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5. 구원회-60-
"지난 번에는 사실 컨디션이 안 좋았습니다. 오늘은 기필코 테스트에 통과해 보겠습니다."
"좋아, 좋아. 사내가 그런 각오는 있어야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내가 아이템도 미리 준비해 뒀지."
"아이템이라면···."
도훈은 아이템이라는 단어에 살짝 놀랐다.
민간인인 양 권사의 입에서 나올만한 단어는 아니었던 것이다.
'설마 장만석이 고위 간부들에게 플레이어가 쓰는 아이템을 선물이라도 한 건가?'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요? 아무리 탈주자라지만.]
양 권사가 품에서 꺼낸 것은 조그만 물약통이었다.
그마저도 절반도 안 될만큼 내용물이 적게 들어있었다.
"이게 뭔지 알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지난주 처음 교회에 왔으니 모를 수밖에 없겠군. 이건 바로 성수의 원액이라네."
"서, 성수요?"
도훈은 자기도 모르게 정액이라고 소리칠 뻔 했다. 자세히 보니 물 약통에 든 액체는 탕수육 소스처럼 끈적하고 탁한 우윳 빛을 띄고 있었다.
'저게 정말 장목사의 정액이란 말이야?'
[세상에. 양 권사가 원액을 어디서 구했을까요?]
"이 성수엔 강력한 힘이 있다네. 특히 관계 직전 들이키면 욕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켜 주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발정나서 미치게 된달까?"
"아···."
"이건 내가 교주님께 매달 조금씩 하사 받은 것을 6개월 간 모은 양일세. 적절한 때 쓰려고 했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인 것 같아서."
도훈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성수를 분석할 수 있다면, 장만석이 가진 힘의 비밀과 원천을 알아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혹시 사용법은···."
"별것 없네. 쭉 들이키면 그만이야."
"마, 마시라고요?"
"왜? 설마 잦이에 바르는 건 줄 알았나? 껄껄껄."
저질스러운 농담을 건넨 양 권사가 도훈에게 성수가 담긴 약병을 주며 신신당부했다.
"적지 않은 양이니 권 권사 고년하고 꼭 나눠 먹길 바라네."
"네? 나눠서요? 이게 뭔 줄 알고도 마시려고 할까요?"
"당연히 아니지. 이 정도 양이면 거의 맨정신을 유지하기 힘들만큼 정신이 나가버리거든. 그년도 정기적으로 성수를 배급받으니 그 효과는 잘 알고 있을 걸세."
"그럼···.."
"자네 입속에 담았다가 기습적으로 입으로 건네면 되지. 일단 삼키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를 만큼 정신줄을 놓게 될테니까."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마약이나 다름없는 약물이었다.
먹으면 정신줄을 놓는 최음제를 함께 들이키라는 소리는, 자신 보고 모든 부작용을 감수하라는 뜻이기도 했다.
"음···. 혹시 이 정도 양을 한 번에 들이키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남자의 경우는···. 비아그라 여러 알을 한번에 들이킨 상태가 되네."
"비아그라면 그 발기부전 치료제요?"
"그렇지. 잦이가 절대 죽질 않아. 힘이 미친듯이 솟구친다네.
결정적으로, 한 번 쌌다고 해도 성욕이 조금도 안 줄고 금방 또 발딱발딱 서게 되지."
"아···."
[뭔가 이상한데요? 그렇게 효과가 좋은 약을 어째서 양 권사는 주인님께 서슴없이 건네는 걸까요? 심지어 본인 스스로 6개월간 조금씩 모았다고 할만큼 오랜시간을 들여 겨우 확보한 성수인데요.]
'나도 이상하다고 생각해. 아무래도 밝히지 않은 진실이 있는 것 같은데.'
도훈은 다시 마음의 소리 스킬을 켜 양 권사의 속마음을 읽었다.
{크크. 성수는 다 좋은데 한가지 큰 단점이 있지. 한꺼번에 정력을 너무 당겨쓰다보니 자칫 몸이 상할 수도 있다는 거야. 잘못하면 오랜기간 발기부전에 빠질지도 모르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군요. 성수에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러게. 대충 들어보니 이건 일종의 에너지드링크 같은 거네.'
[에너지 드링크요?]
'왜, 에너지 드링크 종류가 각성효과는 강한 반면에 다음날 하루 종일 피곤하잖아. 체력을 미리 당겨쓰게 하니까. 성수의 정력 강화 효과도 아마도 그런 종류가 아닐까 싶어.'
[일리가 있는 의견입니다.]
'로시. 근데 혹시 이 성수의 마법적 효능을 분석할 수도 있을까?'
[마법적인 효능이요?]
'응. 내 마법의 정액처럼 어떤 내용의 효과가 있는지.'
[흐음, 일종의 마법 포션이라고 가정하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분석하는 장비가 무척 비쌀 겁니다. 고작 그것을 위해 값비싼 장비를 사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닌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어쩐다.'
도훈은 고심하다가 결국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먹어봐야 하나?'
[으엑. 성수의 정체가 뭔지 아시면서 저걸 마시겠다고요?]
'그럼 어떻게 해? 애꿎은 포인트를 날리느니, 그냥 몸으로 때우는 게 싸게 먹히는걸. 그리고 내 몸에 직접 투입하면 어떤 효능이 있는 지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거 아니야? 적어도 남자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
[하아, 주인님 생각이 정 그러시면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무리하시는 것 같습니다만.]
'알았어. 일단 생각 좀 해볼게. 일단 성수를 챙기고 보자.'
도훈은 양 권사가 건네 준 성수를 조심스럽게 받았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귀한 걸 다."
"내가 그만큼 자네를 신뢰한다는 징표라고 생각해 주게나."
"근데 왜 저를 그렇게 신뢰하시는 지···."
"뭐?"
"저는 지난 일요일에 입단한 신입일 뿐이니까요."
"후후-. 그 이유가 궁금한가?"
"네."
"자넨 잘 모르겠지만, 난 한 때 자네보다 어린 친구들을 데리고 프로게임단을 꾸린 적이 있다네."
"프로게임단이요?"
"그렇지. 내가 직접 코칭했던 선수들 중에는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선수도 있었고, 지금도 해외에서 활약하는 선수도 있지."
"아···. 전혀 몰랐습니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다른 직종에서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흔한 직업도 아니고 말이야."
"네."
"난 그때 감독을 대신해 선수 발굴도 직접 뛰었다네. 말이 코치지, 거의 감독에 준하는 일을 내가 대신했지."
"그러셨군요."
"난 선수를 뽑을 때는 확고한 기준이 하나 있다네."
"뭔가요?"
"눈빛."
"네?"
의외의 대답에 도훈이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난 늘 눈빛이 살아있는 녀석을 뽑았다네. 딱 보면 알거든. 이놈이 앞으로 대성할 놈인지, 적당한 수준에 머무르다 소리 소문없이 은퇴할 놈인지, 아니면 싹수조차 없어서 만년 유망주로 떠돌다가 결국엔 트위치나 아프리카 BJ나 하면서 입만 털고 살 놈인지 말이야."
"그, 그렇군요."
"민용군 자넨, 눈빛이 살아 있어."
"제, 제가요?"
"그래. 뭐든 큰일을 해내는 사람의 눈빛이었네. 면접 날에도 그렇게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네. 특히 그 까다로운 권 권사가 나에게 자네를 다시 불러달라고 머릴 숙였을 때 확신했지."
"······."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여전히 살아있구나 하고."
"아."
"그러니. 부디 날 실망시키지 말게나. 자네는 나에게 귀인이나다름없으니."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나 또한 자네에게 귀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지. 원래 상부상조하는 거니까."
"그렇군요."
'완전 또라이잖아?'
[네?]
'내 눈빛에서 대체 뭘 봤다는 거야?'
[어쩌면 신기 같은 게 있는 게 아닐까요?]
'신기라고? 그럼 무당이라는 소리야, 양 권사가?'
[직관력이 남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눈빛을 본다고도 하고, 기운을 읽는다고도 하죠. 어쩌면 양 권사는 주인님을 제데로 본 걸지도 모릅니다. 주인님이 보통 분이 아니라는 걸요.]
'듣고보니 그렇긴 하네. 다만 내가 구원회를 분쇄 시키려고 온 자객이라는 건 몰랐던 모양이군.'
[그럴 수도 있죠. 비범한 사람이란 건 꿰뚫어 보았지만, 그 비범함이 어느 쪽으로 발현되는지는 전혀 알지 못하는.]
'어쨌든 다행이야. 사정이 다급한 양 권사가 복권 긁는 마음으로 나를 발탁해줘서. 모처럼 일이 잘 풀리려나 본데?'
[호사다마라고 했으니 늘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자, 그럼 우리끼리 얘기는 끝난 것 같고, 권 권사가 자네를 부를 때까지 기다려면 되겠군."
"어디서 기다릴까요?"
"지난 번처럼 목욕재계하러 가야지. 참회방에서 대기하게나."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조 비서가 안내해 줄 걸세."
"감사합니다."
"껄껄. 권 미숙 그년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워 삶으라고. 그럼 조비서는 실컷 따먹게 해줄테니."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슬슬 움직이게나. 난 권 권사에게 자네가 참회방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하겠네. 길어야 1~2시간이면 올 거야."
"알겠습니다."
* * *
다시 승아와 나오게 된 도훈은 일전에 가봤던 공용 사우나로 향했다.
가는 동안 승아는 아무말 없이 걷다다 통로에 둘 밖에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도훈을 비상구 계단으로 밀어 붙였다.
"잠깐, 나랑 얘기 좀 해."
"뭘?"
"아까 대체 왜 그랬어?"
"응?"
"양 권사님한테서 왜 날 지켜줬냐고."
"······."
"혹시 너 나 좋아해?"
어쩐지 답정너를 원하는 질문이었지만, 도훈은 교묘하게 피했다.
"역시 난 돈보단 여자더라고."
"치···."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순간 욱 하더라?"
"뭐가?"
"네가 양 권사님 손길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내, 내가 언제? 그리고 그게 느낀거라고? 난 기분 더러워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는데?"
"그냥 내가 그렇게 보였나보지. 암튼, 그 모습을 보니까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
"넌 진짜···."
"아무튼 내가 그 여자 권사님 테스트에 붙기만 하면, 넌 이제 내 거야."
"뭐, 뭐래는 거야."
"양 권사님이 약속했잖아. 널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승아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혼자서 중얼거리는 것이었다.
"···그건 언제든 해도 된다고 했잖아."
도훈은 못 들은척 하며 승아에게 말했다.
"이럴 때가 아니라 얼른 가봐야 할 것 같아. 권 권사님이 한 두시간안에 도착하신데서."
"알았어."
두 사람은 서둘러 사우나에 들어갔다. 수요일 오후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커다란 목욕탕을 전세낸 것처럼 둘이 쓰고 있었다.
"근데 넌 왜 따라들어와?"
"내 맘이지."
승아는 굳이 도훈을 따라 혼탕에 들어왔다. 살짝 상기된 표정을 보니 여전히 아까의 섹스가 미련이 남은 모양이었다.
'피곤하게 됐군. 이건 백퍼 따먹히려고 따라 온 거야.'
[그러게 왜 호의를 베푸셨습니까? 주인님이 양 권사에게서 구해줘서 더 호감이 쌓인 것 같은데요.]
'난 내가 먹던 걸 다른 놈이 손대면 빡치더라고. 그것도 방금 막 먹다 내려 놓은 걸 주워 먹으려고 하니까 더 열받지.'
[아까까지만 해도 승아양의 넘치는 성욕을 버거워 하셨잖습니까?]
'그거야 오늘 거사가 예정되서 그런거고. 그리고 그것도 열받았어.'
[어떤거요?]
'오늘 승아가 예민한 날이라 백퍼 젖었을 거야. 그럼 양 권사 그 새끼는 자기가 만져대서 그런 줄 오해해서 신나게 쑤셨을 거 아니야? 그 꼴을 내가 어떻게 봐? 양념은 내가 다 쳐놨는데 낼름 막타만 먹는 거잖아.'
[아니··· 무슨 그런 황당한 이유가···.]
도훈이 탕에 앉아 천천히 몸을 불리고 있는데, 승아가 쭈뼛거리며 슬금슬금 옆으로 다가왔다. 그녀는 계속 목욕탕에 있는 다른 신도들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마침 유일하게 남아있던 신도가 목욕탕 밖으로 나간 시점이었다.
"민용아."
"어?"
"내가 씻는 거 도와줄까?"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아니야. 중요한 분 만나러 가는 거잖아. 구석구석 깨끗이 씻어야지. 널 최선의 상태로 준비시키는 게 내 일이기도 하니까."
"내가 무슨 유치원도 아니고 혼자서 씻을 수 있어."
"그러지 말고···. 내가 씻겨주고 싶어서 그래."
물 속에서 승아의 손이 움직이는가 싶더니 도훈의 잦이를 덥썩붙잡았다.
"특히 남자들은 여길 구석구석 씻어야 냄새가 안난다잖아."
"하-. 갑자기 또 왜 이래? 오늘은 참기로 한 거 아니었어?"
"참을 거야. 참을 건데, 그냥 난 씻겨주고 싶어서 그렇지."
"어차피 그건 탕을 나가야지 여기서 뭘···."
그때였다.
승아가 두 볼을 크게 부풀리더니 공기를 들이마신 뒤 탕 속으로 잠수한 것이었다. 도훈이 황당해 하는데 그녀가 수중에서 잦이를 물더니 입으로 빨아대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군.'
[설마 씻겨준다는 게 입으로 씻겨준다는 거였습니까?]
'이건 그냥 자기가 빨고 싶은 거잖아.'
[하아-. 주인님도 오늘 정말 고생하시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