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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59화 (1,939/2,000)

1959. ex wife-34-

* * *

통화가 연결되자 사진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전화를 받았다.

-네, 아라타입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저녁 예약 가능 할까요?"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은 모든 좌석이 예약 마감입니다. 다른 날로 잡아드릴까요?

'젠장.'

도훈은 잔뜩 기대했다가 순식간에 김이 빠졌다.

당일 예약이 바로 될 줄 알았던 게 실수였다.

"아, 안 되는구나."

-저희 가게는 최소 일주일 전 연락주셔야 예약이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세요."

도훈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통화를 끝냈다.

목소리를 듣고 나니, 더더욱 아쉬운 기분이었다.

"아씨, 목소리도 졸라 예뻤는데."

[아쉽게 되었군요. 하긴 그런 가게를 당일 예약한다는 게 무리 수긴 했습니다. 인기 많은 가게면 더더욱요. 다른 식당을 알아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아까 검색해 보니까 딱히 마음에 드는 데가 없어. 오마카세의 경우는 여자 셰프가 운영하는 가게 자체가 드무니까.'

[그건 왜 그렇죠?]

'일식류 대부분 그렇더라고. 여자 셰프 거의 안 쓰잖아.'

[별도의 이유가 있는 건가요?]

'초밥이 일본에서 시작된 건 알지?'

[네. 그래서 영어로도 스시라고 부르잖습니까.]

'암튼 옛날 유명한 일본 초밥 장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거야. 여자들은 생리 주기에 따라 체온이 변하기 때문에 초밥을 말때 손에 쥘 수 없고, 미각도 미묘하게 바뀌어서 음식 맛을 일정하게 낼 수 없다고. 그 이후 일식집에선 아예 여자 셰프를 받지도, 키우지도 않아. 그렇게 금녀의 구역이 되어버리면서 희망하는 사람도 완전히 기대를 접었지.'

[그게 진짜입니까?]

'정확히는 모르겠어. 실제로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는. 근데 애초에 요식업계 자체도 여자 요리사가 드물긴 해.'

[그건 왜 그렇죠? 보통 집에서 요리를 해주는 쪽은 엄마지 않습니까?]

'가게 음식은 집밥이랑 또 다르거든. 가령 중식 같은 경우엔 무쇠로 된 웍이 엄청 무거워서 여자 힘으론 제대로 들지도 못하기도 하고. 은근 이쪽 세계도 사제 간, 선후배 간 군기가 졸라 빡세다고 들었어.

일 못하면 쌍욕부터 박고 손찌검하는 경우가 많아서 여자들로선 도제 기간을 버텨내질 못하는 거야. 일식류 역시 아까 초밥 장인이 말한 그런 이유때문에 더 꺼려하기도 하고.'

[흐음, 그래서 여성 셰프가 부족한 거군요.]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초밥집이나 횟집에는 거의 없다고 봐야지. 안 그래도 사람 없는데, 아까 사진에 나온 것처럼 예쁜 여자를 찾기 건 더 힘들지.'

[아쉽게 되었군요. 그냥 식사는 평소처럼 대충 때우시고 전혀 다른 장소로 물색을···]

부르르- 도훈이 아쉬워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아까 그 식당 번호였다.

"엇, 여보세요?"

-네, 손님, 방금 전화 주신 분 맞죠?

"네 맞습니다."

-오늘 예약하신 분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취소를 하시겠다고 방금 연락이 와서요. 가능하시면 빈자리에 바로 넣어드릴까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도훈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네. 당연히 가능하죠!"

-혹시 몇 분이시죠?

"저요? 한 명인데요."

-아···. 한 명이구나. 죄송합니다. 4인 식사분이 취소되서, 최소 두 명 이상 가능한 손님을 찾고 있거든요.

"전 상관없는데."

-네?

"4인분이어도 혼자 다 먹을 수 있다고요."

-아, 아니 그건 너무 양이 많은데···.

"저 먹방 찍는 사람입니다."

-그게 무슨···.

"푸드 파이터라고요. 그러니까 4인분 다 주셔도 제가 다 먹을 수 있습니다. 요새 초밥 먹방 수련 중이라."

-오마카세로 푸드 파이팅을 하시겠다고요?

"네. 뭐, 안 될게 있나요?"

-저희 가게 1인분이 20만원인데···.

"가격은 딱히 신경 안 쓰셔도 됩니다. 그리고 어차피 지금 손님 못 받으면 준비하신 재료 싹 다 날리시는 거 아닌가요? 원래 생선 류는 신선도가 생명이잖아요."

-그렇긴 하죠.

"걱정 마세요. 제가 해치워 드릴게요. 지금 가면 되나요?"

-아뇨, 취소된 예약은 한 시간 뒤입니다.

"잘됐네요. 가는 데 대충 1시간 쯤 걸리니까. 그럼 이따 봬요."

-잠시만요 손님, 혹시 성함이.

"이도훈입니다."

-네. 이도훈 이름으로 예약해 놓겠습니다. 4인분은 너무 많을 것 같으니 일단 2인분으로 준비해 놓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운 좋게 예약을 성공한 도훈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이스! 역시 운 좋은 놈은 앞으로 넘어져도 레깅스 와이존위에 코박죽 한다더니."

[그런 말이 있습니까?]

'물론 방금 지어낸 말이지. 그나저나 운수대통이구나! 안 될 줄 알았던 예약을 성공 시키다니.'

[아무래도 운빨 대폭발 영향으로 보입니다.]

'맞네. 막 효민이와 섹스를 마쳤으니. 운빨 살아 있네!'

운빨 대폭발은, 도훈이 가진 패시스 중 하나로 섹스를 마치고 일정 시간 강운을 받는 스킬이었다.

도훈은 신을 내며 차를 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연거푸 섹스가 이어진 후라 그런지 배도 제법 고프고, 새로운 미션을 받을 생각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흐흐, 여자 일식 요리사라니. 이건 백퍼 미션각이다.'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

'일식하니까 왠지 미션으로 그거 나올 것 같은데?'

[어떤 거요?]

'뇨타이모리.'

[그건 뭔가요?]

'일명 여체 초밥. 누드 스시라고도 하는데, 여체를 쟁반 삼아서 횟감 올려놓는 거 말이야.'

[···사스가 헨타이.]

'느낌 빡 오지 않아? 아까 그 사진에서 본 예쁜 일식 셰프가 가게 문 셔터 내리고 올누드로 자기 몸 위에 횟감을 하나씩 올리는 거야. 음식 다 먹고 나면 후식은 자기라면서. 흐흐흐.'

[좀 심각하군요. 정액이 뇌까지 절여진 것 같은데요.]

'음, 좀 이상한 게 원래 3번 정도 싸고 나면 당일 할당량이 채워졌거든?'

[할당량이요?]

'남자들은 싸고 나면 현타 오잖아. 나도 그 양이 일정했는데 내공이 늘어난 이후 그게 팍 는 것 같아.'

[주인님은 당장의 미션 수행 보다 넘치는 양기를 다스리는 법부터 배우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도 일단 오늘 저녁 미션부터 해결하고나서.'

들뜬 마음으로 오마카세 가게에 도착한 도훈은, 가게 문을 열고 주방 모자를 쓰고 있는 셰프를 마주한 뒤 실망감을 금치 못했다.

"이랏샤이마세!"

"······."

사진과 전혀 다르게 생긴 여성이 자신을 반겼던 것이다.

순간 도훈은 본인이 가게를 착각해 들어왔거나, 혹은 셰프가 다른 인물로 바뀐게 아닐까 의심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셰프의 이목구비가 대충 사진과 비슷하게 생기긴 했다. 피부 톤이나 눈 크기, 콧대나 턱선은 미묘하게 달랐지만 말이다.

'···씨발, 이거 사기 아니냐?'

[네?]

'아까 그 사진하고는 완전 딴판이잖아. 뽀샵질에 당한 거였다니!'

[아···.]

도훈은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에 화가 났지만, 예약까지 해놓고 무를 순 없어서 일단 바에 앉았다. 셰프는 도훈의 심정도 모르는지 웃는 낯으로 그를 반갑게 맞았다.

"아까 예약하신 이도훈 님 맞죠? 푸드파이터 하신다는."

"···네."

목소리까지 직접 듣고 나니 빼박이었다.

통화 목소리가 너무 예뻐 설마하니 뽀샵질로 얼굴을 완전히 뜯어 고쳤을거란 생각을 미처 못한 것이었다.

[그래도 목소리는 전화랑 똑같네요.]

'씨발, 이제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야. 얼굴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갈아엎었는데. 이건 일종의 사기라고!' 도훈은 그제야 자신이 본 맛집 추천 글이 외주로 제작한 광고형 블로그라는 걸 깨달았다. 그게 아니면, 손님이 멋대로 요리사의 얼굴을 뽀샵질로 수정할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당했네, 당했어. 어쩐지 운이 좋더라니.'

[기운 내십시오. 솔직히 주인님은 여자 얼굴 많이 가리는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미션을 받는 게 더 중요하죠.]

'젠장, 서던 좆도 죽게 생겼는데, 뭔 놈의 미션 타령은.'

"아까 말씀 드렸던 대로 일단 2인분만 준비해 놨습니다. 메뉴가 조금씩 나오긴 하는데, 다 먹고 나면 꽤 양이 많은 편이라서요."

사기꾼 셰프의 말에 도훈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성욕이 짜게 식으며 식욕도 뚝 떨어졌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식사 준비해 드릴게요."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여자 셰프를 보며 도훈이 속으로 분을 삼켰다.

'···당했어. 사기 사진에 완전 당해버렸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분명 운빨 대폭발이라며? 이건 운빨 개좆망 아니냐?'

[그 운 빨이라는 게 꼭 미인을 만난다는 보증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 예약이 캔슬되서 주인님께 기회가 온 것 자체도 운빨 스킬의 효과긴 합니다.]

'그런 궤변이 어딨어? 이럴 거면 여기 발도 못 붙이게 하는 게 맞지 않냐? 1시간을 내리 달려서 헛돈 쓰러 왔다니. 그것도 인당 20만원 하는 오마카세를 먹으러!'

돈이라면 차고 넘쳤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아까운 기분이었다.

꿀꿀한 기분에 도꾸리 한 병을 추가한 도훈은 안주도 없이 자작을 시작했다. 하지만 강화된 신체는 알콜이 들어가자마자 완전히 분해해 버렸기 때문에, 술을 먹는 것 같지도 않았다.

'에이씨, 간만에 미션하나 걸리나 했더니. 술도 맹탕이네. 이게 술이야 물이야?'

[너무 자책마십시오. 미션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낯선 환경, 새로운 여자가 등장했으니까요.]

'아니. 이렇게 된 이상 미션이 떠도 내가 거절이야. 사진으로 사기 친 여자랑 무슨 미션을 한다고? 어떻게 저게 사진이랑 같은 인물이냐고.'

[어느 정도 뽀샵질은 요즘엔 애교 아닐까요?]

'어느 정도라야 말이지? 완전히 원판을 갈아엎은 수준인데.'

"손님, 우선 에피 타이저부터 시작할게요."

입 맛을 돋구기 위한 샐러드와 구운 갑각류가 나오자 도훈은 곧바로 젓가락을 들고 맛부터 확인했다. 지금 기분으로는 음식 맛까지 형편없으면 확 면전에 현금을 뿌리고 가게를 뛰쳐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음?"

"입맛에 맞으시나요?"

"아, 네 뭐···."

"계속 다음 코스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비교적 간단해 보이는 요리임에도 맛은 상당했다.

특히 술안주로 함께 하니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도훈이 가게에 들어와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실력은 가짜는 아니었네.'

[그나마 다행인건가요?]

'진짜 요리까지 형편없었으면 이 일식집 고소했다.'

[뭘 또 그 정도까지.]

'솔직히 이건 소비자 기만이지. 그러게 왜 자기 얼굴도 아니고 남의 사진을 올려 두냐고?'

[음식점을 찾는데 셰프 외모까지 따지는 손님이 있을거라곤 생각 안 했나 보죠.]

'참나.'

도훈이 투덜거리며 연거푸 자작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다른 손님이 들어왔다. 가게 일하는 점원들이 반사적으로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이랏샤이마세!"

찰지게 들리는 일본어에 가게에 입장하던 여자 손님이 꺄르르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아이고, 현지 가게에 들른 줄 알았네요. 오늘 7:30에 두명 예약했는데 조금 늦었죠?"

"아닙니다, 손님. 이쪽에 앉으시면 됩니다. 두분이시라고요?"

"네. 한 명은 주차하고 곧 올 거예요."

도훈이 새로 들어온 손님을 쳐다보지도 않고 묵묵히 도쿠리를 비우고 있는데, 바로 옆의 빈 자리로 방금 들어온 손님이 와서 앉았다. 바(Bar) 형태였기 때문에, 일행이 아님에도 도훈의 바로 옆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어? 혹시."

여자가 불쑥 아는 척을 했다.

"맞죠? 카지노에서?"

"···엥?"

도훈은 그제야 가게에 뒤늦게 들어온 손님이 어제 사설 도박장에서 만났던 여자임을 깨달았다. 자신과 흡연실에서 대화를 나눈 여자가 아닌, 희재라는 사람 옆에 내내 붙어있던 쭉쭉빵빵한 미녀말이다.

다만 얼굴만 알지 이름은 모르는 여자였다.

"와, 이런 우연이 있다니! 반가워요. 혹시 혼자 오셨어요?"

"아···. 혹시 엊그제."

"네, 맞아요. 저는 민하친구 나린이라고 해요. 어떻게 여기서 만나죠?"

도훈은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당황했으나, 스스로를 나린으로 소개한 여자는 무척 반가운 표정이었다.

"꺄하, 잘 됐다. 오늘 희재 오빠가 일 때문에 바쁘다고 해서 민하랑 둘이서 저녁 먹으러 온 거거든요. 민하, 기억나죠?"

"그때 그 명함 준 분요?"

"네. 맞아요. 금방 주차하고 곧 올거예요."

도훈은 나린을 면전에서 보긴 처음이었다.

바카라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도 예쁘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확실히 글래머러스한 몸매도 돋보이는 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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