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 ex wife-21-
* * *
"후우-"
엉덩이에 시뻘건 손바닥 자국이 남은 성희는 침대 위에 배를 깔고 기절한 듯 쓰러져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뒤로하고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웠다.
역시 섹스피어는 진리다.
'드디어 호감도 100인가?'
[감축 드립니다. 3번만에 겨우 성공하셨군요. 호감도 100을 달성하시면서 '그대 이름 바람바람바람' 업적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마지막에 99에서 100까지 올리는 게 이렇게 힘이 들 줄 몰랐어.'
예상보다 쉽지 않은 공략이었다.
2번째 섹스에서 그렇게 몰아쳤는데도, 호감도는 여전히 99에서 멈춰있었다.
감언이설로 둘 만의 달콤함 미래를 속삭이고, 그녀가 원하는 상남자식 섹스로 온 힘을 다해 때려 박았음에도 마지막 고지 달성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3번째 섹스에서 연거푸 절정을 보내면서 겨우 호감도 100을 달성할 수 있었다. 허리가 찌릿할 정도로 온힘을 다해 얻은 결과였다.
'호감도 100 올리는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줄이야.'
[이것도 무척 빠른 편입니다. 공들인 시간에 비해서는 말이죠.]
하긴 생각해보면 일전에 호감도 100을 찍었던 다른 상대들은 한달 이상 공을 들였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 작업을 속성으로 해치우려다 보니 난 이도가 상당히 높아진 측면이 있었다.
'그래. 아무튼 이제 성희랑은 영영 작별이겠군.'
[주인님 결심이 그렇다면요.]
'먹튀하는 기분에 찝찝하긴 하지만, 이게 성희 본인을 위해서도 더 좋을 거야.'
[구차한 변명이라니, 주인님 답지 않습니다.]
'너무 비난만하지 말라고. 나도 마음이 편치는 않으니까.'
[그럼 그냥 거두어 주시면 그만 아닙니까?]
'그건 안 돼. 여자가 너무 많아도 장차 미션에 걸림돌이 될 거야. 더구나 같이 동거까지 약속한 여자라면, 마누라를 집에 들이는 거나 마찬가진데. 그렇게는 못하지.'
[고정적인 파트너와 함께 사는 것은 바람둥이에겐 치명적인 페널티긴 하죠. 그것 때문에 주인님은 여자친구도 안 만들지 않았습니까?]
'여자친구라고? 갑자기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기분 뭐지?'
로시가 여자친구 얘기를 꺼내가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다음주 월요일 바로 중간성적 발표되는 거 아니냐?'
[지난 번 본 시험 말입니까? 시험 끝난지 일주일이 넘었으니 슬슬 결과가 나올 때가 됐죠. 왜 그러십니까?]
'구원회 일에 정신 팔려서 완전히 잊고 지냈는데, 그때 내가 정음이랑 약속하지 않았어? 시험 성적 잘 나오면 정식으로 사귀기로.'
[억!!!]
갑자기 시한폭탄에 달린 타이머가 작동된 느낌이었다.
성희야 어차피 인연이 길지 않으니 인연의 붉은실로 손절한다고 쳐도, 육정음은 도저히 그럴 수 없으니까.
'아씨,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이번엔 진짜로 코 꿰일 수도 있겠는데?'
[그때야 육정음양이 절대 시험을 잘 볼 수 없다는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 아닙니까? 육정음양이 공부에 집중하도록 동기유발시키기 위해서요.]
'그건 맞는데…. 정음이가 진짜로 빡공했었잖아. 내가 직접 써머리까지 만들어주고. 이거 괜히 불안해 지는데?'
[흐음. 근데 육정음이랑 사귀면 안 될게 있습니까? 성희양이야 잠깐 스친 여자니까, 먹튀할 수 있다고 쳐도 정음양은 학기초부터 주인님도 본처라고 인정할 만큼 아끼던 사람인데요. 솔직히 1년 가까이 데리고 놀았으면 이제 책임질 때가 되긴 했죠.]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여자친구가 생기면 발목 잡히는 건데.'
[그렇다고 하기엔 제주도 여성 플레이어 보미양은 이미 주인님을 남자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텐데요?]
'보미하곤 상황이 다르지.'
[뭐가 다르죠? 사귀는 건 똑같은데요.]
'보미는 장거리잖아. 게다가 본인 사정 때문에 제주도 밖으로 못 나오니까 내가 직접 내려가지 않으면 만날 일도 거의 없고.'
[일종의 랜선 연애 같은 건가요?]
'그렇지. 여자친구라고 인정해도 나에겐 전혀 문제가 안되는, 관리할 요소가 적은 여친이라고. 하지만 육정음은 같은 학교, 같은 과 후배잖아.'
[그렇죠.]
'내가 만약 정음이랑 사귀는 게 학교에 소문이라도 나봐. 팔선 녀 애들이 그걸 가만히 보고 있겠어?'
[별일이야 있을까요? 아쉽기야 하겠지만, 주인님이 마침내 최종선택을 했다고 여기겠죠.]
'에이, 그게 아니지. 지금 8선녀가 서로 사이좋게 유지 되고 있는건 나를 두고 적절한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인데.'
[그게 주인님 때문이라고요?]
'공동의 적이 있을 때 내부의 단결이 되는 것처럼,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서로 똘똘 뭉칠 수 있는 거야. 사실상 내 옆자리가 공석이라는 걸 이용해서 후배들을 희망고문을 해온 거라고.'
[아….]
'8선녀 각각은 이제껏 나에게 선택 받을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 가지고 학과 일을 최선을 다해 도운 거야. 근데 그 기대가 꺾이는 순간 피 튀기는 개싸움이 시작되겠지.'
[흐음, 주인님 말을 듣고보니 시험 결과에 따라서 피바람이 몰아칠수도 있겠군요.]
'좆됐네 진짜. 남자들 주먹다짐보다 무서운게 여자들끼리 반목하고 시기하는 냉전인데. 칼만 안들었지 말로 사람을 난도질하는 데는 남자 못지 않으니까.'
[그러게 왜 정음양에게 쓸데없는 약속을 해가지고 사서 고생을 하시는지….]
'그때야 당연히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였으니까.'
[그럼 그때 판단이 지금도 유효할 겁니다. 주인님이 늘 하시는 말씀 있잖습니까?]
'무슨 말?'
[육정음은 다 완벽한데 빡대가리라는 게 유일한 단점이라고요.]
'그건 그렇긴 한데.'
[주인님이 괜히 걱정하는 걸겁니다. 아직 결과가 안나왔으니 일단 지켜보시죠.]
'월요일에 바로 나올 거라니까?'
[어쨌든 지금 걱정해봐야 바뀌는 건 없습니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사서 걱정하는 건 주인님 답지 않고요.]
'그런가.'
[주인님이 성희양을 손절하는 데 죄책감을 크게 느끼나 봅니다. 평소와 달리 유독 불안해 하시는 걸 보면요.]
'죄책감 까진 아니고…. 그냥 미안한 거지. 아무리 스쳐지나가는 여자라지만 단물만 쏙 빼먹고 내치는 거 같으니.'
[언제는 성희양이 피빨아 먹는 모기라면서요?]
'아니 그거야….'
성희가 물론 이기적인 여자긴 했다.
그녀가 나에게 갖는 호감의 상당수는 성적인 능력도 있지만, 내가 나이에 비해 돈이 많아 보인다는 배경이 작용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성을 좋아하는 기준에 당연히 능력이 빠질 수 없을 것이다.
남자들도 여자들 얼굴이나 몸매를 보고 호감을 가지는 것처럼, 여자들도 남자의 외모와 더불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자산에 매력을 느끼니까.
그게 속물적이고 계산적으로 보일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고려 전혀 없이 남자를 선택하진 않는다.
막말로 요즘엔 남자들도, 직장이 변변치 않거나 맞벌이 생각없는 여자들을 비선호하는 한다지 않나.
사람 만나면 사람만 봐라고 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호감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종합되어 평가될 수밖에 없다.
다만 성희는 거기서 노골적으로 남자의 능력을 따졌다는 게 문제지.
나는 여전히 침대에 쓰러져 뻗어 있는 성희의 알몸을 쳐다보았다. 섹섹 거리며 숨을 쉬고 있는 성희는 오선생을 연거푸 영접한 뒤로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그녀에겐 오늘이 최고의 밤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이템을 사용한 뒤에는 모든 것이 꿈처럼 느껴질 테니만.
'그래. 괜히 질질 끌지 말자. 성희도 이제 정신차리고 제 인생 살아야지. 어차피 살다보면 평생 자기가 잤던 여자들 다 기억도 못하는 게 인간이야. 원래 그런 거니까.'
나는 인벤토리에서 인연의 붉은 실 가위를 꺼내 성희와 연결된 끈을 싹둑 잘랐다.
개인적으로는 미안하긴 했지만, 미안하다고 거둬주기엔 당장 내 코가 석자였다.
'잘 지내길.'
나는 기절한 듯 누워있는 성희를 뒤로하고 모텔을 빠져 나왔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성희는 어젯밤 있었던 일이 아주 오래된 추억처럼 흐릿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잊을 것이다.
아마 십수년 전 스쳐간 남자 정도로 여기다가 이름조차 까먹겠지.
성희와의 인연은 바람의 망토만 남긴 채 그렇게 끝이났다.
* * *
'이것 봐라?'
희재는 간만에 흥미진진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정체를 완전히 밝힌 것도 아닌데, 지안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야릇하게 바뀐 것이었다.
'예상보다 훨씬 미친년이었잖아? 감히 나를 사냥감으로 보고 있는 거야? 푸하하하-. 이거 아주 재밌는데?'
희재는 두근거리는 기분에 평소처럼 크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부자가 된 후로 그는 사실상 삶의 흥미를 잃어버렸다.
페달을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 자전거처럼.
인간은 목표가 있어야 살아 숨쉬는 이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너무나 큰 부를, 손쉽게 이룩해버린 희재에게 남은 삶은 너무나 무료함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비싼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었다. 명품으로 온 몸을 도배해도 전혀 만족감이 들지 않았다.
섹스에 딱히 흥미도 없던 그에겐, 미녀 수백명을 끼고 산다고 그리 재밌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오죽하면 마약에 손을 대볼까도 생각했지만, 어차피 그것도 끝이 허무할 것은 뻔했다.
그렇게 세상에 흥미를 잃어가던 그에게 로얄 클럽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욕망에 가득찬 인간군상을 지켜보는 일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성욕을 위해서라면 가진 재산도 명예도,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를 가진 인간들을 구경하는 게 유일한 삶의 활력소였다. 다른 인간의 밑바닥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마치 자신이 신이 된 것 같았다.
실제로 그는 로얄 클럽 안에서는 신처럼 군림했다. 모든 통제권이 그에게 있었고, 다른 클럽 맴버들은 감히 그를 거역하지 못했다.
그가 아니고선 모임도 없었고, 그의 재력이 아니고선 장소제공도 어려울 것이 뻔했다.
그는 섹스에 미친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등장한 메시아였다.
희재는 그런 욕망덩어리들을 구경하는 유희로 인생의 낙을 찾았다. 그리고 이번엔 새로 가입을 신청한 최지안은, 감히 놀랍게도 자신을 먹잇감처럼 노리고 있었다.
'푸하하-. 재밌어, 너무 재밌어. 재밌어서 진짜 잦이가 발딱 설것 같은 기분이야.'
희재는 남자치곤 성욕이 적은 편이었다.
젊었을 때도 여자에는 딱히 관심이 없었고, 컴퓨터를 붙잡고 씨름하는게 더 좋았다.
물론 희재도 예쁜 여자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것은 단지 보기 좋은 눈요기에 불과했고, 여자를 어떻게 자빠뜨려서 따먹어보겠다는 충동은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혼도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겨우 2세를 갖기 위해서한 것이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평생을 독신으로 살 생각이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강한 성적 충동을 느낀 것은, 자신의 전마누라가 난교 클럽에 드나들며 다른 남자와 실컷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였다.
그때 희재는 처음으로 참을 수 없는 충동을 느꼈다.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심하게 당해, 성기가 훼손되고 수술까지 받았는데도 오히려 그때 발기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후후-. 나중에 난교 클럽에 잠입해서 확실히 깨달았지. 나는 내가 직접 여자를 따먹는 것보다, 내 소유물을 다른 사내들에게 내줄 때 가장 강한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걸 말이야.'
질투.
발기도 시원찮던 희재를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 신나게 따먹힐 때였다.
특히,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들에게 돌려지며 쾌락에 울부짖을 때 희재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심장이 쿵쾅 거리며, 머리가 뜨거워졌다.
잦이가 빳빳해져 건드리기만 해도 싸버릴 것처럼 자극이 강하게 밀려왔다.
'하아, 지안이 저년이 다른 남자들에게 돌림빵 당하는 모습을 보고 싶군. 그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 잦이가 묵직해 지는데….'
희재는 특히 여자가 쌍년일수록 더 좋았다.
남자를 우습게 보고, 거짓말을 밥먹듯 하며, 심지어 남자를 탈탈 털어먹을 궁리만 하는 희대의 쌍년일 때 쾌락이 더욱 배가되었다.
그런면에서 볼때 최지안은 최적의 상대였다.
질 나쁜 여자의 특징을 모두 갖춘 여자였다.
심지어 클럽장인 자신을 꼬셔서 도축해버리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미친 여자였다.
"근데, 면접은 이게 끝인가요? 생각보다 좀 시시한 것 같은데…."
"네?"
지안이 입고 있던 외투를 벗더니 얇은 티 하나만 입고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난교 클럽이라길래, 다른 면접도 보는 줄 알았거든요."
희재가 자세히 보니 티 사이로 젖꼭지가 돌출되어 있었다. 지안이 노브라로 나왔다는 증거였다.
"글쎄, 다른 면접이라면…."
"뭐, 가령 클럽장님이 직접 제 몸매를 확인한다던가요."
지안이 노골적으로 희재를 쳐다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