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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04화 (1,884/2,000)

1904. 구원회-109-

여장도 처음인 도훈에게, 여장한테 처녀막 검사를 하는 것은 상상도 못 해본 경우였다.

도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냥 기절 시킬까?"

"뭐?"

"아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면 검사 자체를 못하게 만들면 되잖아."

"안 돼. 검사를 진행하는 의사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아니야. 그냥 장목사의 주치의 자격으로 있는 거지. 만약 장목사가 주치의를 찾았는데, 기절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

"음···."

"주치의는 한명이 아니야. 24시간 붙어 있어야 하는 문제 때문에 구원회 내의 의사들이 돌아가면서 교대로 당직을 서고 있어."

"정말이지 쓸데없군. 그냥 아플때 호출하면 그만이지, 굳이 저택에 상주시키다니."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내가 말했잖아. 장목사는 올해를 못 넘길거야. 그 정도로 몸상태가 심각해.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 조치를 못하면 보나나마 테이블 데스야. 병원 실려가봐야 수술 중 사망이라고."

"흐음."

'뱀파이어의 능력까지 갖췄다면서 뭐가 저렇게 약해? 완전 약해빠진 거 아니야?'

[어쩌면 그 양생 치료 의식이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양생 치료는 수명을 늘려주는 치료법인데 반대로 몸이 쇠약해지는 건 모순 아니야?'

[몸이 새롭게 태어나는 환골탈태와 비슷한 과정입니다. 즉 새육신을 얻기 위해선 헌 육신을 죽여야 하니까요.]

'아하, 뭔 말인지 알겠네. 혜진이가 자꾸 반송장이라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었군. 가만, 생각해 보니까 듣고보니 어이가 없네?'

[네? 뭐가 말입니까?]

'장만석이 지금까지 998명의 처녀를 취했다고 했지?'

[네. 오늘 한 명, 그리고 자정 지나자 한 명을 더 채우면 1000명째라고 했으니 맞을 겁니다.]

'그럼 이론적으로 지금이 가장 약해진 순간 아니냐?'

[네?]

'네가 그랬잖아. 헌 육신이 죽어야 새 육신을 얻을 수 있는 의식이라고. 그렇다면 장만석의 입장에서는 지금이 가장 죽음에 가까운 상태로 쇠약해진 거네.'

[아! 그렇군요.]

'이거 뭐,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일 수도 있겠는데? 우리 뱀파 이어(진) 씨?'

[그게 뭡니까?]

'되다 말았다는 거지 뭐야.'

"아무튼 너무 걱정마. 오늘 당직 서는 의사는 내가 확인했어.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야."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니?"

"이 의사는 구원회 신자가 아니야. 도박빚을 심하게 지는 바람에 개인 병원까지 말아먹고 빚쟁이에 쫓기고 있거든."

"엥?"

"돈 때문에 여기 굴러 들어온 거라고. 파산까지 한 주제에 외국에 유학보낸 애들 학비는 벌어야 하니까."

"그럼 설마···."

"맞아. 돈으로 매수하면 쉽게 넘어올 거야. 어차피 장목사에 대한 충성심 같은 건 일절 없는 사람이거든."

도훈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의사의 얼굴을 직접 보고나서야 혜진이 말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저 의사는!'

[맞네요. 주인님을 치료했던 응급의학과 전문의. 여기서 당직도 서는 군요.]

도훈의 처녀막 검사를 맡은 장목사의 주치의는 바로 응급실에서 만난 의사였다. 도훈은 그를 알아보았지만, 그는 여장한 도훈을 전혀 몰라보는 눈치였다.

"안녕하세요."

"아, 구실장님 오셨습니까? 안 그래도 목사님께서 오늘 일찍 시작하신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 쪽이 이번에 온 친구군요."

의사는 여장한 도훈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폈으나, 딱히 큰 감흥은 없어 보였다. 그에게 있어 미추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차피 돈 벌자고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혜진이 검사를 시작하려는 의사를 만류했다.

"저, 잠시 저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예? 지금요?"

"네. 중요한 얘깁니다."

"음···. 네, 뭐."

"오늘 검사는 생략해 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예?"

의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평소의 혜진이라면 절대 내지 않을 의견이었다. 혜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장목사의 심복중의 심복이었고, 그가 대충 검사를 하면 옆에서 닥달을 하면 했지,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의사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혹시 이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저 아이 처녀가 아니거든요."

"예?"

"말 그대로에요. 성남에서 같이 차 타고 오는 길에 솔직히 말하더라고요. 달란트 벌고 싶어서 처녀인 척 지원했다고요."

"아, 아니···.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처녀를 구해오는 채홍사보다 오히려 이를 검증하는 의사가 반대하고 있었다. 그 역시 장목사에게서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괜히 이런 일에 연루되어 불똥이 튀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이번 일이 발각되어 자기 책임으로 잘리게 된다면 큰 일이었다.

혜진이 계속 설득했다.

"저도 뒤늦게 알았어요. 근데, 아시다시피 쟤는 예비 잖아요.

당장 투입될 여자애들은 이미 준비되었고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제와서 다른 처녀를 구해올 방법도 없잖아요. 아시다시피, 장목사님이 최근들어 부쩍 예민해지시는 바람에···."

"실장님, 아니 장로님. 죄송하지만 이번 일은 저로서는 그냥 넘어갈 수 없습니다. 처녀를 구해오는 것이야 장로님 관할이지만, 처녀 여부를 확인하는 일은 제 책임거든요. 만에 하나···."

"3억."

"예?"

"눈 감아주시면 드릴게요. 3억."

의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도훈은 혜진의 과감한 제안에 감탄했다.

'대단한데.'

[그냥 돈으로 무마하는 거 아닙니까?]

'맞아. 하지만 상대의 성향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하는 거잖아.'

[호오.]

'혜진은 의사가 져야할 위험부담과, 이를 감내할 수 있는 금액을 정확하게 계산한 거야. 어차피 나는 예비로 데려다 놓은 거니까, 실제론 장만석의 의식에 동원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 그걸 감수할 수 있다면 3억은 엄청 매력적인 제안이거든.'

[그렇군요. 근데 혜진양이 꽤 돈이 많나 봅니다. 3억이라니 ···.]

'구원회 장로쯤 되면 연봉이 그쯤 되지 않겠어?'

[저 의사가 제안을 수락할까요?]

'도박 중독자들의 특징이 뭔 줄 알아?'

[글쎄요.]

'평생 그 버릇을 못 끊는다는 거야. 도박으로 쫄딱 망한 사람이라도 절대 바뀌지 않아. 그런 성향 때문에 패가 망신 하는 거고.'

[아···.]

"흠흠, 장로님이 많이 난처하신 모양이군요. 하지만 돈으로 검사를 건너뛰면···."

"5억."

"예?"

"눈 한번 감아주면 5억이에요. 들킬 일도 없을 거고요."

"아, 아니···."

'하, 저 의사 새끼 그 와중에 또 배팅을 거네. 천성 도박꾼 맞네.'

[5억은 좀 과한 금액 아닙니까? 혜진양 입장에서도.]

'혜진이도 진심이다 이거지. 이번 일에 모든 걸 건거야. 잘못되면 모든 걸 잃을 테니까 과감하게 지르는 거지.'

[돈으로 매수한다는 말이 저런 의미였군요. 어쩐지 자신감을 보이더니.]

"제 제안은 이게 마지막이에요. 싫으면 관두시고요."

의사는 5초간 머뭇거리더니 여장한 도훈을 쓸적 쳐다보았다.

그러면서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는데, 저 와꾸와 몸으로 어떻게 처녀딱지를 땠을까 하는 의문 가득한 눈빛이었다.

괜히 멀뚱히 서있다가 모멸감을 느낀 도훈이 속으로 발끈했다.

'아오, 저 새끼 방금 시선 봤어? 사람을 무슨···.'

[주인님이 못생긴 여자를 볼 때 짓던 표정인데요?]

'내가 저랬어?'

[네.]

'음···. 다신 안 그래야겠다.'

"···알겠습니다. 사정이 뭔지는 모르지만, 구실장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안 따를 수가 없네요."

"잘하셨습니다."

"혹시 돈은 어떻게···."

"스위스 비밀 계좌 통해서 전달해 드릴게요. 조세피난처에 따로 만들어두신 계좌 있죠?"

"네."

"저한테 문자로 남겨두세요. 오늘중으로 처리해 드릴테니."

"감사합니다."

"일단 검사한 척 해야 하니 여기서 한 시간만 있다가 나갈게요."

"그럼 여기서 편히 쉬십시오. 저는 진료실에 들어가 있겠습니다."

"그래요."

의사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별관에는 여장한 도훈과 혜진만 남게 되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들은 도훈이 혜진에게 말했다.

"입막음 대가치곤 너무 큰거 아니야? 오억은 좀 많은 거 같은데."

"어쩔 수 없어. 애매한 금액으로 흥정했으면 오히려 더 뜯어내려고 했을 걸. 처음부터 선을 넘게 제시해야 감히 얕은 수작을 못부리지."

"흐음, 근데 그만한 돈이 어디서 났어?"

"왜? 내가 가난해 보여?"

"아니 그건 아니고···."

"아까 말한 스위스 비밀 계좌는 장목사님의 자금이 숨어 있는 저수지야."

"저수지? 설마 돈을 외국에 숨겨놓은 거야?"

"응. 그리고 난 비서실장으로서 저수지를 관리하고 있지."

"잠깐만, 네가 금고지기 였다고?"

"맞아."

[어엇, 혜진양이 단순한 비서가 아니었군요!]

'가만 있어봐, 이거 잘하면···.'

"그냥 개인적인 호기심인데 저수지에 얼마나 돈이 고여 있는 거야?"

"왜?"

"아니, 우리 부모님이 사기당한 돈도 거기 들어있겠다 싶어서."

"나도 전부는 몰라. 장목사의 재산은 다양한 형태로 전세계에 흩어져 있거든. 아마 본인이 직접 관리하는 자금도 있을 거야. 내가 맡은건 스위스 비밀계좌 뿐이고."

"그게 얼만데."

"조단위는 될 거야."

"자, 잠깐만 조라고? 방금 조라고 한 거야?"

"응."

너무나 큰 돈은 너무나 태연하게 말하는 혜진을 보니 그녀가 얼마나 담대한 성격인지 알 수 있었다.

'미친놈. 조단위면 우리나라에서 순위권 안에 드는 부자였잖아?'

[그 정도입니까?]

'10대 대기업 회장도 개인 자산으로 조단위는 흔치 않아. 하물며 그게 현금성 자산이면···. 어우, 장만석 이새끼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긁어 모는 거지? 아, 그래서 불멸의 존재를 꿈꿨구나!

모은 돈 다 써보지도 못하고 뒤질까봐.'

[남들과 달리 혜진양에게 강한 세뇌를 건 것도 그 이유였군요.]

'맞네. 자기 금고지기였으니까. 혹시나 돈 들고 튀어버리면 ···.'

[근데 혜진양이 제정신을 차렸는데요?]

'아직 장만석은 모르고.'

[그럼 장만석이 만약이 죽게되면···.]

'일단 스위스 비밀계좌는 혜진이가 꿀꺽 하는 거지. 잠깐, 조 단위 비밀 금고를 가진 여자라니?'

도훈은 갑자기 혜진이 대단해 보였다.

도훈도 돈이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코인 투자가 망하는 바람에 500억 남짓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게다가 섹스도 존나 잘하고 머리도 좋잖아?'

[네?]

'존나 매력쩔어.'

[주인님,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보이면 어떻게 합니까? 여긴 전쟁터입니다. 주인님은 전장 한복판에 혈혈단신으로 쳐들어온 상태고요.]

'알지. 이게 전쟁이라는 거. 그럼 승자에게 당연히 전리품이 따라오는 게 아니겠어?'

[설마 주인님···. 장만석의 재산을 꿀꺽할 생각입니까?]

'아니. 내가 다 먹겠다는 건 아니고, 아무튼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군. 아하, 그래서 장만석이 똑똑한 혜진이를 자기 옆에 데려온 거였구나. 말 잘듣고 배신하지 않을 금고지기가 필요해서. 그 새끼는 여자는 다 자기걸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이니까.'

[그건 주인님과 비슷하군요.]

'이거 스케일이 갑자기 커져서 당황스럽군. 조단위라니 씨발···. 대체 얼마나 돈을 긁어모아야 저런 부의 축적이 가능한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되는데.'

[네?]

'장만석이 개척교회에서 지금의 대형교회로 발전한게 고작 십수년 정도야. 아무리 사기를 치고, 십일조로 헌금을 걷어서 모았더라도 그런 재산을 모으는 게 가능한가?'

[기업체도 여럿 운영한다지 않았습니까? 종교단체라서 세금도안낼테고요.]

'그래도 너무 많아. 상식선을 넘어선 거금이야. 어쩌면, 교회에서 버는 돈이 시드머니가 아니었을까?'

[시드머니요?]

'그렇지. 시드머니를 가지고 기가막히게 투자를 성공시켰다거나···.'

[아! 그럴수도 있겠군요.]

'맞네. 저 새끼 플레이어였다면서? 그럼 주식이나, 채권등의 미래 흐름도 읽을 수 있었을 거 아니야? 막말로 비트코인만 미리 예측했어도 수천배는 튕길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으니.'

[그럼 저 돈이 전부 교회로 끌어 모은게 아니라, 교회에서 번 돈을 재투자해서 만든 돈이라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높지. 그렇게 재산을 축적하다보니까, 죽기엔 너무 억울해 진거지. 나이가 들어서 정력이 쇠하는 것도 마음에 안들었을거고.'

[아!]

'원래 늙어서 부자가 되는 건 아무런 의미가 없어. 살날이 얼마 안남고, 몸을 약해졌는데 돈만 많아봐야 뭐해? 부자가 되더라도 젊어서 누려야지.'

[그럼 장만석은 젊고 건강한 육신으로 부를 누리기 위해 진혈의 뱀파이어가 되는 길을 선택한 거군요.]

'어쩌면 뱀파이어도 스스로 선택한 거 아니야?'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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