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6. 구원회-71-
처음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의 얼굴과 완전히 달라진 바람에 간병하던 간호사도 도훈을 다른 사람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에잇, 귀찮게 됐군.'
도훈이 급히 망각의 라이터를 꺼내며 간호사에게 대화를 유도 했다.
"저, 그게 말이죠."
"혹시 제가 없을 때 입원하신 분이실까요?"
망둥어처럼 생긴 간호사가 도훈의 훈훈한 외모에 불쑥 호감을 드러냈다. 쭈뼛쭈뼛하며 눈을 잘못 마주치는 모습이, 도훈의 잘생긴 얼굴에 맥을 못 추는 느낌이었다.
'이건 또 뭔 상황이람? 설마 저 망둥어 금사빠인가?'
[금샅바요? 씨름 선수 출신이라고요?]
'아니. 금방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이라고. 금사빠. 왜 저렇게 대놓고 치근대는 건데? 얼굴도 개떡같은 게.'
[어쩌면 주인님이 발산하는 매력이 이전보다 훨씬 증가한 것 같습니다.]
'내 매력?'
[주인님께 걸린 각종 호감도 버프 효과가 증강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여자가 더 많이 꼬일지도 모르겠군요.]
'헐, 이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군. 귀찮은 거 딱 질색인데. 암튼 얼굴부터 원래대로 바꾸고 저 여자 기억은 날려버려야겠어. 역용마스크 좀 준비해줘.'
[넵.]
도훈은 마스크를 다시 착용하기 전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 제가 간호사님 교대하기 전부터 구석 병실에 누워 있었거든요. 갑자기 배가 아파서."
"배가요? 얼마나 아픈데 입원까지···."
"어, 잠시만요. 우선 마스크부터 쓰고요."
도훈은 보란 듯이 허공에서 역용마스크를 꺼내더니 얼굴에 척붙였다. 동시에 축골공을 발휘해 체구를 줄여 국성대 섹스킹 이도 훈에서 구원회 성기사단 박민용으로 위장했다.
눈앞에서 얼굴과 체형이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모습을 지켜보던 간호사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어, 어어! 방금 얼굴이···."
"간호사님. 잠시 여기 좀 봐주실래요?"
도훈은 간호사가 경황이 없는 틈을 노려 눈앞에서 망각의 라이터를 켰다. 그 순간 간호사의 눈빛이 몽롱해지더니 얼이 빠진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다시 정신을 차린 간호사는 자신이 갑자기 옥상에 올라온 것을 깨닫고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 어? 내가 왜 여기···. 환자님?"
"저기요, 괜찮으세요?"
"뭐가 어떻게 된 거죠? 제가 왜 여기···. 아니 그보다 환자님은 왜 또 여기 계세요?"
"깨어났는데 답답해서 담배 좀 피우러 왔어요. 근데 정말 괜찮으세요? 방금 현기증이 온 것처럼 휘청하시던데? 어지러운 거 아니죠?"
"제, 제가요? 그랬어요?"
기억이 날아간 간호사는 마치 순간이동을 한 기분이었다.
도훈이 병상에서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병동을 막 뒤지던 찰나 정신을 차려보니 옥상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도훈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밤샘 근무 하시느라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요. 좀 쉬세요. 이제 어디 안 돌아 다닐게요."
"그, 그래요."
간호사는 뭔가에 홀린 표정으로 도훈을 데리고 다시 병실로 내려왔다.
"근데 왜 멋대로 장비를 다 제거하셨어요?"
"담배 피우러 나가려니까 거추장스럽더라고요."
"거추장스럽다고요? 그쪽이 아까 얼마나 위험했는지 알긴 해요? 거의 죽다 살아났는데."
"몰랐어요."
"기억이 전혀 안 나세요?"
"네. 잘···."
"하-. 내려가면 의사 선생님께서 분명 한 소리하실 거예요. 본인 잘못이니까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세요."
"네."
망둥어를 닮은 간호사는 아까와는 달리 무척 쌀쌀맞은 태도였다. 도훈이 역용술로 얼굴을 바꾸면서 동시에 호감도 버프를 다시 없앴기 때문이었다.
병실로 내려가자 의사가 도훈을 보자마자 소리쳤다.
"아니! 환자분! 멋대로 돌아다니면 어떻게 합니까? 이분 어디서 찾았어요, 김간?"
"옥상에서 담배 피우시고 있더라고요."
"참나. 어이가 없네. 김간은 잠깐 나가봐요. 환자랑 따로 할 얘기가 있으니까."
"네."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자 의사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이리 앉아봐요. 잠깐 설명해 드릴 게 있으니까."
"네."
의사의 나이는 40대 중반쯤으로 보였는데, 어딘가 피곤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잘나가는 의사가 어째서 제대로 된 시설도 아닌 교회 내 불법 의료기관에 붙잡혀 있는 걸까?'
[혹시 구원회 쪽에 약점을 잡힌 게 아닐까요? 아니면 굉장히 신실한 신도이거나.]
'흐음, 둘 다 가능한 의견이긴 한데 저 의사 표정으로 봐선 분명 이곳 근무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건 분명한 것 같군.'
"혹시 쓰러질 당시에 어떤 상황이었는지 기억이 납니까?"
"저요? 음···. 그게···."
"내 앞에서 굳이 둘러댈 필요 없어요. 나도 이 교회 돌아가는 사정은 대충 알고 있으니까. 그쪽, 성기사단 소속맞죠?"
"네. 어떻게 아셨요?"
"대충 안다니까 그래. 아까 실려 왔을 때 나 오늘 산송장 치우는가 했네. 글쎄, 사람이 반쯤 죽어가고 있더라니까?"
"제가 정말로 그랬어요?"
"당연하지. 솔직히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한데, 그 당시 제대로 응급조치를 못 했으면 그쪽은 분명 못 깨어났을 겁니다. 내가 하필 응급의학과 전문의 출신이라는 걸 다행으로 알아요."
의사의 너스레에 도훈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심마를 극복해서 내 스스로 깨어난 건데, 웬 유세람?'
[의사입장에선 주인님을 본인이 살렸다고 착각할만 하죠.]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따로 할 얘기라는 게 ···."
"음, 아까 권 권사님이랑 같이 왔던데. 맞죠? 오늘 육신 봉사로 모셨던 분?"
'권 권사? 권미숙을 말하는 건가?'
[네. 그런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의사가 목소리를 낮추더니 도훈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마치 누군가 엿들을까봐 극도로 조심하는 태도였다.
"되도록이면 권 권사님은 가까이 하지 마요."
"네? 그게 무슨···."
"그냥 내 말 들어요. 무척 위험한 분이니까."
도훈은 의사가 권 권사에 대해 뭔가 비밀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
"어디가서 절대 의사 선생님께서 알려줬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이래봬도 제가 입이 무겁거든요."
"흠···. 내 조카 또래 같아서 알려주는 건데 권 권사님이 이런 적이 처음이 아니에요."
"처음이 아니라고요?"
"그 분한테 복상사 당할 뻔한 사람이 몇 명 더 있었다는 거지."
"정말요?"
"어휴, 말도 말라니까? 어찌나 남자를 쥐어 짜댔는지···. 재작년에 한 분은 아예 심정지 상태로 실려 왔어요. 그때 진짜 사람 하나 죽는 줄 알았는데."
"아···."
"암튼 그 일이 있은 뒤로 젊은 남자들만 상대한다고 들었어요.
멀쩡한 사람을 죽일 뻔했으니 본인도 겁이 났겠지."
"그렇군요. 제가 처음이 아니었군요."
"의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권 권사님은 보통 여자가 아니에요.
옛말에 그런 말이 있잖아요? 뭐라더라, 관상쟁이들이 자주 하는말."
"관상쟁이요?"
"···남편 잡아먹을 여자라고."
"음."
"그러니 부디 몸 조심해요. 나도 매일 여기 상주해 있는 건 아니거든. 나 말고 다른 의사는 내과 출신이라 코드 블루 상황이 오면 제대로 대처도 못 한다고."
"아···. 여기에 의사가 두 분씩이나 있나요?"
"모두 셋이지 정확히."
"세, 세분이나요? 제가 구원회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교회 안에 병원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병원까진 아니고 대충 보건소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요. 큰 수술까진 못 하지만, 소소한 외상이나 응급 치료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죠."
"그랬군요."
"딱히 다친 적이 없으면 모를 수밖에. 이곳을 일반 신도들에겐 굳이 알리지 않거든요. 솔직히 말하면 허가받지 않고 의료행위를 하는 셈이니."
의사는 처음 보는 환자인 도훈에게 시시콜콜한 불만을 모두 털어놓고 있었다. 어쩌면 단순히 대화할 상대가 필요한 걸지도 몰랐다.
[이상한 사람이군요. 구원회 신자가 맞긴 맞는 걸까요?]
'구원회 신도라면 교회에 반감을 갖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성수로 주기적으로 세뇌를 받을 테니. 한 번 직접 물어볼까?'
"근데 선생님께선 그럼 교회에서 직책이···."
"직책이라니?"
"집사나 권사 같은···."
"아니. 난 여기 신도 아니야. 고용된 의사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군요."
의사가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도훈의 시선을 피했다. 도훈은 그의 태도를 보고 뭔가 켕기는 것이 있다는 걸 간파했다.
'대충 뭔지 알 것 같군.'
[네? 뭘 말입니까?]
'저 사람. 아마 의사면허 박탈되었을 거야.'
[네? 정말요? 어떻게 그런 의사가 의료 행위를 할 수 있는 거 죠?]
'어차피 이 건물 자체가 불법이니까 상관없지. 의사면허가 박탈 당해서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일자릴 구한 느낌이랄까.'
[아아, 그렇군요. 그래서 교회에 고용되었다고 표현했나 봅니다. 근데 어쩌다 의사가 면허를 박탈 당했을까요?]
'이유야 많지. 의료사고로 살인자가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뭐 불법적인 시술을 하다가 적발되었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마취된 여성 환자를 성폭행하거나 몹쓸 짓을 저지른 경우도 드물게 있고.'
[아···. 이유가 무엇이건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겠군요.]
'당연하지. 불법 의료 행위를 하는 의사에게 양심 같은게 있을 리가. 그나마 장기 밀매 쪽으로 빠지진 않았으니 일말의 양심정도는 있다고 봐야할지도.'
[구원회에서 굳이 교회 내에 이런 보건소를 설치하고 의사까지 고용한 이유가 뭘까요?]
'거기까진 아직 모르겠어. 신도가 병원까지 실려가는 상황을 최대한 막아보겠다는 의도 같은데···. 뭔가 이상하긴 하군.'
도훈은 시설의 목적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신도가 많다한들 강남 한복판이라는 입지조건 때문에 교회 반경 1Km 이내에 종합병원이 두 개나 있었던 것이다.
도훈이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았으나, 당장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갔다.
"여튼 죽기 싫으면 조심해요."
"조언 감사합니다. 그럼 전 언제 퇴원을···."
"여긴 병원이 아니니 따로 퇴원 수속을 밟을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내가 그쪽이라면 내일 당장 대학병원 비뇨기과부터 찾아갈 것 같은데."
"비뇨기과요?"
"사실 이것 때문에 김 간호사를 내보낸 거거든. 여자 앞에서 말하긴 껄끄러운 문제라."
도훈은 순간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의사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불쌍한 사람을 보는 듯 동정심이 가득했다. 생전 그런 눈빛을 받아본 적 없던 도훈에게는 너무나 낯선 모습이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까 그 쪽이 기절해 있을 때 다른 외상이 없는지 몸 전체를 살폈어요. 애초에 나체로 실려 왔기 때문에 굳이 옷을 벗기지 않았어도 다 볼 수 있었죠."
"그런데요?"
"환자분···. 어쩌면 고자가 될지도."
"예, 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고자라니?' 의사가 딱한지 혀를 끌끌차며 말했다.
"내가 관련 전공의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성기 일부가 괴사가 일어난 것 같았어요."
"괴, 괴사라뇨?"
"혹시 권 권사가 성기에 이상한 짓을 했었나? 끝을 실로 묶어서 사정을 못 하게 한다든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암튼 아무리 봐도 괴사였어요. 조직이 파괴되다 못해 죽어가고 있다는 소리죠. 혹시 통증이 느껴지지 않던가요?"
"전혀요."
"허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면 생각보다 더 심각한 것 같은데. 혹시 내가 다시 한번 확인해도 되겠어요?"
도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의사 앞에서 환자복바지를 훌렁내렸다. 팬티를 안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도훈의 큼직한 잦이가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으앗, 이게 왜?"
본인 스스로도 놀랄 정도였다. 정말로 잦이가 군데군데 시퍼렇게 멍든 것처럼 보랏빛으로 변색되어 있었던 것이다.
"역시나 괴사로 보이는데. 안타깝지만, 내가 발견했을 땐 이미 늦은 상태였어요. 난 목숨을 살리는 게 급선무였기 때문에 아래쪽은 신경도 쓰지 못했고."
"잠시만요. 정말로 괴사면 전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니, 제가 진짜로 고자가 된다고요?"
"음···. 신체 조직에 괴사가 일어나면 회복이 어려울지 모르네. 최악의 경우 괴사된 상처부위로 인해 패혈증이 올지 모르니 절단까지 고려해 봐야지."
"저, 절단요?"
"자세한 건 비뇨기과 전문의에게 보여줘야 알 수 있어요. 난 해당 전공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니까. 그래도 상태가 무척 심각하다는 것은 알겠네."
"헐···."
도훈이 어이없어 하는데 로시가 말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파괴가 되긴 했지만, 아이템으로 회복시킬 수 있으니까요. 의사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들으시면 됩니다.]
'맞지? 백프로 회복할 수 있는 거?'
[당연하죠. 일부 고가의 포션 아이템은 잘린 팔도 다시 붙일 수 있는 수준입니다. 조직 괴사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