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 구원회-115-
"몸을 더듬느니 눈으로 확인하는 게 더 낫습니다. 장목사님은 제가 몸에 손을 대는 걸 더 싫어하실 테니까요."
"아니, 정말!"
"실장님, 괜찮아요. 어차피 저도 막 씻으려고 했거든요."
도훈이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겠다고 하자 혜진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무, 무슨 소리야? 융통성이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인간 백정 앞에서 옷을 벗는다니! 이젠 진짜 끝이야!'
혜진은 앞으로 일어날 상황을 상상하며 절망감에 휩싸였다.
몸수색을 건너 뛰었다고 다 끝난 줄 알았더니, 저택 안에서 복병을 만날 줄은 그녀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민용이를 여장시켜 저택 안으로 들였다는 걸 들키는 날에는···. 확, 돈으로 매수할까? 그런데 매수가 될 만한 타입이던가?'
혜진이 머리를 굴리는 사이 도훈이 치마부터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왜? 벗으라니까 벗는데.'
[왜 하필 치마부터···. 설마 치마 내리는 척 몰래 동전을 뿌려 암습이라도 하시려고요?]
'아니? 로시 네가 그랬잖아. 피곤해지니까 죽이지는 말라고. 나도 죽일 생각까진 없어. 아직까진 말이야.'
[역시 망각의 라이터를!]
'에이, 1:1 상황도 아니고 혜진이도 다 지켜보고 있는데 능력을 함부로 쓸 순 없지. 일단 한 번 질러보자.'
[네?]
치마가 끝까지 내려가더니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림영석은 눈 앞에 펼치진 광경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다시 사이에서 여자에겐 있어선 안 될 커다란 물건이 툭- 튀어 나와 있던 것이다.
어지간해선 절대 동요하는 법이 없는 림영석이 말을 더듬을 정도로 흥분한 채 총구를 겨누었다. 그의 총구 끝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너, 너 뭐야!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림 팀장님, 제가 다 설명 드릴테니 일단 진정을···."
"트젠이에요."
도훈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무나 뻔뻔한 태도에 림영석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저, 트랜스젠더라고요."
림영석은 멘붕이 온 것처럼 이빨을 꽉 깨물었다. 도저히 자신의상식으론 납득되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좆달린 여자라니? 평양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그러니까 트렌스젠더라고? 성전환자?"
"네. 돈이 모자라서 밑에는 아직 수술 못 했어요. 보시다시피."
하도 기가 막혀 림영석이 혜진을 향해 따지듯 물었다.
"구 실장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게···."
난데없는 도훈의 커밍아웃에 혜진 역시 정신이 아찔해졌다.
두뇌 회전이 남보다 빠른 그녀였지만, 이 상황은 전혀 예측도 못 했을뿐더러 사전에 합을 전혀 맞추지 못한 상태였다. 섣불리 둘러댔다간 각자 딴 소리를 할 가능성이 컸다. 신중하게 대답해야 했다.
"꺄, 꺄악!"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순진한 처녀 미진이 빼액 비명을 지르더니 눈을 감고 엎드렸다. 못 볼 것을 본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태어나 처음 본 남성의 성기가 트젠이라는 것이 그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환장 파티가 벌어진 와중에 하의가 실종된 도훈이 차분히 설명했다.
"실장님은 아무 잘못 없으세요. 제 정체가 노출되면 괜히 난처해질까 봐 몸수색을 건너뛰신 거니까."
"저, 저 여자···. 아니지, 저 간나 새끼 말이 사실입니까, 동무?"
어찌나 당황했는지 어지간해선 북한말을 쓰지 않는 림영석이 자기도 모르게 동무라는 호칭을 내뱉을 정도였다.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린 혜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짓말을 시작했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녀의 특기 중 하나였다.
"흐음, 맞아요. 실은 비밀로 하라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들켜버렸군요."
"비밀이라고요?"
"실은 장목사님의 취향 문제라···."
"아!"
림영석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갔다.
자신이 모시던 고용주가 여색을 밝히는 것은 남자로서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남색까지 겸한다는 것은 그의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특히 완고하고 보수적인 타입인 림영석의 입장에선 천지가 개벽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그 말씀은 장목사님께서···."
"맞아요. 어차피 들통난 상황이니 알파 팀장님께만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다른 사람한텐 절대 말씀하시면 안 돼요."
"으···."
"림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저는 최근 몇 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밖에서 처녀들을 데려왔어요."
"······."
"그런데 언젠가부터 장목사님의 취향이 조금씩 바뀌시더라고요.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맛있는 것도 매일매일 먹으면 질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남색을···. 윽!"
"물론 아직 본격적인 건 아니에요. 게이보다는 트젠을 먼저 찾으셨으니까."
"저 간나 새끼처럼 말입니까?"
"네."
"아니···."
안 그래도 못생긴 여자가 트젠이라고 하니 림영석은 도저히 보고 있기가 역겨웠다. 심지어 팬티 위로 툭 튀어나온 물건은 무지막지하게 컸다. 어쩌면 자신보다 더 큰 것 같았다.
'으으, 총으로 확 갈겨버리고 싶군.'
평소에도 게이, 레즈, 바이, 트젠 같은 LGBT에 극심한 혐오감정을 갖고 있는 림영석은 도훈을 총으로 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치, 치마 당장 올려. 다 알겠으니까."
"네? 전 이제 씻으려고···."
"나중에 씻으라고! 쳐다보기도 역겨우니까!"
"······."
도훈이 시무룩하게 다시 치마를 올렸다.
그때 림영석이 다시 물었다.
"가만. 그런데 어떻게 사내 새끼한테 여자 목소리가 나는 거지?"
"저 여자 맞는데요?"
"아니 그걸 달고 있는데 어떻게 여자야!"
"심정적으론 여자라고요. 원래 여잔데 하필 남자로 태어난 거 죠. 그러니까···."
"서, 설명 같은 거 듣고 싶지 않아!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해!"
"성대 수술 했어요."
"수, 수술?"
[정말 그런게 있습니까?]
'몰라. 근데 어차피 저 북한군도 모르겠지. 탈북자 새끼가 뭘 알겠어? 자본주의는 뭐든 된다고 우기면 그만이야.'
"네. 수술해서 여자처럼 음역대를 높였는데, 의사 선생님 말론운이 좋아서 자연스럽게 잘 된 편이라고 하셨어요. 정말 감쪽 같다면서."
"그러니까 네 말은 성대고 가슴이고 다른 곳은 다 수술했는데 ···."
"네. 거기만 아직···. 이번에 달란트 받게 되면 꼭 하려고요.
참고로 수술은 태국이 가장 잘한데요."
"음···."
림영석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믿기 어려울 만큼 작위적이긴 했지만, 그래도 해명을 듣고 나니 어느정도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만약 몸수색을 통해 유난히 큰 양물을 지닌 도훈이 트젠이라는 걸 들켰다면 장목사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퍼질 게 뻔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최근들어 치매증세로 점점 신망을 잃어가는 그에게, 남색 취향까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간 안 그래도 누수가 심한 지배력이 근본부터 흔들릴지 몰랐다. 레임덕이 본격화 되는 것이다.
특히 장목사가 죽는 날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그의 친동생이나 아들들이 이를 핑계로 탄핵을 시도할 가능성이 컸다.
노망난 아버지를 유폐시켜야 한다고 장로회를 선동해 권력을 빼앗고 나면 그 뒤의 일은 불보듯 뻔했다.
지나치게 비대한 경호팀부터 해체 수순에 들어갈 것이다. 60여 명에 이르는 용병단을 사설로 두고 있는 비용은 일반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 넘었으니까.
알파 팀장인 자신의 자리마저 위협받을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북한의 가족을 생각하면 절대 벌어지면 안되는 일이었다.
이러한 위험성을 미리 간파한 구실장이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트젠의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꺼렸던 것이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납득된 림영석은 겨누던 총을 바닥으로 떨구며 물었다.
"구실장님. 아깐 제가 무례했습니다. 이런 사정도 모르고···."
"아니에요. 충분히 그럴만 했어요. 알파 팀장님은 팀장님 역할에 맞게 최선을 다한 것이니까요. 저도 끝까지 숨겨보려고 했지만 ···. 역부족이었네요."
"설마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습니까?"
"네."
"아···."
"그 전엔 몸수색 같은게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외형만 봐선 절대 레이디보이를 구분하지 못해요. 너무 티나는 애들은 목사님께서 아직 껄끄러워 하셔서."
"으, 음.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구혜진은 입에 침도 안바르고 거짓말을 이어갔다.
"아무튼 이 사실은 림영석 팀장님만 알고 계셨음 좋겠어요. 여자애들 입단속은 어차피 제 소관이니까 걱정 마시고요. 제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이 사실이 밖으로 퍼져나갔다간···."
"걱정 마십시오. 제가 목사님께 누가 될 일은 없을 겁니다."
"네. 믿겠습니다. 저기, 이제 저희들이 씻을 수 있도록 나가주실 수 있을까요?"
"아, 아 이런! 죄송합니다."
늑대나 승냥이같던 림영석이 곧바로 태도를 고치며 구혜진에게 깍듯하게 인사한 뒤 물러났다.
림영석이 방을 나가자마자 긴장이 풀린 구혜진이 털썩 주저앉았다.
"후아-. 피 마르는 줄 알았네. 아니 넌···."
구혜진이 눈을 흘기며 도훈을 쳐다보며 따졌다.
"나랑 상의도 없이 어떻게 치마를 그렇게 막!"
"그럼 어떻게해? 당장 안 벗으면 총을 쏴버릴 것처럼 협박하는데."
"하긴···."
이것은 도훈의 기지로 위기를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적어도 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작 도훈은 림영석과 그의 부하들이 운이 좋았다고 여겼지만.
'명줄이 긴 놈들이군. 하긴 그것도 제 복이지.'
대충 사태 수습은 끝났지만, 아직 한가지 문제가 남아있었다.
"그나저나 저 애는 어떻게 할 거야?"
도훈이 엎드려서 벌벌 떨고 있는 미진을 가리키며 물었다.
* * *
경기도 외곽의 한 커피숍.
그곳엔 두 명의 여자가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한 명은 나이답지 않게 탄력이 넘치는 미인이었다. 피부가 유난히 팽팽한 그녀는 바로 구원회의 권사 권미숙. 12장로 못지 않는 위세를 떨치는 구원회의 실세였다.
맞은편에 앉은 여인 역시 권미숙 못지 않은 미인이었다.
청순한 얼굴에, 창백하리 만큼 하얀 피부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목구비가 올망졸망하고 강아지처럼 처진 눈매가 귀엽고 풋풋한 여대생 느낌을 풍겼다.
두 여자는 겉으로는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서로의 미모에 대해 은근히 견제했다.
'흥, 도저히 남편 잡아먹는 여자로는 안보이는 청순한 얼굴이구나. 저러니 재판이 지지부진 했지. 기소한 검사들도 유죄를 주장하기 쉽지 않았겠는데.'
"호호, 아무튼 이렇게 직접 뵈니까 너무 반갑네요. 최지안씨."
"아니에요. 권사님께서 바쁘실텐데 직접 여기까지 찾아와주셔서···."
"최근에 동탄으로 이사하셨다고."
"네. 아무래도 이전 집은 남편과의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라 ···. 사람이 죽기도 했고요."
지안이라 불리는 여자가 눈시울을 붉히더니 금새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 모습은 지켜보던 미숙이 가증스러움에 속으로 혀를 찼다.
'미친년. 남편 죽자마자 부동산에 집 내놓고 재산 정리한 걸 모를 줄 알고? 다 조사했어 이년아. 즙짜는 연기도 일품이네.'
"그 일은 저도 대충은 전해 들었어요. 자매님 잘못은 아니잖아요. 너무 상심마세요."
"흑흑···. 어쩌다 제가 이런 시련을 겪는 것인지···."
"이런 얘기부터 꺼내서 죄송스럽긴 한데, 저의 교회에 들어오시면 저희 교단 소속의 변호사를 붙여드릴수도 있습니다. 아직 2심 재판 진행중이라고 하던데···."
"정말요?"
"그렇죠. 저희 교회는 절대로 소속 교인이 곤란한 상황을 가만 지켜보지 않아요. 아시잖아요?"
"네. 아는 언니 통해서 들었어요. 정말 좋은 분들이 많으시다고 ···."
"많죠. 제 입으로 이런 얘기하기 그렇지나, 다들 천사같은 사람들이거든요."
"다행이에요. 안 그래도 요새 너무 힘들었거든요. 마음도, 몸도 ···."
지안이라 불리는 여자가 특히 '몸'에 방점을 찍으며 강조했다.
의도를 눈치챈 미숙이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주일부터 바로 교회 한 번 오세요. 자매님의 지친 심신을 위로해줄 아이를 미리 준비시켜 놨거든요."
"아··· 정말요?"
"당연하죠. 많은 위로가 되실 거예요."
가명 최지안, 본명 최윤하에 대한 물밑 작업은 거의 끝난 상황이었다.
그녀의 재산 규모는 거의 파악이 끝났고, 재판의 진행 과정도 법률 자문들의 분석으로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상황. 이제 그녀의 넘치는 도화살을 이용해 등에 빨대를 꼽아 단물을 쪽쪽 빨아내는 과정만 남았을 뿐이었다.
'미친년. 탈탈 털어 알거지가 될 때까지 쪽 빨아 먹어 줘야지.
나도 나쁜 년이지만, 저년은 상간남이랑 작당해 남편까지 잡아 먹은년이라 그런지 죄책감도 안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