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15화 (1,895/2,000)

1915. 구원회-120-

구혜진이 겁먹은 척 대답했다.

"부목사님도 아시다시피···. 부담임 목사님은 장목사님 이후를 무척 우려하고 계십니다."

"우리 아버지가 죽고 나서 말이야?"

"아무래도···. 저희 교인들 사이에서 장목사님은 불사의 존재라고 믿는 신도들이 많은데, 혹시라도 장목사님이 돌아가시면 앞으로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할지를···."

"미친 영감탱이가 노망이라도 드셨대? 그걸 왜 지가 걱정하는데?"

"부담임 목사님은 아마 본인이 차기를 이어받을···."

"그 입 닥치지 못해? 감히 내 앞에서 작은 아버지를 편 들어?"

"편드는 게 아닙니다."

"그럼 왜 작은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건데? 구실장은 이미 줄 선 거 아니야?"

"아닙니다. 부목사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작은 아버님의 성정이 워낙에 불같으니···."

"어처구니 없군. 그래서, 작은 아버지는 무섭고 나는 좆도 아니라 이거야? 넌 내가 우스워 보여?"

"절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작은아버지 지금 어딨어? 아들이 버젓이 살아있는데 감히 아버지의 유산을 홀랑 가로채려고?"

"안쪽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로 안내해. 내 오늘 결판을 내고 말테니까. 집안 어른이라고 대접해줬더니 감히 주제도 모르고!"

장석개가 씩씩거리며 구혜진을 닦달했다.

사태를 지켜보면서 도훈은 혜진이 생각보다 훨씬 영악한 여자라는 걸 깨달았다.

'역시 여자는 믿을 게 못 된다니까? 순식간에 거짓말을 지어내장석개를 속여 유인하다니.'

[확실히 장만석의 세뇌가 풀리고 나니 본색이 나오는군요. 처음엔 저런 성격인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어쩌면 장만석이 구혜진의 억제기였을지도 모르지.'

[억제기라뇨?]

'그녀를 맑은 정신으로 놔뒀다간, 스스로 구원회를 꿀꺽 삼켰을 거란 말이야. 장만수고, 장석개고 지금 하는 거 봐선 상대도 안 됐을걸? 여자답지 않게 담대하고, 목적을 위해선 수단 방법도 가리지 않는 타입이니까. 삼국지로 치면 조조같은 여인이야.'

[뜻밖의 고평가군요. 주인님이 여성을 칭찬하신 적은 흔치 않은데요.]

'실제로 그만한 역량이 있는 여자니까.'

"알겠습니다. 두 분 사이의 문제니 직접 해결하시면 저야 감사하죠. 솔직히 저도 중간에 낀 입장이라 지금 너무 난처합니다."

"구실장도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날에는 끈 떨어진 연 신세라는 걸 꼭 명심하라고."

"···네, 부목사님."

혜진이 다시 앞장서는 가운데, 도훈도 그녀의 뒤를 따랐다.

씩씩거리며 걸어가던 장석개는 여장한 도훈을 보고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

"이 돼지는 또 뭐야? 왜 졸졸 따라오는 거야?"

"아··· 그게. 저희 변호삽니다."

"변호사라고?"

혜진이 자연스럽게 둘러댔다.

"네. 혹시나 금일 밤 있을지 모를 유고 사태를 대비해 유언을 공증해줄 변호사를 준비시켰습니다."

"아, 그 변호사? 흠. 미안하게 됐소. 내가 지금 신경이 날카로워서."

장석개는 괜히 공증 변호사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정중하게 사과했다.

"불편하시면 물러나 있을까요?"

"아니요. 함께 갑시다. 내가 오늘 작은아버지랑 유산 분쟁도 마무리 지어야 하니, 혹시나 법적인 조언이 필요할 수도 있을테니."

갑자기 돼지에서 변호사로 신분이 상승한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며 두 사람을 뒤따라갔다.

[이야, 어쩜 저렇게 능청스럽죠? 갑자기 변호사라고 둘러댈 줄이야.]

'변호사는 좀 못생겨도 상관없는 직업이라 그랬나 봐.'

[못 생겨도 괜찮다뇨?]

'잘 보면 여기서 일하는 하녀조차도 죄다 미인이잖아. 구원회장목사의 저택에서 근무하려면 와꾸에서부터 필터링이 된다는 뜻이지. 아까 하녀들 보고 무슨 항공사 여승무원인 줄 알았잖아.'

[장목사의 취향이 참으로 한결같군요.]

'그나저나 이 뱀파이어 새끼는 대체 어디로 숨은 거지? 자정이 되어야 모습을 드러내려나?'

[집 안에는 없는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만약 있었으면 아까 장만수를 처리할 때 모습을 드러냈겠죠.]

'언제 나타나도 상관없어. 걸어 다니는 반송장 따위, 카드 한 장으로 확 모가지를 따버릴테니까.'

"구실장, 근데 지금 어디로 가는 거지?"

"네?"

"아니, 너무 구석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데? 이 집에 이런 공간도 있었나?"

"아···. 손님들 모시는 게스트 룸엔 하녀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서 보는 눈이 많아서요. 부담임 목사님께서 최대한 조용한 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아참, 변호사 아가씨."

"예?"

장석개가 갑자기 옆에서 걷고 있던 여장 도훈에게 물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원래 법적 상속권이 어떻게 되지?"

"저, 그게···."

혜진은 도훈이 대답하기 곤란해질까 봐 먼저 설명하려고 했으나, 도훈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통상 자녀와 배우자가 1순위 상속인이 되어 공동으로 상속받습니다. 장만석 목사님의 경우엔 부인과 사별하신 상태기 때문에 자녀가 최우선 상속인이 됩니다."

"그럼 아버지의 형제는?"

"부모님이나 형제들은 2순위로서 후순위 상속인이 되기 때문에 1순위 상속자가 살아있는 한 따로 상속받을 수 없습니다."

"오, 그래? 그럼 유산분쟁이고 뭐고 신경 안써도 되는 거잖아?"

"음, 꼭 그렇진 않습니다."

"아니 방금 다른 가족은 2순위라며?"

"만약 유언장을 작성하셨을 경우 상속 대상이 바뀌거나 순위가 조정될 수 있습니다. 물론 직계존속의 경우 유언장 상속 내용에서 제외되더라도 유류분 청구를 통해 원래 자신의 몫을···."

"잠깐만. 쓸데없는 설명은 말고. 그럼 내가 죽기라도 하면 작은 아버지가 내 재산을 몽땅 가로챌 수 있다는 거야?"

"···법적으론 그렇습니다."

도훈의 명쾌한 설명에 혜진이 사뭇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변호사로 둘러댄 것은 자신이었으나, 진짜로 도훈이 법에 능통할 줄은 예상치 못했다.

'대체 저 애는 정체가 뭐지? 어떻게 저렇게 박학다식한 거야?'

도훈의 설명에 장석개가 걸음을 뚝 멈췄다.

"가만. 이거···."

그는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혜진과 여장한 도훈을 쳐다보며 말했다.

"함정아니야?"

"예?"

"아니, 부목사님 그게 무슨···."

"듣고 보니 그렇잖아. 나보다 먼저 도착한 작은 아버지가 함정을 파놓았으면 내가 꼼짝없이 당하는 거잖아? 내가 죽으면 내가 받을 아버지의 유산이 몽땅 작은 아버지에게 넘어갈 테니까. 안그래?"

"그, 그것은···."

예상치 못한 장석개의 행동에 도훈도 속으로 혀를 찼다.

'더럽게 의심 많은 새끼네. 확 이 자리에서 죽일까?'

[자중하십시오. 목격자가 나오면 더 곤란해질 겁니다.]

'귀찮아도 어쩔 수 없지. 망각의 라이터로 기억을 지우더라도 이 자리에서 처리하는 수밖에.'

도훈이 긴장하며 카드를 뽑으려는데 갑자기 장석개가 바지 지퍼를 내리더니 손을 불쑥 집어 넣었다.

의외의 행동에 다들 황당해하고 있는데, 장석개가 바지춤 안에서 조그만 권총을 뽑아들었다 스미스 웨슨사의 38구경 리볼버였다.

석개는 장전을 위해 권총의 해머를 뒤로 젖혔다.

"지, 지금 뭐 하시는···."

혜진이 놀라서 묻자 권총을 장전한 석개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작은 아버지가 허튼수작 부리면 그냥 죽여버리게. 잘 됐지. 이 기회에 눈엣가시도 제거할 수 있다면."

"어, 어떻게 권총을···."

"아, 이거? 경호팀인 아무리 몸수색을 한들, 잦이까지 만질 리있겠어? 하마터면 걸릴뻔 했는데, 원래 내가 큰 줄 알고 있으니까 툭 튀어 나와 있어도 신경을 안 쓰더라고."

"······."

"걱정마. 이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거니까. 갑자기 작은 아버지에게 습격이라도 당하면 곤란하잖아."

"으, 음."

권총까지 뽑아 든 장석개를 보며 도훈이 속으로 혀를 찼다.

'와, 저거 완전 또라이였네. 사타구니에 권총을 숨겨올 생각을 하다니.'

[장만석이 경계태세를 올린 이유가 있었군요. 대한민국에서 실제로 총기를 소지한 사람을 볼 줄이야.]

'경호팀이 PMC도 죄다 소총 들고 있잖아. 어차피 그것도 다 불법이야.'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아마 이것들이 총을 구해오는 루트가 따로 있는 것 같아. 돈으로 해결했겠지. 그 과정에서 장석개가 한 정을 빼돌린 걸테고.'

[이거, 일이 귀찮아졌군요.]

'상관없어. 권총이 아니라 기관총을 숨겨왔어도 나에겐 문제가 안 돼.'

[하지만 만에 하나 격발이라도 하는 날에는···.]

'장석개가 내 앞에서 총을 쏠수나 있을 것 같아?'

도훈은 괘념치 않았지만, 혜진의 표정은 자못 심각해졌다. 이대로 장만수가 감금된 방으로 장석개를 데려가는 게 맞냐는 물음이었다.

도훈이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 괜찮다는 눈짓을 보냈다. 혜진으로서는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 때문에 도훈의 비범한 실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 가시죠. 거의 다 왔습니다."

"흐흐. 만에 하나 허튼 수작 부린 거면, 너희 둘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럴리가요. 저희가 어찌 감히."

총을 꺼내든 장석개는 아까보다 훨씬 표정이 살아났다. 그는 설사 장만수가 함정을 파놓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총을 들고 있을 것은 예상치 못했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서재에 도착한 구혜진이 문 앞에서 말했다.

"이 방입니다. 들어가시죠."

"구실장이 먼저."

"네?"

"혹시 모르니까 구실장이 앞장서라고. 문 앞에서 숨어있다가 칼이라도 맞으면 곤란하니까."

"그것은···."

"잔말 말고 앞장서."

장석개가 총구를 구혜진의 허리춤에 들이 밀었다.

물론 그는 여장한 도훈에게도 경고의 시선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변호사 아가씨도 잠자코 있는 게 신상에 좋을 거야. 법보다 총알이 가깝다는 걸 잊지 말라고."

도훈이 겁먹은 연기를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아, 여장 때문에 주인님을 경계하지도 않는군요.]

'나 같아도 뚱뚱한 돼지 여자는 무시할 듯.' 혜진이 긴장한 표정으로 문고리를 돌렸다. 문을 열자마자 마스킹 테이프에 포박당해 있던 장만수가 소리를 듣고 외쳤다.

"사, 살려줘!"

테이프는 처음과 다르게 살짝 흘러내려 있었는데, 혀에 침을 묻혀 입 부분을 스스로 떼어낸 모양이었다. 눈 한쪽도 약간 내려가 시선이 보이는지 장만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조카! 날 구해주러 왔구나!"

"아니. 잡혀 온 건데?"

대신 대답한 도훈이 전광석화처럼 움직였다. 혜진이 다치지 않게끔 총을 쥔 석개의 손목을 빠르게 낚아채더니 뒤로 확 꺾어버린 것이었다.

"으, 윽! 뭐, 뭐야!"

설마하니 도훈이 그렇게 재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던 석개는 순식간에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도훈은 제기차기를 하듯 발등으로 총을 받아 튕긴 다음 반대 손으로 공중에서 잡아챈 뒤 석개의 목뒤에 총을 겨누었다.

"안으로 들어가. 대가리에 숨구멍 나기 싫으면."

"으, 으···. 장만수 너 이 새끼!"

석개는 장만수가 이번 일을 사주했다고 오해하고 의자에 묶인 장만수를 욕했다.

모든 상황을 눈으로 지켜보던 장만수가 억울함에 항변했다.

"뭐 이 새끼야? 나도 붙잡힌 거 안 보여?"

"저 새낀 또 왜 마스크가 풀렸어? 더 꽁꽁 묶어야 겠네."

방음문을 닫고 들어온 도훈이 고갯짓을 하자 혜진이 다시 마스킹 테이프를 들고 만수에게 다가갔다.

만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자, 잠깐. 숨은 쉬게 해줘! 숨을 못 쉬어서 죽을 것 같다고!"

"그래서 코는 열어줬잖아?"

"나, 난 입으로도 숨을 못 쉬면 호흡이 달려서···. 조, 조용히 있을 게."

장만수가 벌벌 떠는 모습을 본 석개는 현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당장 총구가 목덜미를 겨누고 있으니 대놓고 저항하진 못하고 입으로 떠들었다.

"이 돼지같은 년이 감히 내가 누군 줄 알고! 너희들 누가 시켰어?"

모욕을 받은 도훈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 새끼가 아직 안 맞아봐서 그런가, 입이 살았는데?"

도훈은 리볼버를 꺾더니 탄창을 분리해냈다. 탄창에는 다섯 발의 실탄이 벌집 모양처럼 박혀있었다.

"넌 좀 맞아야 겠다."

도훈이 손으로 탄알을 꺼내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총이 분해된 것을 보고 기회라 여긴 장석개가 몸을 돌리며 도훈에게 기습적으로 주먹을 날렸다.

"미친 돼지년이!"

하지만 도훈에겐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동작일 뿐이었다.

맨주먹을 손바닥으로 막아낸 도훈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도리어 주먹질을 한 석개가 자지러지는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아!!!!"

"아가리 벌려 새끼야."

주먹이 부서질 것 같은 고통에 장석개가 무릎을 꿇고 입을 크게 벌리자 도훈이 손바닥에 쥔 탄알을 그의 입속에 털어 넣기 시작했다.

"삼키면 좆되니까 꽉 물어라."

도훈이 장석개의 뺨을 올려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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