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80화 (1,860/2,000)

1880. 구원회-85-

도훈이 혼자 나가려고 하는데 수빈이 주섬주섬 잠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옷은 왜 입어? 혼자 갈 수 있어. 안 바래다줘도 돼."

"그게 아니라, 개구멍 문은 다시 잠가야지. 네가 나가면서 잠글것도 아니고."

"아."

그것은 일리가 있는 의견이었기 때문에 도훈도 딱히 반대하지 못했다.

다시 수빈을 따라 나가게 된 도훈은 그녀와 함께 지하 1층의 보일러실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내려갈 때 더 조심해야 해. 그 마녀가 새벽잠이 없는 편이라 가끔 순찰 다니거든."

"마녀라고?"

"합숙소장님 말이야."

"아하."

'혼자서 자위 오지게 하던 그 합숙소장 말이군.'

"근데 왜 별명이 마녀야?"

"너 몰라? 남자 합숙소에선 그렇게 안 부르나 ?"

수빈은 도훈이 남자합숙소에 사는 것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도 마녀라는 별명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 내가 합숙소에 들어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잘 몰랐어."

"그랬구나.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알게 될 거야. 임 집사님은 역대 최악의 합숙소장이라고 불리니까."

"왜?"

"사람이 지나치게 깐깐해. 별것도 아닌 걸로 시비 털고, 특히 사감들한테 너무 까칠하게 굴어서 민심을 많이 잃은 편이지."

"호오."

"내가 볼 땐 백프로 노처녀 히스테리 증상이라고 봐."

"노처녀였어?"

"아직 결혼 안 했거든. 아마 서른 다섯은 넘었을 걸?"

"흐음."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노처녀들이 유독 히스테리가 심한 편이니.'

[또 또 개똥철학을 들먹이시려고.]

'아니야. 정말이라니까? 왜 악독한 노처녀에 대한 이야기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겠어? 여자가 시집을 안 가면 정말 호르몬에 문제가 생긴단 말이야. 아니 시집은 안 가도 적어도 품어 줄 남자는 하나 있어야 해.'

[왜 그런 거죠?]

'여자들도 나이 들면 호르몬 변화 때문에 성욕이 급증한단 말이지. 그게 다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때문이거든.'

[테스토스테론요?]

'응. 남성 호르몬. 물론 남자만 나오는 건 아니고 여자들도 조금 나오지. 근데 이름이 남성 호르몬인 이유가, 성욕뿐만 아니라 공격성도 같이 증가시키거든.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보단 더 호전적이니까.'

[그건 그렇죠.]

'근데 여자들이 나이들면서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분비가 왕성해지니까 사람이 공격적으로 변해버린단 말이야. 그래서 사람이 더 까칠해 지는 거고.'

[아하, 나름 과학적인 이유가 있었군요. 근데 남자가 없어서 더 그렇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아무리 성난 남자도 여자들이 물 한번 시원하게 빼주면 한동안 공격성이 잦아들거든. 섹스가 심신의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굉장한 도움을 준단 말이지. 근데 노처녀인데 섹스까지 못하고 혼자서만 지낸다고 생각해봐. 도저히 스트레스를 풀 길이 없거든. 그러니까 공격적인 방식으로 밖에다 풀어버리는 거야.'

[근데 자위를 꾸준히 한다지 않았습니까?]

'자위로는 한계가 있지. 혼자서 아무리 용써봐야, 잦이로 한 방뚫어주는 거랑 차원이 다르거든. 암튼, 그래서 노처녀들이 유독히스테리가 심한 거라고.'

[그렇군요. 어쩐지 아까도 사감들을 쥐잡듯 잡더라고요. 크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말이죠.]

두 사람이 합숙소장인 임 집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지하실로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여튼 임 집사님도 따지고 보면 불쌍해. 결혼까지 생각했던 한 장로님하고 사이가 틀어지고, 독사 같은 권이사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한직만 떠돌거든. 권사도 계속 떨어지고."

"그냥 아무 남자랑 결혼하면 되지 않나?"

"그건 또 싫나 보지. 나라도 애매한 남자랑 만나 평생 사느니, 그냥 혼자 살고 말겠어."

"하긴."

"다 왔다. 암튼 오늘 고생 많았어. 조심히 들어가. 들키지 말고."

"응. 너희들이야 말로 수고했어."

도훈은 수빈에게 인사를 건네고 지하 보일러실 철문을 열고 나왔다. 그러나 막상 새벽녘에 건물 밖으로 나오자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감하게 됐네. 이 시간에 다시 집까지 돌아가야 하나?'

[방법이 없죠. 교회 안에 숙소라곤 이곳 합숙소뿐인데 들어갈 방법이 없으니까요.]

'쓰읍. 꼭 문을 못 여는 건 아닌데 말이야.'

[네?]

'만능열쇠가 있잖아. 열쇠 구멍에 밀어 넣을 수만 있으면 어디든 딸 수 있거든.'

[하지만 정문 경비실엔 사람이 지키고 있을 텐데요?]

'옥상은 아무도 없지 않을까?'

[옥상이요?]

도훈이 지상에서 고개를 위로 쳐들어 8층 높이의 건물 꼭대기를 올려다보았다. 3,4층짜리 낮은 건물도 아니고 8층 높이의 거대한 건물이었으나 도훈의 표정엔 한 치의 망설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해 볼만 할 것 같은데.'

[설마 저 높이를 한 번에 도약하시겠다고요? 주인님의 내공이 아무리 배로 늘었다지만 8층 높이까지는 불가능할 겁니다. 날개가 있다면 모를까요.]

'누가 한 번에 뛴대? 중간에 발 디딜 공간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아서.'

도훈이 매의 눈으로 건물 외곽을 쓱 훑었다.

창틀 바로 아래 10cm 정도의 몰딩 장식이 튀어나와 있었는데, 발끝을 지지하기엔 충분한 너비로 보였다.

'저걸 밟고 오르면 가능할 듯?'

[정말요? 근데 왜 남자 합숙소 옥상에 오르시려고요?]

'뭐하면 옥상에서라도 한숨 때리게.'

[설마 풍찬노숙이라도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건물 옥상 위에서?]

'뭔 상관이야? 어차피 외부 온도는 전혀 문제가 아닌데.'

내공이 비약적으로 성장하면서 느낀 가장 극적인 변화는 바로 체온의 유지력이었다. 바깥이 영하의 날씨건, 혹은 폭염이 내리쬐는 찜통이건 아무 차이가 없었던 것.

과장되게 말하면 혹한기에 홀딱 벗고 밖을 돌아다녀도 살짝 서늘하다고 여길 수준으로 체온유지가 가능해졌다.

'게다가 새로 받은 내공을 운기조식으로 한 바퀴 돌릴까 해.'

도훈이 굳이 옥상을 고집한 진짜 이유였다.

내공을 일주천하는 운기조식은 훈련 특성상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아야 하는데, 인적이 없는 건물 옥상이 최적의 장소였던 것.

눈대중으로 디딤발을 딛을 곳을 미리 파악한 도훈은 조금의 망설임 없이 한 순간의 도약으로 건물의 중간 높이까지 뛰어올랐다.

마치 하늘을 나는 것 같은 신묘한 경공술에 도훈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오오, 몸이 엄청 가볍네. 중력이 1/10 정도밖에 적용이 안 되는 같아.'

도훈은 곧바로 몰딩 장식을 딛더니, 공중에서 다시 한 번 이중 도약했다.

타닷-!

순식간에 8층 높이까지 뛰어오른 도훈은 순간 옥상 구석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이 시간에 옥상에 누가 있다고?'

들킬 것을 우려한 도훈이 옥상 난간에 매달리며 겨우 모습을 감추었다.

"아, 아아···. 좋아. 더 세게."

분명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뭐야? 남자 합숙소 옥상에 여자가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남자 합숙소와 여자 합숙소 건물은 1층의 출입구만 공유할 뿐 서로 완벽히 분리되어 있었다.

즉, 건물 자체가 쌍둥이 빌딩처럼 두 동으로 나뉘어진 상태로 통로로 이어진 입구만 공유한다는 뜻이었다. 즉, 여자가 남자 합숙소의 옥상으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이라곤, 수미터 건너의 옥상을 멀리뛰기로 뛰어 넘거나···.

'통로를 통해 들어왔다고? 떡하니 경비실을 뚫고?'

도훈은 계속된 의문이 꼬리를 무는 것을 보고 살짝 고개를 들어 옥상위를 살폈다. 위태롭게 두 팔로 난간에 매달려 있는데도, 전혀 긴장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마음만 먹으면 손가락 하나로도 자신의 몸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악력이 강한 편이었다.

잠수함의 잠망경처럼 고개를 내밀어 옥상위를 살피는데도 목소리를 낸 여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앗, 조, 좋아!"

소리의 근원지로 미루어 볼 때, 남녀는 옥상 출입구 뒤쪽에서 거사(?)를 치르는 듯 했다.

'흐음. 하필 반대편이라 안 보이네. 운기 조식좀 할랬더니 하필 훼방꾼이.'

도훈이 난감한 표정으로 난간에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남성의 당황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히끗, 흣!"

"뭐야? 설마 쌌어?"

"죄, 죄송합니다. 집사님 도저히 참을 수가···."

"아니. 5분만에 찍 싸는 게 어딨어? 토끼 새끼도 아니고!"

역정을 내는 목소리 주인공의 정체를 들은 도훈이 기가막힌 표정을 지었다.

'집사? 방금 분명 집사라고 했지?'

[네. 저도 똑똑히 들었습니다.]

'헐, 합숙소 내에서 집사라곤 합숙소장이라는 임집사 밖에 없는거 아니야?'

[아마도 임 집사 같은데요···.]

'저런 미친년. 합숙소를 관리해야 할 소장이, 남신도를 옥상으로 데려와서 남몰래 새벽에 떡이나 치고 있었다니.'

[근데 그럼 주인님의 이론이랑 배치되는 거 아닙니까?]

'뭐가?'

[욕구불만 때문에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린다면서요? 지금 봐선 몰래 잘 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야! 너 진짜 이것밖에 안 돼? 귀엽게 생겨서 예뻐해 줬더니 나 이렇게 실망시킬거야? 이게 뭐냐고? 다시 세워!"

"죄, 죄송합니다. 집사님이 거기가 너무 조여서···."

"뭐라고? 얼른 세우라고!"

"노, 노력해 보겠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듣던 도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욕구불만이 해소가 안 될 만도 하지 않겠어? 파트너가 저 모양이면.'

[하필 골라도 정력이 약한 파트너를 골랐군요.]

그 뒤로 오랫동안 뭔가를 빠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훈은 어처구니 없는 표정으로 난간에 매달린 채 소리를 엿들어야 했다.

"어휴 진짜!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새끼 같으니."

"정말 면목 없습니다."

"너 진짜 안 되겠다. 다음에도 이러면 방 뺄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할 필요 없으니까 잘 좀 하란 말이야!"

"네, 넵!"

"먼저 내려가. 괜히 같이 내려가다 들켜서 오해받기 싫으니까."

"넵."

도훈이 다시 고개를 밑으로 내리자, 곧이어 철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홀로 남은 임 집사의 푸념이 이어졌다.

"젠장. 이래서 평신도들은 안 된다니까? 성기사단이라도 부르고 싶지만, 만에 하나 권권사 귀에 들어갔다간···. 어휴, 내 팔자야."

[임 집사가 성기사단과 어울리지 못하니까 월권으로 평신도를 협박해 재미를 보려고 했나 봅니다.]

'쓰레기네. 그 와중에 성욕은 또 어찌나 센지, 저 상태로도 늘 욕구불만이라는 거 아니야? 가만, 저 년 지금 담배 피우는 거야?'

도훈의 코로 담배 냄새가 흘러들어왔다. 임 집사가 서 있는 위치에서부터 도훈까지 거리는 꽤 멀었으나, 도훈의 예민한 후각은 귀신같이 잡아내는 것이었다.

'아주 가지가지 하네. 다른 합숙소 학생들은 못 피우게 했을 거면서.'

[주인님도 아까 여자 방에서 피우지 않았습니까?]

'내가 합숙소생이야?···. 가만, 합숙소생이라고?'

[왜 그러십니까?]

'생각해보니까, 갑자기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어.'

[괜히 또 이상한 일을 꾸미시려고요?]

'아니. 장만석 이 새끼 잡을 때까지 며칠동안 교회에 머물러야 할 것 같은데, 잠잘 곳이 마땅치 않잖아.'

[그래서요?]

'성기사단 임명되면 어차피 합숙소 들어와 살아야 한다는데, 이 기회에 합숙소장 꼬시면 어떨까?'

[네? 저 욕구불만 변태 집사녀를요?]

'울고 싶은 년 뺨 때려···. 아니 박히고 싶은 년 꽁씹 한 번 시켜주는 거지. 오입질 한 방으로 온갖 편의와 특혜를 제공 받을 수 있다면 나름 남는 장사 아닌가?'

[아니, 하고 많은 여자 중에서 왜 하필 임 집사입니까? 나이도 많은데요.]

'아까 들어보니, 임 집사가 한 때 한 장로의 애첩이었다더라고.'

[한 장로면, 권권사의 현 남편이요?]

'나름 간부진에 대한 정보를 빼내기도 수월할 것 같아서.'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지만, 무슨 수로 모습을 드러내시려고요? 주인님이 여기 합숙소에 사는 학생도 아닌데요.]

'합숙소장이 천여명에 이르는 사람들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것 같아?'

[네?]

'내가 무슨 거짓말을 해도 어차피 모를 거라는 거야.'

도훈은 결심을 마치자마자 난간에 매달려 있다가 훌쩍 옥상 위로 뛰어 올랐다.

기척을 죽인 그는 조심스럽게 철문으로 다가가더니 갑자기 들어온 것처럼 문을 소리나게 닫았다.

쿵문소리가 들리자 뒤쪽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던 임 집사가 화들짝 놀라며 담뱃불을 껐다. 예상치 못한 도훈의 등장에 몹시 당황한 것으로 보였다.

아무리 합숙소장이라도 새벽에 남자 합숙소 옥상에서 돌아다니는 걸 들켰다간 면이 안 서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일부러 임 집사를 등지고 난간에 기대 서더니 미리 준비한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아, 담배 마려웠는데 존나 참았네."

도훈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상황을 파악한 임 집사가 호통을 치며 등 뒤에서 나타났다.

"너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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