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 구원회-123-
도훈은 강력해진 내공의 힘에 자신감이 팽배해진 상태였다.
실제로 모든 능력이 몇 배씩 증가했기 때문에, 지금의 그는 설사 제주도 플레이어 보미와 겨룬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워워. 주인님, 평소와 달리 지나치게 흥분한 상탭니다. 미션이 목전에 걸려있으니,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지금은···.]
그때였다.
구혜진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온 것은.
혜진이 놀란 눈으로 번호를 가리키며 소근거렸다.
"자, 장목사님이야."
"장목사라고? 돌아왔나?"
구혜진이 조용히 하라는 것처럼 입가에 손가락을 세운 뒤,
"쉿-!"
하고 전화를 받았다.
"네, 목사님. 구혜진입입니다."
-···그래, 구실장. 오래 기다렸지?
"아닙니다. 목사님 지금 어디십니까?"
-나야 당연히 침소에 있지. 마지막 처녀는 다 준비 끝났나?
"네. 분부하신 대로 목욕재계를 시켜놓고 대기하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깜빡 잠든 것 같은데, 바로 준비해서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라고. 아참, 외출한 사이 혹시 날 찾아온 손님은 없었나?
혜진은 순간 숨을 멈추었다.
장목사의 질문이 다소 생경하게 느껴졌던 탓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연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네, 제가 저택에 있는 동안은 없었습니다. 누가 찾아오기로 했었습니까?"
-아니야, 아니야.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걸세. 장로들이 가끔 방문하기도 하니까.
"네. 그럼 지금 준비시키겠습니다."
-올라오라고.
통화를 끝낸 혜진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아-. 떨려 죽는 줄 알았네. 지금 데리고 오래."
"누구? 나? 아니면 아까 그···."
"일단은 원래 준비시켰던 처녀를 데려가야 할 것 같아."
"걔는 이미 처녀가 아니잖아? 아까 네가···."
"맞아. 하지만 일단 먼저 걔를 데려가야, 그 다음 순위로 널 자연스럽게 부를 수 있어. 그때 네가···."
"오케이. 이해했어. 난 그럼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되겠군."
"근데 민용이 너 얼굴이 왜 그래?"
"내 얼굴? 내가 뭘?"
"아니, 처음이랑 많이 달라진 것 같아서."
도훈의 역용술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풀리는 경향이 있었다.
벌써 여장을 한지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역용마스크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 분장이 망가지고 있나봐. 조금 손보고 있을테니까, 넌 얼른 처녀를 데리고 장만석에게 가."
"으, 응."
"긴장하지 말고. 평소랑 똑같이. 잘 할 수 있지?"
"응. 나도 이번 일이 실패하면 끝이야. 최선을 다해야지."
"그래. 네가 너무 고생한다."
혜진이 잠든 처녀를 데리러 가면서 도훈에게 말했다.
"그···. 약속은 유효한 거지?"
"무슨 약속?"
"장목사에 대한 복수가 끝나면···. 우리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말."
혜진이 민망한지 얼굴을 붉혔다.
"아아, 그거. 당연하지."
"알았어. 그럼 난 준비할게. 너도 분장 다시 고치고 있어. 때되면 연락할게."
"그래."
두 사람은 각기 흩어져 최후의 거사를 실행했다. 혜진이 처녀를 데려가 일부러 퇴짜를 맞고, 예비자로 올라있는 도훈을 침소로 데려가면 그때 도훈이 조급해진 상태의 장만석을 처단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혜진이 사라지자 도훈 역시 화장실로 달려가 망가진 얼굴을 확인했다. 거울로 보니 가관이었다.
'이런 씨. 더 못 생겨졌잖아? 더 이상 못 생겨지긴 힘들 줄 알았는데.'
역용술이 슬슬 풀리기 시작한 얼굴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했다.
애초에 박민용으로 분한 얼굴 위에, 여장한 얼굴을 덮어쓴 상태였기 때문에 처음부터 살짝 틀어져 있었는데 그 분장마저 풀리면서 원래의 도훈의 얼굴과도 뒤섞여 엉망이 되어 있었다.
광대뼈와 턱이 도드라져 남성의 골격이 드러났고, 눈과 코는 흘러내릴 것처럼 모양이 비틀려 있었다. 그 와중에 세 얼굴이 이상하게 조합되면서 천하의 적수가 없는 박색으로 변해있었다.
[···길다가 처맞아도 무죄인 면상 같습니다.]
'뭐? 로시 너까지 이럴래? 언제는 미추의 구분없이 공평하게 대하라며?'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구타를 유발하는 얼굴형이 실제로 존재할 줄은···.]
'어떡하지? 여기에 한 번더 역용마스크를 덧씌우면 이도저도 아니게 될 것 같은데?'
[적당히 수정만 해야 할것 같습니다. 마스크는 실리콘과 비슷한 재질이라 열을 가하면서 잡아주면 변형이 가능합니다.]
'열을 가하라고? 아, 그렇지.' 도훈이 내공을 미약하게 발생시켜 손의 열기를 끌어 올렸다. 그는 손에 불꽃을 일으킬 수 있었는데, 온도를 적당히 조절하면 다리미처럼 손을 뜨겁게 데우는 정도도 가능했다.
도훈이 거울을 보면서 망가진 얼굴을 다듬으며 말했다.
'근데, 장만석은 뭐하다 늦은 거지?'
[네?]
'아니, 언제는 12시 정각에 맞춰 처녀를 대령하라고 해놓고선, 막상 30분이나 늦게 불렀잖아. 저택엔 언제 돌아왔는지도 모르겠고. 전혀 기척을 못 느꼈는데.'
[아무래도 마지막이다 보니 기력이 쇠해서 준비가 오래 걸리지 않았을까요? 70에 가까운 노인네가 6시간 간격으로 두번의 섹스를 해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리고 저택이 워낙에 크다보니 어디로 드나드는 줄도 알 수 없을테고요.]
'흐음, 그러면 좋겠는데 어딘가 괜히 찜찜하단 말이지? 설마 아까 붙잡아 놓은 새끼들이 장목사에게 꼰지른 거 아니야?'
[무슨 수로요? 핸드폰도 뺏고, 손발을 꽁꽁 묶어놨는데요.]
'장만수가 아까 혼자서 얼굴에 덮은 테이프를 뜯어냈잖아. 혹시 모르니 한번 확인해 봐야겠어.'
분장 리터칭을 대강 완료한 도훈은, 빠르게 저택 안을 뛰어 장만수와 장석개가 감금된 방으로 달려갔다.
방음 처리가 된 육중한 문을 열자 깜깜한 내부에 두 사람이 묶여 있었다.
석개는 여전히 기절한 채 끙끙거리고 있었고,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만수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누, 누구인가? 나 좀 풀어주게! 구원회 부담임 목사 장만수네!
구혜진 장로가 우릴 속이고 이곳에 감금시켰다네! 나보단 우리 조카 놈부터! 조카 놈이 놈들에게 두들겨 맞아 죽어가고 있네!"
"···지랄 하고 있네."
"헉, 이 목소린!"
만수는 눈이 가려진 상태였기 때문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혼자 떠든 꼴이었다.
도훈이 문을 닫고 들어가더니 고개를 좌우로 까딱거렸다.
"너 덜 맞았구나? 아직도 입이 살아 있어?"
"사, 살려주십시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으니까 맞아야지."
도훈이 다시 뺨을 때릴 것처럼 손을 높이 쳐들자, 앞이 안 보이는 장만수가 살기를 느꼈는지 몸을 웅크리며 턱을 바짝 당겼다.
"흐익!"
[주인님, 이럴 때가 아닙니다.]
'아, 맞다. 확인하러 왔었지?'
도훈이 손찌검을 멈추고 만수에게 물었다.
"야. 너 똑바로 대답해. 핸드폰 숨겨놓은 거 있어, 없어?"
"예, 예? 핸드폰이요? 아까 직접 수거해가셨잖습니까?"
만수와 석개가 들고 있던 핸드폰은 도훈이 빼앗아 곧바로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그 잔해가 여전히 방구석에 흩뿌려져 있었다.
"세컨드 폰 말이야. 왜, 폰 두 개씩 들고 다니는 새끼들 있잖아.
뒤가 구린 새끼들을일수록 더 그렇지. 장만수 너처럼."
"어, 없습니다 그런 것은."
"뒤질래? 센터까서 나오면 진짜 뒤지게 처맞는다?"
[주인님. 양아치같이 세터깐다는 말은 좀.]
'너무 단어 선택이 저렴했나?'
저렴하긴 했지만, 확실히 위협적이었는지 잔뜩 겁에 질린 장만 수가 벌벌 떨면서 극구 부인했다.
"저, 정말입니다. 진짜로 없습니다!"
"아까 네 조카라는 새끼는 바지춤에서 권총도 꺼내더라? 너도 혹시 거기 숨긴 거 아니야? 너네 집안 자랑거리잖아. 좆 큰거."
"저, 절대 아닙니다."
"진짜로 뒤져서 나오면 뒤진다?"
도훈이 다시 사타구니를 만지려들자, 장만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아, 안 돼! 제발 거기만은···."
그는 이미 불알 한쪽이 으깨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것도 손길만 닿아도 까무러칠 것처럼 빽빽 비명을 질렀다. 도훈은 굳이 독심술을 쓰지 않아도 그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잘못 짚은 거 같은데?'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장석개는 여전히 쥐 죽은 듯 쓰러져 있으니, 두 사람이 장만석에게 몰래 연락했을 확률은 없습니다.]
'흐음.'
도훈은 마스킹 테이프로 장만수의 입을 다시 틀어막았다.
어설프게 감으면 또 침을 묻혀 뜯어낼까 봐 2번, 3번 테이프를 돌려 꽁꽁 감았다.
"하여간 너희들은 목숨이라도 건지고 싶으면 여기서 숨만 쉬고 있어. 곧 끝날 테니까."
"읍읍"
"그나저나 혜진이가 연락 올 때가 됐는데···."
도훈이 핸드폰을 쳐다보는데, 마침 폰이 울렸다. 혜진의 전화였다.
"네."
-지금 2층 침소로 올라오세요. 하녀가 안내해 드릴 겁니다.
"알겠습니다."
바로 통화를 끝낸 도훈이 다시 한번 장만수에게 경고했다.
"하여간 넌 닥치고 있어. 진짜 죽기 싫으면."
도훈이 다시 방을 나와 대기 장소로 뛰어갔다.
마침 하녀가 그녀를 찾고 있었다.
"어디 다녀오셨어요? 위에서 지금 부르십니다."
"아, 죄송해요. 잠시 화장실을···."
여자 목소리로 바꾼 도훈이 다소곳이 대답했다.
하녀는 도훈을 안내해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도훈은 몰래 손에 트럼프 카드를 뽑아낸 뒤 손바닥에 감췄다.
'긴말 할 필요도 없어. 그냥 일단 이마빡에 카드부터 박아넣고 시작하는 거야. 진혈 뱀파이어 변신 전 장만석이라면,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
[다짜고짜 살수부터 날리시겠다고요?]
'난 옛날부터 그게 불만이었어.'
[뭐가요?]
'괜히 주인공이 여유부리다 나쁜놈 들한테 반격할 기회를 주는거. 변명이고 뭐고 하여간 들어 줄 필요가 없다니까? 확 그냥 일단 대가리 쪼개고 시작하면 그만이야.'
[근데 지금 나쁜 놈 역은 주인님이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
'악역을 자처해야 한다면 감내하는 수밖에.'
[그게 아니라 너무 양아치같이 굴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말투가 시정잡배나 다를 바 없으니···.]
'지금 그게 중요해? 미션 달성이 코앞인데.'
하녀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니 휘장이 쳐진 커다란 방이 보였다.
"저리로···."
"감사합니다."
도훈이 긴장한 채 장만석의 침소로 들어갔다. 마침내 길고 길었던 구원회 분쇄의 마지막 순간이 찾아온 것이었다.
'장만석. 그간의 악행에 대해 죗값을 치뤄라.'
도훈이 당장이라도 출수할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갖춘 채 휘장을 거두었다.
그러나 장만석의 침소는 텅 비어 있었다. 도훈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장만석은 커녕 구혜진도 보이지 않았다.
"···어라?"
도훈의 목덜미에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플레이어 특유의 위기 감지가 발동한 것이었다.
'함정이다!'
도훈이 축골공을 해제하며 급격히 몸을 부풀렸다. 현재 상태에서 자칫 공격을 받으면 전력을 다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구부정해 있던 허리가 퍼지며 원래의 키로 돌아왔고, 억지로 탈골시킨 어깨가 원상복구되자 여장하느라 입고 있던 상의가 부욱찢어지며 드넓은 삼각근이 보호구처럼 솟아 올랐다.
<크하하하, 네놈이로구나!>
순간 도훈의 머릿속을 쩌렁쩌렁 울리는 전음이 들려왔다.
하지만 미호나 보미와 나누던 전음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자체가 음파로 된 공격처럼 골이 흔들릴 지경이었다. 도훈이 급히 몸속의 내공을 폭발시켜 호신강기로 방어막을 둘렀다.
"이런 씨발!!! 장만석 이 개새끼!"
몸속에서 내공이 폭발하며 도훈의 신체 주변으로 푸른색의 오러가 피어올랐다. 3갑자로 늘어낸 내공의 위력은 대단하여, 도훈자체가 심지가 되어 푸른 불꽃을 피워내는 형상이었다.
<참으로 특이한 놈이로다. 행색도 그러하고, 가진 기술은 더더욱 독특하구나.>
내공을 끌어올려 방어하자 장만석의 전음은 더 이상 도훈에게 타격을 주지 못했다. 그러나 위치를 전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도훈이 오감을 폭발시켜 기척을 감지했지만, 장만석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기운만 따지면 천장에도 바닥에도 아니 벽면에도 있는 것 같았다. 침소 전체에서 놈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치 그곳이 놈의 몸속인 것처럼.
"나와 이 개새끼야! 곱게 죽여주려고 했더니, 네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구나. 아주 갈기갈기 찢어주마."
도훈이 일갈하자 내공이 들어간 사자후가 쩌렁쩌렁 울렸다. 기가 약한 사람은 그대로 고막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질 만큼 강력한 음공이었다.
<이놈 봐라? 나를 죽인다고? 네 까짓 게 내 상대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냐?>
"야부리 털지 말고 당장 나오라고 이 씹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