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 구원회-112-
표정을 굳히는 도훈을 본 림 소좌가 슬쩍 시선을 돌렸다. 본능적인 감각으로 도훈이 내뿜는 살기를 캐치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엔 못생기고 뚱뚱한 여장 도훈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저런 돼지같은 여자한테서 무슨 살기를.'
눈을 버렸다고 생각한 림 소좌가 다시 구혜진에게 목례를 하더니 밖으로 나갔다.
도훈은 도훈대로 림 소좌의 반응에 살짝 놀랐다.
'저 새끼, 방금 내 살기를 감지한 거야?'
[네. 굉장하군요. 무공을 익히지 않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는 데, 살기 감지를 해내다니···. 대단히 감각이 빼어난 군인처럼 보입니다.]
'죽고 사는 전쟁터에서 제법 굴러먹다 온 녀석인가 보군. 아까 체 게바라보다는 훨씬 낫지만 그래봐야 십원짜리인 건 변함 없지.'
도훈이 혜진에게 급히 물었다.
"방금 들은 말이 사실이면 장목사가 이미 처녀 999명을 채웠다는 걸까?"
"그런 것 같아."
"안 되겠어. 마지막 한 명까지 기다리다간 너무 늦겠어. 차라리 지금 움직일래."
"지금? 여기서? 미쳤어? 사방에 무장한 군인들이 쫙 깔려 있어. 방금 본 알파 팀장도 북한 특수부대 출신의 귀순자야. 별명이 사람 잡는 백정이었다고!"
"백정이라니?"
"탈북하는 과정에서 소속 부하 10여명을 제 손으로 죽이고 내려온 사람이야. 네가 대체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혜진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도훈은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귓등으로 흘릴 뿐이었다.
'웃기고 있군. 진짜 개백정이 누군지 보여줘야 믿으려나?'
[지금 주인님 차림이면 불신하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총 든 군인 대 여장한 대학생의 대결이라면요.]
'내가 뭐?'
스스로 분장했다는 사실을 잊은 도훈이 거울을 보더니 흠칫 놀랐다.
'뭐, 뭐야 저 씹돼지년은!?'
[주인님이잖습니까. 여장한 주인님요.]
'씨발, 존나 놀랐네. 진짜로 좆같이도 생겼구나. 이 정도였단 말이야?'
[몰랐으면 무능이고 알았으면 병신인 수준이랄까요?]
'닥쳐!'
"···게다가 장목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잖아?"
"어디 있든 결국엔 저택 안이겠지. 꽁꽁 숨어 봐야, 손바닥 안이란 소리야."
"아니. 못 찾아."
"응?"
혜진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장목사는 가끔 저택 안에서도 잠적할 때가 있었어."
"그게 무슨 뜻이야? 잠적이라니?"
도훈이 어이없다는 듯 되묻자 혜진이 설명을 덧붙였다.
"나도 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야. 이 저택 구조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아는데, 장목사는 한번 사라지면 땅으로 꺼진 건지 하늘로 솟은 건지 완전히 종적을 감춰버린다고. 그러다 몇 시간 후에 뜬금없는 장소에서 다시 나타나."
"아니, 어떻게 그게···."
'로시, 혹시 뱀파이어에게 투명화 스킬이 있나?'
[아뇨. 처음 듣습니다. 뱀파이어의 주요 특성은 강력한 재생력과 매혹이나 속박등의 정신조작류 스킬, 그리고 흡혈과 변신 정도입니다.]
'변신이라고?'
[네. 박쥐로 변신이 가능합니다. 일종의 폴리모프 스킬이죠.]
'그럼 정말로 박쥐만큼 크기가 줄어드는 거야?'
[네. 진혈의 뱀파이어는 언제 어디서나 변신이 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 능력이 약한 잡종일수록 변신 시간에 제한이 있고요.]
'호오. 그럼 장만석이 박쥐로 변신해 창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다면···.'
[감쪽같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겠죠. 하지만 언젠가 변신이 풀릴 겁니다. 그는 순혈이 아니니까요.]
'하여간 노망난 노인네가 마지막 의식 전까지 모습을 숨길 작정이로군. 설마 내가 찾아온걸 눈치챈 건 아니겠지?'
[만약 알았다면 휘하의 군인들을 보내 선제타격을 가하지 않았을까요? 지금까지 내버려 뒀을리 없습니다.]
'그렇긴 해. 아까 조 대위나 방금 만난 림 소좌를 봐선 전혀 나를 경계 안 하는 것 같거든. 흐음 그럼 이제 어떻게 한다?'
"그럼 난 이제 뭐하면 돼?"
"검사가 끝난 처녀들은 별도의 장소에서 대기하도록 되어 있어."
"그럼 마지막 제물이 될 처녀도 대기 중이겠네?"
"응. 지금부터 슬슬 준비해야 할 거야. 목욕재계를 시켜야 하니까."
"나 같은 예비 인력은?"
"예비 인력도 만약을 대비해 함께 준비를···. 가만, 너 무슨 꿍꿍인데?"
"음, 나한테 한가지 계획이 있어."
"계획?"
도훈이 귓속말로 작전을 속삭였다.
내용을 들은 혜진이 눈을 부릅뜨며 충격에 빠졌다.
* * *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내 생각에는 이게 최선인 것 같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두 사람은 계속 옥신각신 다투며 별관을 나와 장목사의 저택으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었으나, 장목사의 심복인 혜진과 함께 있는 못생긴 처녀에 대해선 딱히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장목사의 대저택으로 들어간 도훈이 물었다.
"집이 뭐가 이렇게 넓어? 무슨 박물관도 아니고."
"···날 바짝 따라와. 길 잃어 버릴 수 있으니까."
혜진을 뒤따르며 도훈은 저택의 구조를 재빨리 파악했다. 도합 3층짜리 건물로 층당 면적은 200평에 육박해 보이는 대저택이었다.
혜진이 통로를 지날때 마다 메이드복을 입은 하녀들이 허리를 바짝 숙여 인사했다. 도훈은 비로소 구원회 내에서 그녀의 위상에 대해 실감할 수 있었다.
'다들 혜진 앞에서 군기가 바짝 들었군.'
[장목사의 총애를 받던 구원회의 장로이니, 다들 실질적인 2인자로 여기지 않았을까요? 그러니 장목사도 자신의 금고까지 맡겼겠죠.]
'그거야 세뇌에 걸려있을 때 일이지. 이젠 나만큼이나 장목사를 죽이고 싶어할 걸? 본인이 당한 게 있는데.'
"이쪽으로."
"여긴 어디야."
"따라와 보면 알아."
혜진이 1층에 있는 커다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휘황찬란하게 꾸며진 화려한 룸이 나타났다.
중세시대의 성에서나 볼 법한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인상적이었다.
그곳 소파에 앉아있던 젊은 여자 한 명이 혜진을 알아보더니 벌떡 일어나 인사했다.
"자, 장로님!"
"괜찮아. 편히 앉아있어."
"아, 네, 넵."
혜진이 자연스럽게 도훈을 데려가 소개했다.
"이쪽은 너처럼 목사님을 모시기 위해 데려온 친구야. 먼저 온 친구는 아까 장목사님의 부름을 받고 갔다지?"
"마, 맞습니다. 제 순번은 그럼 내일인가요?"
"음, 내일이긴 한데 실제론 오늘이라고 봐야해."
"오, 오늘요?"
"응. 자정이 지나면 바로 목사님이 부르실 거거든."
"아···."
"그러니 너도 이제 슬슬 준비해야겠지? 4시간도 안 남았네."
"제가 뭘 준비하면 될까요?"
혜진이 마지막 제물로 바쳐질 처녀와 여장 도훈을 번갈아 쳐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미리 목욕부터 해야 해. 목사님의 은총을 받기전 마지막으로 치르는 의식이야. 목욕이 끝나면 몸에 오일을 바르고···. 나머진 이따 설명해 줄게."
"아···. 넵."
"이 친구도 함께 할 거야."
혜진이 여장 도훈을 가리키며 못 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 같이요? 혹시 저희가 함께 들어가나요?"
"그게 무슨 뜻이지?"
"그, 그러니까 목사님의 침소로 함께···."
혜진은 처녀의 말이 스리섬을 뜻한다는 것을 알고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 아니 그런 건 아니야. 일단 준비만 같이 하는 거야.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사고라면 무슨···."
"넌 신경 쓸 필요 없어. 아무튼 둘 다 날 따라와."
"네, 넵."
처녀가 긴장한 표정으로 혜진을 뒤따랐다.
도훈도 어깨를 으쓱하며 함께 이동했다.
도훈이 보니, 마지막 제물로 바쳐질 처녀는 먼젓번 분당지부에서 차출되었던 처녀에 비하면 훨씬 반반한 외모였다.
다소 긴장한 탓에 표정이 굳어있긴 했지만, 채 젖살도 빠지지 않는 앳 된 얼굴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전 대구에서 올라왔어요."
"전 분당요."
"너,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여기 사람들이 굉장히 잘해주시거든요. 편히 계시면 돼요."
정작 긴장한 것은 본인이었지만, 처녀는 도훈을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그렇군요. 근데 계속 이 방에서 혼자서 대기하신 거예요?"
"아뇨. 원래 같이 기다리던 친구가 있었는데···. 아까 목사님께서 먼저 찾으셔서 불려갔어요."
"아하. 근데 이름이 어떻게 돼요?"
"미진이요. 그쪽은요?"
"저요? 저는···."
미처 이름을 생각하지 못했던 도훈이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도순이요."
"또순이요?"
"아니, 도순···. 암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나이가 엄청 어려보이는데 혹시 몇살이에요?"
"아, 저는···. 올해 스물요. 혹시 언니는···."
도훈의 면상이 워낙에 빻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언니라는 호칭이 튀어나왔다.
"음, 비슷해요. 그쪽이랑."
"아, 앗! 그, 그러시구나. 죄송해요, 몰랐어요."
[근데 정말로 하실 겁니까?]
'응, 이게 최선이라고 봐.'
[차라리 혜진양에게 부탁해 두 사람의 순서를 바꾸는 방법은 어떻습니까?]
'순서를 바꿨는데, 장만석이 못생겼다고 거부하면?'
[예?]
'아무리 장만석이라도 지금 이 얼굴은 감당하기 힘들지 않겠어? 나도 거울 보면 욕부터 나오던데.'
[그건 주인님 면상이···. 앗 죄송합니다.]
'됐어. 내 얼굴도 아닌데 뭘. 얼굴은 그렇다치고 덩치까지 좋으니 여성미가 너무 떨어져. 내가 다신 여장하나 봐라.'
[전 분명히 말렸습니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위치를 옮겨 어느새 욕조 앞에 도착했다.
커다란 통유리 건너에 보이는 욕조는 조그만 수영장을 방불케할 정도로 커다란 사이즈였다.
욕조 안에선 뜨거운 물이 받아졌는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는데, 중정처럼 위가 뚫린 공간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여긴···."
"이곳이 두 사람이 목욕재계를 하며 준비하는 곳이야. 시간이 없으니 함께 들어갈 거야."
"아···. 넵."
"옷은 벗어서 저쪽으로."
말을 이어가던 혜진은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는지 여장 도훈을 향해 말했다.
"아니야. 넌 그냥 여기서 기다려."
"···예?"
"기다리라고."
"자, 잠깐만요. 아깐 분명 저희 둘이서···."
"됐어. 내가 함께 들어갈 거야."
"예?"
"내 말 못 들었어? 여기 있는 미진이랑 내가 함께 탕에 들어갈테니 넌 거기서 기다리고 있으라고."
'헉. 이게 뭐야?'
[설마 혜진양이 배신을···.]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네?]
'그 일을 나 대신 하겠다는 뜻인가?'
[설마···.]
'흐음.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
도훈이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데, 혜진이 먼저 스스럼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워낙에 몸매가 빼어난 혜진이었기 때문에, 함께 탕에 들어가는 미진마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몸매 미쳤네.'
[정말 대단한 여인입니다.]
'어우, 보기만 해도 대꼴이다.'
"뭐해? 얼른 벗지 않고."
"아, 아···. 넵."
혜진의 우월한 몸매에 기가 눌린 미진이 서서히 옷을 벗었다.
늘씬한 체형이긴 했지만, 고저스한 혜진에 비교하면 볼륨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일자 몸이었다.
"안으로 따라 들어와. 넌 거기서 대기하고."
혜진이 한 번 더 도훈에게 경고하며 통유리 너머 야외 욕조로 들어갔다. 도훈은 사방이 투명한 통유리 밖에서 두 사람의 행동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혜진양이 할 수 있을까요?]
'자신이 있으니 자기가 한다고 했겠지. 지켜봐야지 이제.' 도훈은 팔짱을 낀 채 욕탕안에 들어간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
"그래. 미진이라고 했지?"
"네, 자, 장로님."
"긴장할 거 없어. 같은 여자끼리 있어도 이렇게 긴장하면, 목사님 앞에선 어떡하려고 그래?"
"아, 아···네. 저 근데···."
"응?"
"이번 일 끝나면 저 수호천사로 승급되게 해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장로인 내가 보증할게."
"아···. 가, 감사합니다."
"물론 그 전에."
혜진이 욕조 안에서 몸을 이동하며 미진의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예?"
"몇가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
"네, 넵."
혜진의 팔이 어깨동무를 두르는 척 미진의 어깨를 두르더니 손끝으로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정말 섹스는 한번도 안 해본 거 맞지?"
"아, 아···. 네. 남자친구 한번도 안 사귀어 봤어요."
"남자친구만 안 사귈 뿐 아다 뗀 애들도 많이 있던데?"
"저, 정말이에요. 처녀막 여부도 의사선생님께서 직접 확인해 주셨어요."
"그래? 근데 왜 이렇게 젖꼭지가 딱딱해졌는데?"
"그, 그건···."
미진은 차마 혜진이 계속 손끝으로 자극해서 그렇다고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뜨거운 욕조물에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고,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자, 장로님 왜 이러시지? 서,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