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 ex wife-35-
나린은 붉은 기 들어간 색조 화장에, 옷도 명품으로 보이는 값비싼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서빙하는 점원에게 외투를 건네자, 안에 받쳐 입은 옷 역시 화려하기 짝이 없었다. 연예인도 아니고 저런 옷을 평상복으로 입고 다니는 여자는 처음 봤기 때문에 도훈도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만약 그가 다니는 대학에 여대생이 저런 의상을 입고 등교했다면, 종일 다른 학생의 뒷담화에 시달릴 게 뻔했을 만큼 눈에 확 띄는 요염한 복장이었다.
[나린양은 민하라는 여성분과는 완전히 반대 성향이군요. 저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다니는 여성분은 처음 보는 것 같습니다.]
'난 어디서 한 번쯤 본 것 같은데.'
[어디요?]
'텐프로 가게에서 홀복 입은 여자들.'
[아! 그러고 보니 느낌이 흡사하군요.]
'저 옷이 진짜 명품이라는 점은 다르긴 하지만.' 도훈은 나린의 화려한 모습에 흥미가 일었지만, 최대한 감정을 숨겼다. 미녀 앞에서 동요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숙맥이나 하는 짓이었다.
"맞다. 그쪽 소개 안 해주세요? 전 아직 이름도 모르는데."
"이도훈입니다."
"이도훈? 흐응, 이름도 잘생겼네요?"
"네?"
"아니에요, 호호. 근데 왜 연락 안 했어요?"
"무슨 연락이요?"
"민하가 명함 건넸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니에요?"
"아, 그거요. 그냥 뭐···."
나린이라는 여자는 처음 대화를 나누는 것임에도 너무 적극적이었다. 어찌나 적극적인지, 조금만 더 가까이 밀착하면 실제로 젖을 긁적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랏샤이마세! 손님, 일행분 이쪽입니다."
그때 뒤따라 민하가 가게로 들어오자, 나린이 번쩍 손을 들어 소리쳤다.
"민하야! 내가 오늘 여기서 누굴 만난 줄 알아?"
민하는 나린의 말에 옆에 앉은 남자를 쳐다보다, 도훈을 기억해내고 움찔 놀랐다.
"어, 어라?"
"도훈 씨야! 네가 애타가 연락을 기다리던 도훈 씨가 여기 혼밥하러 오신 거 있지?"
나린의 짓궂은 장난에 민하가 민망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모, 목소리 낮춰. 식당인데."
민하가 도훈을 향해 살짝 목례하더니 나린의 옆자리에 앉았다.
옆으로 길게 늘어진 바 형태의 식탁이다 보니, 도훈과 민하 사이에 나린이 자리하게 되었다.
나린은 도훈과 민하를 번갈아 쳐다보며 대화를 주도했다.
"너 혹시 도훈씨 만나려고 여기로 예약한 거 아니지?"
"무, 무슨 소리야? 여긴 일주일 전에 잡은 건데."
민하가 부정하자 이번엔 나린이 도훈을 향해 물었다.
"도훈씨는 그럼, 여기 어떻게 찾아왔어요? 혹시 우리 스토킹하신 거? 아이참, 너무 그렇게 티내지 마시라니까, 호호호!"
중간에 껴서 양쪽 모두에 얌체처럼 곤란한 질문을 던져대는 나 린을 보자 도훈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참 가벼운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긴 것 답지 않게 말도 많고 푼수 끼가 있네.'
[확실히 민하 양과는 전혀 다른 성향 같습니다. 민하 양이 조용하고 차가워 보이는 인상이라면, 나린양은 불같고 화통한 성격이 랄까.]
'저렇게 이질적인 여자들이 서로 친구라는 게 더 신기하군. 뭘로 엮인 거지? 어려서부터 친구 사이인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냥 혼자 밥 먹으러 온 거예요."
"어머, 오빠 돈 많으시네? 여긴 그냥 한 끼 먹기엔 꽤 가격 좀 나가지 않나?"
나린은 처음 얘기하는 도훈에게 곧바로 오빠 호칭을 붙였다. 출신(?)이 의심스러운 말투와 친화력이었다.
'나린이 쟤는 정말 어디서 홀 보다 스카웃 된 여잔가?'
[제가 봐도 좀 이상하긴 합니다.]
"제가 오빠인 건 맞아요?"
"예?"
"아니, 아직 서로 나이도 모르잖아요."
그때 잠자코 있던 민하가 옆에서 한마디 툭 거들었다.
"어제도 나이 물어봤는데 대답 안 하더라고."
"어머, 두 사람 벌써 그런 대화까지 했었어?"
도훈은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랬구나. 딱히 기억···. 그쪽은 대하씨라고 했던가?"
"···예? 대하요?"
"참, 대하는 새우지."
"민하거든요? 방금 일부러 그런 거죠?"
도훈이 시비를 걸듯 툭툭 농을 건네자 민하가 곧바로 인상을 굳혔다. 안 그래도 명함을 줬는데도 연락이 없어서 서운했는데,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나린과 시시덕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에 불쑥 짜증이 난 것이었다.
민하가 목소리를 높이자 먼저 시비를 건 도훈이 기름 장어처럼 쑥 빠져나갔다.
"아, 쏘리. 고의는 아니었어요. 제가 기억력이 좀 후달려서."
"나이도 아직 어린 분이 벌써 그러면 어떻게 해요?"
민하가 지지 않고 받아치자, 가운데 있던 나린이 중재를 위해 나섰다.
"워워, 사랑싸움은 적당히 하시고."
"무슨 소리야? 그냥 한 번 얼굴만 본 사인데."
"그래서 두 분 나이가 어떻게 된다고요?"
"저희 스물다섯요. 도훈씨는?"
"누나네요."
"예?"
"혹시 학생이에요?"
"네. 대학생요."
"와, 대학생이 카지노도 들락거리고, 한 끼 식사로 오마카세도 다니고···. 도훈씨 엄청 부자시네?"
도훈과 바로 붙어있던 나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바람에, 한 칸떨어진 민하는 둘의 대화에서 밀려나 혼자 소외되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뚱한 표정을 지으며, 나린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이 년 또 시작이네.'
둘은 희재에게 고용된 관계로 평소에 자주 붙어 다니긴 했지만, 서로 성격이 너무 이질적이었다.
특히 남자를 두고 자주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는데 청순해 보이지만, 도도한 태도를 지닌 민하와 화려한 스타일에 친화력이 빼어난 나린은 완벽한 대척점을 이루고 있었다.
민하는 나린이 자신이 도훈에게 관심이 있다는 걸 알고 의도적으로 더 그에게 친근감을 표시한다고 의심했다.
'하여간 저 나쁜 년. 내가 남자한테 관심 보일 때마다 늘 중간에 껴서 저렇게 가로채려고 수작을 부린단 말이지?'
민하가 뚱한 표정으로 토라져 있든 말든, 나린은 적극적으로 도훈에게 대화를 걸었다.
"내가 누나면 말 놔도 되지?"
"뭐, 편하실 대로."
도훈은 스스로 외모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나린과 민하에게 조금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대응했다.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군요. 어떻게 여기서 저 두 사람과 재회할 줄이야.]
'운빨 대폭발이 적용된 대상이 실은 여자 셰프가 아니었다는 거지.'
[아깐 운빨 대좆망이라면서요?]
'아니. 정정할게. 아마도 오늘 공략 대상은 저 두 사람이 될 듯.'
[갑자기요? 그때 카지노에서 봤을 땐 얽히기 싫다지 않으셨습니까? 명함도 곧장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시고는.]
'그때는 바람바람바람 업적에 도전 해야 하니까 쓸데없이 한눈팔기 싫었던 거고. 오늘은 미션 받으러 나왔는데 다시 만났으니 한 번 도저해 보고 싶은 거지.'
[뇌가 좆에 휘둘리는 건 아니고요?]
'그것도 일정부분은 맞아. 특히 내 옆에 앉은 나린이라는 여자는 당장 달라면 줄 듯.'
[미션 대상도 아닌데 괜한 헛심 쓰지 마시죠.]
'흐음. 아직은 그렇긴 한데.'
"어제 돈은 좀 땄니? 우린 일이 생겨서 먼저 일어났는데."
"네. 땄어요."
"오! 정말?"
"이것도 사실 딴 돈으로 사 먹는 거거든요."
"잠깐. 방금 우리 말 놓기로 하지 않았니? 넌 왜 존댓말 해?"
"진짜로 말 놔?"
"응. 몇 살 차이도 안 나 보이는데. 민하야 괜찮지?"
그제야 친구를 챙기는 척하는 나린을 보며 민하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혼자 팔짱을 끼우더니 홱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니? 난 싫은데."
"계집애. 하여간 깐깐하게 굴긴. 그럼 도훈이 넌 나한테는 말놓고 민하한테는 깍듯이 존댓말 해."
"그러지 뭐."
도훈 역시 민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껄렁하게 답했다. 그 말을 들은 민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와 씨, 진짜 저것들을 그냥.'
민하 입장에선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상황이었다.
먼저 도훈을 점찍은 것도 그녀였고, 용기를 내서 말을 건 것도 그녀였다.
심지어 평소 잘 건네지도 않는 <로얄 클럽> 명함까지 일부러 전달하고 왔는데, 여태 연락이 없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자신이 까였다는 말과 같았다.
'뭐야, 진짜 쟤? 재수 없어. 흥이다, 흥.'
민하가 토라졌다는 것은 도훈도 이미 파악한 상황이었다.
[민하 양을 너무 홀대하시는 것 아닙니까? 도박장에서도 그러시더니.]
'넵 둬. 스스로 콧대 높은 척하는 여자는 무시하는 게 더 나아.'
[의도된 전략이라고요?]
'딱 봐도 민하는 인기 많게 생겼잖아. 청순해 보이는 얼굴인데, 성격은 엄청 도도하고. 저런 타입은 대부분 남자가 먼저 들이대기 때문에 대접받는 것에 익숙하거든. 일부러 더 밟아줘야 나중에 숙이고 들어올 거야. 그때까진 뜸 좀 들여야지.'
[캬, 역시 주인님의 맞춤 공략은 여전하군요. 전 나린양이 더 마음에 들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나린이도 나름 괜찮긴 한데, 솔직히 좀 싼 티 나잖아.'
[나린양이요?]
'명품 옷을 걸친다고, 타고난 싼 티가 가려지진 않지. 분명 유흥 쪽에서 일하던 여자였을 거야. 내가 장담한다.'
[괜한 편견 아닙니까? 그냥 치장하길 좋아하는 성격일 수도 있는데요.]
'아니야. 아까 바로 오빠라고 들이대는 거 봤지? 그거 업소 애들 직업병 같은 말투거든. 자기도 모르게 남자만 보면 바로 오빠소리가 나온다니까?'
"세 분, 서로 일행이시면 코스 속도를 맞춰 드릴까요?"
한참 음식을 준비하던 여자 셰프가 세 사람이 구면인 것을 보고 먼저 제안했다. 그녀로선 기왕 한 번에 내어주는 음식을 통일하는 편이 음식을 준비하기 수월했기 때문이었다.
"네, 상관없어요. 그렇게 해주세요."
"배려 감사합니다."
"아, 그리고 셰프님. 저 잔 하나만 부탁드려요."
"네, 바로 드리겠습니다."
"민하 넌 운전해야 하니까 술 안 마실 거지? 내거만 시킨다."
"···응."
화기애애한 둘의 분위기에 완전히 삐친 민하는 혼자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건성으로 대답했다.
도훈이 속으로 씩 웃으며 나린에게 물었다.
"근데 왜 술도 없이 잔만 시키는 거야?"
"술? 거기 있잖아."
"내 도쿠리? 이건 내가 마실 건데?"
"에이, 남자가 쩨쩨하게 술 한 병 가지고. 그 술값 내가 낼게.
됐지?"
"그러면 나야 땡큐지."
잔이 나오자 두 사람은 서로 술을 채워 마시기 시작했다. 도훈은 술을 마시나 물을 마시나 차이가 없었지만, 도쿠리에 담긴 사케를 원 샷 한 나린은 곧바로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끄으으! 쓰다. 대체 몇 도야 이거? 넌 어떻게 이걸 아무렇지 않게 마시니?"
"별로던데?"
"어우, 우리 도훈이는 술도 잘 마시네. 난 벌써 취하는 거 같은데."
나린이 일부러 장난을 치듯 몸을 휘청이며 도훈에게 어깨를 기댔다. 그 모습을 힐끔거리던 민하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도훈은 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얘들 좀 웃긴대.'
[둘 다 살짝 이상하긴 합니다. 대체 뭐하는 여자들일까요?]
'하룻밤에 자릿값으로 천만 원씩 쓰는 재벌 집 막내아들의 스폰녀?'
[스폰녀라고요?]
'내 예상인데, 얼추 비슷하지 않을까? 여기도 스폰 받은 돈으로 온 거겠지.'
[호오. 주인님 촉이 맞는지 확인해 드릴까요?]
'정보창 한번 띄워볼래? 대체 뭐하는 여자들인지 궁금하긴 했거든.'
[누구부터 띄울까요?]
'일단 옆에 앉은 나린이부터.'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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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이나린 (비처녀, 일시 15세 5개월)
나이 : 25 #인싸녀 #로얄클럽 #비서
호감도 : 65/100
개방성 : S
성감대 : 온몸이 성감대
*애무 포인트 : 남자가 만져만 줘도 좋아합니다.
성욕지수 : 극히 높음.
공략팁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려한 외모로 주목받았습니다.
-불량 학생과 어울리던 그녀는, 넘치는 끼를 주체하지 못하고 일찍이 발랑 까졌고 18세의 나이부터 원조교제로 용돈을 버는 둥, 타고난 탕녀였습니다.
-일찍 화류계에 뛰어든 그녀는 21살의 나이에 최고급 텐프로 가게에서 에이스로 선발되었으나, 낭비벽이 심한 편이라 큰돈을 벌진 못했습니다.
-친했던 친구의 자살을 계기로 충격을 받은 그녀는 이듬해 텐프로를 관두고 평범한 삶을 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눈에 띄는 외모 덕에 연예기획사의 캐스팅을 받게 되었고, 이후로 과거를 세탁한 뒤 배우 지망생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타고난 발 연기 덕에 외모에 비해 잘나가지 못하던 그녀는 성공한 IT 사업가였던 희재의 눈에 띄어 그의 개인 비서로 고용됩니다.
-그녀는 아무에게도 과거를 밝히지 않았지만, 이따금 유흥업소에서 일하던 버릇이 튀어나옵니다.
-추천행동 : 그녀는 무척 공략이 쉬운 여자입니다. 하지만 장미엔 늘 가시가 있으니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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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창을 쓱 훑은 도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어려서는 업소를 전전하다, 때려치우고 배우 지망생이 되었다가, 지금은 IT 회사 사장의 개인 비서라는 거지?'
[정확한 요약입니다.]
'무슨 25살 먹은 계집애 이력이 이렇게 파란만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