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 ex wife-37-
민하는 로얄 클럽의 여왕벌이었다.
남자친구를 잘못 만나 스무 살 때 처음 클럽에 발을 들였으니 당연히 입회할 때부터 최연소였지만, 평균 연령이 30대가 넘는 멤버들 가운데선 유독 어린편에 속했다.
로얄 클럽은 명목상 난교 클럽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여자에게 우선권이 있는 모임이다.
모임의 규칙은 다음의 3가지다.
첫째, 한 달에 한 번 있는 정기 집회는 필참이다. 두 번 이상 불출석이 계속될 경우 이유 막론하고 제명된다.
둘째, 모임에서 파트너의 선택권은 여자에게 있다. 여자는 자신을 지명한 남자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다.
셋째, 연속으로 같은 상대를 지목하는 건 불가능하다. 단, 능력이 되는 한 몇 번이고 남자를 바꿔가며 즐길 수 있다.
여성에게 유리하게 룰이 만들어진 이유는, 모임의 성격상 여성회원이 남성회원에 비해 적다는 데 기인했다.
대체로 여자 4 대 남자 6의 비율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상황에 따라선 3 대 7인 경우도 빈번했다. 즉, 1:1 매칭이 안 되기 때문에 여자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었다.
민하가 여왕벌이 된 이유는 단순했다.
로얄 클럽에 가입된 여자들이 대부분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가 주류라면, 갓 스무살이 된 민하는 보기 드문 영계였던 것.
어린 여자라고 무조건 좋아하진 않겠지만, 얼굴까지 예뻤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남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한 때는 남자들 표가 절반 가까이 민하에게 집중된 적이 있을 정도로 그녀는 한동안 로얄 클럽 내에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매번 마음에 드는 남자들로 갈아타며, 누구보다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즐겨온 민하의 입지가 흔들린 것은 새로운 멤버로 나린이 영입된 이후였다.
민하보다 2년 늦게 들어왔지만, 나린은 순식간에 민하의 독보적이던 인기를 잠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두 사람이 같은 동갑내기라는 점에서 민하와 비교되었다. 어린 나이가 가장 큰 무기였던 민하의 입장에선 동갑인 나린과 비교해 우위를 점할 수 없게 된 것.
게다가 화류계 출신이었던 나린은, 워낙에 서비스 마인드(?)가 좋은 편이라 남자들에게 사근사근했고 섹스킬 역시 빼어났다.
안 그래도 도도하고 콧대 높은 민하에게 학을 떼던 남자들은 점점 친절한 나린에게 넘어가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두 사람이 서로 치열한 인기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민하와 나린이 동시에 회장의 최측근이 되면서 둘의 경쟁은 더더욱 불이 붙었다.
민하는 자신의 인기를 빼앗은 나린이 반가울 리 없었고, 나린 역시 재수 없게 구는 민하를 은근히 약올리고 무시하기 일쑤였다.
표면적으로는 자주 어울려 다니며 희재의 부름에 응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론 서로 시기하며 반목하는 사이였던 것이다.
도훈이 갑자기 민하에게 관심을 보이자 이를 지켜보던 나린은 도저히 가만히 지켜볼 수 없었다.
이제 도훈을 차지하는 것은, 두 사람의 자존심 싸움이나 마찬가지였다.
'쳇, 내가 너 따위한테 밀릴 줄 알고? 웃기지 마. 난 프로 출신이야.'
나린이 비록 철저하게 과거를 숨기고 살았지만, 한때나마 텐프로에서 에이스로 일했던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텐프로가 무엇인가?
국내 화류계 상위 10% 안에 드는 외모의 여자들만 선발한다는 곳이었다. 누구나 자발적으로 창녀가 될 수 있지만, 텐프로에 드는 일은 자력으로는 불가능했고 주변의 인정이 있을 때만 가능했다.
그리고 나린의 그 텐프로 업장내에서도 에이스로 손꼽히던 인물.
당연히 외모에 대한 자부심 만큼은 민하에 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민하는 민하 나름대로 나린을 무시했다.
몸뚱이 함부로 굴리는 천박한 창녀 출신이라고 말이다.
아무리 나린이 과거를 세탁해 보려 했지만, 근본은 숨길 수가 없었다. 특히 일전에 희재와 함께 최고급 룸살롱에 따라가서 술을 얻어 마시는데 양주를 정갈(?)하게 세팅하는 모습을 보고 민하는 확신했다.
그녀가 지금은 무명의 배우 지망생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분명 과거의 어느 시점 유흥업계에서 일했을 것이라고.
민하 자신 또한 섹스를 좋아하고, 어린 시절부터 난교클럽에 드나들 정도로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편이지만 최소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더러운 짓은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었다.
'흥, 너 같은 싼티 나는 년을 어느 남자가 진심으로 좋아하겠어? 그저 한 번 따먹어 보려고 좋아하는 척 연기하는 거겠지.'
두 여자가 불꽃 튀는 자존심 싸움을 시작하자 도훈이 낌새를 눈치챘다.
'좋아, 이 타이밍이군,'
[네?]
'자고로 옛말에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이랬지.'
[그 반대 아닙니까?]
'뭐든, 둘이 본격적으로 나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 같으니 불난 집에 휘발유나 뿌려야 겠다.'
"아, 건배하려니까 거리가 멀어 불편한데. 나린아 나랑 자리 좀 바꿔 줘."
"응? 나랑?"
현재 나린을 사이에 두고 도훈과 민하가 앉아있는 형국이었기 때문에 도훈은 민하와 거리를 좁힐 수 없었다.
"그냥 거기서 짠 해. 귀찮게시리···."
나린이 양보할 기미가 안 보이자 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귀찮으면 내가 민하 씨 옆에가서 앉으면 되지."
"어, 어?"
민하의 옆자리는 현재 공석인 상황.
도훈이 민하에게 붙는 순간, 나가리가 될것이라 판단한 나린이 급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니야, 그냥 나랑 바꿔."
"고마워."
우격다짐으로 자리를 바꾼 도훈은 이제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민하와 나린을 나란히 둔 형국이 되었다.
'흐흐. 이거지. 경쟁은 늘 짜릿하달까?'
[두 사람의 질투심을 증폭시킬 의도이신가요?]
'당연하지. 질투가 얼마나 강렬한 감정인데? 설사 나한테 그닥관심이 없더라도, 이제는 서로 자존심 대결 때문에 나를 꼬시려고 할 걸?'
[근데 저 둘이 사이가 안 좋다는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처음부터 물과 기름같은 느낌이었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억지로 한데 섞인 것 같달까? 성격부터 외모까지 서로 전혀 닮은 구석이 없잖아.'
[그런데 왜 둘은···.]
'그야 희재라는 융화제가 있었으니까 가능했겠지.'
[김희재요? 저 둘의 고용인이자, 로얄 클럽의 회장이라는?]
'응. 이건 마치 서로 전혀 안 맞는 둘을 담임 선생님이 짝궁으로 붙여둔 거야. 아무리 싫어도 싫은 티를 낼 수 없는 거지. 서로 자꾸 다투는 모습을 보이면 담임이 싫어할 테니까.'
[그리고 그 담임이라는 사람은 스물 다섯 밖에 안 되는 어린 아가씨들에게 전문직에 준하는 연봉을 주는 재력가고요?]
'그렇지. 그러니 눈 밖에 날까봐 그냥 친한척 하는 거라고. 그런 강제적인 관계가 아니었으면 절대 친해질 수 없는 여자들이야.'
[호오.]
'아까도 봐. 내가 나린이랑만 술 마시고 노니까, 민하는 등 돌리고 쳐다도 안 보는 거 봤지?'
[네.]
'그리고 이번엔 일부러 민하에게 관심주고 옆자리로 바꿔달라니까 바로 싫다고 하는 것도. 저 둘은 지금 나를 두고 서로 자존심싸움을 벌이는 게 분명해.'
[잘하면 주인님만 거저 먹는 거 아닙니까?]
'이를 두고 어부지리라고 하던가?'
[그럼 주인님이 이번엔 낚시꾼인 셈인가요?]
'그렇지. 난 여자를 낚는 호색한이니까.'
나린과 민하의 사이에 낀 도훈은 양쪽이 섭섭하지 않게 번갈아가며 잔을 부딪히고 대화를 나누었다.
나린에게 말을 걸면, 민하가 눈살을 찌푸렸고 반대로 민하에게 술을 따르면 나린이 팔짱을 끼고 째려보았다.
감정의 표현이 너무나 즉각적이고 노골적이었기 때문에 도훈은, 당장이라도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폭풍전야를 감지했다.
'이제 도화선에 불만 붙이면 한번 크게 터질 것 같은데.'
[못 된 성격은 여전하군요. 굳이 둘 사이에 이간질을 놓으시겠다니.]
'그래야 내가 둘을 공략할 확률이 올라가니까.'
[근데 미션도 안 떴는데, 굳이 그럴 이유라도?]
도훈도 내심 미션을 기대했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은 없었다. 일식집 여자 셰프는 진작에 텃고, 민하와 나린 역시 반응이 없었다.
'미션이 아니더라도 값어치는 충분히 있지.'
[왜요?]
'잊었어? 둘 다 난교 클럽에서 잘나가는 여자 회원이라는 거.'
[아! 포인트!]
도훈은 여성이 거친 남성 파트너의 머릿수만큼 포인트로 환산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금전 등의 대가를 매개로 한 섹스는 원천적으로 무효였기 때문에 순수한 쾌락으로 몸을 마음껏 굴린 탕녀가 적격이었다.
'흐흐. 나린이도 그렇고 민하라는 애도 난교 클럽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과 어울렸겠어? 설마 파트너 한 명하고 주구장창 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러면 애초에 <난교>라고 이름을 붙일 필요도 없으니까.'
[그렇죠. 불특정 다수와의 섹스가 난교니까요.]
'정확한 클럽 인원 수는 모르지만, 둘 다 최소한 만 포인트 이상은 넘을 거라고 확신해.'
[그럼 하룻밤에 2만 포인트짜리군요!]
'그렇지. 일타쌍피 스리섬으로 동시 공략 2만 포인트면 오히려 미션보다 남는 장사 아니야?'
[맞습니다. 포인트가 걸린 미션도 그만큼 많은 포인트를 주진 않으니까요.]
미션이 불발된 것은 아쉽긴 했지만, 도훈은 포인트만 받아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공 증진 이후 성욕이 들끓었기 때문에, 누가 됐건 식혀줄 여자가 필요했다.
"이번엔 사시미입니다. 참치 대뱃살 부위입니다."
다시 코스요리가 진행되며 여자 셰프가 횟감을 썰어 왔다. 여자 셰프의 얼굴을 보는 순간 도훈의 표정이 굳어졌다.
'···물론 아무리 궁해도 저 여자랑은 안 하겠지만.'
[너무 외모를 따지시는 거 아닙니까?]
'외모가 문제가 아니야, 저 여잔.'
[그럼요?]
'나한테 사기 쳤잖아. 뽀샵질로.'
[아니 그거야···.]
'됐고. 저 여자랑 하느니 그냥 팔선녀 중 아무나 불러서 밤새 따먹고 말지.'
"와, 참치다."
참치 회가 나오자 나린이 신이 나서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도훈이 슬슬 발동을 걸었다.
"나린이는 회 좋아하나봐?"
"응. 특히 참치는 기름기 많아서 고소하잖아."
"나도 좋아."
"너도?"
"응, 난 날로 먹는 건 다 좋더라고."
"아항."
"그리고 신선하잖아."
"맞아. 조금만 비리면 먹기 싫어지니까."
"여자도 회처럼 신선한 게 좋던데."
도훈의 흘리기에 나린이 은근한 눈웃음을 보냈다.
"흐흐, 나 말하는 거야?"
"딱히 누구라고는."
도훈은 이번엔 민하에게 질문을 던졌다.
"맞다. 누나 혹시 그거 알아?"
"뭐?"
"회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
"뭔데?"
"회가 은근히 온도가 중요하거든. 그래서 접시 위에 바로 안 올리고 밑에 천사채라는 걸 깔잖아."
"그래?"
"근데 천사채보다 더 좋은 게 있거든."
"그게 뭔데?"
"여체."
"···응?"
말귀를 한 번에 못 알아들은 민하가 커다란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런 쪽으로 지식이 풍부한 나린은 곧바로 도훈의 농담을 알아듣고는 빵 터졌는지 도훈의 등짝을 때리며 앙탈을 부렸다.
"꺄하하, 뭐야 진짜. 너 취하니까 점점 본색 나온다?"
"뭐래? 자기들끼리만 웃고."
"모르겠어? 여체 말이야."
"무채 같은 거야?"
"아니, 그니까 여자들이 알몸으로···."
나린의 설명에 민하가 기가 막히다는 듯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먹을 것 가지고 그게 뭐하는 짓인데?"
"몰라? 원래 그렇게 플레이팅하기도 한다더라고. 일본에서는."
"뭐래는 거야. 말도 안 돼."
민하가 부정하는 사이 나린이 도훈에게 승부수를 던졌다.
"도훈이 그거 먹어보고 싶은가 보네?"
"뭐, 국내에서는 그렇게 파는 곳이 없어서."
"히히, 내가 해줄까?"
"나린이 네가?"
"뭐, 원한다면 그 정도 소원쯤은."
"야, 나린이 너!"
민하는 선수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당황하며 소리쳤지만, 이미 나린은 본격적으로 도훈을 유혹했다.
"생각 있으면 말만 해. 누나가 그 정도 서비스는 해줄 자신 있으니까. 회 먹으면서 계곡주도 마시게 해줄게."
"아니!"
도훈이 나린을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나 농담 별로 안 좋아해."
"농담 아닌데? 그 까짓게 뭐라고."
"진짜로 해준다고?"
"그거야 뭐 아무것도 아니지. 왜? 당장이라도 나갈래? 포장해서 나갈까?"
"야, 야! 이나린!"
"뭐?"
"무슨 느닷없이 밥먹다 말고···."
"뭐래? 기집애가? 눈 맞으면 밥상 엎고 달려드는 게 남녀 사이지. 넌 솔직히 해주고 싶어도 못하잖아."
"···뭐?"
"그것도 몸매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나 하는 거지. 넌···."
가슴이 유독 큰 나린이 몸매로 기를 죽이자, 민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너 말 다했어? 비율은 내가 훨씬 좋거든?"
"흥. 웃기고 있네."
"이게 진짜!"
불똥이 튀기 시작한 두 사람을 보며 도훈이 속으로 쪼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