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9. 구원회-54-
사실 양 권사는 이 점에 있어서 미숙의 역할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미숙이 젊은 남자나 밝히고 잦이 큰 남자에 환장하는 발정난 여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사실 미숙이 맡은 임무는 바로 교회의 재정을 불리는 일이었다.
'내가 이곳 교회를 세우기까지 벌어다 바친 돈이 얼만데? 주춧돌 하나에도 내 공이 안들어 간 곳이 없지.'
구원회는 다양한 루트로 자금을 끌어 모았다.
신도들에게 받는 십일조는 기본, 충실한 신자들은 월급의 반절가까이를 자발적으로 상납했다.
십일조가 고정적인 캐시 카우라면, 그 외에 다른 수입은 바로 교회 재단에서 파생된 각종 사업체에서 발생했다.
대부분의 장로들은 사업체의 사장 역할을 맡았는데 , 젊은 신도들의 노동력을 착취해 인건비를 대폭 절감하고 그렇게 생산된 물건을 다단계 방식으로 교인들에게 되팔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이것이 겉으로 드러난 구원회의 공식적인 회계 장부라면, 비공식적인 수입원은 바로 세뇌를 통한 재산 갈취였다. 민수의 비서 출신이자, 현재 도훈의 전속이 된 김 비서의 어머니가 당했던 수법이 바로 이것이었다.
미숙이 비밀리에 하는 일이란, 주로 재산이 많은 여신도를 구워 삶아 재산을 갈취하는 일이었던 것.
미숙이 진두지휘하는 소위 타천사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대상을 교회로 끌어 들인 뒤, 장목사가 특별히 지급한 '성수'를 통해 성욕을 증폭시켰다. 그러한 뒤 힘 좋고 스킬 좋은 남자 하나만 붙여주면 세팅 끝이었다.
외로움에 굶주리다 섹스에 중독된 여신도는 어느새 교회에 제발로 재산을 가져다 바치게 되는 것이다.
미숙은 장목사가 제공하는 성수의 비밀을 알고 있는 몇 안되는 핵심 간부이기도 하다.
'그 양반 정액에 그런 영험한 능력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젊은 시절부터 장목사의 애첩이었던 그녀는, 누구보다 먼저 정액의 효능을 체험했다. 어느날 그의 정액을 입으로 받아 삼켰더니, 성욕이 극도로 올라가며 부끄러움마저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의 정액을 섭취한 뒤 섹스를 하면 마치 마약을 먹고 섹스하는 것처럼 극치에 이르는 쾌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는 마약과 유사한 효과였지만, 신기하게도 일상 생활에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특히 주사 바늘 자국이 남는 것도 아니었고, 더구나 약물 검사로도 검출되지 않는 완벽한 최음제였다.
장목사는 신도들에게 자신의 정액을 희석시킨 성수를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방식으로 신도들을 세뇌시킴으로써 빠르게 교세를 확장시킬 수 있었다.
원액을 직접 마시는 정도까진 아니었으나, 그의 정액이 함유된 성수를 마시면 일반인에 비해 훨씬 성욕이 강화되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섹스할 때 훨씬 잘 느끼게 되고, 부끄러움이나 수치심도 조금씩 사라져 갔다. 게다가 장기 복용을 하게 되면 점점 색욕의 화신으로 변했는데, 그땐 섹스로 성욕을 풀어내지 않고선 견디기 힘들 정도로 금단 증세를 보이게 만들었다.
장로나 권사, 혹은 집사들이 문란하게 행동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된 부작용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섹스는 즐거운 유희일 뿐이었으므로, 배우자를 두고 바람을 피운다는 자각조차 없었다. 오히려 음욕을 자유롭게 배출하는 것을 죄의식을 덜어내는 참회라고 세뇌되었다, 정액의 효능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 챈 미숙이었지만, 사실 그녀는 오래 전 팽 당할 뻔한 위기에 처했다.
마법같은 능력을 갖춘 장목사는 더 이상 조그만 개척교회의 가난한 목사가 아니었다. 원하는 여자는 얼마든지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영험한 정액 능력까지 갖춘 그가, 굳이 오랜 연인에 집착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임신 사건으로 미숙은 손절 당할 위기에 처했지만, 특유의 생존력을 발휘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를 닮아 유난히 성욕이 강했던 장남 장석개가 그녀를 욕망 가득한 눈으로 훔쳐보던 걸 기억해낸 것이었다.
기회는 머지 않아 찾아왔다.
장석개의 성욕이 폭발했던 고교 시절, 아버지와의 불륜을 눈치 챈(사실상 의도적으로 노출했다.) 석개가 그녀를 따로 불러 협박한 것이었다.
-우리 아버지와 바람 피우는 것은 눈감아 주지. 그 대신···.
당시 미숙은 장만석의 아이를 낙태시킨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 장석개의 협박을 역이용할 인생일대의 결심을 세웠다.
그의 아들에게 몸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최초의 발단은 복수심 때문이었지만, 끈이 떨어질 것을 우려한 미숙에게 어쩌면 그것은 구원회에서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장석개를 빨아줌으로써, 악착같이 살아남은 그녀는 한 장로와의 결혼 요구 역시 불만없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구원회 내에서 혼인 관계는 아무 의미가 없었으니까.
과거의 기억을 잠시 떠올리던 미숙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비서에게 명령했다.
"근데 그 여자 이름이 뭐라고?"
"지안, 최지안입니다. 신상 정보는 여기 파일 철에 따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알았어. 시간 날 때 읽어 볼테니, 얼른 박기사에게 차량부터 준비하라고 해."
비서가 공손히 파일철을 건넸지만 미숙은 귀찮다는 듯 거실 테이블 위로 파일 철을 던져버렸다.
* * *
도훈은 역용마스크를 통해 평범한 대학생 박민용으로 변장했다.
화장실에 들어갈때는 잘생긴 훈남이었으나, 잠시 후 같은 복장을 입고 나온 남학생은 키만 큰 평범한 흔남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이번엔 위장용으로 안경까지 착용했기 때문에, 평소 보다 훨씬 너드미가 넘쳤다.
'좋아. 이번엔 변장이 잘 먹은 것 같군.'
[근데 왜 본래 얼굴로 안 하시고 변장을 하시는 건가요? 구원회에 접근하려면 본래의 잘생긴 얼굴이 훨씬 더 유리하지 않습니까?]
'잘생긴 얼굴이 여자들 꼬시긴 수월하긴 하겠지. 와꾸로 먹고 들어가는 게 있으니까.'
[그런데요?]
'눈에 너무 띄어.'
[아···.]
'예쁜 여자보다 잘생긴 남자가 훨씬 귀한 거 알지? 남자가 지나치게 잘생기면 누구나 주목한다고. 게다가 인상 깊이 각인 되기 때문에 한번만 봐도, 다음 번에 또 만나면 바로 알아채버리고. 여자를 작업하기엔 좋지만, 잠입을 하기 적합한 건 아니지. 특히나 장만석을 노리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주인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최대한 평범해 보이는 것이 낫겠군요. 지난번 호빠에 침투하셨을 때도 본래 얼굴을 직접 드러내는 바람에, 지금 호텔 연금생활을 하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근데 그땐 나름 선수로 투입된 거라서, 일부러 얼굴을 빻게 만들 순 없었지.'
[하긴 그것도 그렇죠.]
택시를 타고 재림예수 구원회 앞에 내린 도훈은 대포 폰으로 양권사의 비서 승아에게 연락했다. 구원회는 철저하게 외부인을 통제했으므로 출입증이 없는 상태론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미리 문자를 받은 승아가 전화를 받자마자 출입구 밖으로 달려 왔다.
3일 만에 도훈과 재회한 그녀는 몹시 상기된 표정이었다.
"딱 맞춰 왔네? 시험은 잘 봤어?"
그녀는 문자를 보낼때와 달리 편하게 대화를 이어갔다. 도훈과는 동갑이었기 때문에 직급에 상관없이 말을 놓기로 했던 것이다.
"네. 그럭저럭."
"뭐야? 설마 대충 보고 온 건 아니지?"
"왜요?"
"나 얼른 보고 싶어서, 헤헤."
승아가 도발하듯 물어왔다.
그녀는 일전에 볼 때보다 훨씬 활달해 보였는데, 원래 지금의 모습이 그녀의 본래 성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봤을 때 이미지랑은 많이 다르군요.]
'그러게. 그땐 굉장히 차가워 보였는데, 알고보니 개구진데가 있네.'
[하긴 나이도 고작 스물셋 밖에 안됐는데, 너무 사무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역시 몸을 한번 섞고 나면 본 모습이 나온단 말이야?'
"음, 반말 해도 돼···요?"
"뭔 상관이야. 우리 둘 뿐인데. 직급에 구애받지 않기로 했잖아우리."
"아니 아까 문자로는···."
"그땐 양 권사님이 옆에 계셔서 눈치 보였거든."
"아, 근데 권사님이 왜 날 갑자기 찾는 거야? 난 일요일에나 연락올 줄 알았는데."
두 사람은 양 권사의 집무실이 있는 별관으로 걸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 접때 면접 기억나지?"
"응."
"그때 뵀던 권사님께서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해서."
"아···."
도훈보다 앞서 걷던 승아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도훈을 밑에서 위로 올려보면서 귀엽게 물었다. 하는 행동이 마치 만화에 나오는 캐릭터처럼 무척 발랄한 편이었다.
"어땠어? 그때 면접 본 권사님은?"
"어땠냐니?"
"권권사님은 되게 유명하신 분이거든. 그쪽 방면으로는."
"유명해?"
"응. 일주일에 한 번씩 성기사단 멤버를 갈아치우셔. 남자를 좋아하는 만큼 빨리 질리는 것 같기도. 그래서 신기해서 말이야."
"신기하다니?"
"널 또 찾는 게 말이야."
"아···."
도훈은 승아가 질투를 하는 것인지, 순수하게 궁금해서 질문을 하는 것인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어쩌면 둘 다 일지도 몰랐다.
"음, 그냥 뭐···. 그때 사실 잘 못했어."
"왜? 너 잘하잖아."
승아가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얼굴을 살짝 붉혔다.
공공시설인 사우나를 비롯해, 심지어 참회방 안에서도 도훈과 섹스를 해본 승아는, 그가 보통내기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 권사님이 훨씬 잘했어."
"정말? 그 정도라고?"
"응. 내가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고."
"정말 소문이 사실이었구나."
"무슨 소문?"
"권권사님이 남자 잡아먹는 귀신이라는."
"귀신?"
"응. 난 솔직히 성기사단 사이에 떠도는 소문만 들었거든. 내가 남자도 아니고, 권권사님이 어떻게 하는 지 본 적이 있어야지."
"그렇겠지."
"근데 권권사님을 한 번이라도 만나본 성기사단이 그렇게 말했거든. 진짜 한번 만나고 오면 기를 쭉 빨린 느낌이 든다고."
"진짜 그랬어?"
"민용이 넌 어땠는데? 너도 상대해 봤잖아."
"난 뭐···."
도훈은 당시 마나가 달려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미숙을 만나기 직전 자신을 전도했던 이서와, 눈 앞에서 생글거리는 승아에게 이미 마력을 소모한 것이 누적되면서 커져라 여의 봉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것만 아니었어도 얼마든지 버텨볼 수 있었으나, 사이즈를 줄였다간 대물애호가인 미숙을 절대로 만족시키지 못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땐 컨디션이 별로라서."
"컨디션? 정말?"
"응. 그때 준비가 안 된 상태로 갑자기 전도되어서 왔으니까."
승아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럼 오늘은 컨디션 괜찮은 거야?"
"그렇지. 마음의 준비가 되었으니까."
"호오···. 그렇다면···."
승아가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더니 도훈의 손을 잡고 방향을 틀었다. 당황한 도훈이 승아에게 물었다.
"응? 이쪽은 별관 가는 길이 아닌것 같은데? 어디로 가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와봐."
승아는 도훈을 으슥한 곳으로 이끌었다.
구원회가 있는 교회는 워낙에 부지가 크고 여러 건물들이 있었기 때문에 도훈은 승아에게 끌려가면서도 자신이 어디로 가는 지알 수 없었다.
[승아양에게 꿍꿍이속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그래 보이지? 근데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도훈은 어떻게든 이번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야 했다.
미숙은 풀 컨디션으로 붙어야 겨우 해볼만한 강적이었다. 승아의 음흉한 의도를 눈치 챈 도훈이 천근추 수법으로 다리에 내공을 주어 붙박이처럼 멈춰섰다.
"어, 어?"
아무리 끌어도 도훈이 꿈쩍도 하지 않자 승아가 볼멘소리로 물었다.
"뭐야? 지금 날 거부하는 거야?"
"그게 아니라, 다짜고짜 끌고가니까 그렇지."
"휴."
승아가 두 팔을 허리에 얹더니 도훈에게 설명했다.
"양 권사님한테는 아직 너 여기 도착했다고 말 안하고 나왔어.
그러니까 잠깐 시간 내도 돼."
"뭐라고?"
"권권사님 쪽에서 피부과 다녀온다고 저녁에 보자고 했거든.
아직 충분히 시간이 있다는 뜻이지."
"그래서?"
"그래서라니? 어차피 남는 시간에 나랑···."
"잠깐만."
도훈이 승아의 손을 정중히 뿌리치며 그녀에게 설명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오늘은 안 돼."
"뭐라고? 지금 날 거부하는 거야?"
승아가 어이 없다는 듯 되물었다.
일요일에는 자신이 먼저 덮쳐놓고선, 이제와서 매몰차게 거절하는 도훈이 야속했던 것이다.
"그게 아니고···."
도훈이 차분하게 승아를 설득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 여자 권사님은 너무 강한 상대야. 만나기 전에 미리 힘을 뺐다간 저번처럼 또 먼저 나가떨어질 거라고."
"아···."
"내가 성기사단에 입단해야 승아 너도 좋은 거 아니야? 자주 볼 수 있으니까."
"그, 그렇지만···."
"미안. 오늘은 나도 작정하고 붙으러 온 거야. 한 번만 내 사정봐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