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76화 (1,956/2,000)

1976. ex wife-51-

* * *

"아하, 그거?"

"네. 신입 회원이라면 회장님께서 먼저···. 원래 찬물도 위아래가 있다고."

"푸하하하. 이 새끼 전혀 안 그렇게 생겨가지고 아부 좀 하는데? 걱정마 인마. 면접 볼 때 이미 다 맛을 봤으니까."

"아, 그래요?"

'뭐지? 자기가 먹은 걸 굳이 날 주겠다는 건가? 설마 구멍 동서 하자고?'

[주인님은 이미 나린양과 민하양을 공략함으로써, 진작 김희재와는 구멍 동서 관계입니다만.]

'맞다. 그렇지? 무슨 놈의 클럽이 구멍가게도 아니고.'

[혹시 그거 아닐까요?]

'뭐?'

[최지안이란 여자가 엄청 못 생겼다거나, 다른 중대한 하자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자기만 당할 수 없으니 나도 엿 먹어 보라고?' 희재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나에게 물었다.

"왜? 내가 먹던 거 먹으려니까 좀 그래? 그런 생각하면 곤란한데···. 우리 클럽은 태생부터가 구멍 동서 모임이거든."

"아닙니다. 설마요. 왜 그 신입 회원을 저한테 지명해 주시는지 궁금해서요."

"예뻐서."

"네?"

의외의 대답이었다.

분명 중대한 하자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오히려 예쁘다니.

"정말요?"

"엉. 무지하게 예뻐. 나이는 좀 있는데, 어차피 겉으로 봐선 30대 초반처럼 보여. 잘 꾸미면 20대 후반도 쌉가능."

"혹시 외모 말고···."

"외모는 덤이고, 섹스도 끝내주게 잘해. 면접 보다가 깜짝 놀랐잖아."

"잘해요?"

"응, 스킬이 아주···. 암튼, 개인 사정으로 몇 달 독수공방하다 외로움을 못 참고 클럽에 가입했다는데, 하도 오래 참아서 그런지 성욕이 아주 활화산이야. 장난 아닌 듯."

"흐음."

"어때? 구미가 좀 당겨?"

이제 알겠다.

김희재가 나를 테스트 하는 목적을.

"그러니까, 제가 그 여자한테 지명 못 받을 확률이 높다는 거 죠?"

희재가 방긋 웃었다.

의외로 웃음이 헤픈 사내였다.

"빙고! 이야, 단대 수석이라더니 역시 똑똑하구나. 공부 존나 안 하게 생겨가지고, 이거 순 머리빨로 성적 유지하는 놈이었네.

재수없다."

"그게···."

"괜찮아. 부러워서 그래. 난 대학 때 공부 잘하는 편은 아니었거든. 아니, 솔직히 고등학교 때까진 공부 좀 했지. 근데 막상 대학 가니까 학교 공부보다 프로그래밍 하는 게 더 좋더라고. 아, 내가 말 안 했던가? 나 원래 개발자였어."

"네, 민하에게서 들었습니다."

"오, 민하가 내 얘기도 해줬어? 요년이 요거 엉큼한 구석이 있구나. 암튼, 네가 말한 대로야. 최지안은 이번 정기모임에서 가장 많은 남자표를 받을 거야."

"민하나 나린이 보다요?"

"민하나 나린이도 제법 인기 많지. 근데, 최지안은 뉴 페이스잖아. 너도 알겠지만, 클럽에서 오래 활동한 애들은 한 번 따먹어본 여자보다···."

"처음 보는 여자가 제일 맛있어 보이겠군요."

"잘 아네. 역시 여자도 먹어 본 놈은 다르다니까? 내가 볼 땐 최소 30명 이상 최지안에게 몰릴 거야."

"흐음."

"네가 다른 30명의 쟁쟁한 경쟁자를 뚫고 걔를 자빠뜨릴 수 있다면 내가 인정해 줄게."

[이건 오히려 주인님한테 식은 죽 먹기 아닙니까?]

'말이라고? 김희재가 나를 진짜 좆밥으로 봤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시대 최고의 난봉꾼.

대물 플레이어다.

세상에 못 따먹을 여자가 없다는 절정의 바람둥이 말이다.

"···해볼만 하겠는데요?"

"어쭈? 자신감 보소? 진짜로 가능할 것 같아?"

"남자는 역시 자신감이죠. 그리고 리스크가 적은 도박이잖아요. 성공하면 열배니까요."

"하하하, 그건 맞지. 얼마나 걸래? 네 자신감 크기 좀 확인해보자."

'확 100억 베팅할까?'

[100억은 너무 많지 않습니까? 물론 주인님 재산이 그 정도는 있겠지만···. 겨우 김희재를 납득시켰는데, 바로 의심할 겁니다.]

'하아, 이건 무조건 1000억은 먹는 판인데···. 내가 스킬과 아이템을 활용해서 못 넘길 여자가 있을 수가 없잖아.'

[그렇긴 하지만, 재산이 많은 걸 들켰다간 클럽 가입이 반려될 겁니다. 그냥 포인트 벌이로 가시죠. 주인님에게 돈벌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흐음, 아쉽구먼.'

"100···."

"100만? 에이,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보태줄게."

"예? 보태주시다뇨?"

"잠깐. 누구 좀 부르고."

김희재가 팔목을 들더니 고급 시계의 용두를 눌렀다.

그러자 갑자기 "띠링-" 소리가 나면서 스마트워치의 음성명령어가 작동하는 것이었다.

"재민이 호출해."

"어? 그거 스마트워치였어요?"

희재가 자랑하듯 팔을 들어 보였다.

"어. 감쪽같아? 명품 업체한테 의뢰해서 껍데기만 교체한 거야. 일종의 나만의 커스텀 모델이랄까?"

"와···."

"왜? 도훈이 네 것도 스마트워치 아냐?"

희재가 갑자기 내 팔에 찬 로시에 관심을 보였다. 프로그래머출신이니 최신기계에 조예가 깊다는 걸 간과한 것이었다. 희재가 스마트워치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근데 처음보는 모델이네? 어디 거야?"

"그냥 중국산 짝퉁이에요. 시계 기능만 되는."

"남자가 가오 빠지게 짭은 무슨···. 하나 사줘? 요새 나온 울트라 모델로?"

"괜찮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덩치가 좋은 사내가 후다닥 달려왔다. 눈빛이 강렬한 것이 보는 순간 기억이 떠올랐다. 카지노에서 내가 희재에게 건방을 떨 때 째려보던 경호원이었다. 단단한 근육질에 범같이 날렵한 허리를 보니, 타고난 인자강으로 보였다.

[대단한 기도군요. 눈빛 만큼은 주인님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봐야 손가락 하나로 죽일 수도 있을걸?'

[아니 또 무슨 말씀을 그렇게 험악하게···.]

'그리고 내가 평소엔 기를 감추고 있으니까 모르는 거지. 살기 한번 제대로 방출해줘?'

[자중하시죠.]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어. 너 현금 좀 가진 거 있냐?"

"현금요? 지갑을 차에 두고 와서···."

"아이씨, 그럼 애들 시켜서 내 방 서재에서 5만원권 다발 하나만 들고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희재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명령을 바꿨다.

"아니다. 미선이한테 시켜."

"미선이요?"

"어. 그 예쁘장한 여자 경호원 있잖아. 쌈 잘하는."

"알겠습니다."

희재의 명령에 재민이라고 불린 경호원이 빠르게 무전을 날렸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 경호원들이 상시 무전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재민이 넌 이제 돌아가봐."

"괜찮습니다."

"내가 불편해서 그래. 도훈이가 너 보고 쫄잖아."

물론 나는 전혀 쫄지 않았지만, 괜히 주눅든 모습으로 시선을 피했다.

"알겠습니다."

재민이 다시 시야에서 사라지자 희재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쟤 내 경호원인데 엄청 세."

"그래 보이네요."

"아니 진짜로. 난 쟤보다 싸움 잘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거든."

"아하."

"혹시 어디가서 누가 시비걸면 나한테 말만 해. 재민이 보내서 박살 내 줄 테니까."

"저도 어디 가서 시비 걸릴 정도는 아닙니다."

"새끼, 자신감은 넘치네. 재민이는 그 정도가 아니라···."

희재가 말을 하고 있는데, 멀리서 헐레벌떡 검은 정장을 입은 여자 경호원이 돈다발을 들고 뛰어왔다. 나를 이곳까지 강제 에스코트한 미선이라는 경호원이었다.

"현금 가지고 왔습니다, 회장님."

"빨리도 왔네."

"넵."

미선은 희재 앞에서 무척이나 긴장한 모습이었다. 고액의 연봉을 주는 고용주 앞이다 보니, 행동거지에 무척 신경 쓰는 것 같았다.

5만원권 묶음을 받아 든 희재가 내 앞에서 돈 다발을 흔들었다.

"100만원은 너무 적으니까 이것도 보태."

"너무 많은데요."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고."

"네?"

희재가 씨익 웃으며 돈다발을 묶은 종이끈을 풀기 시작했다.

"난 원래 공짜는 없거든. 이걸 그냥 주면, 너는 이 500만원의 값어치가 우습게 느껴질 거 아니야. 돈 많은 한량이 적선했다고 생각하겠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됐고. 너 이걸 이제 내 앞에서 벌어가는 거야."

"벌어가다뇨?"

희재가 소반 위의 주전부리를 치우더니 돈을 옆으로 슬라이스하듯 주륵 펼쳤다. 카드 마술을 하는 것처럼 서로 포개진 5만원권 지폐가 옆으로 길게 늘어났다.

"자, 능력 껏 가져가봐. 자신 있다고 했으니."

"무슨···."

그때까지도 나는 희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설마 자존심 버리고 혓바닥으로 침 묻혀서 붙여 보라는 걸까?

"도훈이 너 자신감 좀 보자. 잦이 꼴려서 꼴린 길이만큼 싹 다 너 가져."

"아, 앗!"

오히려 탄성은 뻘쭘하게 서 있던 미선이라는 경호원에게서 먼저 터졌다. 그제야 희재가 굳이 재민을 안 시키고, 굳이 여자 경호 원을 호출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악취미군요.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닙니까? 꼴리는 만큼 가져가라니···.]

'끝까지 나를 시험 하는거군.'

[시험이요?]

'희재는 지금 내 의지를 보고 싶은 거야. 생전 처음 보는 여자 경호원 앞에서 과연 잦이를 깔 수 있는지. 그리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잦이를 발기시켜 그 길이만큼 5만원권을 쟁취할 수 있는지.'

[세상에. 아무리 난교 클럽의 회장이라지만, 수준이 너무 저질입니다.]

'저것도 유희겠지.'

[유희요?]

'돈이 넘치게 많아서 세상 재미없는 부자 희재에게 인생이 얼마나 무료하겠어? 그러니 이런 자극적인 행동을 통해서 잠깐이나마 희열을 느끼려는 거야.'

[그래서 못 되었다는 겁니다. 인간의 존엄을 돈으로 사려고 하다니요.]

'그래서? 열받으니까 한 대 쥐어팰까?'

[아니 그런 뜻은···.]

'어차피 나도 포인트 벌이 때문에 하는 일이야. 섹서에게 부끄러움 따윈 없다고.'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죠?"

"어. 난 농담 안 한다니까? 왜? 창피해?"

"그건 아닙니다."

"밝은 야외에서 바지 내리는 게 쉽지 않겠지. 막상 내려도 남자인 내가 앞에 서 있으면 꼴리기도 쉽지 않을 거고. 그래서 내가 너를 위해 도우미를 이렇게 불러왔지. 미선아?"

"예, 예?"

"내 말이면 죽는 시늉도 할 수 있지?"

"아, 아니 저, 그게···."

"얼레? 아니었어? 아 이거, 재민이 이 새끼는 경호원 선발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늘 그런 태도로 VIP를 경호하라고 했잖아. 경호원이면 VIP를 위해 위기의 순간엔 목숨도 바치는 거라고. 총알 날아오면 피할 거야?"

"아닙니다!"

"좋아, 좋아. 훌륭해. 저기 네가 데려온 학생 좀 도와줘. 남자인 내가 도와줄 순 없잖아."

"어, 어떤 도움을···."

"뭘 또 순진한 척이야? 너네들 모임 때마다 맨날 공짜로 구경하잖아. 경호하는 척, 은근슬쩍 몰래 구경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고?"

"······."

미선의 얼굴이 수치스러움에 달아올랐다.

그녀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지만, 상관의 강요에 마지 못해 따르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았다.

"회장님.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몰라도, 혼자서도 잘 세웁니다.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야씨, 내가 지금 너한테 말했어?"

희재가 갑자기 발끈하더니 화를 냈다.

날뛰는 감정의 기복에 적응이 쉽지 않았다.

"도훈이 너 까불지 말라고 했지? 이건 나랑 내 경호원 사이의 문제야. 내가 지금 명령을 내렸는데, 내 부하직원이 대답도 안 하잖아. 이게 말이 돼? 내가 지들 연봉을 얼마나 챙겨 주는데."

"죄송합니다, 저는 그저···."

"미선이 너 우리 회사 들어올 때 뭐든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하고 연봉 계약한 거 아니야?"

"맞습니다."

"근데 이렇게 뻣뻣하게 나오면 곤란하지. 됐다, 그냥 다른 애로 ···."

희재가 다시 스마트워치를 들고 재민을 부르려하자 미선이 먼저 그를 만류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방금 전엔 제가 너무 당황해서 그랬습니다. 명령 받들겠습니다."

희재는 그제야 화가 풀리는지 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푸하하하, 아니 진작 그렇게 나왔어야지 왜 목소리를 높여야지 말을 듣냐? 사람 무안하게."

"죄송합니다."

"자, 이제 정리됐지? 도훈이 돈 좀 벌게 해줘 봐."

미선이 침을 꼴깍 삼키더니 내 앞으로 다가왔다.

"도움 드리겠습니다."

"아니, 그냥 제가···."

나는 한사코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미선이 곤란한 얼굴로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이었다.

"한 번만 부탁드려요. 회장님이···."

"야야. 니들 뭐라고 속닥거리냐? 벌써 사귀는 거?"

"아, 아닙니다."

미선이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기 때문에 나도 어쩔 수 없이 그녀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다.

"알았어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미선이 조심스럽게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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