.
-요 근처 백화점 왔다가 자기 생각나서 잠깐 들렀어요. 쇼핑하는데 너무 오래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하고.
그날따라 텐션이 바짝 올라가 있던 마누라는, 친구 앞이라고 나에게 팔짱까지 끼며 친한척을 했다. 그때는 왜 바보같이 그게 연기라는 것도 눈치 못 챘을까?
그것도 모자라 나는 멍청하게도 친구 생일 파티하는데 보태라며, 지갑에 든 비상금마저 몽땅 털어 주었다.
-아이참, 이렇게 안 챙겨주셔도 괜찮은데···.
-생일 축하해요, 세라씨. 제가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잡혀 있어서, 회사 앞이라길래 잠깐 얼굴만 비추러 나온 거예요. 약소하지만, 그 돈으로 저희 와이프랑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그건 제 마음이라고 생각하시고.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면 거절하기 또 죄송하죠. 감사히 잘 쓸 게요. 윤하 너, 진짜 남편 잘 뒀다. 이렇게 스윗하시고. 우리 남편이 형부 반만 닮아도 좋겠네.
-후후. 우리 자기가 좀 그래. 고마워요, 여보. 오늘 좀 늦을 거야.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자요.
-응. 그럴게.
그렇게 비상금까지 탈탈 털어간 전 마누라가, 그 돈으로 세라와 무슨 짓을 했을 지는 안봐도 뻔했다.
애초에 나에게 현금을 뜯어낼 목적으로 왔던 걸 보면, 현금으로만 계산해야 하는 곳에서 질펀하게 즐겼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대놓고 재미를 보러 간다는 말까지 했는데, 의심을 못한 내 잘못도 있다.
그 이후 전화 상으로는 가끔 목소리를 듣긴 했지만, 세라를 직접 만난 건 그 커피숍이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환생 이후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지금.
나는 지금 무척이나 혼란스럽다.
[그러니까, 저분이 정말로 전 와이프의 친한 친구라는 말씀이시죠?]
'그렇다니까? 하여간 천박하게 다니는 꼬라지하고는···. 얼굴이 가물가물 했는데 딱 보니까 바로 알겠네.'
[음, 가슴이 많이 노출되긴 했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비난받을 복장인지는···.]
'그럼 빤스도 안 입고, 노팬티로 질질 흘리고 다니는 여자한테 천박하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나?'
[노팬티라고요?]
'그래. 내 코가 개코인 거 몰라서 그래? 단순히 노팬티면 말도안 해. 어디서 손가락으로 잔뜩 쑤시고 왔는지 지금도 허벅지로 애액을 질질 흘리고 있네.'
[흐, 흐음···. 아무튼 이건 우연히 발생한 상황이므로, 딱히 주인님이 환생의 법칙을 어긴 것은 아닙니다.]
'아니. 내 질문은 그게 아니었잖아.'
[예?]
'내가 저년 개처럼 따먹어 버려도 상관 없냐고.'
[그건···.]
'아니, 그렇잖아. 전생의 인연이라는 말처럼 모호한 표현이 어디었어? 막말로, 그럼 전생에 나하고 얼굴만 마주쳤던 사람은 다 전생의 인연으로 묶어 버릴 수도 있다는 건데. 그건 너무 심하잖아.'
[그렇다기 보다는 전 와이프의 친구라는 점이···.]
'내 말이 지금 그 말이잖아. 세라가 전 마누라랑 친구지 나랑 친구냐고. 막말로 살면서 저 여자 얼굴 3번인가 본게 다야. 그것도 10분도 안 되는 시간동안. 그것도 전생의 인연인거야?'
[음,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렇잖아. 그럼 전 마누라가 알고 지냈던 사람을, 내가 혹시라도 모르고 만난다면 그것도 환생의 법칙을 깬 것으로 치는거야?
그건 내가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 만에 하나 그런 어이없는 일로 능력을 박탈당하거나, 기억을 말소당한다면.'
[일리가 있는 지적입니다. 전생의 인연이라는 것이 굉장히 모호한 개념이긴 합니다.]
'그러니 확실히 대답해줘. 전생의 인연이 어디까지야? 나랑 알던 사람이야, 아니면 내가 아는 사람의 지인까지 모두 포함되는 거야? 그리고 하나 더. 얼굴 알고 몇번 대화를 나누면 인연인거야, 아니면 진짜로 사적으로 친한 사이까지만 포함인거야?'
[질문이 너무 많아서 제가 지금 정리가···.]
'아니 인공지능이 이 까짓 질문도 처리 못 해?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 아니잖아? 신께서 이걸로 벌을 내리실 거라면, 그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유권 해석을 해줘야 하는 의무도 있는 거잖아. 내 말 틀려?'
[잠시만요. 그래서 제일 궁금한 사항이 지금 뭡니까?]
'말했잖아. 내가 지금 세라 저년을 개처럼 따먹어 버려도 되느냐니까?'
[음···. 혹시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계집애 자빠뜨려 따먹는데 이유가 있어? 꼴리면 따먹는 거지.
난봉꾼이 괜히 난봉꾼이야?'
[잠시만 기다려 보십시오.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상부에 유권 해석을 요청해 보겠습니다.]
나는 솔직하지 못 했다.
내가 세라를 따먹으려는 이유는 그녀가 옷을 야하게 입었다거나, 또는 단순히 꼴려서가 아니었다.
느낌적인 느낌이긴 하지만, 그녀는 공범이다.
전 마누라가 바람 피우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척,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녀를 변호하고 알리바이를 대 준 공동정범이다.
어쩌면 바람도 둘이서 함께 피웠을지 모른다.
그러니까 한 놈을 두 년이 같이···.
그 생각을 하자 다시 피가 끓었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세라를 이렇게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무례했니? 미안. 내가 좀 성격이 급한 편이라. 그리고 너무 화내지 마. 나 방금 심쿵할 뻔 했잖아."
"···뭐라고요?"
"나 박력있는 남자한테 설레는 편이라. 후후, 암튼 불있으면 좀 줘 봐."
이제보니 뻔뻔하기가 천하의 둘도 없는 년이었다. 왜 그땐 세라의 성격을 전혀 몰랐을까?
하긴 나하고 있을 때는 한 번도 진면목을 보여준 적이 없었겠지. 단순히 가슴만 큰 여잔 줄 알았는데, 그 정도가 아니라 윤하못지 않은 천하의 개 쌍년이었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있는 거 보면, 둘이 죽이 맞으니 오랜시절 붙어 다녔겠지.
고등학교 때부터 동창이라고 했으니, 학창시절부터 온갖 비행이란 비행은 다 저지르고 다녔을 것이다.
"···참나. 어이가 없네. 여기요."
나는 반대쪽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주었다.
그러자 세라가 색기있게 웃으며 말했다.
"기왕이면 불도 좀 붙여줄래?"
"···아줌마 손 없어?"
"오호호, 얘 봐라? 되바라진 게 딱 내 스타일이네? 너 몇살이니?"
나는 구시렁대면서도 라이터로 불을 붙여주었다.
세라가 담배 불을 붙이기 위해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자, 진한 화장품 냄새가 코를 훅 찔렀다.
여러모로 과한 여자였다.
짙은 화장도, 내놓은 젖가슴도, 노빤스로 질질 흘리고 다니는 음탕함 마저도.
걸레가 없다면 대신 데려다 닦아도 아무 위화감이 없었다.
"그러는 아줌마는 몇 살인데?"
"듣는 아줌마 기분 나쁘게 자꾸 아줌마라고 할래? 아까 누군 아가씨 아니냐고 묻더니먼."
"눈이 사신가 보네, 그 새끼가 누군데요?"
"저기 저 병원 의사."
나는 그제야 그녀가 대물 비뇨기과에서 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순간, 아까 차에 타고 있던 여자는 단순히 닮은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가 이곳 대물 비뇨기과에 들렀다면, 차로 좌회전을 하고 이곳 주차장에 들어왔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여기서 만나게 된 걸 보면, 아까 닮은 사람은 일종의 전조였을지도 모르겠다.
[주인님. 신께서 명확히 선을 그어주셨습니다.]
'뭐라시는데?'
[전생의 인연의 범위는 주인님과 직접 관계를 맺은 사람으로 한 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적인 관계는, 일반적으로 지인이라고 불리는 수준까지 제한하고요.]
'그러니까 지금 눈앞의 저 년은 아무 상관없다는 소리지?'
[네. 저 분은 주인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았으므로 상관없습니다.]
'내 생각이 맞았네. 내가 뭐랬어? 애매하다고 했잖아.'
[단. 한가지는 꼭 지켜주셔야 합니다.]
'뭔데?'
[절대 저분께 주인님의 전생과 관계된 질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법칙을 위배한 것으로 간주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전 마누라 관련된 질문은 하지 말라는 거야?'
[전생과 관련된 모든 질문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 말이 그말이지. 내가 세라랑 할 얘기가 뭐가 있다고.'어쨌든 문제가 안되는 것은 확인했다.
이제부턴 응징의 시간이다.
윤하 그년에게 복수하면 더 통쾌하겠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이 년이라도 조져야 겠다.
그때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하필 타이밍 하고는,
"어, 왜?"
-도훈씨 어디예요? 죄송해요, 원무과장님이 재촉하셔서···.
"병원 앞이야. 올라가기 뭐하니까 네가 내려와서 받아가든가."
-그, 그래요? 바로 내려 갈게요.
통화를 마치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세라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여자친구?"
"네?"
"맞지? 여기 병원에 근무하는 간호사야?"
"아닌데요?"
"맞는 거 같은데? 나 촉이 좋거든."
"그러시든가."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대했다.
세라가 바짝 몸이 달아있다는 걸 알고 이를 역이용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이윤지는 몰라도 아주 몸이 바짝 달았네.'
[비뇨기과에 다녀와서요?]
'암튼, 지금 상태는 딱 그거야.'
[뭔데요?]
'어떤 놈이든 걸리면 다 대줄 기세랄까?'
[예, 예? 그렇게 문란한 여자가 있습니까?]
'내 눈앞 지금 서 있잖아.'
솔직히 너무 쉬운 여자라 화가 날 정도였다.
친구는 끼리끼리 논다고, 세라가 저 지경이면 전 마누라 윤하도 보나마나였다.
남자가 많다는 건 죽고나서 알았지만, 나 몰래 몇놈이랑 뒹굴었던 것일까? 그리고 그 바람의 현장에서 세라는 얼마나 많은 실드를 쳤던 걸까?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화가 났다.
기혈이 들끓어 당장이라도 때려 눕히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동요했다간 괜히 환생의 법도인가 뭔가를 어길 우려가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했다.
복수는 늦어도 된다.
다만 확실하게만.
"도, 도훈씨! 여기!"
병원 입구에서 은정이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어찌나 빠르게 달려오는지 커다란 젖가슴이 위아래로 출렁출렁 흔들릴 정도였다.
나는 곧바로 신분증을 꺼내 건넸다.
"복사한다고?"
"네, 근데 왜 안 들어오시고···."
"귀찮아서 길 가에 차 댔어. 딱지 떼기 싫으니까 얼른 복사하고 가져다 줘.""아···. 그, 그럴게요."
은정은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세라를 견제하듯 쳐다보았지만, 제 코가 석자인 듯 급하게 다시 병원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던 세라가 피식 웃었다.
"아항, 여자친구가 간호사가 아니라 사무직 보는 애였구나?""거 자꾸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아줌마 나한테 관심있어요?""호호, 화내는 것도 섹시하네. 너 진짜로 몇살이니?""거 귀찮게 굴지 말고 담배 다 피웠으면 갈길 가쇼."나는 일부러 더욱 짜증을 내며 세라를 밀쳐냈다.
그럴수록 그녀가 나에게 더 흥미를 보인다는 사실을 역이용 하는 것이었다.
"진짜로 안 알려줄 거야?"
"아씨, 진짜 귀찮게."
"상관없어. 여자친구 아니면 더 잘 됐네."
"뭐가 잘 돼요?"
"내가 지금 널 꼬시고 싶어 졌거든."
세라가 나름 도발적인 포즈로 유혹했지만, 마음 같아선 그대로 뺨을 걷어 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지금 힘이면 뺨을 맞은 순간 도로 중앙선까지 날아가 지나가는 트럭에 치일···.
[주인님? 무슨 생각 하십니까?]
'···뭐?'
[방금 살짝 살기가.]
'무슨 소리야?'
[주인님이 속마음을 제게 말씀하지 않으셔도, 주인님의 신체반응은 저에게 실시간으로 모니터링 되고 있습니다. 방금 반응은, 여자를 꼬시려는 것보다는···.]
'것보다는?'
[···죽일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뭐래? 내가 왜 저 여자를 죽여? 안 그래도 따먹고 싶었는데 먼저 대준다니까 잘 됐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욕정을 느낀게 맞으신거죠?]
'아무렴?'
[근데 왜 계속 제안을 거부하십니까? 주인님 말마따나 세라양은 지금 먼저 따먹으면 임자인 발정 상태 같은데요?]
'너무 쉽게 허락해도 시시하거든. 이럴수록 더욱 애타게 만드는 거지.' "웃기고 있네. 저는 띠동갑이랑 안 놀아요."
"띠, 띠동갑? 너 진짜 말 심하게 한다. 내가 몇 살인 지 알고?""그래서 몇살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