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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28화 (1,808/2,000)

1828. 구원회-33-

평소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저녁을 먹는 나래로서는, 도훈의 말을 부인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갑자기 약속이 잡혔다고 하면 더 나이 먹기 전 얼른 남자 만나 시집가라는 부모님의 집요한 추궁이 이어질 게 뻔했다.

"저 때문에 그러시는 거면 괜찮으니까 먼저 들어가 보셔도 돼요. 어차피 전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여기 있어야 하잖아요."

"정말 혼자 있어도 괜찮아?"

"제가 애도 아니고···. 그냥 폰 게임이나하고 TV보면 되죠."

"미안. 같이 있고 싶은데 나도 계속 있을 순 없어서. 저녁은 그 럼···."

"누나가 준 용돈으로 나중에 야식시켜 먹을게요. 좀 자고 나서요."

"으, 응. 빼먹지 말고 꼭 식사 챙겨 먹어야 해?"

"네."

나래가 나갈 채비를 갖추더니 도훈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럼 또 연락할게."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누나도."

나래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도훈은 곧바로 문자를 남긴 빛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가 갑자기 왜 연락을 남겼는지 궁금해 참을 수 없었다.

"여보세요?"

-도훈아? 도훈이 맞지? 너 몸은 괜찮아? 혹시 누구한테 붙잡혀 있는 거 아니지?

"예?"

-혹시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중이라면 보험에는 관심없습니다 하고 대답해.

"뜬금없이 감시라뇨? 간만에 연락해서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니야? 휴, 다행이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도훈은 빛나와의 통화 내용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너무 맥락이 없어 대관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잠시만요. 누나, 제가 지금 너무 혼란스러운데 차분하게 설명해 보세요. 제가 붙잡혀 있다고요? 감시를 왜 받아요?"

도훈의 질문에 빛나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조태오랑 같이 일했니?

[아니, 왕빛나 순경이 저걸 어떻게 알았죠?]

'쓰읍, 뭔데 이건 또?' 도훈은 속으로 몹시 당황했지만, 겉으론 티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어차피 빛나의 태도로 보아, 그녀가 자신의 편이라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맞구나! 아···. 어쩌다 그런···. 너 그럼 이제 껏 호빠일 한 거야?

"아니 저, 그게···."

-너무 걱정하지마 도훈아. 아직은 아무도 몰라. 내가 가장 먼저 증거를 확보했거든.

"아니 누나, 혼자서 말 하지 말고 제가 좀 알아듣게 설명을 ···."

-일단 도훈아. 침착해야 해.

'누가 더 침착해야 할지 모르겠군.'

[왕빛나 순경이 몹시 흥분한 듯 보입니다. 긴장으로 횡설수설하고 있군요.]

-혹시 죄를 졌더라도 자수를 하면 정상참작이 되거든? 넌 그냥 마담인 조태오가 시키는 대로 했다고만 하면···.

"누나, 아니 왕빛나 순경님. 지금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는데 알아듣게 좀 설명해 보세요."

-도훈아. 괜찮아. 난 믿어도 돼. 누난 무조건 네 편이야.

"아니, 믿고 말고를 떠나서···. 누나 지금 어디예요?"

-나? 왜?

"아니다. 누나가 제쪽으로 올래요? 제가 지금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라."

-그래. 혹시 모르니까 안전한 곳에 있으면 어디 가지 말고 꼼짝말고 있어. 내가 지금 바로 출발할게. 너 어디야?

도훈이 위치를 설명하자 빛나가 전화를 끊더니 도착 예정시간을 문자로 남겨왔다.

'15분 안에 이쪽으로 온다는데?'

[아니 근데 빛나양을 왜 부르신 겁니까?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게 아닐까요? 빛나양은 경찰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죠?]

'괜찮을 거야. 설사 경찰이라도 빛나는 내 편이니까.'

[주인님 편이라고요? 조태오를 겪고도 모르시겠습니까? 놈이 주인님을 안심시키고 막상 자수하면서 부는 바람에 주인님이 이렇게 호텔에 갇히게 된 건데요.]

'그게 아니라 방금 통화하는 목소리 너도 들었잖아. 저렇게 나를 걱정해 주는데 설마 나한테 불리한 일을 꾸리며고?'

[쯧쯧. 사람을 그렇게 무턱대고 믿으시면 곤란한 일을 당할 겁니다.]

'아니 태오 그 새낀 사내 새끼잖아. 난 적어도 여자한테는 뒤통수 안 맞거든?'

[네? 그건 좀···. 전생이···.]

'물론. 죽기 전에 세게 맞았지만, 그 뒤론 한 번도 안 맞았다고.'

[주인님이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일단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왕빛나가 어떻게 조태오의 존재를 알았을까? 내가 모르는 접점이 있었나?'

[혹시 그거 아닐까요?]

'뭐? 짚이는 게 있어?'

[조태오가 스스로 경찰서에 자수를 했잖습니까.]

'그랬지. 자수하러 가기 전 나랑 술도 마셨잖아. 하, 그 생각하니까 또 열받네. 분명 나에 대해선 불지 않을테니 걱정 말라고 해놓고선.'

[혹시 빛나양이 근무하는 관할 경찰서에 자수를 한 게 아닐까요? 그래서 빛나양이 조태오의 일을 알고 있는 거고요.]

'아니지. 설사 그렇다고 해도 조태오는 내 실명을 모르잖아. 주민등록 등본도 전혀 다른 이름으로 제시했으니까. 조태오의 진술을 들었다고 해도, 빛나가 나를 바로 떠올리는 건 불가능 해.'

[그렇군요. 그 생각까진 못 했습니다.]

'암튼 만나보면 알겠지. 곧 온다고 했으니.'

정말 15분이 되기도 전에, 빛나가 도훈이 묵고 있는 호텔을 찾아왔다. 욕실 가운만 걸친 도훈이 그녀를 입구에서 맞았다.

"왔어요?"

도훈과 마주하는 순간 빛나가 와락 달려들어 그를 껴안았다.

도훈은 피할 수도 없이 엉겹결에 포옹을 받아주었다.

"도훈아!"

"윽!"

"내가 얼마나 걱정했다고!"

빛나의 커다란 가슴은 여전했기 때문에 포옹을 하자 그녀의 큰 가슴이 도훈을 압박했다. 특히 으스러지도록 세게 안았기 때문에 도훈은 에어백에 부딪힌 것 같은 충격을 견뎌야 했다.

'어우, 이게 뭐야. 가슴 폭탄인가?'

[주인님. 농담할 때가 아닙니다.]

"걱정이요?"

"진짜로 걱정했다고, 이 바보야!"

"저 아무 일도 없었어요. 일단 진정 좀 하시고."

겨우 빛나를 진정시킨 도훈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빛나는 자신이 조사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을 도훈에게 모두 말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던 도훈은 빛나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고 나서 모든 영상 증거를 인멸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칫 예상치 못하게 얼굴이 까발려져 질 뻔 했는데, 빛나가 막아준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 누나가 순경이 아니라 형사가 되셨다고요?"

"어."

"와, 그것도 마약반이요? 진짜 출세했구나, 누나!"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건데? 왜 그 영상에 살해당한 휘겸이라는 사람이랑 네가 같이 찍힌 거야?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봐."

도훈이 호들갑을 떠는 빛나를 진정시키고 차분하게 자조치종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도훈은 자신이 방송국에 영상을 제보한 당사자임을 밝히고, 나 래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이 해당 사건과 자신은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누나가 걱정할 만한 그런 일은 절대로 없었어요. 저도 가서 놈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을 알고 방송국에 몰래 제보한 거거든요."

"세, 세상에! 네가 제보자 였다고?"

"네. 지금 여기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방송국에서 제보자 보호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저를 숨겨준 거예요. 경찰에서 저를 주요 참고인으로 쫓는다고 해서요."

"아···. 난 전혀 몰랐어. 광수대에서 제보자로 추정되는 사람의 이름이 나오긴 했는데, 그가 알려준 신상 정보가 하나도 맞지 않고 엉터리더라고. 학교도 이름도 주소도 모두 가짜였어."

"네. 제가 호빠에 들어갈 때 서류를 위조해 제출했거든요. 나중에 괜히 덜미 잡힐까봐서요."

"네가 위조를 했다고? 어떻게?"

도훈은 경찰인 빛나가 의심하지 않도록 대충 둘러댔다.

"그냥 포토샵으로 글씨만 바꿔서 칼라 프린트 했는데, 전혀 못알아보더라고요. 어차피 형식적으로 내는 거라 대충 훑어봤나 보죠."

"그랬구나. 암튼 광수대에선 참고인 확보를 위해 나를 거기 보낸 거였어. 증거가 전혀 나오질 않으니 주변 CCTV를 모두 탐문해 보라면서."

"혹시 조태오 노트북은 확보 못 했어요?"

"노트북이라니?"

"아니 제가 방송국에 제보한 영상에도 있었거든요. 조태오의 노트북에 지금까지의 범죄 정보가 모두 담겨있거든요."

"아···. 그건 조태오가 자수할 때 진술하기론 망치로 때려서 부셔버렸다고 하더라고. 살인죄만 해도 중형이 불가피한테 다른 범죄까지 모두 털렸다간 무기징역을 피할 수 없을테니까."

"그거 그럼 증거 인멸 아니에요?"

"아니야. 범죄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범죄 증거를 은닉하거나 파기하는건 법적으로도 면책되는 사안이야. 증거 인멸이란 타인의 범죄 증거를 훼손하는 것을 뜻하거든."

"아···."

[그래서 주인님이 찍힌 영상도 발견이 안되었군요.]

'그러게. 그게 같이 제출되었다면 조태오가 나를 지목하는 것은 훨씬 수월했을텐데. 암튼 이제 그럼 나에 대한 영상 증거는 모두 제거된 셈이군.'

[주인님이 운이 좋으셨습니다. 하필 이 사건을 왕빛나 순경, 아니 형사가 맡았고 그녀가 가장 먼저 주인님의 얼굴이 찍힌 영상을 발견했으니까요. 다른 건물에서 잡힌 CCTV도 모두 없앴다고 했고요.]

'그러게. 이것도 어쩌면 운빨 대폭발의 영향인가?'

[네? 그게 어째서요?]

'아니 들어보니까 빛나가 나에 대한 증거 수집을 한 것이 어제 오늘 벌어진 일이잖아.'

[그렇죠.]

'근데 내가 하필 어제랑 오늘까지 쉬지않고 섹스만 해댔잖아. 그러니 운이 최고조에 이르러 있었겠지.'

[아하! 그렇군요. 연거푸 이어진 섹스로 운빨이 최고조인 상태였기 때문에 공교롭게 경찰의 조사가 주인님께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된 것이군요. 일리가 있습니다.]

"그랬게 된 거구나. 그래도 누나가 그걸 발견해서 다행이에요."

"근데···."

도훈의 해명을 듣고 있던 빛나가 살짝 섭섭한 표정으로 말했다.

"촬영된 영상에서 보니까 거기 온 손님이랑 하긴 했던데. 맞지?"

"아···. 그야 그랬죠. 그땐 호빠 선수 일을 하느라."

"정말 그랬구나···. 난 네가 그런 일을 할 줄은 몰랐는데."

빛나가 질투하는 기색을 보이자 도훈이 딱 잘라 말했다.

"누나. 그건 정말 일이었잖아요.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나쁜 거잖아 그건."

"흐음. 저도 많이 반성하고 있어요. 쉽게 돈 버는 일이라도 그런 일을 하면 안되는 건데···."

도훈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모습으로 연기했다.

"어쨌든 그런 일 두번 다신 안 할 거예요. 하필 처음으로 일하러 간 곳이 범죄자 소굴이라 이번에 완전히 학을 뗐거든요. 오죽하면 제가 보복 당할 위험을 무릅쓰고 방송국에 제보까지 했겠어요? 제가 떳떳하지 않다면 어림없는 일이죠."

"그래. 그건 정말 잘했어. 그리고 정말로 그런 일은 다신 하지 마."

"알았어요. 정말 죄송해요."

"네가 혹시나 조태오랑 공범인 줄 알고 내가 얼마나 놀랬다고."

"아니에요. 저랑 그런 살인자 놈이랑 같은 취급을 하시면 곤란하죠."

"응, 널 만나서 얘길 들어보니까 내가 오해했던 것 같아."

"다행이네요."

"암튼 조태오가 마음이 바뀌었는지 조서를 작성할 때마다 새로운 범죄 내용이 추가되고 있어. 다른 사람의 범죄를 다 불테니, 자신의 형량을 낮춰달라고 거래를 시도하는 중이야."

"그래서요? 그럼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된 거예요?"

"어? 아니 그게 그러니까···."

빛나는 광수대 파견요원으로서 사건 중간 보고서를 읽었기 때문에 해당 사건이 어느선까지 연루되어 있는지 어렴풋이 파악하고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민간인이자 주요 참고인인 도훈에게 수사 내용을 공유하는 게 공직자로서 비밀 누설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답을 망설였다.

눈치 빠른 도훈이 빛나의 입장을 이해하고 말했다.

"굳이 말씀하시기 곤란하면 안 해도 돼요. 제가 제보한 사건이다 보니까 진행이 궁금해서 그랬어요."

"그랬구나. 미안해. 기소가 끝나면 꼭 알려줄게."

"네. 근데 누나 다시 보니 정말로 반갑네요. 전 연락 한 번 없길래 저 완전히 잊어버리신 줄 알았는데."

"아니야. 누가 할 소릴?"

"네?"

빛나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따졌다.

"난 사실 형사 진급 면접 준비하느라 너무 바빴어. 도훈이 네가 중간에 한 번이라도 연락할 줄 알았는데 너야말로 한 번도 연락안 하더라?"

"제가 먼저 하긴 좀 그렇죠."

"왜? 누가 하든 먼저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시잖아요. 저희가 만약 그 이후로 계속 만났으면···."

"응?"

"누나 중요한 시험 준비하는데 저 때문에 방해되지 않았겠어요? 전 누나 만나면 못 참을 것 같은데."

"뭐, 뭘 또 못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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