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 구원회-61-
간만에 수중 펠라를 당하게 된 도훈은 얼빠진 표정으로 잠수 중인 승아의 뒤통수를 내려다 볼 수 밖에 없었다.
뜨거운 탕 속에서 검은 뒤통수만 두둥실 떠 있는 모습은, 마치 익사자의 모습을 보는 듯 해서 어딘가 이상했다. 승아는 수중 생물처럼 도훈의 가랑이 사이에 딱 달라붙어 힘차게 잦이를 빨아대고 있었다.
'무슨 자기가 해녀도 아니고, 잠수해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승아양이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그냥 아까 제대로 해줄 걸 그랬나봐. 부족하게 해주니까 결국 또 이렇게 되어 버렸잖아.'
[그보단 주인님이 곤경에 처한 승아양을 구해주셔서 보답하려는 게 아닐까요?]
'무슨 보답?'
[솔직히 승아양은 자신의 상관인 양 권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였으니까요. 싫어도 싫은 티를 못내고 일방적으로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데, 주인님이 정의의 기사처럼 구원해 주신 셈이잖습니까? 솔직히 전 주인님의 선택에 놀랐습니다. 어차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라 신경 안 쓰실 줄 알았거든요.]
'무슨 또 거창하게 구원이야? 내가 승아를 도운 이유는, 양 권사 그 새끼가 꼴보기 싫었을 뿐이야. 저번부터 눈빛이 좆 같더라고. 개새끼, 사람을 시험하기나 하고.'
[어쨌든 승아양 입장에선 주인님이 매달 천오백이라는 거금을 포기하고 자신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죠.]
'근데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뭐가 말씀입니까?]
'승아는 오늘 나를 볼 때부터 굉장히 흥분해 있었잖아.'
[그렇죠. 성수의 효과가 배란기와 겹치면서 성욕을 폭발시켰으니까요.]
'근데 왜 그 넘치는 성욕이 양 권사 앞에서는 수그러들었을까?'
[네?]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 양 권사의 음흉한 손길은 엄청 싫어하는 눈치였잖아. 그게 좀 이상해.'
[으음, 그렇군요.]
'어쩌면 그게 마약성 최음제와 성수의 차이점일 수도 있겠군.'
[마약과의 차이라뇨?]
'보통 마약을 먹고 섹스를 할 땐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거든. 평소 좋아하던 사람이든, 아니면 그날 처음 본 사람이든. 잘생긴 사람이든 못 생긴 사람이든. 심지어 상대가 같은 동성이어도 일단 꼴리면 물고 빨고 박고 다 해버린단 말이야. 정신이 완전히 나가 있으니까.'
[그렇겠죠.]
'하지만 성수는 성욕을 마약만큼 증폭시키지만, 평소 자신이 싫어하던 사람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거잖아. 즉, 이성을 끝까지 유지한다는 점에서 확실히 특이해.'
[호오, 그렇군요. 그럼 승아양이 주인님에게 유독 흥분하는 건 ···.]
'나에 대한 호감이 그만큼 큰 거지. 가만, 근데 얘 왜 이렇게 안나와? 1분도 훌쩍 넘은 거 아니야?'
도훈이 슬슬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잠수해 있던 승아가 물 밖으로 머리를 들어 올렸다.
"푸하-."
거친 날숨과 함께 물밖으로 나온 승아는, 젖은 긴 머리가 얼굴에 바짝 달라 붙은 채 물기에 젖은 모습이었다. 도훈은 그 모습이 어딘가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상위 5%안에 드는 외모였다.
"이렇게 오래 잠수한다고?"
"히히. 나 잠수 잘하지? 예전에 취미가 스쿠버다이빙이었거든."
"진짜로?"
"응. 국내에 유명한 잠수 포인트는 다 다녀봤어."
"그랬구나."
도훈은 승아의 이색적인 취미를 듣게 되자 그녀에 대해서 자신이 너무 몰랐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를 세뇌시켜 구원회 잠입에 이용할 생각만 했을 뿐, 개인적으로 친분을 쌓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으음, 생각해 보니 승아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구나.'
다시 숨을 들이켜 입수하려는 승아를 도훈이 말렸다.
"잠깐."
"응?"
"숨 좀 돌리고 해. 나온지 얼마나 됐다고 바로 들어가려고 해?"
"왜? 물 속이라 별로 안 좋아?"
"아니. 그냥 얼굴보고 얘기 좀 하고 싶어서."
"아···."
도훈을 쳐다보는 승아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연인을 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이래서 주인님이 문제라는 겁니다.]
'내가 뭘?'
[적당히 이용하고 버릴 여자의 마음까지 송두리째 훔쳐버리니까요.]
'아니, 그래도 앞으로 자주 도움을 받아야할 사이니까, 어떤 사람인지 정도는 알아야지.'
[그러다 또 결국 승아양도 주인님께 매달리게 되면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보고.'
"무슨 얘기?"
"아니 그냥. 평소엔 어떻게 사는지도 궁금하고."
"응? 어떻게 사는지라니?"
"난 교회 생활에 대해선 잘 모르니까."
"음···. 알았어."
승아가 위치를 바꿔 도훈의 옆에 앉았다.
"우리 교회는 매일 새벽 기도로 시작해."
"새벽기도?"
"응. 교회 본관 뒤편에 커다란 건물 기억나?"
"어."
"거기가 청년부 합숙소야. 대학 기숙사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
"기숙사라고?"
"응. 청년부에는 본가에서 나와서 합숙소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거든,"
"규모가 얼마나 되는데?"
"여자동 인원이 500명 정도니까···. 남자동도 비슷하다고 보면 천명쯤?"
"천명이 동시에 합숙을 한다고?"
도훈은 합숙소의 규모에 기가 질렸다.
본관 뒷동 건물 사이즈를 봤을 땐 도저히 천명을 수용할 만한 건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응. 좀 많지? 사실 방이 많이 좁아."
"얼마나 좁은데?"
승아가 욕탕 사이즈로 비교해 설명했다.
"여기 탕보다 좀 더 작은 공간에 2인1조로 살고 있어."
욕탕의 사이즈는 가로세로 3M x 3M 정도였다. 끽해야 2평에서 3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소리였다.
"아니, 누울수나 있어 그럼?"
"침대가 있어. 2층 침대인데 바로 아래 공부할 수 있는 책상도 있고."
"그 조그만 공간에 침대까지 넣었다고? 그게 가능해?"
"음,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오면 거의 사람 한명 지나갈 통로밖에 없어. 사람 셋이서 둘러 앉을 수 없을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도훈은 어이가 없었다.
감옥에서 제공하는 2인1실의 방도 그것보다 쾌적할 것이었다.
말이 합숙소지 실제론 닭장안에 사람을 가둬놓은 구조였다.
돈없는 고학생들이 비좁은 고시원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헐, 너무 열악한데? 거기서 2명이나···."
"걱정마. 수호천사나 성기사단, 그리고 타천사들은 독방을 쓸 수 있거든. 도훈이 너도 만약 성기사단에 합격해서 합숙소에 들어오면 독방을 받을 수 있을 거야."
딴에는 위로라고 하는 말이었지만, 커다란 2층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도훈에게는 어이가 없는 소리였다.
[그걸 참고 견디는 게 더 신기하군요.]
'종교가 저렇게 무섭다니까?'
"그렇구나. 근데 타천사는 또 뭐야? 처음 듣는데?"
"아, 천사에서 승급한 사람들 중에서 특별 선발된 인원들이 있어. 타천사도 그중 하나야. 수호천사랑 같은 계급인데, 하는 일이 달라."
설명을 들으면서 도훈은 구원회 내의 계급 체계가 마치 군대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맨 바닥의 평신도들을 이등병에서 병장까지의 병사들이라고 한다면, 그 위에 수호천사나 성기사단, 타천사들은 부사관. 집사는 위관, 권사는 영관, 마지막으로 장로는 바로 장군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계급 체계를 누가 세운 건지 몰라도 완전히 촘촘하게 만들어 놨구나.'
[대체 장만석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체계를 세운 걸까요?]
'5만이 넘는 신도를 일사분란하게 통제하려면 군대 시스템이 가장 합리적이긴 하겠지. 그리고 들어보면 계급에 따른 차등도 일반 군대보다 훨씬 심하게 두는 것 같고.'
[그런가요?]
'모르긴 몰라도 양 권사가 노리고 있는 장로 자리는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게 틀림 없을 거야. 그러니 양 권사가 기를 쓰고 진급하려고 하는 거겠지. 또한 수호천사나 성기사단이 보기에는 집사나 권사만 해도 엄청 높아 보일 거고.'
[듣고보니 군 계급이랑 다를 바 없군요. 계급에 따른 권한과 보상에 철저한 차등을 두어, 진급에 목숨걸게 만들었으니까요.]
'맞아. 그 말은 군대에서 벌어지는 부조리 역시 똑같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뜻이겠지,'
"혹시 내가 성기사단에 뽑히면 나도 그 합숙소에 들어가야 하는 거야?"
"응? 몰랐어?"
"당연히 아무도 설명을 안 해줬으니까."
"아, 맞다. 넌 일요일에 전도되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겠구나.
넌 조금 이례적인 케이스야. 보통은 평신도 생활을 하면서 전도한 사람이 이것저것 교회 생활에 대해서 알려주게 되어 있거든. 원래는 너를 전도했던 이서가 알려줬어야 하는 내용이야."
"그렇구나. 그럼 승아 네가 대신 설명해줘."
"응. 성기사단에 뽑히게 되면, 합숙소에서 독방을 받고 같이 합숙생활을 하게 돼."
"그럼 다니던 학교는?"
"합숙소에서 등하교 하는 거지."
"헐."
"물론 대부분은 휴학하거나 그만 두더라고."
"왜?"
"대학교 다녀봐야 여기서 버는 돈에 비하면 턱도 없으니까. 민용이 넌 공무원 시험 계속 도전할 거야? 대학도 졸업하고?"
"그건 아직 결정을 못 했는데···."
"교회에서 계속 생활하다 보면 알게 될 거야. 차라리 교회일에 집중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걸. 물론 원하면 대학도 계속 다닐 수 있어. 청년부에 있는 사람 중에는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있는 걸로 알고 있어."
"혹시 합숙 생활은 의무야?"
"응?"
"아니 수호천사나 성기사단이 되면 합숙소 생활을 무조건 해야 하는 거냐고."
"아니. 그건 자유야."
"자윤데도 굳이 그런 닭장 같은···. 아니 거기서 합숙 생활을 하는 이유가 뭐야?"
"밖에서 출퇴근하기엔 너무 힘드니까. 매일 새벽기도 나오려면 지하철 첫차 타고 와도 빠듯할 걸? 거기다 수요 예배, 주일 예배, 각종 행사까지 다 준비하려면···. 처음엔 잘 모르고 집에서 다니는 사람도 있는데, 얼마 안 가서 못버티고 짐싸서 들어오더라고."
"그럼 승아 너도···."
"난 엔젤 때부터 합숙소에서 살았어."
[역시 사이비 종교집단은 무섭군요. 온간 핑계로 결국엔 교회로 들어올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군요.]
'그렇지. 이런식으로 다니던 대학이나 직장도 그만두고 교회에 올인하게 만드는 거야. 인생을 이곳에 던진 애들이니만큼 충성심도 그만큼 높아질 거고.'
[그리고 그 보상을 계급의 차등으로 철저하게 구분하면서, 점점 더 빠져나올 수 없게 만드는 거군요. 정말 지독한 수법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도훈은 기가 막혔다.
"솔직히 지금도 합숙소 생활을 하고 싶어서 대기하는 애들이 수백명이야. 자리가 잘 안나서 경쟁률이 엄청 높거든."
"정말?"
"응. 물론 사는 곳이 조금 비좁은 건 사실이야. 고시원보다 못한 부분도 있고. 하지만 어차피 잠만 자는 곳이니까 다들 감수하더라고. 나도 2인실에 있을 땐 힘들었는데, 독방으로 옮기고 나선 나름 괜찮더라고."
여전히 도훈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궐같은 집에서 혼자 살고 있는 그에게는 아무리 큰 독방이라도 감옥처럼 느껴질 게 당연했다.
"혹시 또 궁금한 거 있어?"
"음···. 성기사단이 하는 일은 그럼 참회방에 가서 봉사하는 게 전부야?"
"기본적으로는 그래. 가끔 파견을 나가기도 하고."
"파견이라고?"
"응. 오늘 널 부른 권 권사님이 성기사단 차출을 자주 하는 분이야."
"개인적으로 부르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미션을 주시거든. 미션 내용은 대외비라서 나로선 알 수 없어. 양 권사님은 아시는 것 같지만, 그 일에 대해선 함구하니까."
"그렇구나."
[무슨 일일까요? 권미숙이 별도로 하는 일이 있는 걸까요?]
'미숙이는 그냥 낙하산 아니었나? 나도 그건 잘 모르겠는데.'
[여하튼 이곳은 정말 기괴합니다. 돌아가는 시스템이 상식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같습니다.]
'껍데기만 교회고, 장만석의 성수에 의해 세뇌된 좀비들이 그의 명령을 철저히 수행하는 사조직같아.'
[맞습니다.]
"아, 맞다. 그걸 말 안했네. 합숙소는 남녀가 완전히 구분되어 있어. 식사도 따로 하고, 동선이 전혀 겹치지 않아서 합숙소 내에서 남녀 신도가 만나는 일은 거의 없어."
"그래? 그럼 기도할 때만 얼굴을 보는 거야?"
"응."
이유를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젊고 혈기왕성한 남녀들을 붙여놨다간 필시 자기들끼리 일을 벌일 것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평소엔 성욕을 꾹 눌러두고, 청년부 예배에서 난교를 통해 꾹 눌러왔던 성욕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섹스에 중독시켜서, 나중엔 이를 이용해 노예처럼 착취하는···.
'이거 완전 하사신 육성법 아니냐?'
[그런것 같습니다. 장만석이 정말 머리를 잘 굴렸군요. 그리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성수라고 불리는 그의 정액이 큰 역할을 한 것 같고요.]
"으음, 다른 사람 들어오기 전에 한 번 더 빨아주고 싶은데···.
괜찮아?"
이제껏 참아 온 승아가 눈을 반짝이며 도훈에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