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 구원회-111-
장만석은 좀처럼 불안감이 잦아들지 않았다.
모든 것을 계획대로 진행해온 그에겐 무척 낯선 경험이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수십년 간 원하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이뤄왔는데,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초조해지다니. 나 답지 않게 말이야.'
만석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어느덧 70에 가까워진 나이였지만, 여전히 유년 시절의 기억이 생생히 떠올랐다.
장만석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전쟁이 막 끝난 시기였기 때문에, 국민 대부분은 가난했다.
하지만 장만석의 집은 유독 더 가난했다. 모두 8남매를 거둔 그의 아버지는, 뼈가 부서지도록 밤낮 없이 일을 했음에도 가족들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었다.
아버지는 그에게 '만석꾼'같은 부농이 되라는 의미에서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만석의 꿈은 농부가 아니었다.
그는 목사가 되고 싶었다.
배를 쫄쫄 굶던 시절, 그에게 아낌없이 먹을 것을 내주던 동네 목사를 흠모하게 된 만석은 자기도 커서 꼭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결심했다.
형제들 중 가장 공부를 잘했던 만석은, 원하던 대로 신학대에 진학해 목사 안수까지 받게 되었다. 하지만 진정 목사가 되는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과거보다 조금 형편이 나아졌을 뿐, 그에게 아무런 지원도 해줄 수 없었다. 결국 시골 마을의 개척교회 부터 시작한 만석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자신의 첫번째 교회를 키워 나가게 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은 신실했던 그의 믿음마저 흔들 정도로 가혹했다. 동네 주민들은 교회를 마을 회관 쯤으로 여겼으며, 십일조는 커녕 헌금을 내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농번기가 되면 그를 불러다 잡일을 부탁했고, 거기서 받은 품삯으로 겨우겨우 교회의 살림을 꾸려야했다.
젊은 시절을 고생고생하며 교회를 일구던 그도 어느덧 마흔에 이르렀다. 그 사이 그처럼 신앙심이 깊은 여자를 만나 결혼했고 자식도 태어났다. 그러나 교회의 살림은 처음과 비교해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자식은 늘 배고프다며 울어댔고, 그토록 신실했던 와이프도 가난을 못 이기고 결국 쌀 한되에 이웃집 남자에게 몸을 팔고 말았다.
하지만 장만석은 도저히 부인을 탓할 수 없었다.
도리어 비참한 상황을 만든 신을 원망했다.
장만석은 태어나 처음으로 신을 부정했다.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주시라고.
이것은 숫제 죽으라는 뜻이냐며.
장만석은 실제로 불을 지르기 위해, 휘발유 말통을 사다가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일군 교회에 뿌렸다. 정녕 자신이 죽길 원한다면, 기꺼이 당신께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다만 처자식만은 두 번 다시 배곯지 말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했다.
바로 그때였다.
장만석이 플레이어의 계시를 받게 된 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허망한 순간이었지. 처음으로 신을 부정하는 순간, 신과 대면하게 되었으니.'
하지만 신은 그가 아는 신과 달랐다.
신은 그에게 '플레이어'라는 특별한 능력을 하사했다.
장만석은 이후 '연금술사'가 되었다.
장만석의 능력은 정액을 다른 물질로 변환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그는 민망스럽게도 하고많은 것중에 하필 정액이 연금술의 재료가 되었는지 고심했다.
이후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정액은 남자가 밖으로 배출할 수 있는 물질 중 가장 양이 적은 편이다.
-정액은 그 특성상 연속해서 여러번 배출 할 수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차올라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
만약 자신의 피나, 침, 혹은 다른 어떤 것을 바꾸는 능력이었다면 너무 과도한 능력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적절히 제한하기 위함이라는 추정이었다.
또 그가 가진 신체적 특징이 대물인 것도 있었다.
발기시 길이 장장 30cm.
실은 장만석은 어린 시절 바로 그 특징 때문에 늘 고통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 따라간 목욕탕에서 자신의 잦이가 남보다 훨씬 거대하다는 사실을 들켰고, 다음날부터 전교생이 그를 '말잦이'라고 놀릴만큼 유명 인사가 되었다.
신체 비례에 맞지 않게 과도하게 큰 잦이는 도리어 고통이었다.
특히 실물로 직접 보고 싶다며 바지를 한번 내려보라는 불량 학생들에게, 그는 수 없이 성추행을 당해야 했다.
바지를 입어도 밖으로 돌출되는 거대한 양물 때문에 매번 주목받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여성의 오해로 성추행범으로 몰린 적도 있었다.
심지어 너무 큰 잦이 때문에 여자친구도 제대로 사귈 수 없었다.
그는 대학교 때 처음으로 사귄 여자친구와 첫경험을 하던 때,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눈물을 흘리던 장면을 보고 트라우마에 빠졌다.
대물은 그에게 축복이 아닌 저주에 가까웠다.
결혼할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좆이었다.
'후후-. 하지만 누가 알았겠어. 더 나이가 들어보니 이게 정말 신이 주신 선물이었다는 걸.'
그의 와이프는 신앙심이 신실한 것과 별개로, 다니던 교회마다 걸레라고 불릴 만큼 헤픈 여자였다. 교회 오빠란 오빠에겐 모두 한 번씩 대줄 정도로 섹스를 밝혔다.
그러다 장만석을 만났고, 그의 대물에 푹 빠졌다. 비록 가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을 판적도 있지만, 그것은 섹스의 쾌락 때문이기보단 생존을 위한 희생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만 과거의 전력이 있었기에 쉽게 부정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이다.
플레이어가 된 만석은, 자신의 정액을 이용해 가난한 개척교회목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때부터 난 신을 저버렸는지 모르지.'
극적으로 플레이가 되면서 교회를 부흥하는데 성공했지만, 오히려 그는 그 사건으로 신실함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가 공부하고 평생을 익혔던 성경과, 실제가 다르다는 걸 깨달아 버린 것이다.
-나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을 부정하는 목사.
그는 점점 타락해갔다.
플레이어에게 할당된 인공지능은 그에게 경고했다.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플레이어의 힘은 다시 회수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게 된 욕망은, 장만석에게 일생을 바꿀 결단을 내리게 만든다.
그것은 바로 탈주자가 되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플레이어에서 벗어난 장만석은, 자신이 진정 바라던 것이 신을 갈구하는 게 아니라 가난한 시절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던 목사의 동정심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모든 원인은 바로 지독한 가난에서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그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부자가 되는 길밖에 없다는 것도.
장만석은 이에 원대한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진행시켰다.
자신의 교회를 더욱 부흥시키고, 몸집을 계속 키워 전국 최대의 규모로 만들 계획을 품었다.
기독교 단체에서는 교리를 벗어나는 그의 행위에, 이단 판정을 내리고 기독교 계에서 아예 퇴출까지 시켰으나 그는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성경을 재해석하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교회 신도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다. 그의 교회는 점점 커졌으며, 나중에는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교회로 거듭날 수 있었다.
또한 돈에 대한 집착도 점점 심해져,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쥐어짜기 시작했다. 그는 신도들을 착취했고, 등쳐 먹었으며 그 과정에 이루어진 모든 돈들을 해외로 빼돌렸다.
10억이 100억이 되고, 수백억이 되었을 때 그는 플레이어 때 얻은 아이템을 활용해 엄청난 레버리지의 투자를 성공시키게 된다.
그 이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부가 된 장만석은, 비로서 아버지가 지어 주신 자신의 이름이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조선 시대의 만석꾼보다 더 큰 부자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쿨럭-. 하지만 그 사이 나는 너무 노쇠해 버렸지.'
평생을 일군 재산도, 수없이 즐겼던 섹스도 아무 소용 없었다.
그는 점점 쇠약해 졌으며, 성욕도 잃어갔다.
재산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났으나, 그는 결국 다 써보지도 못하고 죽을 거라는 생각에 우울해졌다.
집에서 빈둥빈둥 노는 게 불쌍해서 데려온 동생은, 목사 안수도 받지 않고 부목사가 되어 자신의 재산을 호시탐탐 탐냈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놈은, 자신이 버린 여자와 붙어먹더니 이제 제 아비가 죽을날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만석은 이들에게 한 푼의 재산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젊은 시절 고생했던 마누라와 사별하면서,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망나니 아들 놈이 꿀꺽 할 생각을 하니 원통해서 잠이 오질 않았다.
결국 그는 아직 기력이 남아있을 때 특단의 결정을 내리게 된다.
과거 중국 진시황이 꿈궜던 것처럼, 스스로 불로장생의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수많은 조사 끝에, 미국에서 정체를 숨긴 채 살아가는 뱀파이어와 접선할 수 있었고, 그에게 거액의 돈을 쥐어줘가며 겨우 잡종뱀파이어로 거듭나게 되었다.
하지만 잡종의 한계는 명확했다.
그는 원래보다 더 강해졌고, 젊어졌으며, 심지어 정력도 좋아졌지만 결국엔 죽는 시간을 조금 더 연장할 뿐이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새롭게 모시게 된 신에게 요청했고, 진혈 뱀파이어로 거듭나는 의식을 치르기에 이른다.
"···하아, 이제껏 모든 것이 계획대로 이루어졌다. 그런데도 이렇게 불안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내 몸이 너무 약해졌기 때문인가?"
만석은 약해진 몸과 정신이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진혈 뱀파이어가 되는 의식을 치르는 동안,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정신도 치매 환자처럼 오락가락하고 시중을 드는 여자들이 똥오줌 수발도 맡아야 했다.
그는 오로지 불로장생을 이루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든 역경을 극복해냈다.
'···쓸데없는 기우일 뿐이야. 이제 고작 2명이다. 몇 시간 후면 나는 마침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로 거듭나는 거야. 수많은 사이비들이 스스로 신을 참칭하고 불사를 주장했으나 결국 모두 죽고 말았지. 하지만 나는 다르다. 나는 정말로 불사의 존재가 될 것이다.'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부, 부르셨습니까 목사님."
"구실장은, 구실장은 아직인가?"
"아···. 지금 당장 불러오겠습니다."
"아니다. 됐다, 마지막까지 그 애를 괴롭힐 필요는 없겠지. 지금 당장 처녀를 들여라."
"예, 예?"
"못 들었느냐? 오늘 밤 들일 처녀를 침소로 데려오라 했다."
"아직 저녁 드시기도 전인데···."
장만석은 자꾸 딴지를 거는 하녀를 노려보았다.
뱀파이어 특유의 붉은 눈이 레이저처럼 쏘아지며 정신을 속박했다.
{데려오라고 했다. 네 판단을 물은 게 아니야.}
"아, 아! 넵. 당장 준비시키겠습니다!"
정식 속박을 받은 하녀가 혼이 나간 표정으로 침소를 뛰쳐나갔다.
장만석이 걸치고 있던 가운을 벗어 던지며 축 처진 양물을 내려다 보았다.
'그래. 쓸데없이 불안해 할 필요 없지. 최대한 빨리 의식을 치르고, 자정이 되면 바로 또 취하면 그만이야.'
장만석이 예정보다 일찍 거사를 진행했다.
모르핀이 없는 그는 물건을 제대로 세우지도 못했지만, 어떻게든 1000명의 처녀를 채우고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끝까지 해치웠다.
끝내 999명을 채운 장만석은 그대로 탈진하듯 침대에 쓰러졌다.
* * *
도훈과 혜진이 별관을 나서려고 하는데, 누군가 찾아왔다.
강팍한 인상의 군인이었는데 앞서 봤던 껄렁한 조 대위와는 포스부터가 다른 천생 군인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실장님. 알파 팀장입니다."
'저자가 알파 팀장?'
[눈빛이 상당히 매섭군요. 알파 팀장도 조 대위처럼 한국인인 모양입니다.]
'한국인은 맞는데, 느낌이 살짝 북한군 같지 않아?'
[북한군이요? 억양에서 전혀 북한 말씨가 느껴지지 않는데요?]
'아니. 생긴게 말이야. 표준어를 쓰긴 하는데, 전형적인 북한 군인 같아서.'
[아무튼 주의하십시오. 저택 입구를 지키던 다른 용병들과는 전혀 다른 타입으로 보입니다. 돈에 팔려온 용병 아니라 진짜 군인 같달까요?]
'진짜 군인이면 어때? 십원 짜리 동전 하나로도 죽일 수 있는건 똑같은데.'
[그거야 당연하지만요.]
"아···. 림영석 소좌님께서 여기까진 무슨 일로···."
"장목사님의 전언을 전하러 왔습니다."
"전언이요?"
"마지막 의식만 남겨두었으니, 자정이 되면 평소처럼 준비해 놓으라고요."
"예? 마지막 의식이라뇨? 아직···. 서, 설마."
혜진이 화들짝 놀랐다.
장만석이 자신의 입회 없이 의식을 치른 것은 처음이었다.
그의 행동 패턴이 점점 예상치 못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저는 전령 역할로 온 것이지 그분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럼 이만."
"자, 잠시만요. 목사님은 그럼 지금 어디에···."
"기밀입니다."
"림 소좌님. 저 구혜진이에요. 비서가 목사님 위치를 묻는데 ···."
"죄송합니다. 목사님의 엄명입니다. 혼자 있고 싶으니 누구에게도 알리지 말라셔서요."
"···예?"
림 소좌의 대답에 도훈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