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900화 (1,880/2,000)

1900. 구원회-105-

도훈은 기괴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급하게 팔을 비틀어 어깨를 끼워 맞췄다.

두둑탈구된 뼈를 강제로 맞추는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해낸 도훈이 고개를 좌우로 까딱였다. 그 모습을 본 혜진이 물었다.

"밖에 나와서 뭐하고 있었어? ···박기사?"

"아, 몸이 찌뿌둥해서 운동 좀 했습니다. 구실장님."

도훈이 태연하게 대답하며, 혜진이 데려온 처녀를 확인했다.

'어라? 너무 어린 거 아니야?'

나이는 이제 막 20살이나 되었을까? 만으로는 18살이나 될 법한 앳된 소녀였다. 소녀는 구원회 장로와 함께 있다는 긴장감에 바짝 굳은 얼굴이었다.

딱히 얼굴이 예쁘진 않았고, 오히려 살집이 제법 있는 편이라 평균 이하의 외모라고 볼 수 있었다.

"아···. 이쪽 분이 이번에 강남 본원으로 함께 가실 분이군요."

"안녕하세요."

'음, 이건 충격이군.'

[왜 그러십니까?]

'아니. 여자애 상태가···.'

[상태가 어때서요? 너무 어려보인다는 뜻인가요?]

'그것도 있는데 너무 평범하지 않나? 아니 솔직히 말하면 못 생겼는데.'

[숫자를 채우는 게 중요하지, 외모까지 따질 겨를은 없었겠죠.]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천명을 채울 때까지 닥치는 대로 따 먹는 거였군.' 솔직히 도훈이라면 줘도 안 먹을(?) 수준이었다.

실제 그는 원하면 얼마든지 미인과 섹스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미션에서 강제되지 않는 한 못생긴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휴, 사정을 몰랐을 땐 장만석이 조금 부러웠는데 갑자기 놈이 불쌍해지는데.'

[그건 너무 외모지상주의적인 발언 아닙니까?]

'꼭 그건 아니야. 생각해보니 저게 당연한 것 같기도 하겠다.'

[네?]

'아무리 교회 다니는 신실한 신자라도, 요즘 세상에 처녀가 얼마나 있겠어? 조금 예쁘다 싶으면 중고등학교 때 이미 양아치 새끼들이 껄떡대다가 바로 따먹어 버리는데. 여자들도 딱히 처녀성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시대 분위기가 그렇긴 하죠. 여타 선진국에서도 첫경험 연령이 계속 내려가고 있다니.]

'그러니까. 스무살 넘어서까지 못 해본 여자애 와꾸라는 게 대충 예상 되잖아. 자의로 안 한게 아니라, 타의로 못 한 경우가 더 많을 거란 말이지.'

[그렇겠죠.]

'장만석도 입막음을 위해 교회 내 신도 중에서 처녀를 구해야 했으니 다른 방도가 없었겠지. 그래도 이건 거의 고문 아니냐. 어휴, 진짜 저걸 참고 나중에 처녀혈까지?'

[뭘 또 고문이랄 것 까지.]

'난 정말 하나도 부럽지가 않어.'

[예?]

분당지부에서 선발된 처녀가 뻘쭘하게 서 있는데, 혜진이 도훈에게 다가와 조용히 귓속말을 건넸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급하다고 차 한잔 마시고 가라는 것도 뿌리치고 일단 데려오긴 했는데···.

-집에 돌려보내야지.

-뭐?

-혹시 현금 가진 것 있어?

-아니 난 현금은 안가지고 다니는데. 왜?

-교통비라도 쥐어 주려고. 됐어. 내가 줄게. 나중에 부름이 있을 때까지 집에서 몸간수 잘하고 기다리라고 그래. 다른 곳에서 연락와도 받지 말고 있으라고.

-쟤를 돌려 보내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일단 내 말대로 해봐.

-아니 진짜, 무슨 계획을 말해주지도 않고.

"그럼 서울로 가실까요?"

도훈이 기사 흉내를 내며 차 문을 대신 열어 주었다. 혜진은 답이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더니 차에 올랐다.

이어 처녀 역시 뒷좌석에 태운 도훈이 곧장 버스터미널로 이동했다.

"···저, 목사님 뵈러 가는 게 아닌가요?"

처녀는 자신이 도착한 곳이 서울이 아닌, 성남의 시외버스 터미널이란 걸 깨닫고는 당황해서 물었다.

혜진은 도훈이 얘기한 대로 처녀를 설득했다.

"제가 다시 부를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 대기하세요."

"예, 예? 아니 저는···. 오늘 바로 본원으로 들어간다고 들었는데."

처녀는 분당지부에서 강남 본원으로 옮겨준다는 약조를 받은 모양이었다. 처녀를 바치는 대가 중 일부였던 듯.

혜진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봐요 어린 아가씨. 우리도 절차라는 게 있다니까? 김목사가 그랬어요? 자기가 뭘 안다고···."

"아, 아앗 죄송합니다, 장로님."

"일단 내려요. 그리고 이 순간 이후로, 교회 관계자들 연락은 절대 받지 마세요."

"여, 연락도요?"

"네. 믿음에 대한 시험입니다. 우린 입이 무거운 사람을 찾고 있으니까요."

"아···."

"조만간 제가 직접 연락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처녀는 쫓겨나듯 허겁지겁 차에서 내렸다. 도훈이 급히 따라내려 현금을 쥐어주었다. 여자는 당황해서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우격다짐으로 꽂아준 도훈은 그대로 차를 출발시켜 서울로 내달렸다.

어느 정도 과속에 적응된 혜진은 도훈을 향해 따져 물었다.

"네가 시키는 대로 다 했어. 이제 어떡할 거야? 설마 오는 길에 여자애가 도망쳤다고 거짓말 하라는 건 아니지?"

"뭐?"

"구원회가 그렇게 허술한 조직이 아니라고. 특히 장목사님은 ···. 의심이 얼마나 많은데?"

"그럴 필요 없어. 처녀는 지금 너와 함께 가고 있잖아."

"무슨 소리야?"

혜진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금 분당지부에서 데려온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데려가고 있다니? 어디에?

혜진은 도훈이 정신이 이상해진 게 아닌가 의심했다.

"아까 걔 얼굴 보고 깨달았어. 굳이 제물로 바치는 여자가 구혜진 당신처럼 예쁠 필요가 없다는 걸."

"무, 무슨 쓸데없는 소릴···."

혜진은 도훈이 갑자기 자신을 칭찬하자 난감해하면서도 이럴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대로 본원으로 돌아가면, 당장 장목사가 불호령을 내릴 거야. 같이 간 너 역시 결코 무사하지 못 할 거고."

"걱정 말라니까 그러네? 예쁘지 않은 여자라면 네 옆에 지금 있잖아."

"옆이라니? 너 설마···."

도훈이 씩 웃으며 말했다.

"맞아. 내가 오늘 밤 제물로 올라갈 처녀거든. 아니 대타라고 해야 하나?"

"너, 미쳤어?"

혜진은 도훈이 완전히 돌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장이 그럴싸하게 어울리는 예쁘장한 남자도 있지만, 적어도 도훈은 아니었다.

솔직히 남자치고 잘생긴 얼굴도 아니었고, 몸은 지나치게 컸다.

여장을 했다간, 당장 성취향을 의심받고 변태로 오해받을만한 체형이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너 지금 설마 그걸 대책이랍시고 무작정 걔를 집으로 돌려보낸 거였어?"

"왜? 기발하지 않아? 장목사에게 접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당장 차 돌려! 버스 타기 전에 다시 데려와야겠어."

"글쎄, 걱정하지 말래도? 나 대학 축제 때 여장 해봤는데, 사람들이 분간을 못하더라고."

"아니 무슨···."

혜진은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이런 대책없는 인물의 말을 믿고 장목사를 배신할 생각을 꿈꿨단 말인가? 갑자기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오며,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당장이라도 도훈을 경호팀에 넘기고, 장목사 쪽으로 붙어야 하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이 될 정도였다.

장목사가 세뇌를 통해 그녀를 노예처럼 부리긴 했지만, 적어도 구원회 내에선 장로 신분으로 충분한 대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제정신이 아니야. 저런 몰골로 여장이라니···. 분명 저택에 들어가기도 전에 경호팀한테 제지당하고 말 거야.'

혜진이 불신의 눈빛을 보내자 도훈이 다시 말했다.

"좋아, 그럼 이렇게 하자."

"?"

"아직 여유가 있으니까, 내가 근처 휴게소에 들러 직접 여장을 해볼게."

"여장이라고? 갑자기? 옷이 하나도 없잖아."

도훈이 운전대를 한손으로 붙잡으며 재빨리 '오빠믿지' 립밤을 꺼내 입술에 발랐다.

오빠 믿지 립밤은 그가 무슨 개소리를 해도 그럴싸하게 믿게 만드는 아이템이었다.

"이럴 줄 알고 트렁크에 챙겨왔지."

"여, 여장도구를 미리 챙겨왔다고?"

"어. 사실 여장하는 게 내 취미거든."

"······."

오빠믿지 립밤의 효과가 적용되었지만, 여전히 혜진은 불신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아이템의 효과로도 상쇄가 안 될 만큼 개소리였던 것.

[아니 주인님, 다짜고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쩔 수 없지. 안되면 나중에 상식개변이라도 해야 할 판이야.

무조건 내 말이 진실이라고 믿게끔.'

[혜진양을요?]

'어. 장목사의 세뇌에서 풀려났으니, 이제 내 세뇌가 다시 먹히겠지. 근데, 몇 년간 장목사에게 이용당하다가 또 내가 이용해 먹겠다고 상식개변을 거는 건 좀 너무한 것 같아서 일단 설득부터해 볼 생각이야.'

[그런 짓을 했다간, 악마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세뇌까진 피하려고 하잖아.'

[······.]

"너···. 진심이야 진짜?"

"일단 여장한 거 보고나서 판단하라니까? 안되면 내가 길가던 처녀라도 납치해서 데려갈테니까."

"그건 범죄잖아!"

"휴게소 다왔다."

"아니!"

도훈은 드리프트를 펼치며 차량을 주차시켰다. 타이어 자국이길게 날만큼 요란스럽게 차를 주차 시킨 도훈은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는 척하면서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다니던 책가방을 챙겼다.

가방 안에는 대학교재밖에 없었지만, 혜진을 속이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10분만 기다려."

"아니, 너 정말···."

"금방 다녀올게."

도훈이 가방을 메고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칸막이 화장실에 들어간 도훈은 가방을 도로 인벤토리에 넣고 만능변장도구를 꺼내들었다.

동시에 역용 마스크로 여자 얼굴을 조형했다.

'누구로 하지? 역시 롤모델은 마유미인가?'

[마유미양은 큰 키 치곤 모델같은 미인인데 너무 눈에 띄지 않을까요?]

'그럼 못 생긴 마유미 정도로 하자. 살짝 빻게 만들면 되지.'

[근데 정말로 여장을 하시려고요? 아무리 주인님의 변장술이 뛰어나도 성별을 바꾸는 건 너무 무리수가 아닐까요?]

'축골공을 잘 쓰면 될 것 같아. 살집을 좀 있어 보이게 의상으로 커버하면 등 빨 좀 좋은 여자처럼은 보일 거야.'

화장실 칸 안에서 훌렁훌렁 옷을 벗어 던진 도훈이 축골공을 통해 체형을 바꾸기 시작했다.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어깨를 고의로 탈골 시킨 모습은 흡사 장애를 가진 꼽추를 연상시켰다.

'으으, 내가 생각해도 이건 좀 미친 짓인 듯,'

[조금이 아니라 많이 미친 짓인 것 같은데요?]

'어쩔 수 없잖아. 열추적 감지에 걸리는 투명인간보다는 이게 더 확실하니까.'

체형을 최대한 축소한 도훈은 의상을 통해 최대한 몸매를 보정했다.

뽕을 잔뜩 넣은 브라로 가슴을 만들고, 그 위에 티를 입어 감추었다. 다리털이 안보이도록 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긴 치마를 걸치니 뒷모습은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으으, 이제 거의 다 됐다. 문제는 얼굴인데.'

도훈은 큰 키에 비해 얼굴은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여장을 해도 얼굴이 딱히 커 보이진 않았다.

준비된 역용마스크를 쓰고 기다리자, 역용마스크가 피부처럼 자연스럽게 바뀌며 실제처럼 변해갔다.

잠시 후 덩치가 크고 못생긴 여자가 화장실 안에 서 있었다.

[오, 나름 그럴싸 한데요?]

'그래?'

[이제 가발만 쓰면 될 것 같습니다.]

'긴 머리가 낫겠지?'

[네. 최대한 감추려면요.]

도훈인 웨이브가 심하게 진 파마머리 가발을 뒤집어썼다.

밖에 나와서 거울을 보니 배구선수인 마유미를 닮았지만, 옆으로 훨씬 퍼진 형태의 못생긴 여성이 눈 앞에 있었다.

도훈 스스로 변한 모습에 놀랄 정도였다.

"헉. 개 빻았네."

"뭐, 뭐하세요? 여기 남자 화장실인데?"

그때 막 화장실에 들어온 다른 남자 고객이 도훈을 보고 기겁해서 물었다.

도훈이 깜짝 놀란 듯, 얼굴을 가린 채 후다닥 밖으로 뛰어 나갔다.

"죄송합니다."

여자의 몸에서 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말을 건 상대가 기겁하며 도훈을 쳐다보았다.

'여장남자인가? 미친 변태 새끼.'

다시 차로 돌아가며 도훈이 목소리를 변조했다. 그는 아이템을 이용해 자유자재로 남의 목소리를 흉내낼 수 있었는데, 뚱뚱한 체형에 어울리는 적당한 연예인을 떠올려 비슷하게 꾸몄다.

'혜진이가 알아 볼까?'

[절대 모를걸요? 전혀 주인님의 원판이 연상이 안됩니다.]

'나도 이게 될 줄은 몰랐어.'

[두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분장이긴 합니다.]

혜진이 기다리는 차 앞에 선 도훈이 보조석에 근심 어린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녀의 차창을 똑똑 두드렸다.

혜진이 놀라서 창문을 내리며 물었다.

"네? 무슨 일이세요?"

"저기···. 혹시 구원회 구장로님 아니세요?"

도훈은 목소리마저 완전히 여성형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혜진은 깜빡 속고 말았다.

"어? 절 아세요? 혹시 저희 교회 신도님이신가요?"

그때 도훈이 원래 목소리로 돌아오며 말했다.

"봐. 내가 모를 거라고 했지?"

"어, 억!"

혜진은 여자라고 생각했던 뚱녀에게서 갑자기 남자의 굵은 목소리가 나오자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서, 설마 민용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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