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 구원회-121-
퍼억-!
"오옥!!!"
장석개의 눈 앞에 순간 불꽃이 번쩍 튀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맞은 게 아니라, 오함마를 들고 풀스윙으로 턱주가리를 돌려버린 느낌이었다.
입 안으로 들어간 탄알이 부딪히며 이빨 몇개가 아작났다. 석개가 정신을 못 차리는데 도훈이 한 번 더 뺨을 후려쳤다.
한순간에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인정사정없는 손찌검.
퍽-!
"크에엑!"
투두두두-!
앞서 부러진 이빨 조각과 탄알이 입에서 우수수 튀어나왔다. 피가래가 섞인 파편을 보며 도훈이 중얼거렸다.
"하-. 새끼, 뱉지 말라니까 기어코 말을 안 들어 처먹네?"
도훈이 한 번 더 손찌검을 할 것처럼 팔을 쳐들자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석개가 본능적으로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싹싹 빌기 시작했다.
"자, 잘못했습니다. 제, 제발 그만!"
"왜? 방금 전에는 나보고 미친 돼지년이라더니?"
"제, 제가 잠시 실성을···."
"거지 같은 새끼. 확 한 번만 더 까불어 봐. 강냉이 싹 다 털어버릴 테니까."
도훈의 잔인한 손속에 이를 지켜보던 혜진이 고개를 돌리며 외면했다.
동시에 그녀는 도훈이 예상보다 너무 강하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어떻게 한 거지? 뺨을 때리는 동작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어.
너무 빠르고 강해!'
"이 놈도 유언장 작성시킬까?"
"······."
"이봐, 혜진씨?"
"어, 어?"
도훈이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에 넋이 나가 있던 혜진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이런 일로 흔들리기엔 그녀의 멘탈은 누구보다 단단했다. 도훈이 실제로 어떤 인물이건 간에,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후였다.
달리는 호랑이 등위에 올라탄 이상, 이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다.
"이 새끼도 유언장 쓰게 하면 되냐고."
"아니. 유언장으로 대신하기엔 너무 젊어. 나중에 유언 내용을 바꿔버리면 그만이니."
"그럼 그냥 죽일까?"
"음···. 죽이는 건 좀···."
그때였다. 입가에 피를 질질 흘리며 바짝 엎드려있던 장석개가 벌떡 일어나더니 도훈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야이, 개 같은 년아!"
알고 보니 그는 머리를 찧는 것처럼 엎드린 척하면서 도훈이 버린 권총을 품 안에 숨긴 것이엇다. 동시에 자신의 입에서 뱉어낸 총알 한 발을 집어 몰래 장전한 뒤 도훈과 혜진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틈을 노려 역습을 시도한 것이다.
혜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순간, 방아쇠에 걸린 장석개의 손가락이 당겨졌다.
0.1초도 안되는 찰나의 순간.
도훈의 신형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사실 그는 석개가 총알을 몰래 장전하는 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방아쇠가 당겨지며 해머가 공이를 때리기 직전. 도훈의 손가락이 해머 사이를 파고 들었다.
철컥- 불발된 리볼버를 보고 장석개가 당황하는 사이 도훈이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뭐하냐 너?"
"이, 이게 무슨!"
철컥- 철컥.
장석개가 연거푸 방아쇠를 당겨보았지만, 해머는 애꿎은 도훈의 손톱만 때릴 뿐이었다. 도훈은 성가신 표정으로 손가락으로 리볼버의 해머를 잡고 꺾어버렸다.
뚝- 금속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해머가 박살 났다. 손가락만으로 강철을 부러트리는 말도 안되는 괴력에 장석개의 낯빛이 사색으로 변했다.
"마, 말도 안 돼!"
"너 진짜 창의적인 새끼구나? 바짝 엎드려 빌던 건 이걸 위한 준비동작이었어? 무릎 꿇은 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도 아니고."
"너 대체 뭐 하는 새··· 컥!"
자칫하면 총을 맞을 뻔한 도훈이 그대로 장석개의 옆구리에 간장치기를 시도했다.
퍼억-!
보디 블로우에 맞은 석개는 8톤 트럭에 치인 것처럼 멀리 날아 가더니 책꽂이에 세게 부딪히며 쓰러졌다.
콰광-!
충격에 책장에 꽂힌 책들이 우수수 쏟아지며 석개의 몸을 뒤덮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괴력을 목격한 혜진은, 아까 장석개가 총을 겨눌 때보다 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히어로 영화에 나올법한 괴력의 캐릭터와 유사한 힘을 난생 처음으로 목격한 것이었다.
펀치 한 방에 사람이 종잇장처럼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비현실적이기 짝이 없었다.
'짜증나서, 너무 세게 쳐버렸네.'
[장석개 설마 죽은 거 아닙니까?]
'숨소리가 살짝 들리긴 해. 오른쪽 갈비뼈는 다 나갔을 거고 내장 파열이 좀 있을 듯.'
[흐음, 스스로 화를 자초했군요. 주인님은 그래도 죽일 생각은 없으셨는데 말입니다.]
'지 아버지나 장만수를 보면 저 새끼도 어차피 비슷한 쓰레기야. 나한테 방금 격발하려는 거 봤어? 사람을 면전에서 총으로 쏴죽이려는대도 일말의 거리낌 없는 종자라고.'
[그렇긴 하죠.]
'남을 죽일 생각을 품었을땐, 본인도 뒤질 각오를 해야하는 거야. 뭐, 운 좋으면 병원에 실려가기 전까지 버틸 거고, 재수 없다면 내장 파열로 뒤지는 수밖에. 그러게 왜 나를 자극해?'
"너 대체 정체가 뭐야?"
"나? 운전기사지. 여장 좋아하는."
혜진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도훈에게 다시 물었다.
그녀가 볼때 도훈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도 장석개 같은 덩치의 성인을 주먹 한 방에 4M이상 날려 보낼 순 없었다.
"장난하지 말고. 방금 내가 본 거 뭔데? 너 대체 진짜 정체가 뭐야? 나한테는 솔직히 말해줘야지."
"이미 말했을 텐데? 구원회에 원한을 가지고 복수만 꿈꾸던 사람이라고."
"아니, 그건 아는데···. 대체 어떤 수련을 해야 힘이 그렇게 강해질 수 있는 거야? 거짓말할 생각하지마. 나도 호신술로 합기도를 오래 배웠어. 넌···. 지나치게 강해. 마치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지금 그게 중요해?"
"뭐?"
"똑똑한 혜진씨.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고. 같은 편이 강하면, 네 입장에선 좋은 거 아니야? 나는 적이 아니라, 너와 같은 뜻을 품은 동료라고."
"그, 그건 그렇지만···."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무조건 성공시켜. 실패한 혁명은 반란에 불과하니까."
"무, 무슨 거창하게 혁명까지···."
"너, 구원회를 원상복구하고 싶은 거 아니야?"
"그건 맞아."
"그럼 내 정체를 궁금해할 시간에, 저것들을 어떻게 치울지만 신경쓰라고. 장만수는 아프리카로 보내버리고, 장석개는 어떻게 처리할 건데?"
"혹시 이미 죽은건 아니지?"
"아직은."
"아직이라니?"
"뒤질만큼 때리긴 했는데, 의외로 튼튼해서 한방으론 안 죽네."
"장난치지 말고."
"알았어. 아직 죽은 게 아니야. 굳이 따지면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으로 기절한 것에 가깝지. 근데 병원에 안 데려가면 죽긴 죽을 거야. 내장이 파열됐을 거거든."
"아···. 그, 그럼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쓰레기 새끼 뒤지든 말든 알빠야? 나중에 장만 석 처리하고 나서 생각나면 병원 보내주면 되지. 운이 좋으면 병신되는 선에서 그칠거고, 운이 나쁘면 하느님 뵈러 가는 거지. 아니구나. 기독교 신자에게 하느님 뵙는 건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
"왜? 다시 설명해줘?"
"아, 아니야. 충분히 이해했어."
장만석의 후계자 둘을 저택안으로 유인해 처리한 혜진이 시각을 확인했다.
"이제 두시간 조금 넘게 남았어. 아까 그 처녀는 어떻게 하지?"
혜진이 말한 처녀란, 본인이 처녀막을 파괴한 1,000번째 제물을 의미했다. 도훈이 장만수를 쓰러뜨린 걸 본 유일한 목격자기도 했다.
"그 애는 걱정 안해도 돼. 자고 일어나면 아무것도 기억 못할 걸?"
"어떻게 그렇게 자신해?"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신경 안써도 돼."
"흠···."
사실 도훈은 일이 벌어진 뒤, 어쩔 수 없이 망각의 라이터로 처녀의 기억을 지워버렸다. 직전 10분의 기억이 삭제된 처녀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땐, 도훈이 혈도를 제압해 기절시켰다.
손가락으로 몇군데 혈도를 짚자 푹 쓰러진 처녀를 침대에 눕힌 두 사람은 장만수와 장석개를 차례로 유인해 처리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저 새낀 어떻게 할까?"
장석개가 도훈에게 처맞고 혼절한 과정을 똑똑히 지켜본 장만 수는 다시 화살이 자신에게 돌아오자 다급하게 소리쳤다.
"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분부하신 대로 내일 바로 아프리카로 떠난뒤 두 번 다시 한국땅을 밟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는데?"
"일단 둘 다 묶어놓자. 장목사를 처리하기 전까지 밖으로 기어나오면 곤란하니까."
도훈은 혜진이 시키는대로 테이프를 다시 들고 두 사람을 꽁꽁묶었다.
석개는 아직 의식이 없었으나, 혹시나 중간에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면 곤란했기 때문에 장만수가 묶인 강도 이상으로 완전히 포박하였다.
"그럼 이제 장만석만 처리하면 끝나는 일인가?"
"응. 구원회를 접수하기 위한 선행작업은 이제 다 끝난 셈이야."
"좋아. 계획대로 되고 있군."
* * *
도훈의 예상과 달리 두 사람의 계획은 조금 틀어지고 있었다.
장석개가 부름에 늦었던 이유가, 휘하의 측근들을 불러 물밑 작업을 미리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측근 중 핵심은 바로 장만석의 첩이었고, 현재는 그 아들 장석개에게 붙은 권미숙이었다.
늦은 밤 그녀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반대편 장로들을 포섭해야 돼. 우리편이 아니면 기권표라도.
장석개는 아버지의 사후 분명 구원회 내부에 내분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그리고 그 대책으로 내세운 것이 오늘밤 최대한 많은 장로들을 자신의 편으로 포섭하는 작업이었다.
장석개를 따르는 측근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오밤중에 반대측장로들의 집으로 찾아갔다. 이는 권미숙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장로님. 태도를 분명히 하세요. 오늘 이후 장목사님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하시고."
"여봐, 권 권사. 늦은 밤 집까지 찾아와서 너무 무례한 것 아닌가? 감히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뭐? 감히? 이 양반이 지금 실성했나?"
물론 설득이 쉬울리 없었다.
현재 장로들은 5:5로 팽팽히 편이 갈린 상황.
줄을 잘못 선 쪽은 대규모 숙청으로 쓸려나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 편을 바꾼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던질 각오가 필요했다.
"교주님에게 버림받은 뒤 부끄러움도 모르고 그 자식놈에게 붙어 먹은 창녀 따위가 감히!"
미숙의 과거를 잘 아는 이장로의 모욕에 권미숙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덤볐다.
"하여간 늙은 새끼들은 꼭 매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야, 뭐하고 있어? 저 새끼 입 당장 찢어 버리지 않고?"
권미숙의 명령에 그녀를 따라온 수행원들이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장로 역시 가만히 당할 생각은 없었다.
"웃기고 있군. 누군 부릴 사람 없는 줄 알고? "
하지만 이장로가 데리고 있던 부하들이 미처 나서기도 전에, 권미숙의 수행원들이 품안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예상치 못한 무기에 당장이라도 싸울 것처럼 달려들던 부하들은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권미숙이 당황하는 무리를 보고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뒤지기 싫으면 가만히 있는게 좋을 걸? 이거 진짜 총이니까, 괜히 확인해 볼 생각 말고."
"읏! 어, 어떻게 총이?"
이장로의 부하들은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으나, 장전된 권총 앞에선 꼼짝할 수 없었다.
"호호. 멍청하긴. 경호팀에 총기를 구해주는 사람이 누군줄 알아? 바로 우리 쪽에 선 김장로라고."
"비, 비겁하게 반입된 총기를 빼돌리다니!"
"비겁해? 이건 비겁한게 아니라 머리 회전이 빠른 거야. 네가 추대하는 장만수는 아무 생각없이 저택으로 달려 갔을 걸? 자기 형제가 숨이 넘어간다니까, 어떻게든 차기를 이어 받아 보려고 말이야. 하지만 결국은 장로단을 접수한 쪽이 이기는 싸움이지. 그걸 파악한 우리쪽이 먼저 움직인 것 뿐이야."
"으으!"
"어서 선택해. 구원회가 치외 법권 지대라는 건 당신도 잘 알테지? 여기서 사람 몇 죽어나가도 아무도 모를 걸?"
"설마 나 말고 다른 장로들도 지금···."
"당연하지. 우린 누구처럼 멍청하게 눈 뜨고 당하진 않는다고."
털썩-.
결국 총기에 굴복당한 이장로가 무릎을 꿇었다. 동시 다발적으로 반대편을 제압한 권미숙은 장석개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기다렸다.
장만석의 부고가 들리는 순간, 이제 그녀는 과거의 멍에를 벗고 새로운 왕의 최측근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오욕과 모멸의 시기를 견뎌낸 대가가 마침내 찾아오는 것이다.
'아쉽게도 석개는 만석씨에 비하면 훨씬 옹졸하고 그릇이 작은 인물이야. 결국 내 치마폭 안에서 놀아날 수밖에 없을 걸? 그러게 나를 그렇게 버렸으면 안 됐어. 불쌍한 인간 같으니···. 난 당신 아들을 꼭두각시로 만들거야. 당신이 평생 이룬 업적이 모두 내 차지가 되는 거지.'
야욕을 드러낸 미숙이 욕망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