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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27화 (1,807/2,000)

1827. 구원회-32-

"어, 그래. 수고가 많네."

인사를 붙이는 어린 순경을 뒤로하고 현장으로 들어간 빛나는 곧 피칠갑이 된 카운터를 확인하고는 눈쌀을 찌푸렸다.

'하필 입구에서 칼부림이 날 건 뭐람?'

보고서에 따르면 조태오는 오픈하지 않은 시간에 휘겸을 따로 가게로 불러 살해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의 칼질로 죽이질 못하자 휘겸이 살기 위해 가게 밖으로 도망쳤고, 조태오가 입구까지 따라와 등 뒤에서 무참히 칼을 찔러 즉사했다는 내용이었다.

해서 최종적으로 카운터 부근이 유혈이 낭자한 사건 현장으로 남게 된 것이었다. 혹시나 모를 증거 확보를 위해 사방에 피가 튄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인상을 찌푸리던 것도 잠시, 빛나는 이런 정도로 비위가 상하면 형사 생활을 오래 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곧 표정을 풀었다.

'사건 현장은 현장일 뿐. 상상하지 말자.'

그녀는 현장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주변을 확인했다.

혹시 건물 내부에 CCTV가 설치된 것이 있는지 점검하려는 것이었는데, 초기 조사에서는 전혀 그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따라서 방송국에 제보를 한 익명의 호빠 선수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가게 인근에 설치된 CCTV를 샅샅이 뒤져야 했는데, 빛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원점부터 다시 점검하려는 것이었다.

때론 노련한 형사들도 눈 앞에서 증거물을 놓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0분이 넘도록 꼼꼼이 가게를 뒤졌는데도 감시카메라의 흔적은 발견할 수 없었다. 호빠 가게 안에는 사전에 고의로 인멸한 것처럼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긴 범죄가 저질러진 현장인데 굳이 기록을 남겨뒀겠어? 있어도 진작 치웠지. 어쩔 수 없이 가게 밖을 탐문해 봐야겠네.'

빛나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호빠를 나서려는데, 문득 안쪽 깊숙이 있는 VIP룸이 떠올랐다.

'가만···. 그러고 보니 거기만 다른 방하곤 뭔가 달랐던 것 같은데?'

살인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혼자서 조사하려니 겁이 나긴 했지만, 빛나가 용기를 내어 VIP룸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일반적인 룸보다 호화스럽게 차려진 이곳은, 일부러 방의 위치를 꽁꽁 숨겨 놓기라도 한 것처럼 으슥한 곳에 위치해 있었다.

빛나는 이곳이 어쩌면 몰카가 촬영되었던 범죄 현장이 아니었을까 의심했다.

'진술서에 따르면 조태오 휘하에서 일하던 모든 선수들이 범행에 가담한 것은 아니었어. 그렇다면 여자 손님들에게 몰래 마약을 먹이고, 강간한곳이 별도로 존재했다는 얘긴데 정황상 이곳이 가장 의심스러워.'

빛나는 몰카가 촬영되었다면 그곳은 분명 VIP룸일 거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CCTV가 설치된 흔적은 없단 말이지?

기본적으로 카메라가 작동하려면 전기 배선이 깔려야 하는데, 벽면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것은···. 어, 잠깐만.'

빛나는 갑자기 몰카가 자체적으로 전원이 조달가능한 형태일지도 모른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렇지. 만약 핸드폰 같은 것에 미리 녹화를 눌러 놓고 구석에 몰래 숨겨놓았다면 충분히 촬영 가능한 거잖아? 협박용 몰카를 꼭 실시간으로 녹화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빛나가 갑자기 VIP룸에 있는 집기들을 하나하나 확인하더니 갑자기 커다란 가죽 소파를 눈여겨 보았다.

'설마 저 안에 숨긴 건가?'

검은색 가죽 소파는 너무 색이 진했기 때문에 얼핏 봐선 카메라를 숨기더라도 렌즈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결심을 마친 빛나가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리더니 발목에서 군용 소형 나이프를 뽑아들었다.

이는 호신용으로 차고 다니던 나이프였다. 선배 형사가 혹시 모르니 신신당부를 하며 추천해준 그녀의 비밀 무기.

날카로운 나이프를 꺼내든 빛나가 소파 가운데 가죽을 칼로 찢기 시작했다.

북- 북-!

빛나는 소파를 갈기갈기 찢으면서도 만약 자신의 추리가 틀렸다면 손해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식은땀을 흘렸다. 박봉인 공무원 월급으로는, VIP룸에 비치된 소파값을 지불 하려면 몇 달은 쫄쫄 굶어야 할 처지였다.

'하아, 괜한 짓을 한 건가?'

소파를 갈기갈기 찢는데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있었더라도 조태오가 이미 수거를 해갔으면 의미없는 짓이었다. 그 때.

"···어? 이건."

소파 가죽 안에서 마침내 검은 색 물체가 발견되었다. 자체적인 배터리를 갖춘 소형 카메라였는데, 빛나의 예상대로 소파 쿠션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놓고 몰래 숨겨둔 것이었다.

"찾았다!"

빛나는 귀중한 증거품을 발견하자 무척 기뻐했다. 분명 살인 사건이 벌어지면서 정신없는 와중에 조태오가 미처 수거하지 못한 중요한 증거품으로 보였다.

카메라의 바닥에는 마이크로sd 카드가 삽입되어 있었는데, 블랙박스처럼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 파일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카메라는 이미 배터리가 방전 상태였기 때문에 나래는 sd 카드만 뽑아 챙겨 현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곤 자기 차로 돌아가 메모리 카드 어뎁터를 찾은 뒤 핸드폰에 연결해 영상파일을 재생했다.

이는 교통과에서 잠시 순환근무할 때 배운 기술로서, 요즘 차에는 대부분 블랙박스가 달려있기 때문에 현장에서 바로 녹화된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어디 보자. 과연 뭐가 기록되어 있을까?'

파일명은 날짜순으로 정렬되어 있었기 때문에 빛나는 가장 최근 영상부터 재생시켰다.

영상 소에는 호빠 선수로 보이는 사내 둘과 한 명의 여자가 등장했다.

'호오, 2:1 플레이인가? 이것들 봐라?'

빛나는 경찰이긴 하지만 성적으로 어느 정도 개방적인 편이었기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영상을 감상했다. 그런데 영상을 보던 중 선수 한 명의 얼굴이 너무나 낯이 익은 것이었다.

'···어? 쟤는 되게 도훈이랑 닮았네.'

뚱뚱하고 못생긴 애들이 대체로 비슷하듯, 잘생긴 남자들도 어느정도 유사성을 띈다고 생각한 빛나는 대수롭지 않게 영상을 스킵했다.

그런데 화면에 잡힌 사내의 모습이 아무리 봐도 그녀가 아는 도훈이었다.

"진짜로 도훈이라고?"

놀란 빛나가 영상을 멈추더니 화면을 캡쳐했다.

그리곤 다시 사진첩으로 들어가 캡쳐한 사진을 확대해 얼굴을 확인하는데 아무리 봐도 영락없는 도훈이었다.

"···도훈이 네가 여기서 왜 나와?"

빛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 뻔했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 같았다.

'잠깐. 진정하자. 도훈이랑 닮은 사람일수도 있잖아. 남자들도 성형을 하면 대체로 비슷한 분위기가 나니까.'

빛나가 현실을 부정하며 계속 영상을 재생했다.

2:1 플레이 인줄 알았던 영상은, 이후 한 남자가 기절한 듯 쓰러지면서 1:1 플레이로 전개되었다.

섹스 장면이 적나라하게 녹화된 영상을 보면서 빛나는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다. 사내의 몸을 보고나니 그제서야 확신이 든 것이었다.

근육질의 몸, 유난히 커다란 양물.

영상 속에서 손님과 섹스를 나누는 사람은 틀림없는 도훈이었다.

"마, 말도 안 돼. 도훈이가 어째서 이런 범죄 조직에···."

빛나가 떨리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켰다.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았다.

그가 아는 도훈은 훌륭한 사람은 아닐지언정, 범죄를 저지를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변태 변호사를 잡는데 도움을 줄 만큼 의협심이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VIP룸에서 촬영된 영상 속 등장인물은 몇번을 돌려봐도 도훈이 확실했다. 지나가다 만난 사이도 아니고, 뜨겁게 몸을 섞었던 사이였기에 기억이 잘못 될 리가 없었다.

'세상에! 도훈이가 그럼 여자 손님들에게 마약을 먹이고, 사창가에 팔아넘긴 파렴치한 호빠 선수 중 하나였다는 다는 거야?'

심지어 도훈과 함께 찍힌 또 다른 선수가 얼마전 조태오에게 피살당했던 휘겸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빛나는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어, 어서 상부에 보고를···.'

빛나는 반사적으로 광수대 반장에게 연락을 하려다 동작을 멈추었다.

'잠깐. 아직 정확한 사정도 모르는데 무작정 도훈이 범인이라고 단정할 순 없는 거 아닌가? 무슨 오해가 있으면 어쩌려고?'

빛나는 도훈을 믿고 싶었다.

그와 함께했던 지난 기억을 떠올렸을 때, 도훈이 결코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지를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빛나는 도훈을 좋아하는 입장이었다. 최근 몇 달간 형사가 되기 위해 동분서주하느라, 그에게 연락도 못 하고 지내긴 했지만, 마음속 한 구석에선 늘 자리 잡고 나면 나중에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었다.

'내가 먼저 영상을 발견해서 다행이야. 일단 정확한 내막을 알기 전까진 도훈이 찍혔을지도 모르는 CCTV를 모두 회수해야겠어. 자칫 다른 사람이 발견했다간 도훈이가 누명을 쓸지도 몰라.'

그 순간 빛나가 빠르게 움직였다. 영상에 적힌 날짜를 중심으로 가게 밖에서 도훈이 찍혀있을 만한 외부 카메라를 모두 확인한 뒤 그의 영상을 확보했다.

영상에 찍힌 게 많진 않았지만, 빛나는 사소한 흔적이라도 발견되면 모두 회수했다.

이틀에 걸쳐 모든 증거 영상을 확보한 빛나는, 고민 끝에 도훈에게 직접 연락해 보기로 했다.

만에 하나라도 그가 이번 사건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든 자수를 권유할 생각이었다.

옥바라지라면 얼마든지 해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 다만 도훈이 무사하기만 바랄 뿐이었다. 어쩌면 그도 휘겸처럼 조태오에게 당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 일단 부딪혀 보자.'

광수대에 일찍 퇴근한다고 통보한 빛나가 일전부터 알고 있던 도훈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계속 울렸지만 도훈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빛나는 혹시 도훈이 자신의 번호를 지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자를 남겼다.

-이도훈씨 핸드폰 맞나요? 문자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 저 왕빛나예요.

빛나가 차 안에서 초조한 표정으로 답장을 기다렸다.

* * *

나래와 세 번째 섹스를 끝낸 도훈은 창가에서 혼자 담배를 태우고 있다가 핸드폰에 뜬 번호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온 것이었다.

'···왕빛나? 그 왕가슴 순경? 무슨 일이지?'

다행히 무음모드였기 때문에 침대 위에서 반쯤 기절한 나래는 눈치를 못 챈 것 같았다. 도훈이 전화를 받지 않고 넘기자, 곧바로 문자가 날아왔다.

-이도훈씨 핸드폰 맞나요? 문자 보시면 연락 좀 주세요. 저 왕빛나예요.

문자를 확인한 도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무슨 일일까? 뜬금없이 연락이 오다니.'

[왕빛나면 지난번 김 변호사 사건 때 도움을 줬던 그 여경이 죠?]

'어. 최근엔 거의 연락 한 적 없는데 갑자기 전화를 거네?'

[혹시 갑자기 외로워져서 주인님이 보고 싶어 진 게 아닐까요?]

'뭔 소리야?'

[왜 그럴 때 있잖습니까? 헤어진 전 남친이 그리워서 새벽에 문자를 남긴다거나.]

'지금이 새벽이냐? 이제 겨우 해 떨어지는 시간이구먼.'

[말이 그렇다는 거죠. 너무 늦게 연락하면 자느라 못 받을 수도 있으니 퇴근하자마자 연락을 한 걸 수도 있잖습니까.]

대낮에 들어와서 나래와 3연전을 치르는 동안 어느새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나래의 강한 성욕은 3번을 내리눌러줘야 겨우 진정이 될 정도로 강했다.

한 번에 거의 1시간씩 꼬박 눌러준 것을 생각하면, 보통 사람은 이미 두손 두발 들고 뻗었을 정도였다.

'흐음, 아무래도 기분이 찝찝해. 일단 나래 보내고 직접 연락해 봐야겠다.'

[나래양이 호텔을 떠나려고 하겠습니까?]

'그렇다고 여기서 직장으로 바로 출근할 것도 아니잖아. 이만큼 눌러줬으면 나도 할만큼 했다고.'

"저, 누나."

"으, 응?"

"괜찮아요?"

"어휴, 다리에 힘 다 풀렸지 뭐야. 마지막엔 진짜 몇 번을 정신을 잃었는지···. 넌 어쩜 그렇게 잘하니?"

"뭘요. 누나도 금방 느시던데요. 근데 벌써 시간이···."

"시간이? 지금 몇 신데? 어머, 벌써 저녁 시간이네? 같이 저녁먹을래?"

"아뇨. 저는 피곤해서 한숨 자고 싶어요. 자고 일어나서 야식시켜 먹을게요."

"그럴래? 나도 그럼···."

"근데 누난 오늘 계속 여기 계실 거예요?"

"으, 응?"

나래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도훈에게 되물었다.

"왜? 내가 옆에 있으면 불편할 것 같아?"

"아니 그건 아닌데, 누나도 집에 들어가 보셔야 하지 않아요?

가족이랑 같이 사시지 않아요?"

도훈이 슬쩍 찔러보았다. 여자들의 경우 시집가기 전까지는 집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고려한 질문.

"그, 그렇긴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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