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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09화 (1,889/2,000)

1909. 구원회-114-

도훈은 발걸음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군인들이 들이닥칠 걸 이미 예상했기 때문에 딱히 감정의 동요는 보이지 않았다.

'쳇, 귀찮게 됐군.'

다만, 이들을 어떻게 침묵시키느냐가 관건이었다.

'무장한 군인 넷이라···.'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도훈에게 장목사의 경호팀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팀당 20명, 도합 40여명의 군인들이 저택 바깥과 내부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지만, 설사 그 10배의 숫자가 있었더라도 신경쓰지 않았을 것이다. 개미가 수백 마리 있다 한들, 발로 밟으면 끝인 것처럼.

[주인님, 이제 어떻게 합니까? 아까 그 북한군 닮은 팀장이 뭔가를 눈치챈 것 같습니다만.]

'옛말에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거늘···.'

[네? 갑자기 고양이요?]

'가만 있었으면 목숨이라도 부지할 걸 스스로 화를 자초한다는 뜻이었어. 쓸데없는 호기심만큼 수명을 단축시키는 게 없는데.'

도훈이 인벤토리에서 포커 카드를 끄집어냈다. 소위 팜이라 불리는 스킬이었는데, 정면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손등 뒤에 카드를 숨겨 앞으로 꺼내는 수법이었다.

숙련된 마술사는 카드 한 통 전부를 숨길 수 있었기 때문에, 마술을 익힌 도훈 역시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갑자기 웬 카듭니까? 용병들하고 카드 게임이라도 치시려고요?]

'아까 보니 동전보다 카드가 더 나을 것 같더라고. 스냅으로 날리기도 편하고 면적도 큰데다 엣지도 칼날처럼 날카롭지.'

[설마 그걸로 군인들을 죽이기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입니까?]

'왜? 못할 것도 없지? 모가지만 스쳐도 최소 사망이야. 그리고 상대가 장전된 총을 들이 밀고 위협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정당방위 성립된 거 아닌가?'

[지금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를 물은 게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군인들이 시체로 발견되었다간, 모습을 감춘 장목사가 이대로 잠적해 버릴 겁니다. 그리되면 영영 장목사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고요.]

'흐음. 그건 좀 피곤한데···. 박쥐 새끼 한 마리 잡으려고 구원회 내부를 이잡듯 뒤질수도 없는 노릇이고.'

[먼저 나서지 마시고, 혜진양에게 우선 맡겨보시죠. 주인님만큼이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여인입니다. 분명 방법을 찾을 겁니다.]

"보안상 확인을 꼭 여자들만 있는 목욕탕까지 들어와서 따질 일인가요? 저희가 옷이라도 벗고 있었으면 어쩌려고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말투는 존댓말에 협조라는 단어를 썼지만, 장전된 총구는 여전히 위협적으로 혜진을 비롯한 여장 도훈과 미진을 향해 있었다.

혜진이 다시 한번 열을 냈다.

"참나, 누가 근본없는 용병들 아니랄까봐···. 됐고, 당신 상급 자 어딨어요? 경호팀장 지금 어딨 냐고!"

"경호팀장은 어젯밤 당직을 서고 찰리 팀원들과 함께 휴식 중입니다. 참고로 알려드리면 경호팀장의 부재 시 그다음 책임자는 알파 팀장인 바로 저고요, 실장님."

혜진이 일부러 근본 없는 용병이라고 도발했지만, 림영석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또박또박 대답했다.

그가 뻣뻣한 태도를 굽히지 않자, 혜진도 곧바로 전략을 바꾸었다.

"흠, 방금 말은 실언이었어요. 여자들만 있는 공간으로 우르르군인들이 몰려오니까 제가 살짝 흥분한 것 같네요."

"······."

"일단 무슨 사정인지 모르지만, 저희가 막 씻고 나와서 옷이라도 제대로 입고 난 후에···."

혜진은 일부러 가운을 흐트러뜨리며 그 사이로 풍만한 가슴골을 드러냈다. 아슬아슬 벌어진 가운은 다리 사이의 소중한 부위만 겨우 가릴 정도로 야한 노출이 이루어졌다.

혜진의 도발적인 몸매 과시에 림 소좌를 뒤따라온 군인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며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구원회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는 구혜진의 미친 몸매에 다들 넋이 나간 모습이었다.

그러나 정작 미인계를 건 상대인 림 소좌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옷깃 단단히 여미십시오, 실장님. 마침 가운도 입고 계시니 바로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아니···."

미인계도 통하지 않는 림 소좌의 목석같은 태도에 혜진도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장목사의 명령이면 불길 속이라도 뛰어들 것이라는 평이 자자했지만, 설마하니 성욕조차 거세된 전투 기계일 줄은 몰랐던 것.

앞선 조 대위와는 근본부터 다른 사내였다.

뒤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도훈은, 혜진의 협상이 실패하자 손등에 감춘 카드를 당장이라도 집어 던질 것처럼 거리를 가늠했다.

'하-. 텄구먼. 저 고자 새끼는 혜진이로는 감당 못 해.'

[주인님, 조금만 더 신중하게···.]

'1초면 끝이야. 방금 계산 끝냈는데, 손목 한 번만 튕기면 1타 4피로 처리할 수 있어.'

용병 넷은 횡대로 넓게 늘어져 포위망을 짠 대형이었다.

도훈은 부챗살처럼 카드를 날려 단숨에 네 사람을 제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견적이 나온 이상 결심만 하면 끝이었다.

[주인님. 무력 대응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두십시오. 거사를 위해서라도 조금 더 참으셔야 합니다.]

로시의 만류에 도훈이 갈등하는데, 아까부터 여장 도훈을 의식하고 있던 림 소좌가 갑자기 권총을 들어 올려 도훈을 정조준했다.

철컥-.

"이봐, 거기."

사람을 향해 총구를 들이밀자 깜짝 놀란 혜진과 미진이 꺅- 소리를 지르며 주춤주춤 물러났다. 이제까진 그래도 총구를 살짝 내리고 있었는데, 대놓고 사람을 겨냥하는 건 차원이 다른 위협이었다.

"아까부터 자꾸 손가락 꼼지락거리는데, 손 앞으로 내밀어봐."

"네?"

"내 말 못 들었어?"

림영석은 당장이라도 권총을 발사할 것처럼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도훈은 그가 사람을 쏘는데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인물임을 깨달았다. 필시 이전에 사람을 여럿 죽여본 자였다.

'하, 저 새끼도 은근 또라이네? 감히 누굴 협박하는 거야?'

[고정하십시오 주인님. 감정대로 대응해선 안 됩니다.]

'좆같은 북한군 새끼를 확 그냥-. 알았어. 한 번 만 더 참는다.'

도훈이 어깨를 으쓱하더니 순식간에 카드를 인벤토리로 밀어 넣으며 양 손바닥이 보이게 앞으로 내밀었다.

"이렇게요?"

손바닥엔 당연히 아무것도 없었다.

림영석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요구했다.

"손등도."

"이렇게요?"

도훈이 이번엔 손등이 위로 가도록 양손을 뒤집었다. 동시에 림영석이 난입한 의도를 깨달았다.

'저 새끼, 처음부터 날 의심하고 있었구나.'

[주인님을요?]

'그게 아니면, 아까 인벤토리에서 카드 빼서 손등 뒤로 숨기는 동작을 눈치챘을 리 없거든. 어지간한 마술사보다 더 정교하게 해냈는데, 들어와서 쭉 나만 주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지.'

[골치 아프게 됐군요. 하필, 주인님을 의심하고 있을 줄이야.]

'그럴 만도 해.'

[네? 여장한 주인님을 뭘 봐서 의심하는 거죠? 변장은 감쪽같은데요.]

'여장을 해도 좆같이 생겼잖아.'

[네?]

'얼굴로 형량을 매긴다면 무기징역을 받아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지금 와꾸는.'

[아니···. 마유미양이 들으면 섭섭하겠습니다.]

'이 얼굴이 어딜 봐서 마유미랑 닮았다고? 아, 13층 옥상에 면상부터 추락하면 살짝 비슷하긴 하겠네.'

[자기 비하가 도를 넘는군요.]

'난 팩트만 말했을 뿐이야. 다신 여장 안 해.'

도훈의 손에서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림영석은 도훈에게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분명 뭔가를 만지작거렸는데?'

"흐음, 근데 저 친구는 왜 아직 안 씻었습니까?"

"네?"

"보니까 실장님하고 어제 들어 온 아가씨는 막 씻고 나온 것 같은데, 저 친구만 여전히 들어왔을 때 옷차림 그대로군요."

림영석의 물음에 혜진이 대신 대답했다.

"무슨 질문이 그렇죠? 저희가 씻는 것도 일일이 알파 팀장에게 보고해야 하나요? 그리고 그 총 당장 안 내려요? 지금 어디서 행패예요? 장목사님이 이 사실을 아시면···."

혜진이 장목사의 위세를 빌려 압박하는데도 림영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침 말씀 잘하셨습니다, 실장님. 안 그래도 장목사님이 신신 당부하셨거든요. 오늘은 몹시 중요한 날이니, 경계에 만전을 기하라고요. 경호팀장 대리인 저에게 직접요."

"아무리 그래도···."

"그리고 방금 알파팀에게 전달 받았습니다. 저택 앞 초소에서 몸수색을 건너뛰셨다죠? 조 대위에겐 통했을지 몰라도, 저에게는 어림없습니다."

"지, 지금 무슨 소릴 하시는 거예요? 조 대위가 전부 확인했는데?"

"네. 그것도 들었습니다. 정확히는 구실장님만 확인했다더군요. 저 친구는 몸수색을 전혀 안 했나 보던데요?"

시시각각 압박해 들어오는 림영석의 태도에 혜진도 점점 변명이 힘들어졌다.

교대 근무를 위해 팀이 구분되어 있긴 하지만, 결국엔 같은 소속 무리들이었다. 무전 몇 번이면 바로 확인이 가능한 내용이라 더 이상 발뺌했다간 오히려 궁지에 몰릴 것 같았다.

"저기,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혜진이 어떻게든 도훈을 보호하려 했지만, 림영석은 막무가내로 소리쳤다.

"너희들, 저 여자 당장 내 앞으로 끌고 와."

"아니! 알파 팀장님!!!"

혜진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저 빌어먹을 탈북자 새끼! 가족도 버리고 북에서 도망쳤다더니, 대체 무슨 이유로 장목사에게 저렇게 충성하는 거람?'

혜진은 프로필을 통해 알파 팀장의 사연을 알고 있었지만, 그녀가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장목사는 본래 사람을 조종하는데 도가 튼 인물.

그는 림영석 소좌가 북에 두고 온 가족에 크나큰 부채의식을 느끼는 것을 이용해 그를 옭아매고 있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충성을 다하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에 있는 가족을 서울로 데려와 주겠다면서.

실제 어마어마한 부를 이용해 검찰과 경찰까지 입맛대로 요리하는 장목사의 능력을 눈앞에서 지켜본 림영석은, 장목사의 약속이 헛된 공수표가 아니라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임을 깨달았다.

'구실장은 평소에 절대 감정을 드러내는 성격이 아니야. 그런 그녀가 눈에 띌 정도로 허둥대는 걸 보니 분명 저 돼지에게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 내 감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거든.'

혜진의 격렬한 저항이, 오히려 확실한 증좌라고 굳게 믿은 림소좌는 한 번더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뭣들하고 있어? 얼른 데려오라니까?"

"림 팀장님! 정말 이런 식으로 하실 거예요?"

"구실장님. 제가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계속 저를 훼방놓으면 원칙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경호팀은 교회 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오로지 장목사님의 안위를 위해서만 움직인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

용병들이 끌어내려고 하자, 여장한 도훈이 스스로 일어났다.

"제가 갈게요."

도훈은 스스로 림영석 앞으로 걸어갔다. 변장을 들킬까봐 혜진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쳐다보는데, 도훈이 림영석에게 말했다.

"굳이 몸수색을 하시겠다는 데 어쩔 수 없죠. 여기서 옷이라도 벗을까요?"

도훈이 옷을 벗는다고 하자 림영석도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같은 여자인 혜진이나 미진은 그렇다 쳐도, 뒤따라온 부하들이 신경쓰였던 것이다.

'칫-. 발칙한 돼지년이 감히···.'

모든 경호팀이 다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팀장 급인 림영석은 구혜진이 데려온 타지부의 처녀들이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와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장목사가 맛 봐야할 처녀의 알몸을, 부하들이 대놓고 쳐다본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만에 하나 자신의 예감이 틀렸을 경우, 뒷감당이 안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자, 잠깐만."

"네?"

"너희들은 밖에 나가서 대기하고 있어. 몸 수색은 나 혼자 하겠다."

"yes, sir!"

림 팀장을 따라 들어온 용병들은 군소리 없이 대답하며 밖으로 물러났다. 구혜진도 아닌, 돼지녀의 알몸은 그들도 전혀 흥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혼자서 안구 테러를 감당해야 할 림영석을 측은한 표정으로 위로하기까지 했다.

용병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혜진이 다시 한 번 림영석을 설득했다.

"림 소좌님. 정말 이렇게까지 하셔야겠어요?"

"몸 수색은 원칙입니다. 원칙엔 예외가 없고요."

"아니, 저런 애가 뭐가 위협적이라고 굳이 옷까지 벗기셔야 겠냐고요. 이거 뒷감당 하실 수 있어요? 목사님이 아시면 몹시 불쾌해 하실걸요?"

"······."

어르고 달래다 협박까지 하는 혜진의 말에 림영석도 살짝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혜진의 그런 적극성이 더욱 수상하게 느껴졌다.

'집요할 정도로 나를 막는 군. 뭔가 수상해. 솔직히 구실장이 저 돼지랑 무슨 인연이 있다고 저렇게까지 보호하려 들겠어? 정상적인 반응이 아니야. 분명 저 돼지 년에게 뭔가 있어. 나에게 감추고 싶은 무언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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