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12화 (1,892/2,000)

1912. 구원회-117-

<장씨 집안 수컷들은 집에 키우는 개도 대물이다.>

어렸을 때 그가 살던 시골 마을에 널리 퍼진 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장만석의 아버지 장세풍부터가 어렸을 때부터 계집질로 유명한 난봉꾼이었던 것.

대대로 머슴 출신이던 장세풍의 집안은, 그의 아버지 즉 장만석의 할아버지대에 이르러서야 갑오개혁을 겪으며 신분제라는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신분제가 철폐되자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져 도리어 세경을 받으며 다시 부잣집에 몸을 의탁하는 경우가 많았다.

장세풍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일제 시대에도 자진해서 머슴 생활을 이어갔는데, 하필 혼란기에 남편을 잃은 집안의 청상과부와 눈이 맞는 바람에 죽지 않을 만큼 멍석말이를 당하고 마을에서 추방당하게 된다.

당시 소문이 돌길, 미망인이 장세풍에게 헤어나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타고난 대물 때문이라는 것.

어찌나 밤일이 기가 막힌지, 장세풍에 푹 빠진 마님이 매번 그에게만 흰쌀밥을 내주었고 이를 의심한 다른 하인들이 집안 어른에게 일러바치는 바람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처럼 우월한 유전자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장씨 집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묵직한(?) 물건을 타고 났는데, 8남매 중에서 장만 석은 군계일학이라 불릴만 했다. 그리고 형을 뒤따라 장만수 역시 일반인하고 비교도 안되는 대물의 소유자였다. 다만 형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처럼 장만석에 비할바는 못 됐다.

만수가 여전히 꼴려있는 대물을 물티슈로 쓱쓱 닦아내며 생각했다.

'양반댁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해 쫓겨난 뒤 평생 농사만 지었던 가난한 우리 아버지. 그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준 게 딱 두 가지가 있다면, 하나가 이 대물이고 또 다른 하나가 내 이름이었지.'

만석꾼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준 장만석과 달리, 만수는 말 그대로 만수무강하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었다.

운명이 이름따라 간다고 했던가?

목사를 꿈꾸던 만석은 이후 유명한 사이비 종교 교주가 되어 조선시대의 거부였던 '만석꾼'을 훌쩍 뛰어넘는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만수는 형보다 모든 면에서 못났지만, 딱 하나 자신하는 게 있다면 바로 건강이었다.

'흐흐. 늙어서 이빨 다 빠지고 기력이 쇠한 형님과는 달리 나는 아직도 짱짱 하거든.'

그 역시 올해 환갑에 이른 나이긴 했지만, 무척이나 정정한 편이었다. 잔병치레 한 번 한 적없이 타고난 강골이던 그는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잘 먹고, 잘 싸고 다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형님이 저리 될거라는 건 진즉 예견된 일이었어. 부는 형님이 이루었으니 이제 내가 오래오래 쓰면서 잘살겠수다. 우리 장씨 집안의 유전자를 널리 퍼뜨리는 일은 이제 내가 이어 받아야지.'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두 형제는 본래 우애가 깊었다.

오죽하면 장만석의 교회가 어느정도 자릴 잡았을 때 놀고 먹는 백수생활을 하던 동생 만수를 교회 운전 기사로 불러다 일을 맡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교회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고, 가업으로 발전하자 만석은 동생 만수에게 성경 공부를 시켜 목사 안수를 받게할 계획을 품게 된다.

'흐흐, 기껏 공부 다 했더니 결국 우리 교회가 이단으로 몰려 파문을 당해 버렸지. 어차피 종단의 인정도 못 받는 마당에 목사 안수가 무슨 필요겠어? 적당히 성경 말씀만 씨부리면 그게 목사지.'

정식 목사는 아니었지만, 만수는 형인 만석의 뒤를 이어 부담임목사가 되었고 혼자서는 힘에 부쳐하는 예배를 형과 함께 나누어했다.

물론 카리스마가 넘치고 성령 충만한 장만석의 요설에 비할바는 못 되었지만, 만수 역시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함께 가업을 일구었다.

즉, 만수의 입장에서 현재의 구원회는 형과 함께 이룬 일종의 공동업적이나 마찬가지.

'근데 그 썩을 조카놈이 되지도 않는 욕심을 부리더란 말이지?

삼촌인 내가 버젓이 현역으로 활동하는데 말이야. 지가 성경을 읊어봐야 몇년이나 됐다고 감히.'

포스트 장만석의 문제가 대두되자 장로회는 동생 장만수를 따르는 이들과, 아들인 장석개를 추종하는 이들로 쪼개졌다.

12명의 장로가 각각의 이익를 위해 반으로 갈라졌고, 중립을 표방하는 둘을 제외하면 정확하게 5:5의 파벌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중이었다.

'문제는 그 중립 장로 중에 구혜진이 있다는 말인데···.'

혜진은 장목사의 총애를 받는 심복중의 심복.

심지어 장목사와 사적인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동생인 만수나, 아들인 석개편에서 끌어 당기기 쉽지 않은 상대였다.

'하지만 정말로 형님이 돌아가시면···. 확실하게 우리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겠어. 원래 형의 마누라는 동생이 물려 받는게 우리나라 고유의 형사취수가 아니겠어?'

먹음직스러운 구혜진을 떠올리자, 기껏 줄어들었던 만수의 대물이 다시 부풀기 시작했다. 오랄은 시켰지만 아직 발사를 못 한 탓에 성욕이 가라앉지 않는 것이었다.

'이런 젠장. 이꼴로 갈수는 없는데.'

결국 만수가 책상 안쪽에 쓰러져 있던 수호천사에게 명령했다.

"당장 빤스 내리고 책상 위에 엎드려. 후딱 끝내고 갈테니까."

그 와중에도 정액을 뽑아내야 성에 차는 장만수였다.

* * *

"음. 그러니까 대가리를 한방에 정리 해야 한다?"

"그렇지."

저녁 9시경.

거사가 얼마 안 남은 시점, 구혜진은 도훈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구원회는 일종의 왕국이다.

왕인 장만석을 해치워봐야, 그 동생인 장만수와 아들 장석개가 곧바로 들고 일어나 교회를 접수하려 들것이다.

그렇게 되면 전국 10만에 달하는 신도들의 혼란을 피할 수 없다.

반으로 갈라져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피터지는 권력투쟁이 시작될 것이다.

구원회를 진정 회복시키기 위해선 장만석 뿐만 아니라, 동생인 장만수, 그리고 아들인 장석개까지 한날 한시에 정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흐음, 거기까진 미처 생각 못했는데···. 그럼 셋을 동시에 정리한다고 치면, 누가 교회를 물려 받게 되는 건데?"

"장로회에서 새로운 인물을 추대하겠지. 이전의 적폐를 모두 걷어내고, 교회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참신한 사람으로."

"흐음, 그래봐야 결국 다 똑같은 족속들 아니야? 이 교회에서한 자리 차지한 인물들이라면···."

"아니. 제 정신인 사람이 한 명있지."

"뭐?"

"게다가 자금줄까지 쥐고 있는 사람이."

"뭐? 너 설마···."

"이게 최선이야. 나는 내가 지은 죄를 속죄하는 차원에서 이 교회를 원래대로 돌려 놓을 거야."

"잠깐만. 새 목사는 장로회에서 추대한다며? 장로회에서 순순히 너를 차기 목사로 인정할까?"

"그건 어차피 상관없어. 결국 돈줄을 쥔 사람에게 붙기 마련이거든."

"아···."

"그리고 나중에 나머지 장로들도 하나씩 정리할 예정이야. 이 교회는 근본부터 썩어서 전부 도려내지 않으면 결국 변할 수 없으니까."

도훈은 혜진이 내놓은 담대한 구상에 속으로 감탄했다.

'보기보다 훨씬 그릇이 큰 여자였구나.'

[머리만 똑똑한게 아니라 배포도 있는 여자였군요. 10만 구원회의 차기 지도자를 꿈꿀 줄이야. 정말 그녀의 말대로 된다면, 구원회를 분쇄하라는 정의의 여신의 미션도 완료될 것입니다. 기존의 구원회가 완전히 물갈이 되고 정상적인 교회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니까요.]

'그렇지. 어차피 돈은 안고 죽어도 못 쓸만큼 있으니···. 가만 그럼 그 돈을 혜진이가 다 먹어버리면 나는?'

[주인님. 이 와중에 돈을 욕심내시면 어떻게 합니까? 주인님은 돈 때문에 이번 미션을 맡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물론 그렇긴 한데, 전리품 하나 쯤은 챙겨야지.'

[속세의 것에 욕심을 내시는 것은 주인님 답지 않습니다. 장만 석이 어쩌다 저렇게 타락하게 되었는지 잊으셨습니까? 플레이어는 사명을 위해서 정진해야 합니다.]

'아니 그렇긴 한데, 한 두푼도 아니고 1조가 넘는 거금은···.

아, 그러면 되겠구나.'

[네?]

'예전에 유명한 부자가 했던 방식으로.'

[무슨 방식이요?]

'곧 죽게 생긴 부자가 유언을 남기는데, 자식에게 돈을 물려준다고 하면 하인들이 유언 내용을 전달하지 않을 것 같은 거야.'

[그래서요?]

'그래서 매우 조악한 유언하나만 남겼다잖아. 이 집안에서 단하나만 가져갈 수 있다고.'

[오호.]

'아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해하고, 재산을 독차지한 하인을 가졌지. 결국 하인이 갈취한 재산은 고스란히 아들에게 전해졌고.'

[설마 주인님은···.]

'그렇지. 장만석의 유산을 욕심낼 필요 없어. 유산을 물려받은 혜진을 내여자로 만들면, 그게 내 것이니까.'

[기막힌 작전이군요. 하지만 혜진양을 너무 쉽게 보는 거 아닙니까? 저렇게 총기 넘치고 그릇이 큰 여자는 감당하기 쉽지 않을 텐데요?]

'흐흐. 내가 여자 하나를 못 꼬시겠어? 혜진이는 근본이 대물애호가라고. 그녀가 처음에 어떻게 장만석에게 빠졌는지 떠올려봐.'

[호오, 그런 방법이.]

"장석개와 장만수 둘 다 연락했어. 아마 10분 안에 저택으로 들어올 거야."

"경호팀에서 곱게 들여보내줄까?"

"원래도 장로급은 경호팀 허락없이 장목사를 만날 수 있어. 몸수색만 끝나면 들어오는데는 문제 없을 거야."

"좋아. 그럼 그 이후는 나에게 맡겨."

"너 정말 자신있는 거지? 둘다 호락호락한 인물들은 아니야.

그 집안 남자들은 보기보다 힘이 세다고."

여장한 도훈이 씨익 웃어보였다.

"그건 조금도 걱정 마."

혜진의 예상대로 장만석이 위급하다는 소식을 전하자 장만수가 먼저 저택에 도착했다. 경호팀이 방문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하며 둘러 넘겼다.

형의 소식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형님! 나왔소! 형님 동생 장만수요!"

저택 안으로 들어온 만수가 장만석을 찾는데, 비서격인 혜진이 대신 마중나갔다.

"오셨습니까?"

"구실장. 우리 형님은 어디 계시나? 여기서 이럴때가 아니라 얼른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야?"

장만수가 속 보이는 소릴했다.

"진정하십시오. 저택에도 상주하는 의사가 있습니다."

"의사가 뭐라는데?"

"오늘 저녁을 넘기기 힘들것이라고 합니다."

"뭣이?"

장만수의 입꼬리가 실룩거렸다.

"석개는? 우리 조카는 지금 어딨어?"

"연락했는데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하-. 이런 몹쓸 놈을 봤나. 자기 아버지가 금방 숨이 넘어가게 생겼는데, 어디서 또 계집질이나 하고 있나 보군."

"······."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네. 어서 형님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뭐라?"

"두 분을 동시에 모시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구혜진이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그 말에 먼저 도착한 장만수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의사 말로는 오늘을 넘기기 힘들다며? 그런데 지금 못난 조카 자식을 기다리고 있을 때야? 이러다 형님이 유지도 못 남기고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장만수의 베스트 시나리오는 아들인 장석개가 당도하지 않았을 때 형인 장만석이 숨을 거두는 것이었다. 그리곤 자신에게 교회를 물려주기로 했다고 우기면, 장석개로선 도저히방법이 없는 것이다.

장만수의 얕은 수를 알아챈 혜진이 속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그건 염려안하셔도 됩니다."

"뭣이라?"

"장목사님께서는 이런 일을 대비해 일전에 유언장을 미리 써두셨으니까요."

"그게 정말인가?"

"네. 변호사를 대동해 공증까지 받은 정식 유언장입니다. 비서실장인 제가 사후 공개하도록 되어 있고요."

"아니···."

장만수의 눈빛이 희번덕거리기 시작했다.

유언장이 존재한다면, 어차피 먼저 도착한 것은 아무 의미없었다.

만약 아들인 장석개에게 교회를 물려준다고 써있다면 장만수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잠깐만, 그 유언장 나 먼저 볼 수 있겠나?"

"곤란합니다."

"이보게, 구실장!"

장만수가 역정을 내며 언성을 높였다.

"내가 말했지? 지금 자네가 여유부릴 때가 아닐텐데?"

"네?"

"머리도 잘 돌아가는 사람이 모르겠어? 형님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교회내에서 자네의 입지가 어떻게 될지 말이야."

"그건···."

"판단 잘하시게. 지금이야 형님의 비호로 최연소 장로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만에 하나 형님이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다른 장로 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네를 물어 뜯을 걸세."

"······."

"지금은 줄을 잘 서야 할 때야. 나인가, 석개인가?"

"부담임목사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는 법이네. 모가 됐건 도가 됐건 한 명을 선택해야 해."

"······."

"유언장을 당장 보여주게나. 어차피 유언장의 존재는 자네밖에 모르지 않은가?"

"······."

"그 말은 지금 여기서 유언장의 내용을 바꿀 수도 있다는 뜻이 네. 애초에 없는 것으로 해도 되니 말이야."

장만수가 집요하게 구혜진을 설득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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