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7. 구원회-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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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 예배는 주일 예배와 더불어 구원회의 가장 큰 행사 중 하나다.
처음에는 주일 예배에 불가피하게 빠지는 교인들을 대상으로만 주중 임시 예배를 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규모가 커져 이젠 전체 교인의 30%가까이 참석하는 정식 예배로 발전했다.
직장인들이 퇴근하는 수요일 저녁 시각에 맞춰 예배가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 중에 매주 정기적으로 장로 회의가 개최되었다.
장로 회의는 구원회의 최고위층이라 할 수 있는 열두명의 장로와, 차기 장로 후보로 지명 받은 여섯명의 권사가 모두 참여하는 집행부 회의였다.
현재 그곳엔 도훈의 입단을 심사했던 양 권사와, 그를 직접 상대한 미숙도 참석해 있었다. 따분하고 뻔한 회의가 끝나자 미숙은 양 권사를 따로 불렀다.
"양 권사님, 저랑 잠깐 얘기 좀 하고 가실래요?"
일이 바쁜 양 권사였지만, 12장로 중 한 명인 '한 장로'의 부인 미숙의 청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진즉 장로에 준하는 자격을 갖추었지만, 남편인 한 장로 때문에 오르지 못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교회 내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게다가 어리고 잦이 큰 놈만 밝히는 변녀 이기도 하지.'
양 권사 본인도 마찬가지지만, 이곳에 모인 구원회 핵심 간부들은 대부분 성에 대해선 문란한 편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미숙의 남편인 한 장로 역시, 수호천사 출신의 어린 여비서를 끼고 산다는 소문이 돌았다.
두 사람은 겉으로만 부부 관계를 유지할 뿐,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선 전혀 터치하지 않는 전형적인 쇼윈도 부부였다.
"네, 권 권사님. 어쩐 일로."
"그렇게 부르지 말아 줄래요? 같은 글자 반복해서 들어가는 거 제가 싫다고 했었을텐데."
미숙이 버럭 짜증을 냈다.
그녀의 풀네임은 권미숙. 성 앞에서 직위를 붙이는 특성상, 그녀는 권 권사로 불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미숙은 '권'이 두 번씩이나 반복되는 호칭을 무척 싫어했다. 박박사나 사사장처럼 어딘가 우스꽝스러운 발음이 된다는 이유였다. 양 권사는 이를 알고도 일부러 그녀의 신경을 한 번 긁는 것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달리 호칭이 마땅치 않아서."
"···하긴, 우리가 뭐 호칭 가지고 따질 사이는 아니지만. 잠시 저랑 산책이나 하시죠."
왠일로 한 발 물러서는 미숙을 보고 양 권사는 그녀가 뭔가 아쉬운 게 있다고 확신했다.
미숙은 양 권사를 데리고 교회 내 정원을 함께 거닐었다. 강남한복판에 대형 교회를 세운 것도 모자라, 내부엔 별도의 정원이 마련되어 있을 만큼 호사스러움을 과시하는 구원회였다.
"지난 번 저한테 보내준 애 말이에요. 어떻게 됐어요?"
"네? 누구 말씀이신지?"
양 권사는 도훈을 지칭한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되물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미숙을 의식하고 있었는데, 내년도 열릴 차기 장로 회의에서 두 사람 모두 유력한 차기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숙은 먼저 장로에 오른 남편만 아니었으면 진즉 장로에 오를 입지를 다진 인물이었고, 양 권사 역시 같은 기수 중에서는 가장 잘나간다는 평이었다.
성기사단의 단장이기도 한 양 권사는 만약 최종 후보에서 경합을 벌이게 된다면 필시 그 상대는 미숙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따라서 그녀와 마주칠 때마다 겉으로는 예의를 다하는 듯 하면서도, 견제의 의미로 자꾸 신경을 긁는 것이었다. 물론 눈치 하나로 이 자리에 오른 미숙이 이를 모를 리 없었다.
'고위직 여신도들에게 남창이나 대주는 마담 주제에 건방이 하늘을 찌르네. 하여간 근본도 없는 것들이란.'
미숙도 양 권사를 탐탁지 않게 여기긴 마찬가지였다. 한참 후배뻘인 그가 일부러 대드는 모습이 뻔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근본도 없다는 멸시의 근원엔, 초기 개척교회 시절부터 함께 해온 원년 멤버가 아니라는 차별 의식이 깔려 있었다.
현재의 12장로는 모두 개척교회 시절부터 함께 고생한 일종의 개국 공신이었고, 미숙 역시 그 중 한 명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가 어느정도 규모를 갖춘 뒤 영입된 양 권사같은 2세대들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힘겨운 시절을 겪었던 그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미숙의 평소 성격대로면 진즉 기어 오르는 양 권사를 찍어 눌렀겠지만 그왕 척을졌다간 서로 피곤해 질 게 뻔했기 때문에 자제할 뿐이었다.
어쨌든 그는 매주 새로운 대물을 공급해주는 훌륭한 채홍사이기도 했으니까.
"에이, 다 아시면서. 왜 저번 주일에 참회방에 넣어 주신 애 있잖아요. 신참으로 왔다는."
"아아, 그 친구 말이군요. 이름이 민용군이었나? 네, 기억 납니다."
"혹시 다시 연락은 해 보셨어요?"
"글쎄요. 보시다시피 제가 일이 너무 많아서 못 챙겠네요. 저희 비서한테 한번 알아보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흠. 양 권사님 제가 뭐 섭섭하게 한 것 있어요? 왜 이러실까? 뻔히 알만한 선수끼리."
"하하, 섭섭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정말 엄살 피우는게 아닙니다. 요새 국 장로님께서 수요 예배에서도 사역할 일을 따로 주셔서요. 원래 저희 같은 권사들이 교회가 굴러가게 만드는 핵심인력 아니겠습니까? 소나 말처럼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해야죠."
양 권사는 은근한 디스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미숙을 깎아내렸다.
고위 간부인 장로를 기업 이사진에 비유한다면 권사는 회사에서 부장과도 같은 존재였다.
즉, 자기 앞으로 책임진 업무가 대체로 과중한 편이었고 맡은 임무를 얼마나 잘 수행하느냐에 따라 장로로 올라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다.
하지만 권사 중에서도 미숙은 낙하산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주요 보직도 거의 맡지 않았고, 맨날 어린 남자나 끼고 놀 생각뿐이었다.
나름 실력파에 속하는 양 권사로선 이를 무척 못마땅하게 여겼다.
'능력은 쥐뿔도 없는 주제에, 운 좋게 어렸을 때 담임 목사님의 총애를 받았다는 이유로 너무 높은 자리에 올려놨어. 하여간 하는짓 보면 교회 말아먹기 딱 좋은 인재라니까?'
조그만 개척교회가, 신도 5만의 초대형 교회로 커지면서 교회는 점점 기업화되었다.
관리할 인력이 기하급수로 늘어난 만큼, 처리할 사무들이 산적해 있었는데 가장 빠릿빠릿하고 실무에 뛰어나야 할 권사 직책에 능력도 없는 여자가 떡하니 앉아 있으니 양 권사 입장에선 고까워 보이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그 이유도, 장만석의 옛 애인이라는 이유였으니까.
차라리 생초짜인 수호천사를 미숙 대신 앉혀 놓는게 낫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또 실질적으로도 그녀와 차기 장로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 밖에 없는 처지였다. 양 권사의 불편한 심기를 알아챈 미숙이 그에게 불쑥 팔짱을 끼며 속삭였다.
"아이고, 우리 권사님이 뭘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양 권사가 당황했다.
"혹시나 차기 장로 후보 경쟁 때문이라면, 날 그렇게 밀어낼 필요 없다는 소리예요."
"···?"
"나야 우리 바깥 양반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만년 후보일 뿐이라니까요? 목사님께서 절대 부부를 동시에 장로에 않히지 않는 다는 거 아시면서?"
미숙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그녀는 누구보다 권력을 탐하는 인물이었고, 오로지 권모술수로 지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순간 속아넘어갈 뻔한 양 권사가 팔짱을 뿌리치며 답했다.
"그야 담임 목사님께서 자리를 지킬 때의 일이죠. 당장 부목사인 아드님께서 내년에 담임 목사 자리를 물려받는 소문이 파다한데."
양 권사가 우려하는 것은 그 점이었다.
권미숙은 현 교주인 장만석과는 애증 관계에 있었다. 그녀의 존재는 장만석에겐 전여친과도 비슷했다. 아니, 전여친이라기 보단 정 떨어진 첩실에 가까웠다. 떨쳐 내자니 미안하고 곁에 두기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교주의 아들은 장석개는 전혀 달랐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미숙을 잘 따랐는데, 소문에 의하면 당시 불륜 관계이던 장만석에게 버림받은 미숙이 그의 아들을 구워삶았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였다.
장만석과 미숙의 나이 차는 띠동갑을 넘었고, 오히려 그의 장남석개와 미숙은 띠동갑보다 적었다. 그 정도 나이 차이면 아버지보다는 아들과 더 엮어지기 쉬운 상황.
물론 다들 쉬쉬하는 비밀이긴 했지만, 양 권사의 입장에선 차기 교주의 적극적인 비호를 받고 있는 미숙이 껄끄러울 수 밖에 없었다.
교주의 첩실 출신에, 현직 장로 부인에, 동시에 차기 권력자의 편애를 받는 존재. 뒷배경만 들어도 기가 눌리는 느낌이었다.
"아이고. 우리 양 권사님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네? 제가 뭘요?"
"솔직히 우리끼리 하는 얘기지만, 장 목사님이 쉽게 은퇴하실 양반은 아니잖아요. 모르세요? 여전히 밤마다 처녀만 찾는다는거. 젊었을 때부터 힘이 어찌나 넘쳤는데. 하긴 같은 남자들은 잘 모르겠지만."
미숙이 은연중에 장만석과의 오랜 인연을 과시했다.
잠자코 듣고 있떤 양 권사가 이에 반박했다.
"물론, 천사들을 자주 호출하시는 건 사실이죠.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요새 부쩍 힘이 빠진 것도 팩트인 걸요. 들으셨죠? 지지난 주 주일 예배 때 말씀 끝나고 연단에서 내려오시다 휘청 하신 거? 그때 경호원이 급하게 부축 안했으면 연단에서 굴러 떨어 지실 뻔 했다니까요? 장로님들 우려가 큽니다."
"···발을 잠시 헛디딘 거겠죠."
실은 미숙도 장만석의 건강에 적신호가 커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겉으로 보이겐 멀쩡했지만, 점점 상태가 심각해지는 중이었다.
신체보다는 오히려 정신이 더 문제였는데, 가끔 자기 아들도 몰라본다는 얘기도 비밀리에 퍼지고 있었다. 철저한 입단속으로 틀어 막고는 있지만, 눈치빠른 노회한 장로들은 벌써부터 부목사인 만석의 동생과, 그의 장남을 놓고 차기 권력을 논의하는 중이었다.
양 권사 역시 권력의 핵심에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에, 대강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고 조만간 엄청난 피바람이 불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삼촌과 조카의 치열한 권력 쟁투가 머지 않은 것이다. 누가 차기 담임 목사를 잡는 가에 따라, 현재 고위층의 절반은 갈려나간다고 보면 됐다.
권력은 절대 나눠 가지는게 아니니.
'저런 능구렁이 같은 새끼 같으니. 진짜 성기사단 수장만 아니면 확 그냥.'
미숙은 속으로 이를 갈았으나, 겉으로는 호호 웃었다.
"아무튼 양 권사님,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지난번에 그 신참말이에요. 제가 한 번 기회를 더 줬으면 싶다고 했는데 아직 제대로 답변을 못 들어서요."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비서한테 말해서 이번 주일에 다시 나오라고 하겠습니다."
"주일이면 아직 4일이나 남았는 걸요?"
"예?"
"저는 오늘 당장 참회를 다시 받고 싶거든요."
"······."
양 권사가 속으로 혀를 끌끌찼다.
'하여간 발정난 암캐같은 년. 또 병이 도졌나 보네. 원하는 남자를 품지 못하면 뒤지는 병.'
참회는 대체로 주일에만 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미숙은 그런 규칙에 구애 받는 인물이 아니었다. 원할 땐 얼마든지 남자를 불러서 집에서 주지육림 파티를 벌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게 바로 그녀가 자신의 권력을 부리는 방법이었다.
"제 얼굴봐서 힘 좀 써주세요, 양 권사님."
양 권사가 속으로 생각했다.
'하긴. 저년이 남자에 미쳐 날뛸수록 평판은 떨어지고 나의 주가는 반대로 올라가게 되겠지. 원래 사내들 아랫도리 밑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르는 척 하는 게 상도라지만, 권 미숙 저년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었어. 남자도 아닌 계집애 주제에 어리서 함부로 아랫도리를 돌리고 다니는 거야?'
사실 양 권사가 미숙에게 끊임없이 성기단을 공급해주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일종의 정적 제거랄까?
권미숙의 올바르지 못한 품행이 알려질수록 다른 장로들이 그녀를 꺼릴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는 속마음과 상관없이 미숙이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들어줄 생각이었다.
"알겠습니다. 당장 비서한테 연락해 기별을 넣어 보겠습니다.
다만 현재 대학생이라고 해서 바쁘지 않을까 걱정이군요."
"대학생이 바쁘긴 뭐가 바빠요? 맨날 놀기만 하는 먹고대학생이겠죠. 암튼 저 기대해도 되는 거죠?"
미숙이 찡긋 웃으며 윙크를 날렸다.
그녀는 경멸하는 사이임에도 스스럼없이 친한 연기를 할 수 있는 무서운 여자였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을 양 권사는 가장 경계했다.
'도무지 속마음을 알 수 없는 독사같은 년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