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3. 구원회-78-
* * *
도훈이 여자 합숙소에서 음탕한 사감 셋과 맥주를 홀짝이고 있을 무렵.
그로부터 수백미터 떨어진 타운하우스의 창고에선 승아가 의자에 묶인 채 앉아 있었다.
승아를 옭아맨 것은 어선에서나 쓰일 법한 굵직한 밧줄이었는 데, 그 때문인지 승아의 온 몸엔 밧줄에 긁힌 생채기가 한 가득이었다. 심지어 몇 군데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일방적인 고문의 흔적처럼 보였다.
심지어 그녀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고, 유일하게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것이라곤 볼개그라 불리는 입마개 뿐이었다.
입가에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그녀 앞에는 끝이 갈기갈기 갈라진 짧은 가죽 채찍을 든 여자가 서 있었다.
"너 보기보다 독한 구석이 있구나? 아직도 눈빛이 살아있어?"
채찍녀의 정체는 놀랍게도 도훈을 사지로 몰아 넣었던 미숙이었다.
사감들 사이에선 권이사로도 불리는, 구원회의 실세 중의 실세.
채찍을 들고 위협을 가하는 미숙을 앞에 두고도 승아는 결연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미숙이 그녀에게 물었던 질문은 단 하나였다.
-너 박민용이랑 무슨 관계야? 어째서 그 자식이 쓰러졌을 때 미친년처럼 달려든 거지?
승아는 경황이 없긴 했지만, 자신의 대답 여하에 따라 도훈에게 큰 불이익이 갈 수도 있다는 걸 직감했다.
비록 양 권사가 둘을 허락하긴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인 승인이었고 구원회 내에서 공인받지 못한 남여의 교제는 양쪽 모두에 강력한 징계가 내려지는 사안일 수 밖에 없었다.
승아가 계속된 괴롭힘에도 묵비권을 행사하자, 미숙은 더욱 열이 받았다. 고작 수호천사 나부랭이가 감히 자신의 질문을 씹은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안 그래도 중상을 입고 쓰러진 도훈 때문에 심란한 가운데, 승아의 반항적인 태도는 미숙이 평소 숨기고 있던 지배욕을 자극했다.
그녀는 남들 위에 군림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장로에 오르기 위해 평생의 수모를 견뎌 온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 앞에 맹랑한 승아의 행동은 도발이나 마찬가지.
-감히, 내 질문을 씹어? 네년이 정말 간뎅이가 배 밖으로 나왔구나?
미숙은 간만에 자신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교회 사무처에 연락해 승아를 야간작업 명목으로 차출시킨 후 자신의 사택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오로지 건방진 승아를 혼내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복수심의 발로였다.
"오냐, 그래. 끝까지 한 번 개겨보겠다 이거지? 네년이 알량한 양 권사 빽을 믿고 나를 우습게 봤나 본데, 이제부터는 쉽지 않을 거야. 얼마든지 개겨보라고."
미숙이 고갯짓을 하자 아까부터 그녀의 옆에서 대기하던 벌거벗은 사내들이 승아의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여자에게 최악의 치욕감을 선사하는 성고문이 시작된 것이었다.
사내들에게 실컷 유린 당하는 승아를 의자에 앉아서 구경하던 미숙이 손톱을 깨물었다.
'그나저나 민용이는 괜찮으려나? 의사가 고비는 무사히 넘겼다고 했는데, 영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질 않네.'
민용은 그녀가 수십년을 찾아해맸던 장만석의 완벽한 대체재였다.
어떤 면에선 상위 호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늙어가는 장만석에게는 없는 젊음이 있었으니까. 젊다는 건 앞으로 남은 서비스타임이 길다는 뜻이기도 했다.
'···무사하겠지? 하긴. 그 정도도 못 버티고 응급실에 실려갈 정도의 체력이면, 어차피 처음부터 부적격일지도.'
미숙은 아쉽긴 했지만, 이는 스스로 털고 일어나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그것에 실패해서 쓰러진다면, 민용은 딱 거기까지였다.
'후-. 날 받아줄 남자를 마침내 다시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만석씨 말곤 날 감당할 사내는 세상에 없는 걸까?'
사내 셋에게 둘러싸여 갱뱅을 당하는 승아를 배경 삼아 미숙이 만석을 떠올렸다.
그녀가 개척교회 목사였던 만석을 처음 만났을 때, 만석은 마흔이 넘은 중년의 유부남이었다. 20대 초반에 불과했던 그녀와의 나이차는 무려 스무살. 오히려 만석의 큰 아들과는 7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 미숙도 어느덧 마흔이 되었고, 만석은 육십을 넘겼다. 그렇게 정력 넘치던 사내도 환갑을 넘기는 순간, 늙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나이보다 훨씬 팽팽하던 피부도 급격히 쭈글쭈글 해지고, 피부 곳곳에 검버섯이 피어올랐다. 허리는 새우처럼 구부정해졌으며, 쇳덩이처럼 단단하던 잦이도 예전만 못 했다.
물론 장만석과 오랫동안 관계를 못했던 미숙으로서는, 직접 본것은 아니고 성수를 받는 신도들에게 들어 알게 된 사실이었다.
'예전에는 분명 나이보다 어려보였는데, 지금은 실제 나이보다 20년은 더 늙어보인단 말이지? 솔직히 요즘 세상에 환갑이면 한참 팔팔한 청년이나 마찬가진데 벌써부터 얼굴에 검버섯이나 피고···. 쯧쯧.'
미숙은 장만석이 폭삭 늙은 이유가, 젊어서부터 문란하게 섹스를 해대며 정액을 너무 뽑아썼기 때문이라고 확신했다. 즐길때는 좋았겠지만, 결국 그 여파로 제 나이보다 훨씬 빨리 늙게 되는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마치 젊음을 무리하게 당겨쓴 것처럼.
'어쩌면 그 이상한 양생치료의 부작용일 지도 모르지.'
만석이 조로증 환자처럼 제 나이보다 빠르게 늙기 시작했을 때, 그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난 신께 구원받은 몸이야. 나는 죽지 않고 영생한다.
그렇게 스스로 '불로불사'를 선언한 만석은 그 이후로 매일같이 침소로 처녀 신도를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저러다 힘달려 그만 두겠지 했지만, 그의 기행은 수년 째 이어지고 있었다.
만석에게서 팽당하긴 했지만, 여전히 구원회 내에서 입김이 강했던 미숙으로서는 만석이 대관절 밤에 처녀를 불러다 놓고 무슨 짓을 벌이는 지 궁금해 침소로 끌려갔던 처녀 한명을 붙잡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대체 교주님이 너한테 무슨 짓을 하던?
처녀인 신도는 대부분 구원회에 입회한지 몇 달 안된 어린 양이었기 때문에, 권사인 미숙의 질문에 벌벌 떨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벼, 별거 없었습니다. 다만 특이한 것이···.
-특이한 것이?
-제가 흘린 처녀혈을 입으로 모두 빨아 드시는···.
-뭐,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미숙은 마침내 만석이 미쳤구나 하고 확신했다.
처녀를 찾는 이유가, 단순히 섹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첫경험 이후 흘리는 처녀혈을 입으로 빨아 마시기 위한 행위였다는 것이었다.
남의 피를 빨아 먹는 행위는 위생적인 문제도 있지만, 왠지 서양의 흡혈귀를 떠올리게 하는 엽기적인 행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오히려 불사를 하겠다는 선언 이후, 만석의 노화는 급속도록 진행되는 것 같았다.
지난 주만 해도 주일 예배를 끝내고 단상에서 내려오다, 뭔가를 놓고 온 사람처럼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또 다시 설교를 할 뻔 했던 것.
놀란 수행원들이 그를 제지하는 통에 넘어질 뻔한 소란이 있었고, 그 모습을 맨 앞 열에서 지켜 본 미숙은 그의 아들이자 부목사인 장석개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하며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석개 넌 교주님 돌아가시면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 거요, 누님? 당연히 아버지의 뒤를 이어 내가 교회를 물려 받아야지.
-하지만 너네 삼촌은 어쩌고?
-삼촌은 삼촌일 뿐, 아버지의 후계자는 엄연히 나라고. 내가 우리 아버지 빼다 박은 건 누님이 더 잘 알잖수? 껄껄. 부자를 모두 상대해 봤으니 말이요.
물론 장석개는 아버지인 만석의 외적인 부분을 여러모로 닮은 편이었다. 얼굴은 젊었을 때 만석을 빼다 박았고, 아랫도리 역시 규격 외라 불리던 아버지를 닮아 발기 사이즈가 20cm가 훌쩍 넘는 초대물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미숙은 결코 아들인 석개가 만석처럼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구원회가 급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배경에는, 바로 신도들에게 주기적으로 제공되는 성수에 있었던 것.
성수는 지금의 구원회를 있게 한 알파이자 오메가였고, 구원회의 괴이한 시스템이 큰 문제없이 돌아가게 만드는 윤활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장석개의 정액엔 아버지의 그것과 같은 영험한 효능이 전혀 없었다. 물론 석개는 아버지가 죽으면,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권능이 자신에게 전수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만, 제 3자인 미숙의 입장에선 그야말로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아쉽지만, 성수로 운영되는 현재의 구원회 시스템은 교주가 죽고 나면 끝나게 될 거야. 그나마 다행인 건 구원회가 공격적으로 신도를 늘리고 사업을 확장한 덕에 이제 규모의 경제로 돌아갈 만큼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는 거지. 석개가 예상대로 후계자가 되고, 내가 장로에 오르기만 하면 어떻게든 다시 구원회를 굴려나 갈 수 있어.'
생각에 잠겨있던 미숙에게, 도둑 가면을 착용한 뚱땡이가 말했다.
"저, 권사님. 쉬시는데 죄송하지만 드릴 말씀이."
"뭐야?"
"저 여자 기절해 버린 것 같은데요?"
세 사내에게 둘러싸여 돌림빵을 당하던 승아가 끝내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식에도 미숙의 표정엔 미동도 없었다.
"찬 물 뿌려서 깨워 그럼! 내가 그런 것까지 너희들에게 일일이 알려줘야 하니?"
"아, 아···. 넵!"
뚱땡이가 찬 물을 구하기 위해 어딘가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며 미숙이 끌끌 혀를 찼다.
'하여간 머저리 같은 놈들. 부하라고 있는 놈들이 하나같이 띨빵한 놈들 뿐이니. 뭘 믿고 맡길 수가 있어야지?'
미숙은 승아가 꺾일 때까지 밤새도록 괴롭힐 작정이었다.
민용이 죽어갈 때 보였던 눈물의 의미를 실토할 때까지 말이다.
* * *
"승아는 괜찮은 거겠지?"
"왜? 섹파가 안 돌아오니까 걱정돼?"
"너네 둘이 정말 사귀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건."
벌써 맥주를 3캔 째 들이켠 수빈이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말했다.
"하긴. 승아 성격에 공식교제를 인정할 리 없지."
"그건 왜?"
"몰라서 물어? 구원회 내에서 공식 교제를 한다는 건, 그 다음 진급을 포기한다는 선언과도 같거든."
"맞아. 승아가 엔젤에서 수호천사 되려고 고생고생하며 몸을 굴렸던 걸 생각하면···. 아차, 미안. 좀 거슬렸니?"
도훈은 너무나도 뻔한 수작에 속으로 피식 웃었다.
'승아를 깎아내리려고 안달난 사람들 같군.'
"거슬릴 게 뭐 있겠어. 서로 다 아는 처지에."
"그치? 맞아. 근데 승아는 유독 심하긴 했거든."
"난 걔 그래서 과거에 업소 뛰다 온 줄 오해했다니까? 어찌나 열심히던지."
"맞아맞아. 승아가 진짜 맘 먹고 사감에 지원했으면 우리 셋 중 하나는 무조건 떨어졌을 걸? 그만큼 동기중에서 승아가 제일 잘나갔으니까."
"민용이 넌 승아랑 어떻게 만나게 된 거야?"
"어떻게 만나다니?"
"아니, 성기단에 너 말고 다른 남자들 많잖아. 근데 왜 승아가 딱 너를 찍었냐는 거지."
거유의 소유자 정미의 물음에 도훈이 없는 말을 지어냈다.
"내가 제일 커서?"
"뭐?"
"에이, 그건 아니다."
"우리도 다 봤거든? 아까 목욕탕에서."
"하여간 남자들은 꼭 그렇더라? 확인되지 않는 말로 허세 부리는 거."
"맞아맞아."
여사감들이 이구동성으로 도훈을 도발했다.
자신있으면 벗어서 증명하라는 뜻이었다.
이를 모를리 없는 도훈이 과감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목욕탕에서 본 건 풀발기가 아니었다고."
"정말?"
"아닌데. 완전히 꼴린 모습이었는데?"
"맞아 맞아. 너 내 가슴골 계속 쳐다 봤잖아."
도훈이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 안 꼴렸다는 게 아니고 완전히 꼴린 게 아니라는 거지."
"증명할 수 있어?"
"그래. 한 번 까봐. 안주도 떨어졌는데 소시지 한 번 먹자."
"난 그럼 알탕."
"알탕이 뭐야?"
"뭐긴 뭐야. 소시지 밑에 알탕 두개 달려있잖아."
"꺄하하하하. 존나 웃겨 씨발."
슬슬 술기운이 도는지 여사감들의 수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도훈은 마침내 새롭게 장착한 자신의 대물을 시험해 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개시는 그래도 8선녀들이랑 하고 싶었는데.'
[이제와 후회하십니까? 오늘 처음보는 여자들하고 하게 된걸?]
'후회까진 아니고 뭔가 의미를 담고 싶었거든. 사실상 잦이만 환골탈태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도훈은 그런 것에 크게 의미부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특히 그들을 구슬려 승아처럼 내부의 첩자로 만들 계획도 품었기 때문에 이 또한 작전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 이건 일이야 일. 프로는 늘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법이고.'
도훈이 과감하게 바지를 끝까지 내렸다.
새롭게 태어난 그의 잦이가 마침내 여사감들의 면전에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