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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72화 (1,852/2,000)

1872. 구원회-77-

투명 인간 모습에서 벗어나 여자 합숙소 안을 돌아다니는 도훈은 조금도 긴장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금만 의식을 집중하면 반경 수십 미터까지 모든 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현재의 도훈은 움직이는 음파 탐지기라고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사람이 내뿜는 미세한 기의 흐름을 읽어내 어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도 있었다.

마치 적외선 레이더로 벽 너머를 꿰뚫어 보는 것처럼 그의 머릿속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오오, 뭐지 이건? 완전 다 보이는데?'

[네? 갑자기 헛것이라도 보시는 겁니까?]

'아니 그 말이 아니고, 의식을 집중하니까 오감이 훨씬 예민해진 게 느껴진다고. 보이거나 들리지 않아도 인기척을 감지해 낼수 있다랄까? 물론 예전에도 어느 정도 가능하긴 했는데 그 범위가 말도 안 되게 확장된 것 같아.'

[감축드립니다, 주인님. 무공이 한층 진일보하셨군요.]

'뭐니 뭐니 해도 내공 증진이 최고였구나. 감각이 이렇게까지 예민해질 수 있다니.'

[사실 현재 주인님의 내력은 인간이 쌓을 수 없는 수준까지 다 다랐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200살까지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가정하에 말이죠.]

'가정하에? 그게 왜 가정이야? 팩트가 아니고?'

[아닙니다. 한때 도가의 양생술이 유행했을 당시에 100살을 넘기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100살은 그럴 수 있다 쳐도 인간이 200살 넘게 사는 게 가능할 리가 없는데? 정말로 그게 된다고?'

[네. 책에도 버젓이 나왔는데 모르셨습니까?]

'누구 말하는 거야?'

[삼천갑자 동방삭이요.]

'잠깐만, 그럼 동방삭이 실존 인물이라고? 지어낸 사람이 아니라?'

[네. 실존 인물 맞습니다.]

'내가 지닌 내공이 대충 3갑 자라고 했을 때, 1갑 자가 60년이니까···. 계산해보면···. 뭐야? 설마 18만 년이야? 인간이 18만년 동안 살았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호모사피엔스 조상님도 아니고.'

[뭔가 오해가 있나 보군요. 본래 삼천갑자에서 삼천이란 숫자 삼천을 뜻하는 게 아니고, 옮길 천자를 써 갑자를 3번 옮겼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숫자 삼천으로 와전된 거죠. 따라서 동방삭의 나이는 최소 121세에서 최대 239세 사이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헐, 그래도 200살 가깝게 살았다는 거네?'

[네. 동방삭은 동양의 양생술 분야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유럽에 '방황하는 유대인'으로 불렸던 '아하스 페르쯔' 라든가 프랑스의 '생 제르맹 백작' 등도 있습니다. 모두 다 실존 인물이고요.]

'오우, 젠장! 불로불사가 정말로 가능한 것이라고? 가만, 혹시 방금 언급한 사람들이···. 플레이어야?'

[네. 맞습니다. 그래서 실존 인물이라고 자신있게 말씀드린 겁니다.]

'그럼 플레이어 중 일부가 정말 불로불사의 비밀을 발견했다는 소리네?'

[불로불사···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노화를 획기적으로 늦출 수 있는 양생술을 스스로 터득했을 뿐이죠. 방법은 제각기 달랐지 만요.]

'참으로 신기하군. 200살 넘게 사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다니.'

도훈은 자신이 200살까지 산다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바로 그때, 7층 위치에서 인기척을 느낀 도훈이 제자리에 우뚝멈춰 섰다. 계단 위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응? 뭐해? 안 따라오고?"

앞서가던 수빈이 도훈과의 거리가 계속 벌어지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도훈은 대답 없이 손가락으로 계단 위쪽을 가리켰다.

"응? 위에서 무슨 소리 들었어? 난 아무것도 못 들었는데?"

"먼저 가서 확인해 봐."

수빈은 도훈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 순간, 계단참에 쪼그려 앉아있던 여신도 한 명이 수빈을 보더니 후다닥 놀라 도망치는 것이었다.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의 일이었기 때문에 수빈도 당황해서 소리쳤다.

"너, 너 뭐야? 이 시간에 왜 계단에 나와 있어?"

사감인 수빈이 급히 뛰어 올라갔지만, 이미 여자는 합숙소 방쪽으로 사라진 뒤였다. 복도 좌우로 방이 40개씩은 있었기 때문에 한 번 사라지면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뒤쫓기를 포기한 수빈은 뭔가 수상쩍은 기운을 느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방금 폰카로 뭔가를 찍고 있던 것 같은데? 뭐지?"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계단 위에 떡하니 버섯이 하나 솟아 있는 것이었다. 수빈은 자신이 헛것을 본 줄 알고 스스로의 눈을 비볐다.

"···돌 계단 위에서 버섯이 자란다고?"

제 눈으로 목격하고도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수빈이 허리를 숙인 채 버섯의 정체를 살피기 위해 만져보자 손끝에 표면에 끈적 끈적한 무언가가 묻어 나왔다.

"이게 무슨···. 어엇, 이거 설마?"

수빈은 그제야 버섯이 실제 버섯이 아니라 실리콘으로 만든 모조품이란 걸 깨달았다. 그리고 버섯에 묻어있던 점액이 방금 전후다닥 도망친 여신도의 애액이라는 것도.

"어흑, 더럽게 진짜!"

수빈이 손바닥으로 치마에 손바닥을 쓱 문질렀다.

다른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 구멍을 들락거린 버섯 형상 딜도를 만졌다는 게 너무나 찝찝하고 기분이 더러웠다.

그때 도훈이 바로 아래까지 따라붙으며 물었다.

"누구 있었어?"

"어. 아씨, 짜증나."

"왜? 무슨 일인데?"

"어떤 변태가 여기서 혼자 자위하다 갔다니까?"

"자위라고? 누군지 얼굴 봤어?"

"못 봤어. 놀라서 후다닥 달아나는데 뒷모습만 살짝."

수빈은 도훈이 따라 올라올 때까지 계단참에서 기다리며 버섯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 하필 버섯이지? 하고많은 딜도 중에서 버섯 형상은 또 처음 보네.'

버섯은 너무나 실물과 똑같이 만들었기 때문에 언뜻 봐선 딜도로 인식하기 어려웠다.

'그렇구나! 소지품 검사하다 걸리면 모형이라고 둘러댈 작정이었군!'

임 집사가 합숙 소장을 맡은 뒤로, 신도들은 철저한 금욕 생활을 강요받았다. 때문에 오나홀은 말할 것도 없고, 딜도 종류도 소지하다 발각되는 순간 곧바로 벌점 부과 대상이었다.

누적된 벌점은 합숙소 퇴출로 이어졌기 때문에, 만에 하나 적발되더라도 둘러댈 목적으로 실리콘 버섯 모형을 골랐던 것.

"···어이가 없네! 진짜. 이런 건 대체 어디서 구하는 거람? 진짜 좆같이도 생겼네."

그때 바짝 따라붙은 도훈이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수빈에게 물었다.

"뭐해? 안 올라가?"

"저것 좀 봐. 저게 뭐 같아 보여?"

"저거라니? 계단 위에 웬 버섯이···."

"그러니까 뭐 같아 보이냐고."

도훈은 보는 순간 그것이 딜도임을 깨달았다.

'진짜 좆같이도 생겼군. 대충 예상은 했지만.'

[먼저 예상을 하셨다고요?]

'어. 3층 올라오는데 소리가 들리더라고. 7층 계단참에서 찌걱거리는. 딱 듣는 순간 발정이 난 여학생 하나가 몰래 자위하나 싶었지.'

[무려 4층 높이의 층간 거리를 건너뛰어 들으셨단 말입니까?

자위 소리가 무슨 천둥소리도 아닐 텐데요.]

'아니. 그 소리만 들은 게 아니고, 누구랑 대화하는지 자꾸 속삭이면서 말을 하는 거야.'

[한 사람이 아니었다고요?]

'아니. 혼자서 통화하는 거 같았어. 영상통화 같은.'

[와···. 일종의 영통폰섹이군요.]

'그렇지.'

민망한 상황에 도훈이 버섯을 발로 치우려고 했다. 그러자 수빈이 도훈을 말렸다.

"잠깐. 놔둬 봐."

"왜?"

"누군지 몰라도 찾아서 벌점 먹여야겠어. 이건 증거품이야."

수빈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버섯의 뿌리 부분을 잡더니 계단 위에 솟아난 버섯을 회수하는 것이었다.

'저년, 저거 자기가 쓰려고 챙기네.'

[네?]

'그게 아니면 뭐하러 남이 쓰다 버리고 간 물건을 굳이 집어 들겠어? 짱박아놨다가 자기가 쓰려고 하는 거지.'

[구원회 신도들은 섹스에 미친 자들인가요? 매주 난교파티를 벌이면서 어째서 자위에도 저토록 극성인지···.]

'성수 때문이겠지.'

[성수요?]

'응. 성수의 효과로 성욕이 일정 수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거야. 여자들은 매일 배란기 상태나 마찬가진 거지. 배란기가 되면 더 극심해지고.'

[여자도 여자지만 남자들도 문제겠군요, 그 정도면.]

'거의 미칠 지경일걸? 매일 욕구불만이 쌓여 있을 테니.'

[근데 합숙소장이라는 여자가 아까 사감들에게 훈계할 때 남자신도들 자위를 금지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맞아. 성욕을 성수를 이용해 풍선처럼 잔뜩 부풀려 놓고, 평소엔 전혀 못 풀도록 통제하는 거야.'

[왜 그렇게 하는 거죠? 문란하기 짝이 없는 교회의 분위기랑 너무 상반되는 거 같은데요?]

'처음엔 소장의 악취미인가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까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일부러라고요?]

'원래 담배도 1시간마다 피면 아무 느낌도 없거든. 그냥 습관적으로 입에 무는 거지.'

[아!]

'자위도 못 하게 꽁꽁 묶어놨다가, 일주일에 한 번 풀어주면 그 쾌감이 배가되지 않겠어? 갈증 나게 만든 다음 해갈을 시켜주려는 의도지. 그래야 더 충성할 테니까.'

[디테일 하나하나까지 정말 꼼꼼하군요.]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잖아. 정말 악마 같은 새끼라니까?

장만석은.'

도훈은 버섯모양의 자위기구를 챙긴 수빈을 보며 생각했다.

'사감들마저 저렇게 욕망을 주체 못 하는데, 일반 신도들이야 오죽하겠어?'

"따라와. 8층이 우리 숙소야."

"8층은 구조가 달라?"

"당연하지, 여긴 수호천사 이상만 쓰는 일인실이니까."

"그럼 사감들이 사는 곳인가?"

"아니. 사감은 남녀 합숙소당 8명뿐이야. 각각 한 층씩 맡고 있지."

"아."

"나머진 그냥 네 여친같이 사감을 맡지 않은 수호천사들이고."

"여친이라니?"

"조승아 말이야.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었어?"

"사귀는 것 까진 아니고···."

"왜? 인제 와서 뭘 더 숨기려고? 사귄다고 해도 우린 신경쓰지 않기로 했어."

"그게 아니라 우린 그냥 섹스만···."

"풉-. 그래그래. 믿어줄게. 차라리 잘됐네. 섹파 사이라면 우리랑 같이 어울리는 것도 죄책감 같은 거 없을 거 아니야?"

"죄책감은···."

수빈이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하긴, 맨날 다른 여자들 만족시켜주는 성기사단에게 죄책감은 사치이려나?"

"음음."

"이 방이야. 823호."

"가만. 근데 옆 방에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도훈은 이미 옆방에 인기척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으나,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걱정하지 마. 양 옆방 주인들이 지금 내 방에 모여서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

수빈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에서 상의를 벗고 민소매 차림으로 있던 두 여자가 깜짝 놀랐다.

"헐! 진짜로 왔네?"

"어떻게 같이 왔어?"

수빈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문 열자마자 들어오더라니까? 기다렸다는 듯이."

"아니 그건 남자 합숙소 탈출로랑 거기가 가까워서···."

"어? 둘이 벌써 말 놓은 거야?"

"응. 민용이도 우리랑 동갑이래. 24살."

"아하."

"다시 만난 김에 정식으로 소개나 하자. 내 이름은 알지? 이수빈. 그리고 이쪽은."

수빈이 다른 두 명을 소개하려고 하는데, 유난히 가슴이 큰 여자 한 명이 직접 나섰다.

"난 김정미. 아까 보고 또 만났네?"

도훈은 끈 민소매만 입고 있는 정미의 가슴골이 유난히 깊다고 생각했다.

'빨통은 정미가 최고군.'

[저 정도면 무슨 컵입니까?]

'F컵? 거의 그 근처 같은데?'

[혹시 수술일까요?]

'아니. 부유방의 크기로 봐선 자연산인 듯.'

[부유방이요?]

정미는 나시를 걸치고 있었기 때문에 겨드랑이 부근이 훤히 드러난 상태였다.

'저기 보면 겨드랑이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윗가슴을 부유방이라고 하거든. 수술한 애들은 저기가 저렇게 클 수가 없어. 그리고 팔뚝도 제법 있는 편이고.'

[오호. 역시 주인님은 세밀하게 관찰하시는군요.]

'당연하지. 실리콘도 구분 못 하는 눈썰미 가지고 어떻게 섹스킹이 되겠어?'

정미에 이어 안경을 쓴 여자가 도훈에게 악수를 건넸다.

"난 박하연. 너랑 아까부터 문자 주고받았던."

"아···. 안녕하세요."

"뭐야? 그냥 말 놓기로 했다며? 우리도 수빈이랑 친구니까 말편하게 해."

"맞아. 괜히 서로 존칭 쓰면 어색해지니까."

소개가 끝나자 네 사람이 조그만 반상을 두고 동서남북으로 둘러앉았다.

"맥주 한 캔 할래? 우리도 마시는 중이었는데."

"술이 있다고?"

"응. 몰래 꼬불쳐 놨지. 이럴 때를 위해서."

"방에 남자가 들어오니까 갑자기 두근두근한데?"

금남의 영역으로 남자가 발을 들이자 다들 들뜬 모습이었다. 특히, 그 사내가 목욕탕에서 확인했던 대물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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