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구원회-75-
사감의 방은 종전에 봤던 2인실보다 확실히 넓었다.
2인실이 길다란 통로식 구조에 책상겸 2층 침대가 꽉 채워진 그야말로 닭장이었다면, 사감들이 사용하는 1인실은 정사각 형태였다. 창가쪽에 싱글사이즈의 침대가 있고, 맞은편에는 별도의 책상이 따로 있었다.
2인실은 취침과 공부만을 위한 비좁은 고시원 스타일이었다면, 1인실은 그래도 아담한 원룸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심지어 조그만 소반을 놓고 세 사람이 둘러 앉아도 충분한 거실 공간이 나왔다.
[확실히 2인실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군요. 이 정도는 되어야기숙사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치졸함에 치를 떨게 만드는 군.'
[네? 무슨 말씀입니까?]
'6평도 안되는 원룸이 사치스럽게 느껴질만큼 2인실을 닭장처럼 만든 거잖아. 이러니 기를 쓰고 진급하려고 하는 거지. 위로 올라갈수록 차등을 두기 위해서, 오히려 2인실을 빡빡하게 만든 느낌이랄까? 이러면 월세 30짜리 원룸 사이즈만 주어줘도 자긴 특별한 혜택을 받는다고 느낄 거 아니야. 저기 모인 여자 사감들처럼.'
[아···. 평범함을 사치스럽게 느껴지게 만드는 열악함이군요.
주인님이 왜 치졸하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이건 아무리봐도 인권유린에 노동력 착취야. 젊고 건강한 20대 남녀를 실컷 부리면서 최저시급보다 못한 임금에, 주거 환경을 제공하는 거야. 이러니 기업이 무조건 흑자가 남을 수 밖에. 가장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인건비에서 말도 안되게 남기고 있으니. 장만석 그 인간은 마른 오징어에서 물을 짜낼 놈이야.'
[이러한 불합리한 여건을, 오로지 세뇌를 통한 신앙심과 성욕을 적절히 풀어주며 통제하는 거였군요.]
'5 만의 신도 중에서 몇이나 이런 생활을 하는 지 모르겠군.'
[몇명이라뇨? 합숙소의 인원은 모두 천명이라지 않았습니까?]
'5만명 중 노동력을 갖춘 사람이 천명이라면 너무 적지 않아?'
[듣고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교회재단 명의로 운영되는 회사가 10여개 넘었던 것 같은데요.]
'내 생각인데, 아마 공장이 위치한 현지 지역에도 이런식의 합숙소가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아. 공장 부지는 서울엔 거의 없을테니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에 공장을 차려두고 거기 합숙소에서 관리하는 거지. 대신 여긴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합숙소니까 메리트가 있는 것이고.'
[그렇군요. 주인님 말대로 이런 합숙소가 여러개 존재할 수도 있겠군요.]
'아무래도 장만석은 종교인이 아닌 것 같아.'
[그럼요?]
'놈은 철저한 사업가야. 교회라는 탈을 쓰고, 사실상 노동력 착취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악덕 사업가.'
합숙소를 둘러 본 도훈은 그제야 장만석의 실체를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한 목적에 이런 이유가 있다는 것도.
도훈은 여전히 투명화 상태로 여 사감 셋의 대화를 엿들었다.
"캬. 맥주 맛 좋네. 점호 끝나고 마시는 술이 역시 최고야."
"근데 이 술 어디서 났어? 사온 거야?"
"압수품이야."
"압수품?"
"간도 크게 2층의 신참 엔젤이 사서 들고 왔더라고. 검은 봉지에 든 거 뭐냐고 물어보니까 맥주래. 밤에 마시려고 샀다고."
"푸하하. 맥주 반입 금지를 몰랐던 거야?"
"아니. 청주 합숙소에서 올라온 앤데, 거기선 뭐라고 안했다는 거야. 대신 취해서 소란 피우면 퇴출하는 조건으로."
"아하. 우리 강남 합숙소 규율이 엄청 빡세다는 걸 몰랐나 보네."
대화를 엿듣던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들었지?'
[네. 청주 합숙사라는 곳도 있었군요. 주인님 예측이 맞는 것 같습니다.]
'전국 각지에 대체 몇 개나 있는지도 모르겠군.'
도훈은 계속 귀를 기울이며 대화를 엿들었다.
"근데 우리도 몇년 전까지는 맥주 정도는 그냥 반입 시켜줬더라고."
"정말?"
"응. 우리 사감 되기 전에 그러다 합숙소장이 임 집사님으로 바뀌면서 일체 반입 금지로 바뀐 거야."
"하여간 그 마녀. 노처녀 히스테리를 우리한테 푼다니까?"
"맞아 맞아."
"수빈아 그 얘기 들었어?"
"뭐?"
"우리 옆 방에 사는 사감이 소장실에 보고할 게 있어서 갔는데, 임 집사님이 깜짝 놀라서 후다닥 서랍에 뭘 숨기더라는 거야."
"뭘 숨겼는데? 봤대?"
"너무 동작이 날래서 못 봤대, 근데 뭔지는 알 것 같대."
"뭔데?"
"로터."
"로터?"
"그거 아니야? 메추리알처럼 생긴 자위기구. 건전지 넣고 켜는거."
"맞아 맞아."
"세상에. 어떻게 알았대?"
"글쎄, 임 집사님이 너무 급하게 서랍에 숨기느라 전원 버튼을 안 눌렀다나봐."
"헉."
"세상에. 그래서?"
"그래서는 뭔 그래서야. 서랍 안에서 계속 덜덜덜 소리가 나는 데, 일부러 모른 체 하려고 못 들은 척 했다는 거잖아. 덜덜덜 덜 덜덜."
"푸하하하. 진짜 미친년이네."
"소장실 안에서 그럼 몰래 자위하고 있던 거야?"
"완전 음란 마녀잖아? 하여간 눈빛 부터 살짝 욕구불만처럼 보이긴 했지."
[주인님. 딜도가 아니라 로터라는 데요?]
'어쨌든 맞잖아. 자위하고 있던 거. 습관성 자위 중독자.'
[반만 맞춘 걸로 하죠.]
"난 진짜 임 집사님 이해가 안 되더라?"
"뭐가?"
"아니.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냥 참회방 가서 한 번 풀고 오면 되잖아. 섹스할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니까. 나도 잘 이해안되던데."
그때 수빈이라는 여사감이 오다리를 뜯으며 말했다.
"나 그런 소문 들은 적 있어."
"뭔데?"
"왜?"
"임 집사님이 원래 지금 한 장로님 비서 출신인 거 알지?"
"어어, 들었어."
"그게 왜?"
"한 장로님이 권사 시절에 오래 모셨다고 하더라고. 근데 지금한 장로님 부인이 누구야?"
"권 이사?"
"헐! 그 권권?"
[권 이사는 누구죠? 권 미숙이 이사였습니까?]
'그게 아니라 권권사니까 권이 2번 들어가서 권2 라고 부르는 별칭인듯?'
[호오.]
'솔직히 누리는 권세만 보면 같은 권사급은 아닌 것 같긴 했어.
아마 중의적인 별명인듯.'
[그렇군요.]
"응 권이사가 참회방 완전 단골이잖아. 그러니 임 집사 입장에선 괜히 참회방에 갔다가 권이사를 만나면 큰 일 나는 거지. 머리 채 잡힐지도 모르고."
"아아···. 한 장로님 밑에서 비서를 오래했으니까?"
"뻔하지. 완전 애첩이었다고 하던데."
"근데 지금 한 장로님 다른 분이 수행하지 않나?"
"맞아. 나이 먹고나서 팽 당한 거지. 그 충격으로 정신이 살짝 이상해졌다잖아."
"난 원래 미친년인줄 알았는데."
"지금 미칠 노릇이긴 할 거야. 남자는 필요한데 성기사단은 못만나고. 그렇다고 집사가 되어가지고 청년회 주일 예배에 끼고 싶어도 체면이 안 서고."
"크크크. 진짜 갱뱅 마려운가 보다."
"그니까. 완전 욕구불만으로 미쳐간다니까?"
여 사감 셋은 합숙소장인 임 집사를 안주삼아 계속 맥주를 홀짝거렸다.그러다 슬슬 몸에 열이 올랐는지 입고 있던 셔츠를 벗는 것이었다.
이들은 구원회의 교복같은 복장인 흰 셔츠에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셔츠를 벗자마자 곧바로 끈나시 차림으로 변했다.
그 모습을 훔쳐보던 도훈도 슬슬 잦이가 꿈틀거렸다.
'하여간 몸매는 하나같이 빠지지 않는단 말이지.'
[미모가 수호천사에 오르는데 필수조건일까요?]
'영향은 있겠지. 엔젤 때 미친듯이 구르려면 일단 예뻐야 하니까. 어차피 이름만 그럴싸하지 사실상 돈 받고 몸 파는 창녀들이잖아. 미모가 곧 몸값인 셈이지.'
[그런데 왜 주인님은 또 발기를 하시는 건가요?]
'좌지가 먹잇감을 보고 더듬이처럼 반응하는 거지. 일종의 먹잇감 발견 같은?'
[우지로 그냥 갈겨버리고 싶군요.]
'오, 라임 좋았어.'
"우리도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지?"
"뭐가?"
"솔직히 성욕은 나날이 올라가는데 엔젤 때처럼 실컷 즐기지도 못하잖아."
"맞아 맞아. 솔직히 수호천사 되고 나선 훨씬 섹스는 덜하게 되는 것 같아. 기숙사 사감 할 수 있는 거 빼곤 좋은 게 없는듯."
"그래서 승아가 몰래 섹파 구한 걸까?"
"아까 목욕탕?"
"흐흐, 승아 시크한 척 오지더니 뒤로 호박씨까는 거 봤지? 사람 다 똑같다니까?"
"근데 오늘 왜 승아는 외박이야?"
"몰라. 사유는 잘 모르겠는데 본부에서 통보가 내려와서 열외처리 했어."
"아, 본부? 난 또 아까 그 애랑 떡치러 간 줄?"
"크크, 충분히 그럴만도 하지. 아까 봤지? 민용이라는 성기사단. 엄청 실하던데."
"봤지. 거기밖에 안 보이더라. 내가 승아라도 혹 했을 듯."
"조심해. 허락없이 연애하다 적발되면 강등될 수도 있다고."
"으으. 그건 절대 안되지. 난 절대 그 닭장으로는 안 돌아갈 거야."
"진짜 최악이라니까? 어떻게 3년을 살았나 몰라?"
"맞다. 하연아, 너 아까 걔 연락처 받지 않았어? 네 폰으로."
하연이라고 불린 여신도가 핸드폰을 꺼내더니 깔깔 거렸다.
"응. 나한테 번호 있지롱."
"너 몰래 따로 불러서 만나지 마라. 같이 공유하기로 한 거니까."
"뭐래. 나도 의리가 있거든?"
"근데 언제 만날 거야? 시간 맞춰야 하나?"
그때 여신도 한명이 다 마신 맥주캔을 우그러뜨리더니 불만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먼저 연락하는게 맞아?"
"응?"
"왜 그래, 정미야?"
수빈과 하연이 놀라서 묻자 정미가 말했다.
"아니. 걸린 건 그쪽인데, 왜 우리가 먼저 연락을 해야 하냐고.
승아는 갑자기 본부 명령으로 외박해 버리고, 민용이라는 자식은 연락도 없고."
"듣고보니 그렇네? 우리가 확 불어버리면 어쩌려고."
"겁이 없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정말 신고 못할 거라고 보는 건가?"
"난 솔직히 오늘 중으로 연락 안오면 우릴 우습게 봤다고 생각해."
"맞아. 우리가 승아와 친한 걸 아니까 적당히 넘어가 줄거라고 생각하나봐."
"우리가 승아랑? 푸흡-."
"그건 아니지. 같이 승급한 동기긴 하지만, 우린 사감하면서 계속 친하게 지냈고 승아랑은 그렇게 친하진 않잖아."
"맞아."
"괘씸한데 진짜 신고해 버려? 솔직히 우리가 뭐 아직 잘못한 것도 없잖아."
"기껏 공범해준다고 했는데 이런식으로 나오면 곤란하지."
[주인님한테 괜히 불똥이 튀는 거 아닙니까? 다들 취해서 약간 흥분한 것 같은데요.]
'슬슬 나설 시기인가?'
[네? 여기서 모습을 드러내신 다고요?]
'아니. 물론 그렇게는 안하지.'
도훈이 허공에서 대포폰을 꺼내더니 구석으로 숨었다.
투명인간 아이템의 특성상 도훈의 신체는 투명화가 되지만, 그가 지닌 물건은 공중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훈은 아까 연락처를 주고 받았던 하연에게 바로 앞에서 문자를 남겼다.
-이도훈 : 안녕하세요.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막 점호가 끝나가지고 이제 연락드려요. 공공 목욕탕에서 인사드렸던 박민용입니다.
부르르-.
셋이 도훈을 씹고 있는데 하연의 폰으로 문자가 날아오자 동시에 문자내용을 확인했다.
"오, 양반은 아닌 모양이네. 아까 걔한테 연락 온 거 맞지?"
"그렇네. 점호 받느라 연락이 늦었대."
"우리가 사감인건 모르나 보지?"
"남신도가 여자합숙소 사감을 알길이 없지."
"일단 답장 보내봐. 왜 이제 보내냐고. 다리 벌리고 기다리고 있었다고."
"푸하하하-. 망측하게 그게 뭐야."
"왜? 다들 은근히 기다린 거 아니었어? 잦이 큰 성기사단을 섹파로 만들 수 있는 기횐데."
"말은 바로해야지. 섹파는 아니지. 승아가 걔랑 섹파인 거고."
"그럼 뭔데?"
"일종의···. 노리개?"
"꺄하하. 노리개 좋다. 생체 딜도 하나 생기는 거야?"
"뭐야, 수빈이 왜 그렇게 음란해. 음란 마귀가 들렸나?"
"누구 때문이겠어? 소장실에 딜도 가져다 놓고 몰래 자위하는 위대하신 우리 임 집사님 때문이지."
"자자, 나 지금부터 답장 보낼 거야. 진짜 그렇게 보내?"
"아니. 지금 뭐하는 거냐고 짜증내봐. 우리가 우습게 보이냐고."
"정말?"
"응. 너무 고개가 뻣뻣한 것 같으니까 기 좀 팍 죽이게."
도훈은 세 사람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앞에서 훔쳐들으며 어이가 없었다.
'미친. 내가 바로 앞에 있는데 노리개니 생체 딜도니 말이 심하군.'
[주인님이 면전에 있다는 걸 모를테니까요.]
-박하연 : 왜 이제 연락해요? 야간 점호 전에 얼마든지 연락할 수 있었잖아요? 혹시 우리가 우습게 보였어요? 신고 못 할 줄 알고?
도훈은 무음 모드로 두었기 때문에 진동을 숨길 수 있었다.
문자 내용을 확인한 도훈이 곧바로 답장했다.
-이도훈 : 죄송합니다. 저녁에 일이 좀 많아서···. 어떻게 하면 화가 풀리실까요?
도훈이 저자세로 나오자 여자들이 또 쑥떡거리더니 답장을 보냈다.
-박하연 : 지금 짜증났으니까 당장 우리방으로 튀어와요. 그럼 신고는 안 하고 참아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