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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39화 (1,919/2,000)

1939. ex wife-14-

칩을 다시 현금으로 교환하면서 수수료를 빼고 보니 결국 본전치기만 한 꼴이었다.

'젠장. 결국 3시간을 삽질만 하다 온 꼴이네.'

[어차피 시간 죽이러 간 것이니 목적은 달성 하셨군요.]

성희가 일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가게 밖에서 기다리던 도훈은 문득 아까 만난 김희재와 여자들을 떠올렸다.

'근데 아까 그 새끼 말이야.'

[누구요? 김희잰가 뭔가 하는 부자요?]

'부잔지 사기꾼인지는 아직 모르겠고. 대체 뭐하는 사람일까?'

[돈 씀씀이를 봐선 엄청 부자 같던데요. 주인님 말마따나 몸에 두르고 있는 옷이랑 시계만 해도 억 단위를 걸치고 다니는 걸 보면요.]

'짭일 수도 있지.'

[예? 하룻밤에 수천만원 씩 물쓰듯 쓰는 사람이 짭을 쓴다고요?]

'아니, 명품 같은 건 부자들도 은근히 짭을 많이 쓴다는 말이야.'

[에이, 설마요.]

'너 우리나라 직업군 중에서 의사같은 전문직들이 제일 짭 많이사는 거 몰라?'

[정말입니까?]

'비공식 통계긴 한데,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아무렇지 않게 짝퉁을 많이 구입한다더라고. 생각해봐. 값비싼 외제차에 내리는 의사가 명품을 걸쳤는데 그걸 누가 짭이라고 보겠어?'

[다들 진짜인 줄 알겠죠.]

'맞아. 바로 그걸 노리는 거야. 비싼 차를 타고 다니면, 거기서 내리는 사람이 짝퉁을 걸치고 있어도 의심을 못 하니까.'

[호오. 근데 의사가 명품을 입고 다닐 일이 얼마나 있다고요?

의사 가운 입고 정신없이 일만 하기도 바쁜데요.]

'자기 쓰려고 사는 게 아니지.'

[그럼요?]

'마누라 주고, 애인도 주고. 아무리 의사라도 비싼 명품을 자주 선물하기는 부담스러우니까 몰래 짝퉁을 준다더라고. 물론 가지고 있는 모든 명품이 가짜는 아니겠지. 대신 중간중간 짝퉁을 섞어 써도 아무도 의심을 안 하거든.'

[신박한 이론이긴 하지만 김희재와는 별로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그는 진짜 부자로 보였거든요.]

'그러거나 말거나. 왠지 재수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어.'

[미녀들을 혼자서 두 명이나 독차지하고 있어서 배알이 꼴린 건 아니고요?]

'돈으로 여자 꼬시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운 일이야. 내가 그딴걸 부러워할 것 같아?'

[하긴 주인님도 대단한 자산가시긴 하죠.]

'그리고 그런 여자들이야 마음만 먹으면 김희재 그놈에게서 빼앗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빼앗고 싶으신가요? 아까 그 클럽에 전화해보시려고요?]

'아니. 그 정도까진 아니야. 난 지금 눈앞의 업적을 해치우는 게 우선이니까.'

도훈이 밖에서 10여 분 정도 기다리고 서 있는데, 가게를 일찍 마친 성희가 사복으로 갈아입고 퇴근했다.

"엇!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어? 와서 게임하고 있으라니까."

성희는 도훈이 계속 밖에서 기다린 줄 알고 놀라서 물었다. 도훈이 3시간이나 일찍 VVIP룸에 가서 바카라 게임을 하고 왔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르는 눈치였다.

도훈도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

"그냥. 게임하긴 시간이 애매해서."

"그래도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지. 추웠을텐데···."

어느새 겨울 날씨로 변한 바깥은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였다. 얇은 외투 하나만 걸치고 서 있으면 몸이 으스스 떨릴만큼 추웠다.

'하나도 안 추운데 이게 춥다고?'

[주인님이 특이체질이라 그렇습니다. 강화된 내공덕에 신체의 항상성이 늘어나서 어떤 경우에도 체온을 유지해 내거든요.]

'그래? 어쩐지 하나도 안 춥더라니···.'

"많이 추웠지? 따뜻한 국물이라도 먹으러 갈래?"

"국물?"

"요 앞에 붕어빵 파는 데 생겼거든. 초겨울인데 올핸 좀 일찍 시작하더라고."

성희가 도훈의 팔짱이 끼더니 그를 이끌고 갔다. 포장마차처럼 생긴 붕어빵 가게에는 사람들이 제법 몰려 있었다.

"내가 쏠테니까 오뎅 국물이라도 좀 마시고 있어. 붕어빵 사갈래?"

"배고파?"

"응. 새벽까지 일하니까 이 시간쯤 되면 배고프더라고. 몇 개만 살게. 아줌마, 여기 붕어빵 삼천원 어치만 싸주세요. 오뎅도요."

도훈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오뎅국물을 보자 갑자기 식욕이 돋았다. 그는 성희가 계산하는 사이 오뎅 꼬지를 하나 들고 간장에 찍어 먹기 시작했다.

'음, 좆맛탱인데?'

오랜만에 먹은 오뎅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내친김에 오뎅 국물까지 후루룩 들이켠 도훈은 붕어빵이 포장될 때까지 기다리며 성희와 대화를 나누었다.

"근데 언제 도착한 거야? 가게에는 왜 안 들어왔어?"

"얼마 안 됐어. 10분 전인가? 게임 하기엔 너무 애매해서."

"거짓말. 그보다 훨씬 오래 기다린 거 아니야?"

성희가 양손으로 덥썩 도훈의 손을 포겠다. 딴에는 추워서 꽁꽁언 손을 녹여주려는 의도였지만, 정작 도훈의 손은 따뜻하다 못해 살짝 뜨거운 정도였다.

"어···. 손이 하나도 안 차네?"

"진짜라니까?"

물론 도훈은 밖에서 설사 3시간을 기다렸다고 해도 체온이 그대로 유지되는 특성 때문에 손발이 차가워질 수가 없었다.

"암튼, 간만에 얼굴 보니까 좋다. 자주 좀 놀러오지. 꼭 내가 옆구리 찔러야 오니?"

"미안 미안. 시험 끝나고 일이 좀 있어서 바빴거든."

두 사람은 계속 오뎅 꼬치를 뽑아 먹었다.

"무슨 일?"

"사이비 종교단체랑 트러블이 생겨서 해결 좀 하느라고."

"사이비 종교라고? 요새도 그런 데가 있어?"

"의외로 많을 걸?"

"해결은 잘 됐어?"

"응. 다행히 잘 끝난 거 같아. 아마 다시는 사기 치지 못 할 거야."

"다행이네. 하여간 요샌 정말 이상한 사람들 많다니까?"

"이상한 사람이라니?"

"같이 일하는 직원 언니한테 들었는데···."

"손님, 포장 나왔어요."

"아, 네!"

그때 붕어빵 포장이 완료되었는지 아줌마가 봉투를 건네는 바람에 대화가 끊기고 말았다. 두 사람은 붕어빵 봉투를 들고 거리를 걸으며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들었는데 뭐?"

"너 우리 업장에 VIP룸 따로 있는 거 알지?"

"응."

"글쎄 거기 단골 중에 엄청 부자가 있다더라고. 완전 찐부자."

"그래?"

"응. 이따금 여자들 데리고 놀러 오는데, 자릿값을 천만원씩이나 내고 양옆에 꼭 자기 애인을 앉힌다는 거 있지?"

'천만원? 아까 웨이터가 테이블 피는 이천이라지 않았나?'

[두 당 천만원이 아니라 합한 가격을 말했었나 봅니다.]

'아아, 난 또. 어쩐지 너무 비싸더라니.'

[근데 하룻밤 천만원 이라도 비싸긴 똑같은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긴 하지.' 이미 알고 있던 도훈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큰둥하여 보이자 성희가 다시 물었다.

"안 놀라워?"

"으, 응?"

"아니. 게임도 안 하는 사람을 자리에 앉혀 구경시킨답시고 하룻밤에 천만 원씩 펑펑 쓴다는 게 말이야."

"조금 놀랍긴 하네."

"으음? 근데 어째 반응이 뜨뜻미지근한데?"

"아니, 난 이상한 사람이라길레 성격이 괴팍한 줄 알았지. 그냥 돈 씀씀이가 헤픈 건가 싶어서."

"아하."

"근데 대체 뭐하는 사람이길래 그렇게 부자래?"

"나도 잘은 모르겠어. 직원 언니가 하는 말로는 코인 투자로 대박 났다고는 하는데···."

"코인?"

"응. 도박장 와서도 이따금 폰을 확인하는데 웨이터 오빠가 뒤에서 보니까 잔고가 엄청 많아 보였다더라고."

'아하, 난 또 뭐라고. 그냥 코인으로 횡재한 놈이었잖아?'

[주인님 계좌는 반토막 나지 않았습니까?]

'아직 팔지 않았으니 잃은 건 아니지.'

[새로운 논리 탄생이군요!]

'암튼, 뭘 믿고 그렇게 거들먹거리나 했더니 한낱 코인 투기꾼이었네. 참나.'

[그래도 엄청 성공한 것 아닙니까? 코인 투자로 그만한 부를 일구었다면요.]

'운 좋게 초기에 들어간 사람이야 당연히 대박 많이 났지. 너 처음 코인이 현물 거래될 때 가치가 얼마였는지 알아?'

[얼마데요?]

'피자 두 판에 1만 비트코인.'

[한 판에 5000 코인인 셈인가요?]

'그렇지. 지금 코인이 조금 떨어졌어도 1비트 몇천만원은 아니까 그 피자가 얼마짜리일 것 같아?'

[아니! 수천억이 넘는다는 소립니까?]

'맞아. 초창기 때 비트코인은 말 그대로 쓰레기였어. 아무도 그게 돈이 될 줄은 몰랐거든. 그래서 초기에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가격이 떨어졌다고 해도 엄청난 돈을 번 거야. 김희재라는 놈은 어쩌면 그런 초창기 투자자 중 한명일지도 모르고.'

[세상에···. 주인님. 지금이라도 회귀의 알을 연구해 보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회귀의 알?'

[아니, 장만석을 죽이고 그에게서 빼앗은 전리품 중에 있었지 않습니까? 과거로 돌아가는 아이템이요. 그것만 활용할 수 있으면 주인님은 세계 제 1의 부자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도훈은 로시의 말을 듣고서야 갑자기 온 몸에 전율이 돋았다.

'그걸 그렇게 써도 되는 거였어?'

[당연하죠.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니까요.]

'헐, 대박이네. 비트코인 태동기인 2010년으로 돌아가서 월급만큼만 사놓고 묵혀두면···.'

도훈은 단순 계산을 해보다가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치를 떨고 말았다.

'미친. 빈 살만이 부럽지가 않겠네.'

[빈 살만이요?]

'있어. 세계 최고 부자. 정확히는 가문 재산이지만 추정이 2800조 가까이 될 거야.'

[엄청나군요. 갑자기 구혜진양의 스위스 비밀 잔고가 너무 적게 느껴질 정돕니다.]

회귀 아이템의 엄청난 능력을 세삼 확인한 도훈은 잠시 부푼 꿈을 꾸다가 이내 마음을 접었다.

'아, 근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

[네?]

'2010년으로 돌아가면, 내가 알고 지내던 모든 여자들과 대학 선후배들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으로 돌아간다는 소리잖아.'

[그, 그렇겠죠?]

'어차피 지금도 돈은 다 쓰고 못 죽을 정도로 많은데, 비트 코인으로 부자 되어 보겠다고 회귀하는 건 좀···.'

[하긴 그렇기도 하겠군요. 어차피 언제 부화하는 줄도 모르고요.]

'죽기 전에는 한 번 써볼 수 있으려나?'

"신기하지 않아 서준아? 그런 부자도 도박을 좋아한다는 게."

"그런가?"

"아니. 다 쓰지도 못하고 죽을 만큼 돈이 많은데도, 굳이 도박하러 와서 게임을 하는 거잖아. 그 사람한테는 돈을 따는 게 아무 의미도 없을텐데."

도훈도 듣고보니 잘 이해가 안되긴 했다. 돈이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수백 수천억까지 많은 사람이 굳이 도박을 한다는 게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돈의 가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는데, 빈 살만같은 세계적인 갑부에게 하룻밤 2000만원이 넘는 스위트 룸 숙박비는, 보통 사람의 모텔 대실료 2만원보다 적게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희재에게 수백만원 짜리 칩으로 노는 게임은, 어쩌면 도훈이 방금 한 것처럼 시간 죽이기 위한 가벼운 유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하긴 평범한 사람이 갑자기 그런 부자가 되면 삶이 너무 무료해지긴 하겠네. 거대한 기업을 운영하는 오너도 아니고, 직업이 있을 필요도 없으니까 말이야.'

[직업이 없다기보단 전문적인 트레이더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까도 외국에서 전화가 와서 급히 나갔다는 걸 보면요.]

'만약 성희 말이 사실이라면, 트레이딩을 그렇게 자주 할 필요도 없을 걸.'

[네? 왜 그렇습니까?]

'코인 판에서 그럼 사람들을 흔히 <고래>라고 부르거든.'

[주식에서 개인을 '개미'라고 하는 것처럼 별칭인가요?]

'그럴거야. 암튼 뭐가됐든 고래들은 쉽게 안 움직여. 정확히는 못 움직이지. 스스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니까 한 번 거래를 시작하면 코인 판 전체가 요동치거든.'

[아하. 그렇군요.]

'단타하는 녀석들이나 맨날 사고팔고 하는 거지, 그런 고래들은 몇 달에 한 번 포지션을 바꿀까말까 할 정도야. 그걸 직업이라고 부를 순 없다는 거지.'

[주인님 말을 듣고 보니 김희재가 여자들을 옆에 끼고 노름을 하러 돌아다닌 것도 이해가 될 것 같긴 합니다.]

'어찌 보면 불쌍한 인생이야.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겠지만, 막상 목표 없는 삶만큼 불행한 건 없으니까. 그런 애들이 결국 마약이나 섹스에 빠져서 패가망신 하더라고.'

성희를 따라 생각없이 이동하다보니 어느새 모텔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이제 들어갈까?"

"뭐야? 여긴 또 언제 왔데?"

"응?"

"너 이러려고 나 만나자고 한 거였어? 모텔 데려가려고?"

도훈이 살짝 정색하며 따지자 성희가 민망했는지 얼굴이 빨개졌다.

"왜, 왜 그래 서준아 새삼스럽게···."

"오히려 좋아."

도훈이 씩 웃더니 그녀의 손을 붙잡고 모텔 안으로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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