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05화 (1,885/2,000)

1905. 구원회-110-

'장만석은 나처럼 플레이어였잖아.'

[확실하진 않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죠.]

'그렇다면 구미호니, 늑대인간이니, 뱀파이어니 하는 인외의 존재들이 실존하는 걸 알고 있었을 거 아니야?'

[등급이 낮으면 모를수도 있지만, 장만석의 나이를 생각하면 ···. 아마도 깨닫게 되었을 겁니다. 호칭이 올라갈수록 해금되는 정보가 늘어나니까요.]

'혹시 그 사실을 알게 된 장만석이 뱀파이어를 직접 찾아간 게 아닐까?'

[뱀파이어를 찾아가요? 하지만 최근 100여년간 한국에는 뱀파 이어의 유입이 없었을 텐데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다른 이종족과 달리 뱀파이어들은 순혈 주의를 고집합니다.]

'순혈주의?'

[인간과 아종교배하면서 유전적인 힘이 약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실제로 진혈의 뱀파이어에 비하면 씬 블러드들의 능력은 수천년동안 계속 쇠약해져 왔으니까요. 그 이후 그들은 한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그게 순혈주의 입니다.]

'그래서 그게 뭐냐고.'

[일종의 근친입니다.]

'뭐라고?'

[말 그대로입니다. 씬 블러드들은 그나마 남은 유전적인 힘을 보존하기 위해 특단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게 바로 오랜 시간 가문을 유지해온 뱀파이어끼리만 혼인시키는 순혈주의 원칙입니다. 또한 뱀파이어의 흡혈에서 살아남아 새로운 뱀파이어를 만드는 것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헐.'

[이는 이동의 자유마저 제약하는 결과를 낳았기 때문에, 뱀파 이어들은 자신의 활동 영역을 결코 벗어나지 않습니다. 통제받지 않는 곳에서 무수한 아종을 만들어 낼 경우를 종족 전체에서 방지하는 규율이지요.]

'그래서 한국에 현재 뱀파이어가 없다?'

[네. 만약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다른 뱀파이어들이 척살하게 되어 있거든요. 또한 한국엔 과거부터 다른 이종족들이 먼저 터를 잡고 있어, 뱀파이어들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종족이라니? 설마 구미호같은?'

[더 깊이 들어가면 이야기가 다른곳으로 새기 때문에 다음에 말씀드리죠.]

'아무튼 그럼 장만석이 한국에서 감염 되었을 확률은 전혀 없다고 보면···. 혹시 미국?'

[네?]

'왜, 일전에 그랬잖아. 선교활동으로 미국에 건너가서 죽을 뻔했었다고. 혹시 그때 의도적으로 뱀파이어와 조우한 게 아닐까?'

[장만석이 뱀파이어의 힘을 얻기 위해, 일부러 미국에 건너가 뱀파이어에 물렸다고요?]

'미국이 꼭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뱀파이어의 거주지로 선교 활동을 다녔다고 한다면···.'

[음, 하지만 뱀파이어들은 민간인을 감염시키는걸 극도로 꺼립니다. 아까 말한 순혈주의 원칙 때문에요. 또한···. 아마 정말로 감염을 위해 뱀파이어에게 물렸다면,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죽을뻔 했다고 했잖아.'

[흐음, 혜진양이 당시에 간호사였으니까 확실히 기억하지 않을까요?]

'혹시 뱀파이어에 물렸을 때 특징이 뭐야?'

[주인님이 영화에서 본 것과 흡사합니다. 마늘과 십자가를 무서워한다는 건 틀렸지만, 감염 증세는 제대로 묘사를 했더군요.]

"혜진, 혹시 뭐하나만 물어봐도 돼?"

"뭐? 네 부모님이 뺏긴 돈을 돌려줄 수 있냐고? 그건 불가능해.

내가 금고지기긴 하지만, 부스러기 만 움직일 수 있을 뿐이야. 떡을 옮기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남기 마련이니까. 20억 이상의 돈이 한번에 움직이면 곧바로 장목사에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 얘기가 아니야."

"아니야? 미안. 난 또···."

"장만석이 미국에 갔을 때 습격을 받아서 병원에 실려왔다고 했잖아."

"응? 그건 왜?"

"그때 이야기좀 자세히 해줄 수 있을까?"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한 건데?"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서."

"흠···. 난 당시 입원 병동에 누워 있던 목사님을 케어했을 뿐이야. 수술방에 들어가진 않아서 정확한 부상 상태에 대해선 몰라."

"그래도 병명이 있었을 거 아니야? 어디가 다친 거였어?"

"그게···."

혜진이 시선을 왼쪽 위로 돌리면서 과거의 기억을 떠올렸다.

"다발성 전신 골절이었어."

"전신 골절?"

"응. 교통 사고를 당해 온 몸의 뼈가 으스러져 있었거든. 그래서 말했잖아. 거의 죽을 뻔 했다고."

"습격을 당했다고 하지 않았어?"

"습격이 맞을 거야. 트럭이 달려와서 장목사님이 타고 있던 승용차를 측면에서 들이받고 그대로 도주했다고 들었어."

"그럼 단순 뺑소니일수도 있잖아?"

"그래서 뺑소니 사건으로 경찰이 조사했는데, 트럭 기사가 특정 오컬트 단체 소속으로 밝혀졌거든."

"오컬트 단체라고?"

"블러드엔 블러드. 미국에서 유명한 뱀파이어 숭배단체야. 뱀파이어가 실제로 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고?"

"왜? 미국에는 지구평평설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수만명이 넘어. 나라가 크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니까 별의 별 사이비 단체가 성행하거든."

'뭔가 이상한데?'

[그렇군요. 뱀파이어에게 당했다기보단 단순히 교통사고를 가장한 테러에 가까운데요?]

'아니면···.'

[뭔가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뺑소니친 가해자가 나중에 잡혀서 자백을 했다며.'

[네.]

'어쩌면 뱀파이어에게 물리고 난 뒤 마지막에 설거지를 시킨 건 아닐까?'

[설거지요?]

'그렇지. 가해자가 뱀파이어 숭배단체 회원이라며. 만약 진짜 뱀파이어가 나타나 사고사로 보이게끔 마무리를 부탁했다면?'

[오, 일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그리고 전신 복합 골절로 수술을 하게 되면, 뱀파이어에게 물린 이빨 자국 같은 건 전혀 못 찾을 거 아니야?'

[그렇겠네요.]

도훈이 다시 물었다.

"혹시 당시 장목사에게 특이사항은 없었어? 목에 뭔가에 물린 자국이 있다거나."

"물린 자국? 글쎄···. 그런건 잘 몰라. 그땐 정말 미라처럼 전신에 부목과 붕대를 두르고 있어서···."

"아. 복합골절 수술이라고 했지."

"특이사항 하니까, 조금 이상한 일이 있긴 했어."

"뭔데?"

도훈이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게···. 회복이 비정상적으로 빨랐어. 한국에서 건너 온 유력한 종교인이라고 해서 그때 VIP병동에서 관리했거든. 그래서 병원에서도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긴 했지만, 치료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다들 놀랐던 기억이 나. 주님께서 이적을 보였다는 의사들도 있었을 정도로."

[아앗, 주인님!]

'왜?'

[다른 건 몰라도 부상의 회복속도가 빠른 것은 뱀파이어의 특성중 하나입니다.]

'그래?'

[네. 진혈의 뱀파이어가 피부세포 한 조각만 가지고도 부활할 정도로 강력한 재생력을 지녔다고 했잖습니까. 씬 블러드들도 그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인과는 비교도 안되는 회복능력을 지녔습니다. 장만석이 이미 그때 뱀파이어의 힘을 획득했다고 보는게 맞는 추정입니다.]

'흐음, 그렇다면 둘 중 하나군. 장만석이 정말 미국에 가서 뱀파 이어에 물린 뒤 사고사로 위장하려다 실패했거나 다른 곳에서 뱀파이어의 힘을 획득한 것을 들켜서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뱀파이어 단체에 테러를 당한 것이군.'

[주인님 추측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전자든 후자든요. 그리고 그때 이미 뱀파이어의 힘이 있었다면 혜진양이 그의 꾐에 넘어간 것도 이해가 됩니다.]

'응? 그게 뭐?'

[뱀파이어의 능력 중 하나가 매혹이라는 스킬입니다. 주인님의 호감도 버프처럼 이성을 유혹하는 강력한 눈빛을 보낼 수 있거든요.]

'그게 정말이야?'

[네. 또한 뱀파이어들은 외양도 굉장히 매력적으로 변합니다.]

'하긴 영상에서 봤을 때 숀 코네리처럼 멋지게 늙긴 했더라고.

지금은 그냥 쭈구렁 꼽추 할배지만.'

장만석이 뱀파이어의 힘을 발휘한 시기를 역추적하던 도훈은 국내에는 없는 뱀파이어와 조우하기 위해 외국을 나갔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놈의 정체에 대해 알면 알수록 도훈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지고 있었다.

'인간도 아닌 괴물 새끼를 죽이는 거라니, 죄책감도 덜어지는 기분이군.'

[인외의 존재를 처단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규율에도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날 만나는 순간, 놈은 이제 죽었다고 봐야지.'

* * *

저택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잠들어 있던 장만석이 눈을 떴다.

"끄으···. 뼈마디가 으스러질 것 같군. 쿨럭."

잠에선 깬 장만석은 한동안 뼈가 시려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몇해 전 미국에서 트럭에 추돌하여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한 후유증 때문이었다.

"미친 흡혈귀 새끼들, 설마하니 민간인을 시켜 고속도로에서 트럭으로 받아버릴 줄이야. 그땐 정말로 죽는 줄 알았는데···."

장만석은 도훈의 추측대로 미국에서 뱀파이어에 감염되었다.

그러나 그 순서는 도훈의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그가 뱀파이어가 된 것은 교통사고 이후였던 것.

사실 그는 오랫동안 뱀파이어와 접촉하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다 우연히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 중인 현역 뱀파이어와 선이 닿았고, 그에게 뱀파이어의 힘을 이어 받기로 약속한다.

해당 뱀파이어는 헌혈용 혈액을 빼돌려 다른 뱀파이어에 공급하는 일종의 식량보급책(?)이었는데 장만석에게 거금을 약속받고 그를 감염시켜 주기로 약조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무식하기 짝이 없었는데, 다른 뱀파이어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교통사고를 유도한 뒤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수술하는 동안 몰래 물리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블러드엔 블러드 광신도가 필요 이상으로 대형 사고를 일으켰고, 장만석은 그때 정말로 죽을 뻔 했다. 원래는 팔다리 하나 정도 부러지는 선으로 계획했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뱀파이어의 힘을 얻게 된 장만석은, 엄청난 회복속도를 보고 뱀파이어가 되었음을 실감했다.

물론 진혈의 뱀파이어나, 순혈주의를 지킨 씬 블러드에 비해선 형편없는 잡종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인간에 비할바는 아니었다.

또한 그는 당시 입원병동에서 근무하던 구혜진을 매혹 스킬로 유혹을 시도하면서 또 다른 능력도 개화했음을 확인했다.

"으으, 몸이 부서질 것 같지만 마침내 끝이 보이는 구나."

미국에서 뱀파이어의 힘을 얻게 된 장만석은, 다시 국내로 돌아와 진혈의 뱀파이어가 되는 의식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플레이어를 탈주한 뒤 그가 모시는 새로운 신이 알려준 것이었다.

-1000일 동안 쉼 없이, 천 명의 처녀혈을 마실 것.

현대의 법치국가에선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이었지만, 장만석은 평생의 공을 들여 완성한 자신의 왕국을 이용한다면 해당 미션을 성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실제로 998명까지 성공시킨 그는 이제 마지막 의식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흐흐, 진혈의 뱀파이어로 변신하고나면 뼈마디가 시리는 이 고통에서도 해방이다. 새로운 육체로 거듭나 영생을 누릴 것이야!'

장만석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여봐라. 밖에 누구 없느냐."

장만석의 침소를 열고 메이드복을 입은 젊은 여자가 겁먹은 표정으로 들어왔다.

"기침하셨습니까, 목사님."

"구실장은 아직인가?"

"도착하셨습니다. 지금 별관에서 검사 진행한다고 기별이 왔습니다."

"크흠···. 오늘 볼 아이들은 무탈 하겠지?"

"네. 한 분은 목욕재계까지 끝내고 준비중에 있고, 다른 한분은 새벽 거사를 위해 취침중입니다."

"흐음, 알파팀장은?"

"침소 밖에서 경호중입니다."

"들어오라고 해."

"네."

메이드복을 입은 여자가 꾸벅 고갤 숙이고 물러난 뒤, 검은 색 방호복을 껴입은 군인 한 명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별일 없겠지?"

"네. 분부하신 대로 더블 스쿼드로 경계 병력을 재배치 했습니다. 차후 찰리팀과 교대할 때 반반씩 돌아가며 휴식을 취할 예정입니다."

"그래. 림 소좌 자네만 믿겠네."

"걱정 마십시오, 목사님."

"내 이번 일만 잘 끝나고 나면, 경호팀 전원에게 섭섭지 않게 포상을 내리겠네. 특히 림 소좌 자네는 길게 휴가를 줄테니, 이번 기회에 북에 있는 가족들 한국으로 데려오게."

"모, 목사님."

"비용같은 건 걱정하지 말고."

"감사합니다, 목사님.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래. 근데 자넨 한국 사람 다 됐군. 전혀 북한 억양이 안 느껴져."

"남파 공작원 훈련을 받을 당시 표준어를 익혀서 그렇습니다."

"그렇구먼. 아무튼 오늘 내일까지만 경계를 철저히 서주게나."

"목숨걸고 지키겠습니다."

"그래. 물러가봐."

모든 것을 꼼꼼히 체크했지만, 장목사는 여전히 불안감을 떨칠수 없었다. 무장 군인 40여명을 저택에 배치하고, 혹시 모를 예비처녀까지 확보한 상태였지만 오늘밤 뭔가 잘못될 것 같은 예감이 계속 그를 짓눌렀다.

'흐음···. 뭘까 이 찝찝함은? 플레이어 시절의 위기감지가 발동할 때의 느낌이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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