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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64화 (1,844/2,000)

1864. 구원회-69-

'어쨌든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거지? 맞지?'

[네. 천상계에는 불가역적인 신체 손상도 회복시킬 수 있는 아이템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 완전한 회복은 가능합니다.]

'휴-. 십년 감수했네. 진짜로 고자되는 줄 알았잖아?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닐텐데요?]

'뭐라고? 대물 플레이어이자, 섹서인 이도훈에게 잦이보다 중요한 게 어딨다고?'

[그게 아니라 주인님, 주화입마 상태에서 못 깨어나시면 이대로 반 병신이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광인이 되어버린다니까요? 지금 뭣이 중한지 모르겠습니까?]

'맞다. 그건 어떻게 하지? 정신은 멀쩡한 것 같은데 어째서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는 거야?'

[주인님의 현 상태는 일종의 루시드 드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루시드 드림?'

[네. 정신은 깨어 있지만, 육체와 분리된 경우죠.]

'그러니까 자각몽이란 소리잖아?'

[네. 굳이 번역하면요.]

'그럼 어떻게 깨어나는 건데?'

[저도 그 방법은 모릅니다. 주화입마에 빠졌다가 스스로 극복해낸 플레이어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요.]

'데이터가 왜 없어?'

[보통 주화입마에 빠지면 대부분 정신붕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집니다. 죽거나 운 좋으면 백치가 되어버리죠.]

'아니 씨발, 그건 여유롭게 설명할 내용이 아니잖아! 지금 완전 좆 됐다는 소리아니냐?'

[네, 정확하게 좆 됐습니다. 요약하면요.]

도훈은 움직일수만 있다면 머리를 감싸 쥐고 싶어졌다.

사상 최악의 위기였다.

* * *

어쩐지 모든 게 연극처럼 느껴진다.

울부짖으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미숙이나, 호출을 받고 뛰어온 다른 구원회 신도들의 모습이 너무나 기괴했다. 쓰러진 사람은 난데, 제3자의 입장에서 그 모습을 구경하는 느낌이다.

사실은 이 모든게 꿈은 아닐까?

[주인님! 정신 차리십시오!]

'뭐?'

[정신 붕괴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실 겁니다. 제 목소리를 못 들을 수도 있습니다.]

'···가만, 근데 넌 누구야?'

[네? 주인님! 저 로시입니다. 주인님의 충직한 종이요!]

'로시? 도로시?'

[네! 도로시요!]

'혹시 도로묵 같은 거야?'

[예?]

'아, 갑자기 묵이 먹고 싶네. 간장에 팍 담가가지고.'

배가 고팠다.

얼른 눈앞의 따분한 연극이 끝났으면 좋겠다.

구급차를 부르느니마니, 교회 내에서 의사를 찾아오라는 둥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 근데 저 여자는 왜 벌거벗고 있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있는데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뭔가 이상하다.

나는 이미 죽었던 몸이 아닌가?

그렇지.

나는 예전에 죽었다.

이제 모든 게 기억이 난다.

마누라.

그 씨발년. 바람을 피운 것도 모자라 상간남에게 내가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함정에 빠진 게 아니었을까?

처음부터 나를 죽일 작정으로 상간남이 잠복하고 있었던 것이지.

하, 이도훈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었다니.

가만···.

이도훈이 근데 누구야?

나는 이정우잖아?

으!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

얼른 이 고통이 끝났으면 좋겠다.

사실 따지고 보면 참으로 좆같은 인생이었다.

요즘말로 퐁퐁남이라고 하던가? 아주 설거지 하나는 제대로 했다. 바람기 많은 마누라가 좆도 작은 나와 결혼하고 했을 때, 그 숨은 속셈을 간파했어야 했다.

하지만 얼굴 예쁘고 몸매도 좋은 마누라의 외모에 껌뻑 속아 결혼하고 말았다.

최윤하.

나를 잡아먹은 내 마누라의 이름.

윤하의 웃는 모습을 떠올리자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그 쌍년이 비참하게 죽는 모습을 꼭 내 눈으로 봤어야 했는데.

구천을 떠돌면서 마지막으로 본 모습은, 시체를 유기했던 저수지에서 경찰과 함께 현장검증을 하던 장면이었다.

그녀는 어떻게 됐을까? 대한민국에 정의가 존재한다면 필시 감옥에서 10년 이상 썩어야 한다. 아니, 늙어서 꼬부랑 할망구가 될때까지 못 나왔으면 좋겠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한다.

나를 실제로 죽인 건 윤하와 바람 피우던 남자였으니까.

그럼 그녀는 공범일까, 목격자일까? 시체를 유기할 때도 함께 움직였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 공범으로 인정받을 수 있나?

그녀는 내가 죽을 때 과연 슬프긴 했을까?

어쩌면 속으로 좋아했을까? 내 재산을 몽땅 독차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겠지? 돈 많은 미망인이 되어, 평소 바람피우던 남자들과 실컷 즐기면서 살 수 있다고 좋아하지 않았을까?

너무 화가 난다.

죽어서 복수를 못 한다는 게 원통할 뿐.

아니지.

난 환생하지 않았던가?

그렇지.

신께서 다시 나를 부활시켰다.

분명히 기억난다.

나는 다른 사람의 몸으로 새로 태어났다.

그게 누구였지?

아, 또 다시 머리가 아프다.

왜 이렇게 아픈걸까?

뭐야? 내가 지금 들것에 실려 가는 거야?

아무리 봐도 구급대원처럼은 안 보이는데?

모든게 이상하다.

천장이 빠르게 스쳐간다. 복도식으로 이루어진 통로를 지나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가운만 걸치고 뒤따라온 중년 여자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대체 누구지?

얼굴은 예쁘게 생겼다.

어쩜 전 마누라보다 더 예쁜 것 같기도 하고.

최윤하.

그년을 어떻게든 죽였어야 했는데.

난 왜 되살아나고도 복수를 못 했지?

설마 새로운 삶에 안주해버린 것은 아니었을까? 어차피 이정우는 죽었고, 힘겹게 얻게 된 새로운 삶에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는 게 두려웠을까?

비겁하군.

결국엔 나조차도 지난 이정우의 삶에 불만이 있었다는 뜻이니까. 하긴, 머리만 유별나게 좋았지, 남자로서의 매력은 꽝이었다.

돈 버는 기계.

그 표현이 딱 맞다.

암컷을 만족시킬 수 없는 사내란, 결국 평생 돈만 벌어다주며 다른 사람이 실컷 따먹은 뒤 팽개친 여자를 콩고물처럼 물려받을 뿐이다.

누가 그랬더라?

기가막힌 표현이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재산과 학벌, 지위, 남은 여생 전부를 바쳐서 얻은 여자는, 가장 찬란하고 빛날 때 누군가에겐 공짜였다고.

아,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까 또 화가 치밀어 오른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가슴 좀 그만 누르라고!

아까는 나이 든 여자가 그러더니, 이제는 덩치 큰 사내가 필사적으로 나에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하고 있다. 갈비뼈가 짓눌려 부러져 버릴 것만 같다.

아니지.

내 튼튼한 몸이 그럴 리가.

가만? 내가 튼튼해? 그건 무슨 소리지?

나는 160도 안 되는 키에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실 좆을 가진 ···.

[···주인님! 주인님은 이도훈입니다! 국성대 난봉왕! 섹스킹 이 도훈이요!]

아까부터 자꾸 머릿속에서 이상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환청일까? 나는 점점 미쳐가는 건가?

근데 이도훈이 누군데 아까부터 자꾸···.

이도훈?

어? 그거 혹시 나 아니야?

국성대 섹스킹 이도훈?

그게 나라고?

갑자기 기억이 되돌아왔다.

환생 후 이도훈으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폭포수처럼 머릿속에 콸콸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았던가.

내가 추구했던 일들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으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주인님? 정신이 드십니까?]

'어떻게 된 거야? 방금 무슨 상황이었지?'

[주화입마로 인한 정신 붕괴 때문입니다. 자아를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내가 나를 잊는다고? 말도 안 돼. 나는 국성대 난봉왕, 이 시대 최강의 섹서 플레이어라고!'

[맞습니다. 주인님,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리십시오. 주인님이 정신붕괴를 겪고 있을 때 제가 주화입마에 관련된 과거 데이터를 모조리 검색했습니다.]

'말해봐.'

[주화입마에 빠진 무인의 99%는 사망하거나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00%가 아니었습니다. 극히 드물지만 주화입마를 이겨낸 사례가 분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이후 오히려 무공이 한 단계 더 진일보하는 기연을 얻었고요.]

'뭔데? 대체 어떻게 하는 건데? 기연은 됐으니까, 깨어날 방법만 알려줘!'

[방법은 저마다 다르지만, 핵심은 모두 동일합니다.]

'뭐냐고 그러니까. 시간이 없단 말이야!'

[살아야 할 이유를 찾으십시오.]

'···살아야 할 이유?'

[삶에 대한 강한 의지. 기필코 살아남고 말겠다는 강력한 생존본능. 그것이 모든 생존자의 공통점이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지라니? 그게 전부야?'

참으로 귀신 씻나락 까먹는 것 같은 소리다.

저런 조언이 대관절 무슨 필요란 말인가?

[주인님. 무조건 살아남으십시오. 언제 또 주인님과의 교신이 끊어질지 모릅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요!"

병동 같은 곳에 도착해 있을 때, 젊은 여자가 달려오더니 나를 보고 오열했다. 쟤가 누구더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또다시 눈앞이 흐릿해진다.

나는 어째서 여기에 누워있는 것일까?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젊은 여자를 밀쳐내며 구호 조치를 시작했다. 아아, 그저 모든 게 귀찮고 피곤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실컷 잠이나 자고 싶다.

잠들면 편해지겠지.

이 모든 소란도 거짓말처럼 잦아들 것이다.

눈이 곧 감길 것 같다.

눈꺼풀이 천근만근처럼 무겁다.

아아, 생각해보니 최근 들어 잠을 제대로 못 잔 것 같다. 하루에 몇시간이나 제대로 잤을까?

3시간?

4시간?

난 어쩌면 너무 무리하게 달려온 것은 아닐까?

휴식이 필요하다.

그게 지금이라도 딱히 불만은 없을 것 같다.

"조승아! 어서 물러서!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조승아?

저 젊은 여자 이름이 승아인가?

이름을 들으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한데.

아아, 기억났다.

우리 대학 후배였던가?

후배?

그렇지. 나에겐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 후배들이 있다.

정음이, 연두, 나연이, 희주, 서현, 아영, 효민.

걔들을 뭐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맞다, 팔선녀.

꽃 같은 후배들이라 돌아가며 물을 줬었지. 하하, 난 후배를 끔찍이 아끼는 선배란 말씀이야.

후배를 위하는 선배.

그러고 보니 참으로 즐거운 대학 생활이었다.

새터도 가고, MT도 가고, 여름 방학 때 수영캠프도 열고, 대학교에서 축제도 했었지.

교생 실습도 기억난다.

교사가 되는 것도 나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내가 교사라니.

과거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과거의 나라면···.

과거의 나?

이정우?

이정우는 죽었어.

아니. 전 마누라에게 살해당했지.

으으, 갑자기 또 화가 난다.

난 당한 건 꼭 돌려줘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목숨은 목숨 값으로 돌려받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다.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반드시 전 마누라를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다.

신이 나를 가로막더라도, 끝까지.

기필코!

"흐으으으!!"

"깨, 깨어났습니다!"

"정신이 드세요?"

눈을 부릅뜬 나는 단전에서 밀려오는 폭발적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혼절해 버렸다.

뭔가 내 몸속에서 폭탄이 터진 느낌이다.

* * *

주화입마에 빠졌던 도훈이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무려 반나절이 지난 후였다.

깨어나 보니 병원에서나 보던 신체측정 장비들이 덕지덕지 몸에 들러붙어 있었다. 심전도 모니터가 규칙적인 파동을 그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도훈이 말했다.

[로시, 내가 얼마나 기절해 있었지?]

'드디어 정신을 차리셨군요! 천만다행입니다 주인님. 정신을 잃은 이후 5시간 경과 했습니다.'

[5시간? 오래도 잤네. 여긴 어디지?]

'구원회 내 응급 시설로 보입니다.'

[병원인가?]

'병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응급의학과 의사가 상주해있긴 하나, 병원이라기 보다 일종의 자체 보건시설 같습니다. 교인수가 많다보니 자질구레한 상처나 부상을 응급처치하는 곳이요.'

[그렇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주화입마에서 깨어난 건가?]

'맞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저는 잘 모릅니다. 주인님과의 교신이 완전히 끊어져 있었거든요.' 도훈은 차분해진 머리로 생각했다.

-생의 의지. 어쩌면 나에게 남은 복수심이 나를 다시 살린 꼴이구나. 하지만 그 얘기를 로시에게 할 필요는 없겠지.

'모르겠어. 정확히 어떻게 된 건지는.'

[몸 상태는 어떠십니까? 주인님의 내공이 갑자기 측정불가 상태입니다.]

'측정불가라니? 단전이 폐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그 뜻이 아닙니다.]

'그럼?'

[너무 작아도 보이지 않지만, 너무 커도 크기를 알아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주인님의 내공이 너무 막대해졌습니다.]

'···뭐?'

도훈은 도저히 지금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상주 중인 의사가 자리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병상에서 일어섰다. 몸에 붙은 측정기기들이 거추장스럽게 따라오자, 모조리 떼어버렸다.

그가 느끼는 그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대체 나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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