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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68화 (1,848/2,000)

1868. 구원회-73-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도훈의 공치사에 의사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사람 살린게 무슨 대수라고? 은혜고 자시고 할 것도 없으니까, 얼른 병원부터 가봐요."

"감사합니다."

도훈이 꾸벅 인사를 하며 병실을 퇴장하자, 의사가 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쯧쯧, 젊은 친구가 참 안 됐어. 성기사단에 뽑힐 정도의 친구가 고자가 될지도 모른다니. 인생사 새옹지마라니까?"

밖으로 나오려던 도훈은 문득 자신이 여전히 환자복을 입고 있는 상태란 걸 깨달았다. 처음 실려올 때부터 나체였고, 나중에 간호사들이 환자복을 입히는 바람에 여전히 환자복 차림이었던 것이다.

'엇, 그러고보니 내 옷은 아직 참회방에 있는 건가?'

[아니죠. 참회방에 가실 땐 가운으로 갈아입은 상태였습니다.

공공 목욕탕 록커에 들어있을 겁니다.]

'맞네. 어차피 비싼 옷도 아니니 거기다 버리지 뭐.'

[그래도 계속 그런 차림으로 돌아다니면 구원회 신도들이 주인님을 이상하게 여길 겁니다. 정신병원에서 탈출했다고 해도 믿을 걸요?]

'정신병원은 너무 나갔지.'

[어쨌든 이목을 끌어서 좋을 게 없다는 얘깁니다. 이곳이 적진이라는 걸 늘 명심하십시오.]

'알았어. 만능 변장 세트로 갈아 입지 뭐. 최대한 구원회 신도랑 비슷한 차림으로 부탁해.'

[그럼 검은 정장 바지에 흰 셔츠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구두는 단화면 될 것 같고요.]

도훈은 구석에 숨어 새 의상으로 환복했다. 입고 있던 환자복은 돌돌 말아 쓰레기통에 버렸다. 잠시 후 말끔한 구원회 신도차림으로 변장한 도훈은 건물 밖으로 걸어 나갔다.

도훈은 아까 옥상에서 빙 둘러 확인했던 교회 건물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합숙소 건물로 추정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는 그가 깨어나자 마자 굳이 옥상으로 올라간 이유기도 했다.

나름 높은 곳에서 조망했기 때문에, 미로처럼 복잡한 구원회 건물의 위치를 대략적으로나마 파악할 수 있었던 것.

'그나저나 여긴 정말 엄청난 규모구나. 어지간한 대학 캠퍼스보다 더 큰 것 같기도.'

[초행자가 길을 잃기 딱 좋긴 하죠.]

'심지어 여기가 강남 한복판인 걸 생각하면, 돈을 얼마나 끌어 모았을지 상상도 안 가. 어쩌면 장만석은 어지간한 재벌도 부럽지 않은 부자일지도.'

[장만석은 진정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해 놓았군요.]

'대체 이렇게까지 한 이유가 뭘까? 플레이어를 탈주해 가면서까지 말이야.'

[그건 이제부터 주인님께서 알아 보셔야죠.]

새로운 내공의 유입으로 부쩍 자신감이 붙은 도훈이 말했다.

'지금 마음 같아선 당장 쳐들어가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도저히 자신이 없거든.'

[네? 어째 앞뒤가 안 맞는 문장 아닙니까?]

'질 자신이 없다고.'

[아···.]

'내가 얼마나 강해졌을지 나조차도 가늠이 안 되니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경거망동하시면 안 됩니다. 여전히 장만석의 진정한 실체를 모르는 상태니까요. 상대가 비록 늙긴 했비만 수십간 PK단의 추적과 헌터에게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라는 걸 절대 간과하시면 안 됩니다.]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지. 힘으로 때려 부실 거였으면, 애초에 이렇게 위장 잠입도 않았겠지. 일단은 계획대로 간다.'

합숙소 건물 앞에 도착한 도훈은 밖을 돌아다니는 청년부 신도 들을 볼 수 있었다.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여전히 합숙소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다. 마치 종합 대학의 기숙사같은 분위기였다.

'청년부가 천명 넘게 산다더니 규모도 어머어마하군. 교회 안에 이렇게 큰 숙소 건물이 들어서 있을 줄이야.'

도훈이 가만히 지켜보니 모두 두게 동으로 이루어진 합숙소는 왼 편이 남자, 오른 편이 여자 건물로 보였다. 그리고 두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가운데 통로에는 경비실이 세워져 둘 사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다. 즉, 남녀 합숙소는 출입구만 공유할 뿐 완벽히 좌우로 분리된 공간이라는 뜻이었다.

건물 구조를 눈대중으로 파악한 도훈이 인벤토리에서 대포폰을 꺼내 이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밤 11시가 가까운 늦은 저녁이었지만, 이서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다행이 아직 잠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머, 어인 일로 이 시간에 연락을 다 주시고?

"내가 누군지 안 까먹었네?"

-전도사가 어떻게 전도한 어린 양의 목소리를 잊겠어요? 무슨 일이에요, 근데?

반응을 보니 그녀는 아직 도훈의 소식을 접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성기사단 테스트를 받다가 죽다 살아난 걸 알았다면, 이런 태평한 반응이 나올리가 없었다.

'이서는 아직 상황을 모르는구나.'

[아무래도 직급이 낮은 말단 엔젤이니까요. 권미숙이 필시 아랫사람들에게 철저히 입단속을 시켰을 겁니다.]

'하긴. 이리저리 소문나서 좋을 건 없겠지.'

"그냥 보고 싶어서 전화했지. 왜? 우리가 전화하면 안되는 사이였나?"

-아니죠. 히히, 맞다. 성기사단 입단은 어떻게 됐어요? 궁금했는데 떨어졌으면 민망해 하실까봐 일부러 안 묻고 있었거든요.

도훈은 마지막에 미숙에게 수석 합격이라는 말을 들은 걸 어렴풋 떠올렸다.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지만, 성기사단의 에이스는 자신이라고 말했던 것까지 생생하게 기억났다.

"당연히 합격이지."

-꺄아, 정말요? 축하드려요! 내가 진짜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말인데, 입단 축하 기념으로 잠깐 볼 수 있을까? 날 구원회로 전도해 준 것에 감사 표시도 할겸. 내가 지금···."

-아. 죄송해요. 좀만 일찍 전화 하시지.

"엉?"

-실은 제가 교회 합숙소에 사는데 통금 시간이 정해져 있어서요. 지금 나가면 저 다신 못 들어가요. 외박하려면 미리 허락을 받아야 하고요.

"통금이 몇시 까진데?"

-곧이요. 10분도 안 남았어요. 11시 정각이거든요.

도훈이 이마를 탁 소리나게 짚으며 속으로 탄식했다.

'젠장. 설마 통금 시간이 있을 줄이야.'

[그러니까요. 아무래도 이서양은 포기해야 겠습니다.]

"그랬구나. 몰랐어. 합숙소에 사는 줄은."

-죄송해요. 다음 기회에 꼭 봬요. 저도 오빠 보고 싶어요."

"그래, 알았어. 푹 쉬어."

-네! 아무튼 오빠 성기사단 입단 축하드려요!

이서와 통화를 마친 도훈은 난감해졌다.

밖에 나와있던 젊은 신도들도 하나 둘씩 건물 안으로 뛰어 가는 걸 보면, 통금 시간이 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왜 저렇게 다들 급하게 뛰어가는 거죠?]

'어쩌면 합숙소 운영방식이 규율이 엄한 기숙사랑 비슷할 수도 있겠는데?'

[기숙사요?]

'왜, 사감이 점호로 인원 파악해서 무단 외박 하는 인원을 퇴출시키는 시스템 말이야. 다들 11시 가까워 지니까 후다닥 안으로 뛰어 가잖아. 그때 뭔가 한다는 뜻이거든. 그럼 야간 점호밖에 없지.'

[그렇군요. 여기 계속 서 계시면 주인님도 오해 받는 거 아닙니까?]

'나? 내가 왜?'

[주인님도 지금 구원회 신도 복장을 입고 있으니까요.]

아니나 다를까 로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비복을 입은 남성이 후레쉬를 도훈 쪽으로 비추며 소리쳤다.

"학생 거기서 뭐해? 곧 문 잠글 시간이야. 안 들어갈거야?"

"예? 저요?"

"얼른 들어가. 괜히 몇 초 차이로 지각해서 벌점 받지 말고. 그렇게 벌점 누적으로 쫓겨나서 나중에 원망하지 말라는 소리야."

"아, 네 넵.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도훈은 의도치 않게 경비원에게 등 떠밀려 남자 합숙소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 뭐하십니까? 주인님이 거길 왜 들어가시는 건데요?]

'기왕 이렇게 된 거 합숙소 내부 좀 구경해보려고.'

[아니 주인님은 합숙소 인원도 아닌데 걸리면 어쩌려고요?]

'다 방법이 있지.' 남자 합숙소로 떠밀려 들어간 도훈은 눈치를 살피면서 다른 신도들의 행동을 관찰했다. 과연 11시 정각이 되자, 방송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금일 점호를 실시하겠습니다. 사감들은 모두 제 자리에 정위치 바랍니다,>

'진짜로 점호를 하네? 헐, 무슨 군대도 아니고.'

도훈은 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복도에 서 있다간 의심받을 것 같아 계단참에 숨었다. 하지만 결국 도망쳐 봐야 막다른 길이었다.

[급한대로 화장실이라도 대피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화장실 문을 활짝 열어 놓은 걸 보면, 화장실 안까지 싹 다 뒤지는 것 같아. 점호의 목적이 합숙소 내 인원 파악도 있지만 외부 인을 색출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 같아.'

[그럼 대체 어떻게 하려고요?]

'뭘 걱정해? 나에겐 투명화 기술이 있는데.'

[아니, 굳이 남자 기숙사까지 기어 들어와서 아깝게 포인트를 쓰신다고요?]

'상관없잖아. 어차피 미숙한테 받은 포인트가 10만포인트가 넘으니까.'

[벌써 까먹으셨나본데 그 중 절반은 오늘 사용하셨습니다.]

'5만도 충분해.'

[부디 포인트를 아껴쓰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거액의 포인트가 한 번에 들어왔기로서니, 투명화 스킬을 쓰는데 포인트를 허비하시다니요. 애초에 합숙소에 안 들어 왔으면 쓸 필요도 없는 돈이지 않습니까?]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온 거야.'

[네?]

'승아 말로는 성기사단이 되면 모두 합숙소 생활을 한다고 했잖아. 기왕 온 김에 다른 성기사단은 어떻게 생활 하는지 구경 좀 할까하고.'

[아하. 그런 이유가.]

'설마 내가 아무 생각도 없이 왔을까봐.' 계단참에 있던 도훈이 투명화 스킬을 통해 투명인간으로 변신했다. 옷은 다시 벗어서 인벤토리에 구겨 넣은 도훈은 또 한 번 나신이 되고 말았다.

'오늘 몇 번을 알 몸으로 다니는 건 줄 모르겠군.'

[주인님같은 분을 일컫어 천둥벌거숭이라고 하는 군요.]

'그건 모르겠고, 다른 성기단이 어디 있는지 한번 찾아봐야겠어.'

합숙소는 한마디로 거대한 닭장같았다.

층마다 빽빽하게 칸을 나눈 방 하나에 두 사람씩 2인 1조를 이루었는데 점호를 위해 열어놓은 방문으로 내부를 슬쩍 쳐다보던 도훈은 도저히 이곳이 사람이 살 수 없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지독하군. 저런 공간에 다 큰 성인을 둘 씩이나 밀어 넣다니.'

[이런데도 신도들의 경쟁률이 높다니 놀랍습니다. 감옥보다 열악해 보이는데요.]

'여긴 그냥 인간 사육장이라고 해도 믿겠어. 정말이지 신실함이 없다면 감당하기 어려운 곳이군.'

하지만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점호에 임하는 청년부 신도들의 표정은 조금도 구김살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오히려 고된 여건조차 신께서 내리신 사역의 일부로 여기는 것 같았다.

'독하다 독해. 대체 어떤 세뇌를 거치면 이런 수용소 같은 생활을 감당하게 되는 걸까?'

[겉보기엔 정장에 흰 셔츠를 입고 번듯하게 활동하니 이런 생활을 한다는 걸 전혀 예상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조차도 전략이겠지. 속은 다 썩어들어가는데 겉보기만 그럴 싸 하게 보여 주는 거야. 대외적으로 볼땐 다들 말끔한 청년들로 보이지만 실상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닭장보다 좁은 우리 속에서 착취당하는 꼴이랄까?'

[장만석이 자신의 왕국을 만든 목적은 잘 모르지만 그가 인권의 수호자와는 대척점에 있는 것은 분명하군요.]

'놈은 그냥 쓰레기야. 그리고 그 놈 밑에서 부역하는 장로이하권사나 집사들 모두. 도저히 살려둘 가치가 없을 것 같군. 염전 노예 저리가라 급이네.'

도훈은 점호가 이루어지는 과정도 빠짐없이 지켜보았다. 신도와 별로 나이차가 안 나보이는 젊은 청년이 복도 끝까지 쭉 직진하며 철저하게 인원 파악을 하고 있었다.

사감을 집사 직위 정도로 생각했던 도훈은 의외로 어린 사감의 나이에 살짝 놀랐다.

'사감이 같은 또래 정도로 보이는데?'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이상하군. 저 치가 유독 어린 걸까? 아니면 다른 층도 마찬가 진가?'

의구심이 든 도훈은 2층과 3층 계단을 따라 오르며 점호 중인사감의 얼굴을 일일이 확인했다. 그들도 마찬가지로 사열을 받는 다른 청년부 신도들과 별반 나이 차이가 없어 보였다. 팔에 차고 있는 검은 색의 띠만 아니었다면, 신도와 사감을 구분하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러나 사감의 권한은 의외로 막강한 듯 사감이 조금만 문제점을 지적해도 신도들이 차렷 자세로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혹시 사감은 같은 동기 중에서 반장 뽑듯이 뽑는 걸까요?]

'지금 봐선 그렇긴 한데. 잠깐 근데 저 사람 어디서 봤는데?' 4층까지 오른 도훈은 4층을 점호하는 사감의 얼굴을 보며 기억을 떠올렸다.

'맞네. 그때 참회방 복도에서 마주쳤던 성기사단 놈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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