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5. 구원회-100-
사실대로 말하면 장목사가 미친 사이코라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제정신을 차린 후 냉정히 돌아보니, 확실히 그랬다.
장목사는 정말로 미친 짓을 벌이고 있었다.
그것도 무려 천 일 동안이나.
"말해도 전혀 안 믿을걸."
"뭔데. 말해봐. 믿을 테니."
"장 목사님은···."
"흥, 그 꼴을 당하고도 여전히 목사님 호칭인가?"
"···아무튼 그분은 매일 밤 처녀를 취하고 있어."
"매일이라고? 잠깐만, 하루에 한 명씩 말이야?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도훈도 설마 거기까진 예상을 못 했는지 찐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맞아. 하루에 한 명."
[헐, 장만석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걸까요?]
'설마 처녀 천명이 필요한 미션이 존재하나?'
[그럴리가요? 주인님의 '아다폭격기' 위업도 고작 3명이었습니다. 미션이나 업적은 시스템 전체에 무리한 영향을 줄 정도로 주어지지 않으니까요.]
'그럼 대체 뭐야? 진짜 그냥 변태인 건가?'
"그 짓을 한 지는 얼마나 됐는데?"
"거의 3년."
"그럼 3년 동안 매일 밤 처녀를···. 그게 진짜라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그래서 말했잖아. 내가 말해도 넌 믿기 힘들 거라고."
"아니, 내 말은 그만한 숫자의 처녀를 어떻게 구하냐는 거야.
어디서 납치라도 해오는 건가?"
"구원회 신도가 전국에 10만이야. 그중 여자가 절반이라고 쳐도 어떻게든 나오지."
"아니···."
혜진은 차마 창피해서 자신이 장목사의 채홍사 역할을 전담했다는 사실까진 밝히지 않았다. 세뇌가 풀리고 나니, 스스로 벌였던 행동이 너무나 부끄러웠던 탓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하는 목적이 뭔데?"
"그게···."
"설마 처녀 페티시야? 아다 폭격기, 아니 아다 브레이커 업적이라도 쌓는 건가?"
"그분 말로는 양생 치료라고 했어."
"양생 치료?"
도훈은 그 단어에서 뭔가 힌트를 얻은 기분이었다.
'설마 저게 저번에 말한 양생술인가 하는 그거야?'
[맞는 것 같습니다.]
'처녀 천 명을 따먹으면 무병장수하는 뭐 그런 미션이라도 있는 건가?'
[플레이어의 수명을 늘리는 종류의 미션이나 업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제가 모르는 특별 미션이 존재한다고 해도 저런 파괴적인 방식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앞서 말했듯이 시스템 전체에 너무나 큰 영향을 주니까요.]
'그러고 보니 장만석은 플레이어에서 탈주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잖아. 그럼 어차피 미션을 받을 수도 없는 거 아니야?'
[그렇겠죠. 탈주자라면.]
'그럼 대체 누구한테 미션을 받은 거지? 아니, 정말로 이게 미션이긴 한 건가? 그냥 개인적인 악취미려나?'
도훈이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장만석이 양생 치료인가 뭔가를 하려고 처녀랑 매일 자는 짓을 3년째 벌이고 있다는 거야?"
"으음···. 근데 단순히 자는 것만이 아니라···."
"어?"
"그게···."
혜진도 이때만큼은 대답을 망설였다. 자신이 본 대로 말하기도 부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장목사의 비행을 보면서도 말리지 않고, 오히려 그를 적극적으로 도왔다는 사실이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나한테는 솔직히 말해도 돼. 난 널 비난하지 않아."
"으, 음. 목사님은 처녀 혈을···."
"처녀혈?"
"그러니까 처녀혈을···. 마시는···."
[크헥, 아니 이게 무슨!]
도훈은 역겨움이 밀려왔다. 비릿한 피를, 그것도 관계 중에 흘린 처녀의 상징을 입으로 받아 마신다는 소리였다.
다 늙어 빠진 영감이 어린 처녀들의 가랑이 사이에 들러붙어 피를 빠는 장면을 상상하자 역겨움에 구토가 일 것 같았다.
"윽, 지금 말한 거 정말로 사실이야?"
"확실해. 내가 봤으니까."
"아니···."
'로시, 이게 무슨 의미지?'
[저도 도무지 영문을 모르는 기행이군요. 제가 아는 어떤 미션이나 업적에도 그런 엽기적인 행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처녀 천 명의 피를 마셔서 양생을 추구한다니? 이 무슨 개똥같은···.'
[설마 어쩌면!]
'왜? 감이 잡히는 게 있어?'
[들어본 적 있습니다. 혈마법이라 부르는 흑마술 계통의 술법을요.]
'혈마법? 그러니까 피?'
[네. 혈마법은 진혈의 뱀파이어가 사용하는 사술의 일종입니다. 말 그대로 피를 이용해 의식을 치르거나, 마법의 재료로 활용하는 마법입니다.]
'그럼 정말로 장만석이 양생술을 목적으로 이 짓을 벌였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 혈마법을 익혀서?'
[구혜진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럴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아니, 이 또라이 새끼가 진짜.'
"정말로 장만석이 양생 치료를 한다고 너한테 말했었어? 놈한테 들은 대로 말해줘."
"어제도 한 번 더 말했어. 처녀 천 명의 피를 모두 마시면 자기가 불로불사의 몸이 될 수 있다면서···."
[불로불사라고요? 혈마법이 확실합니다! 이제야 알겠군요. 그는 뱀파이어가 되는 의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뱀파이어?'
[뱀파이어는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내려온 진혈의 뱀파이어. 그리고 그들이 인간과 관계해 낳은 씬 블러드라 불리는 하프 뱀파이어.]
'씬 블러드라니?'
[Thin blood, 문자 그대로 옅은 피를 의미합니다. 진혈은 Tureblood 라고 부르고요.]
'근데 흡혈귀는 다른 흡혈귀한테 물렸을 때 전염되는 거 아니야? 좀비처럼.'
[맞습니다. 그게 일반적인 전파 방식입니다. 저번에도 한 번 말씀드렸듯이 현재도 뱀파이어는 존재하지만 진혈은 거의 없고, 대부분 하프만 생존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근데 평범한 인간인 장만석이 뱀파이어의 혈마법을 쓴다고?'
[···만약 장만석이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면요?]
'뭐?'
도훈은 머리를 해머로 크게 후들겨 맞는 충격을 받았다.
뱀파이어가 목사를 한다고?
그것은 스님이 푸줏간을 운영한다는 것만큼 충격이었던 것.
'그게 가능해? 흡혈귀는 십자가랑 상극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은에 취약하긴 하지만, 보통의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일 뿐이죠.]
'아니, 말이 안 되는데? 처음부터 놈이 흡혈귀였다면, 어떻게 플레이어가 된 거야?'
[저도 정확한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그나마 확률이 높은 추측은 처음에는 흡혈귀가 아니었다가 이후 뱀파이어에 물려서 해당특성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니면?'
[씬 블러드는 세대를 거듭하면 점점 뱀파이어의 힘이 약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하프까지는 그런대로 뱀파이어 일족이라 부를 수 있지만, 하프에 하프, 또 그 와중에 인간을 끼고 세대를 거듭해온 유전자라면 아주 미약한 특성만 남게 됩니다. 겉보기엔 전혀 흡혈귀의 특성이 없지만, 유전적으로만 간신히 남아있는 상태가 되죠.]
'이런 씨발.'
현재로선 장만석이 혈마법을 쓰는 이유가 뱀파이어의 후손이거나, 중간에 어떤 연유로 뱀파이어에 물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그러니까 요약하면, 모종의 이유로 장만석이 뱀파이어의 특성을 갖게 됐고, 놈들의 혈마법에 있는 사술을 이용해 불로장생의사술을 펼치고 있다는 거네? 무려 천일 가까이?'
그 순간 도훈은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잠깐, 천명의 처녀라고? 혹시 지금 몇 명째야 그럼? 3년 가까이면 거의 채운 거 아니야?"
"맞아. 오늘로 999명. 그리고 내일이면 의식이 끝나게 돼."
"아니!"
도훈의 머리가 핑핑 돌기 시작했다.
'이런 씨발, 이거 거의 완성 직전이잖아?'
[주인님. 정말로 장만석이 혈마법을 쓰고 있는게 틀림없다면 당장이라도 막아야 합니다. 사술이 완성되면 그는 진혈의 뱀파이 어에 가까운 힘을 갖추게 될 겁니다.]
'진혈의 뱀파이어라고? 하프 잡종 새끼가?'
[불로불사는 진혈만이 가지는 특질입니다. 하프들은 오래 살긴 하지만 수명의 한계가 있고요.]
'하- 늦게나마 이걸 발견해 다행인 건가?'
"그럼 넌 분당에 가서 처녀를 데려오려고 했던 거야? 장만석에게 제물로 바칠?"
"음···. 뭐 그렇게 비난해도 할 말은 없어."
"그럼 다행이군. 차를 돌렸으니, 장만석에게 바칠 처녀도 구하지 못한 거잖아?"
혜진이 씁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야."
"아니라고?"
"사실 처녀는 이미 구해 놓은 상태야. 마지막 천명째까지."
"뭐라고? 그럼 왜 가려고 한 건데?"
"가끔 미스가 날 때가 있었어."
"미스라니?"
"처녀긴 한데, 처녀막이 이미 파괴되어 있거나, 혹은 처녀막 재생술로 처녀인 것처럼 속이던 신도들이 있었거든."
"아니 무슨···."
"목사님이 의식의 마지막까지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고 하셔서, 혹시 몰라 예비자를 확보하려고 한 거였어."
[이거 큰일인데요?]
'내가 봐도 그런 것같아. 처녀를 확보 못 하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군.'
[장만석이 정말로 불로불사의 육신을 갖추게 되면, 너무 위험합니다. 정액을 통한 세뇌 능력을 갖춘 상태에서 그것까지 더해지면···.]
'괴물이 탄생하는 거구나. 이래서 정의의 여신이 구원회 파쇄미션을 내렸던 거군.'
"어쨌든 그 미친 의식은 아직 2명 남았다는 거지?"
"응."
"잘 됐네. 그럼 그것만 막으면 끝나는 거잖아."
"뭐라고?"
"난 장목사의 엽기적인 범죄 행각을 두고 볼 생각이 없거든."
"자, 잠깐."
"왜? 난 방금 내 진짜 목적을 말한 거야. 난 장목사를 처단할 거야. 놈의 혹세무민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어서. 설마 모시던 주인이라 배신할 수 없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나도 그것은 그릇된 행동이라고 생각해. 뒤늦긴 하지만, 나의 잘못도 반성하고 있어. 하지만 장목사님 곁엔 경호팀이 있어."
"호출 버튼만 누르면 곧장 달려온다는 그 경호팀?"
"농담하는 게 아니야. 그들은 실전경험이 많은 외국 용병들이야. 실제로 실탄이 든 총도 지니고 있다고. 난 아니어도, 목사님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사람들이야."
도훈은 그들이 단순히 돈으로만 계약된 것이 아니라, 구혜진처럼 강력한 세뇌를 당했을 거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뭐?"
"너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외국 용병들로 구성된 경호팀이 24시간 내내 목사님 주변을 호위하고 있어. 저택 사방에 CCT V가 설치되어 있고 용병들이 총을 차고 순찰을 돌고 있다고. 일반신도는 근처에 접근도 못 해."
"흐음."
"게다가 목사님의 저택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부목사나 장로급 인물들로 제한되어 있어. 그런 삼엄한 경비를 뚫고 네가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데?"
혜진이 하는 말은 도훈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경비쯤이야 투명인간으로 변신해서 한순간에 무력화시킬 수도 있었고, 수틀리면 맨손만으로 총 든 용병 무리를 전멸시킬 자신이 있었다.
다만 도훈이 마지막까지 경계했던 것은, 전직 플레이어로 추정되는 장만석이 가진 비장의 한 수 였다.
그가 정말로 정액을 이용해 세뇌물질을 만드는 능력만 갖춘 것인지, 아니면 수많은 아이템과 히든 스킬로 무장한 플레이언지 확신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내가 한 가지만 물어볼게."
"뭐, 뭘?"
"혹시 장목사가 네 앞에서 특이한 스킬을 보여준 적이 있었어?"
"스킬이라니?"
"그러니까, 막 초능력 같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장만석이 자신의 비서 앞에서 능력을 감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당시엔 세뇌가 된 상태라, 설사 봤어도 기억을 못해낼 수도 있고요.]
'흐음, 그럼 어쩐다?'
혜진이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것으로 보아, 질문을 통해 장만석의 다른 능력을 찾아내는 것은 요원해 보였다.
이에 도훈은 다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럼 너 혹시 장목사에게 선물 같은 거 받은 거 있어?"
"선물?"
"응. 오랜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든가."
혜진이 기억을 떠올려 보았으나, 한번도 그런 적은 없었다.
"아니···."
"헐, 나쁜 새끼네. 옆에 둔 비서한테 이제껏 선물 한 번 안 줬단 말이야?"
"음···. 듣고 보니 억울하긴 하네."
"아니면 어려서부터 몸에 지니고 다니던 소지품이라도."
"소지품?"
혜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 전체를 훑었으나 당장 기억나는 소지품이 없었다.
"그런 거 없는데."
"없다고? 그 흔한 팔찌나 귀걸이, 아니면 십자가 목걸이도 없어?"
"아···. 내가 장신구를 딱히 안 좋아하는 편이라. 그리고 금속알러지가 있어서 목걸이는 안 차는 편이야."
"시계도?"
"핸드폰이 있는데 굳이?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야?"
[아, 사이코메트리를 쓰려고 해도 소지물이 없군요.]
'난감하네. 이래선 직접 몸으로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그때 도훈이 그녀의 발목에 그려진 조그만 나비를 발견했다. 보일 듯 말 듯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어? 혹시 문신도 사이코메트리가 되나?'
[문신이요? 음, 그것도 일종의 염색물질이니 가능은 할 겁니다.
급격한 내공의 상승에 따라 스킬도 업그레이드 되었으니까요.]
"너, 그 문신 언제 했어? 발목에."
"어? 이건 3년전?"
"3년은 좀 부족한데···. 혹시 더 오래된 문신은 없어?"
혜진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조그맣게 대답했다.
"···음, 안 보이는 곳에 하나 더 있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