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 구원회-119-
금목걸이를 체인처럼 감은 도훈의 주먹이 만수의 얼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
물론 이는 만수의 입장이었고, 도훈은 나름대로 사정을 봐주는 것이었다. 그가 진심 펀치를 날렸다간 한 방에 두개골이 깨져 즉 사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면죄부를 받는다고 해서 굳이 불필요한 살생까지 할 필욘없겠지. 맨손으로 사람 때려 죽여봐야 기분만 더러울테니.'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때렸다간 장만수의 얼굴을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은데요?]
'이 새낀 이 정돈 맞아도 돼. 사이코메트리로 봤잖아. 완전 쓰레기더구먼? 자기가 무슨 하렘 왕국의 대군이라도 되는 양 난봉꾼짓을 제대로 하고 다녔던데?'
[대군이요?]
'형인 장만석이 왕이니 동생은 대군이지.'
[그럼 장석개는 왕자인가요?]
'뭐? 장석개가 왕자지냐고?'
[아, 아니 왕자요. 왕의 아들 왕세자.]
'가만있어 봐. 근데 이 새끼 지금 보니까···.'
로시의 말을 오해한 도훈은 문득 장만수의 바지춤이 제법 묵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맞는 중에 발기하는 변태가 아닌 이상에야, 무발기 상태임을 가정하면 상당한 크기였다.
'어째 이 집구석 사내들은 죄다 대물이지?'
[예?]
'장석개도 혹시 대물이려나?'
[집안 내력이 그런 게 아닐까요?]
'유전이라는 뜻이야?'
[아무래도 우수한 형질은 후대로 유전되는 경향이 강하니까요.]
'그렇다면 놈들에겐 이게 가장 자랑거리겠군?'
얼굴을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도 버티는 만수를 보며, 도훈이 갑자기 그의 심볼을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크, 크헉 어, 어딜 만지는 거냐 이, 이놈!"
"유언장 쓸 거야 말 거야? 그것만 대답해."
"놔, 놔라 이 녀석!"
"호오, 이게 약점 맞구나. 뒤지게 처맞아도 버티던 네놈이 곧바로 반응하는 걸 보니까."
"뭐, 뭘 대체 어쩌려는···."
"내가 더럽고 치사해서 이런 짓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네 놈이 도저히 말을 안 들으니 어쩔 수 없다."
만수의 봉알을 움켜쥔 도훈이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으, 으아악!"
현재 도훈의 아귀 힘은 내공을 주입할 시 투포환에 쓰이는 쇠공도 우그러뜨릴 만큼 엄청난 악력을 자랑했다. 하물며 사람의 연약한 살덩이 정도야 가볍게 으깨버릴 정도였다.
"자, 잠깐만 거긴 안··· 끄아아아아악!"
도훈이 기어이 손에 힘을 줘 만수의 불알을 터뜨렸다.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충격에 만수가 혀를 내밀고 기절하듯 늘어졌다.
하지만 도훈은 여전히 한 손만으로 그의 멱살을 잡고 무게를 지탱했다. 대단한 괴력이었다.
"어? 벌써 기절하면 어떡해? 나머지 한쪽도 마저 깨뜨려야 하는데?"
"흐, 흐익! 아, 안 돼!"
도훈은 일부러 한 쪽 불알만 먼저 터트린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반대쪽 불알까지 터뜨릴 것처럼 만수를 협박했다.
"잘 판단하는 게 좋을 거야. 고자는 잦이가 잘려서 되는 게 아니야. 고환이 모두 깨지면 남성 호르몬을 못 만들어 내서 나중엔 좆도 안 서게 된다고. 목소리도 여자처럼 가늘어지고, 수염도 안나지. 어디 나이 처먹고 내시한 번 되어 볼래?"
"끄어! 사, 살려줘!"
"틀렸어. 네 대답은 그게 아니라, 유언장을 쓰겠다고 했어야해.
아쉽게 됐군."
도훈이 다시 손아귀에 힘을 주자 만수가 다급히 소리쳤다.
"쓰, 쓸게! 쓴다고! 무조건 쓰겠다! 제발 나머지 한쪽은!"
"···진작 그럴 것이지."
도훈이 그제야 만수를 붙들고 있던 멱살을 놓아주었다.
털썩-!
육중한 체구의 만수가 바닥으로 고꾸라지더니 한동안 불알이 깨진 고통에 일어서질 못했다.
도훈이 고통에 겨워하는 만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으음, 내가 한 짓이긴 하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잔인했나 싶네.'
[저게 그렇게 아픕니까?]
'뭐? 불알 깨지는 거? 말도 마. 저긴 축구공에 살짝만 맞아도 30분은 쓰러져 있어야 돼. 터지면 당장 응급실 실려 가야 하고.'
[과연 급소는 급소군요.]
물론 도훈은 만수가 계속 바닥에 쓰러져 쉬게 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는 만수를 발로 툭툭 걷어차며 말했다.
"일어나. 계속 자빠져 있으면 확 발로 밟아서 터뜨려 버릴테니."
"흐, 흐익! 이, 일어서겠습니다."
만수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자 도훈이 혜진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헤드폰을 벗은 혜진이 돌아서자 도훈이 말했다.
"얘기 끝났어. 유언장 쓴대."
혜진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게 두들겨 맞은 만수를 보더니, 새삼 도훈의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역시나 무서운 사람이었구나. 범상치 않다는 건 알았지만, 거구의 장만수를 맨손으로 두들겨 팰 줄이야. 설마 싸움도 잘하는 걸까?'
돌아서 있던 터라 영문을 모르는 혜진은 도훈이 단순 폭행만으로 만수를 설득한 줄 알았다.
"자, 이 종이에 제가 불러주는 대로 자필로 쓰시면 돼요."
"끄, 끄으···."
환갑이 넘은 만수가 가랑이 사이를 붙잡고 눈물을 글썽거렸다.
-나, 장만수는 사망 시 일체의 재산을 포기하고 모두 사회에 환원한다.
만수가 울먹이며 혜진이 불러주는 대로 종이에 휘갈겼다.
혜진은 그가 모든 재산을 환원하고, 형의 유산도 물려받지 않겠다는 내용으로 자필 유서를 쓰게 한 뒤, 지장을 찍게 했다.
"흐, 흐윽. 요구한대로 다 했으니, 어, 어서 의사를···."
"의사? 의사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넌 내일 당장 짐 싸서 아프리카 오지로 꺼지는 거야. 명목은 선교활동으로."
"아프리카라니? 갑자기 아프리카라고?"
"아프리카가 별로 마음에 안 내키면 천국은 어때? 그동안 기도도 많이 올렸으니, 곧장 하나님 뵈러 갈 수 있지 않겠어? 너네 교인들 소원이 천국가는 거라며? 천국행 급행열차 태워줄게. 말만해."
"흐, 흐익!"
장만수가 도훈의 위협에 바짝 쫄아 몸을 움츠리는데 혜진이 말했다.
"여기서 더 시간 끌 수 없어. 곧 장석개도 도착할 거야."
"그럼 이 자식은 여기 묶어 놓고 가자. 어차피 오늘 밤 동안만 감금해 놓으면 모든 일이 끝날 테니."
"무, 묶다니? 난 풀어주는 거 아니었어?"
"뭔 소리야? 넌 여기서 밤새 감금되어 있다가 내일 바로 아프리 카로 떠나는 거야."
"아, 아니!"
도훈이 미리 준비한 마스킹 테이프를 꺼내 만수를 의자에 앉힌 뒤 꽁꽁 묶었다. 입까지 모두 틀어막자 마치 테이프로 휘감긴 미라가 된 것 같았다.
"읍읍!"
"발광하지 마. 유언장도 받았겠다, 수틀리면 확 담가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
"가자. 이젠 왕자지 만나러 가야지."
"응? 뭐라고?"
"아니야. 말이 헛나왔어."
장만수를 서재에 감금한 두 사람은 다시 방을 나와 응접실로 걸어 나갔다. 가는 도중 저택에서 일하는 하녀들을 몇 명 만났으나, 그들은 혜진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만 할 뿐 아무도 둘을 의심하지 못했다.
겉으로 보기엔 혜진이 뚱뚱한 처녀를 데리고 저택을 구경시키는 모습이었으니까.
"저, 근데···."
"쉿, 지금 남자 목소리야."
"아차."
도훈이 여성의 목소리로 바꿔 다시 물었다.
"장만수는 부르자마자 튀어 왔는데, 장석개는 왜 늦는 거지?"
"장석개는 옛날부터 우유부단한 성격이 문제였어."
"우유부단한 성격?"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망설이는 버릇이 있거든. 제 아버지하곤 완전히 딴판이야."
"호오."
"어찌 보면 신중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가끔 그 신중함이 지나쳐 타이밍을 놓칠 때가 잦아. 아마 내 전화 받자마자 측근들을 불러 논의하고 있을 걸."
"측근들이라고?"
"있어. 장석개를 따르는 장로랑 권사들. 파벌이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어. 3년간 장목사가 반칩거 상태에 들어가면서 세력이 더욱 공고해졌지."
"근데 감금한 장만수가 훨씬 윗배 아닌가? 나이로 보나 연륜으로 보나."
"그렇긴 한데, 일부 장로들은 장만수에 줄을 서면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거든."
"미래가 없다니?"
"장만석과 터울이 제법 있긴 하지만 장만수도 벌써 환갑이 넘었어. 차기를 맡아도 10년도 못 가서 또다시 지도자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거지. 장만석도 사실 그 나이 땐 정정했거든. 그래서 처음부터 오래오래 해먹을 아들 쪽을 미는 거야. 만약 장석개가 교회를 물려받으면 최소 30년은 이 교회를 주무를 수 있을 테니까."
"아하. 한마디로 나이든 베테랑과 서비스 타임이 긴 신인의 싸움인거네?"
"굳이 비유하자면. 근데 방금은 어떻게 한 거야?"
"뭘?"
"아니. 장만수 말이야. 처음엔 고문을 해도 버틸 것처럼 강경하게 굴더니 갑자기 자진해서 유언장을 쓰겠다고 했잖아. 어떻게 설득한 거냐고."
"아, 그거? 남자로선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을 내걸었지. 목숨보다 중요한 것으로."
"그게 뭔데?"
"있어 그런 게."
두 사람이 다시 저택의 거대한 응접실에 당도하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아들 장석개가 들어왔다.
장석개는 입구에서부터 씩씩거리고 있었는데, 혼자서 뭐라고 투덜거렸다.
"···경호팀 이 개자식들, 나를 이 따위로 대접해? 기분 더럽게 감히 몸수색을···. 어? 구실장!"
뒤늦게 구혜진을 발견한 장석개가 혜진을 향해 아는 척을 했다.
그러더니 옆에 서 있는 여자 도훈을 힐끔 보고는 대번에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저 새끼가!'
[주인님 모습이 비호감인건 어쩔 수 없습니다. 주인님도 거울 보고 스스로 욕하셨잖습니까?]
'그런가? 아무튼 오물취급 받는 것 같아서 기분 더럽네.'
[이번 일을 타산지석 삼으셔서 다음에는 미추에 상관없이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시길 바랍니다.]
'그게 되나. 본능인데.'
[그럼 장석개를 욕할 필요도 없죠.]
'저 새낀 그냥 생긴 게 마음에 안 들어.'
장석개는 아버지인 장만석이나, 작은 아버지인 장만수와는 달리 훨씬 잘생긴 얼굴이었다. 비쩍 마른 장만석이나, 풍채가 좋은 장만수에 비하면 키도 훤칠했고 나름 몸도 근육질이었다.
[그래도 장씨 집안 사람들 중에선 외모는 가장 나은 거 아닙니까?]
'얼굴 말고 눈빛이 좆 같잖아.' 도훈의 말대로 장석개는 평소에도 늘 자신감이 넘치다 못해 시건방진 표정이었다. 왕국을 이어받을 왕세자라는 지위 덕분에, 기고만장해진 것이다.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되지만, 도훈은 장석개를 보자마자 그가 아버지인 장만석은 물론, 경쟁자로 여기는 장만수보다도 떨어지는 인물임을 깨달았다.
'병신이네.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부하들과 의논해야 결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미 지도자로선 낙제점일 듯. 하여간 호부 밑에 견자없다는 말은 죄다 뻥이라니까?'
"오셨군요, 부목사님."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며? 지방에 갔다가 오느라 이제 막 도착했어."
물론 그것이 변명이라는 걸 혜진은 알고 있었다. 장석개의 스케줄에 지방분원 시찰은 없었다.
"지금은 겨우 안정을 취하시고 있는 상태입니다. 잠시 부담임목사님을 기다렸다가···."
"뭐? 작은아버지가 아직도 안 왔어?"
"네."
그 순간 장석개의 미간이 가늘게 좁아졌다. 본디 의심이 많은 장석개가 구혜진의 대답에서 오류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래? 참으로 희한한 일이군. 내가 방금 저택 바로 앞에서 알파 팀장을 만나고 오는 길이거든."
"아···."
"하도 몸수색을 빡세게 하길래 한소리 했더니, 아까 작은아버지도 불평 없이 협조했더라고 대답하더란 말이지."
"······."
"그럼 둘 중 하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네? 알파 팀장이나 구실장 중에서 말이야. 안 그래?"
[엇, 이거 일이 틀어진 것 아닙니까?]
'별 수 없군. 되도록 살생은 안 하려고 했는데 바로 살수를 써야 할지도.'
도훈이 몰래 손가락 사이에 트럼프 카드를 끼웠다. 인벤토리에서 끄집어내 자연스럽게 장전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도훈이 살수를 쓰기 직전, 혜진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부담임 목사님께서 먼저 도착했다는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뭐라고? 아니, 이 양반이 진짜!"
구혜진의 거짓말이 너무나 자연스러웠기에 장석개는 깜빡 속아넘어가고 말았다. 도훈 역시 암습을 멈추고 잠시 대기했다.
'이야, 혜진이도 보통내기가 아니구나. 저 상황에서 저렇게 뻔뻔하게 거짓말을···.'
[처음부터 거짓말이 능수능란하더라고요. 저런 건 타고난 기질 일까요?]
'머리가 좋은 거겠지. 연기력도 뒤받쳐주고.'
"그럼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아버님을 만나고 있단 말이야?"
"그건 아닙니다. 당장은 의사가 면회가 힘들 것 같다고 해서 안쪽 서재에서 대기 중이십니다."
"그럼 왜 구실장에게 그런 거짓말을 시켰지?"
"저 그게···."
"사실대로 말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편을 잘못 섰다간 그대로 천길 낭떠러지라는 것만 명심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