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 구원회-31-
[만날 때가 되셨다뇨? 무슨 마일리지라도 쌓으신 겁니까?]
'아니 내가 따먹은 여자가 이제 세자리수를 넘어가는 마당에, 저런 여자 한 번 못 만나면 너무 억울하단 소리였어.'
[나래양의 경우는 엄밀히 말하면 주인님이 직접 발견하고 지도 하신 거라 좀 다르긴 하겠네요.]
'암튼 이래서 나래가 섹스하고 싶어서 안달났구나 싶어.'
[명기가 대물을 만났으니 어지간히 그리웠겠습니까?]
'그 기다림이 아쉽지 않도록 꾹꾹 눌러주려고.'
* * *
대물과 명기의 만남은 마치 장인이 수십 년을 공들여 벼른 보검이 자신에게 꼭 맞는 검집을 만난 것과 같았다.
물론 이 경우는 좆이 꼭 맞는 좆집에 들어갔다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지만.
도훈은 나래를 가르치며, 그녀의 뛰어난 재능에 세삼 감탄했다.
알고보니 나래는 누군가에겐 불수의근이라고도 인식되는 질 근육을 자유자재로 컨트롤 할 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다.
가끔 5살 먹은 어린 아이가 그림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는데 화가 뺨치는 그림을 그린 다거나, 혹은 초등학생이 원곡 가수조차 눈물을 흘릴만큼 노래를 기가막히게 부르는 것과 유사한 천재성이었다.
나래는 이제껏 백여명이 넘는 여자와 자 본 도훈조차도 인정할만큼 타고난 명기라고 할 수 있었다. 여자 구멍이 다 거기서 거기라는 사람이 있다면, 나래를 한 번 만나보면 생각이 바뀔 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미쳤군, 진짜 최고야.'
[주인님이 이렇게 흡족해하시는 모습은 간만에 봅니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나래야 말로 3박자를 다 갖췄으니까.'
[3박자요?]
'명기는 단순히 신체조건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야.'
[그럼요?]
'천성적으로 조임이 좋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성욕이 이를 뒷받침 해줘야지.'
[그건 그렇겠네요. 성욕이 약한 여자라면, 전가의 보도를 가지고 있어도 휘두르질 않는 것과 같으니까요.]
'보도라니? 봊이도매?'
[아니 주인님, 어디서 그런 저질스러운 어휘를.]
'암튼 조임도 좋고, 성욕도 강한 나래가 마지막으로 가지고 있는 자질은 거의 처녀라는 점이야.'
[처녀면 처녀지 거의 처녀는 또 뭡니까?]
'완전히 처녀는 아니니까, 대충 90% 쯤?'
[말장난도 아니고···. 암튼 그게 왜 중요하죠?]
'생각해봐. 타고난 명기에 성욕까지 강한 여자가 서른이 될 때까지 섹스도 거의 안하고 참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
[으음···. 거의 없겠죠? 특히 요즘처럼 성에 개방적인 시대라면 더더욱.]
'그렇지. 근데 나래는 서른이 되었는데, 어쩌다보니 섹스를 거의 안 하고 지내 온 거잖아.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연속해서 겹친 결과로.'
[근데 앞선 2가지 조건은 이해가 가는데, 마지막은 어째서 중요 합니까?]
'그야 물론 모든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처녀를 좋아하기 때문이지.'
[네?]
'만약 업소에서 만난 여자가 오랄도 잘하고, 서비스도 좋고, 심지어 섹스킬도 빼어나다고 쳐. 남자들이 좋아할까?'
[당연히 좋아하겠죠. 여자친구에게선 받아본 적 없는 서비스를 제공해 주니까요.]
'그치. 좋아는 하겠지? 하지만 그걸로 끝이야.'
[네? 끝이라뇨?]
'그래봐야 결국 창녀라는 거지. 지금은 내 밑에 깔려서 교성을 질러대고 있지만, 몇 시간 뒤에는 다른 놈 좆을 맛깔나게 빨아대고 있을 테니까. 그 생각을 떠올리면 좋았던 기분도 다시 더러워질 수 밖에.'
[아, 그 소리였습니까? 하지만 나래양이 몸 파는 여자도 아닌데 그게 무슨 상관이죠?]
'내 말은 나래가 일반적인 여자들처럼 연애를 했다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섹스를 해봤겠냐는 거야. 스무살부터 서른까지.'
[명기의 소유자가 성욕이 강하니 셀 수도 없이 많겠죠.]
'그러니까. 그럼 그게 창녀랑 다를 게 뭐야? 돈만 안 받았다 뿐이지, 이놈한테 뚫리고, 저놈한테 다 대준 거 아니야? 오늘은 저기가서 박히고, 내일은 다른 놈 밑에 깔리는 건 결국 똑같잖아. 그렇게 과거가 많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겠어?'
[무슨 말씀을 하는 줄 알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혼전순결주의자나 다를 바 없지 않습니까? 성적 자기 결정권이 중요해진 시대에, 케케묵은 처녀, 비처녀 논쟁이라뇨? 그건 전혀 주인님 답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처녀, 비처녀를 따지겠다는 소리가 아니잖아. 나래가 명기의 조건 중 가장 중요한 걸 지켜왔기 때문에 3박자가 딱 맞는다는 소리지.'
[그러니까 타고난 명기, 강한 성욕, 그리고 처녀요? 그거 완전 환상종 아닙니까? 마치 처녀빗치와 같은 형용 모순인데요.]
'그래서 나래가 더 특별하다는 거야. 다른 남자와의 과거 따위는 거의 없으니 온전히 내 사랑을 줄 수 있잖아.'
[하아-. 다른 분도 아니고 주인님이 처녀비처녀를 따지실 줄은 몰랐네요. 사실상 주인님이야 말로 매일 여자를 바꾸며 잠자리를 갖는 난봉꾼이시면서.]
'그러니 더 따지지.'
[네?]
'아무리 매력적인 여자라도, 다른 놈하고 섹스를 했다는 걸 떠올리면 겉으론 티를 안내도 속으론 나도 모르게 거부감이 든단 말이지. 어제 만났던 이서나, 승아를 보라고. 걔들하고 섹스가 아무리 좋은들 진심으로 품을 수 있겠어? 그런 걸레들하고?'
[구원회의 여신도 이서랑 승아양 말입니까?]
'그래. 주말마다 수십 명의 남신도에게 돌아가며 따먹힌 걸레들. 물론 장목사의 세뇌에 당한 것이니 다소 억울할 순 있지만, 그래도 있던 일을 부정할 순 없다는 거야.'
[흐음.]
'할 때야 좋지만, 두 번은 하고 싶지 않는다는 말이 딱 맞지. 아무한테나 대주고 다니는 여자는, 수십번 따먹어 봐야 성취감도 없고 정도 안 붙거든.'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나래양이 3박자를 갖췄다는 말씀이셨군요.]
로시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샤워를 하러 들어갔던 나래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커다란 타월을 몸에 두르고 배시시 웃고 있는 나 래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대학생처럼 보였다.
"다 씻었어. 서준이 얼른 너도 씻어."
"네. 근데 누나 화장 지워지니까 되게 어려보이네요?"
"내가?"
커리어 우먼 복장을 하고 있을 땐 진한 색조화장을 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샤워로 인해 화장이 지워진 나래는 생각 이상으로 순하게 생긴 인상이었다. 오히려 도훈의 취향같아선 화장을 안한 지금의 모습이 훨씬 사랑스러워 보였다.
"네."
"그, 그런가?"
"그런 말 한 번도 안 들어봤어요?"
"직장 다니면서부터는 누굴 만날 때 당연히 화장하는 버릇이 있어서···. 그리고 PD쪽은 나이가 너무 어리면 무시 당하는 일이 많아서 일부러 나이들어 보이게 옷을 입거든."
"왜요?"
"아무래도 시사 프로그램 쪽은 대부분 남초잖아. 약해 보이면 남자 선배들도 대놓고 무시해. 취재할 땐 말할 것도 없고."
"힘들겠구나, 누나도."
"으응, 근데 일 얘기를 굳이 지금 할 필요는···. 암튼 난 머리 말리고 있을 게 씻고 와."
"네."
두 사람은 선 섹스 후 샤워를 했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씻는 중이었다.
도훈이 바통터치를 하듯 나래가 방금 나온 욕실에 들어가 몸을 씻었다.
그래도 모텔이 아니라 나름 호텔이라고 시설은 굉장히 고급스럽고 좋았다.
[시설이 제법 비싸보이는군요.]
'호텔?'
[네. 아무리 증인 보호 프래그램 차원이라지만, 너무 호사스러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보호해 준다면서 싸구려 모텔에 처박아 놓을 순 없었나 보지.'
[그나저나 시험 기간 중 호텔로 거처를 옮기셨으니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내일하고 모래까진 계속 학교에 출석을 하셔야 할 텐데요.]
'해야지. 경찰이 날 지명 수배 때린 것도 아니고, 내가 어디 사는 누군지도 모르는데 딸랑 흐릿한 CCTV 영상 하나 가지고 나를 찾을 수 있겠어? 무슨 서울에서 김서방 찾기도 아니고 말이야.'
[하지만 나래양이 외출을 반대하지 않겠습니까? 기껏 비싼 호텔까지 잡아줬는데요.]
'직장에 출근하는 나래로선 내가 외출하는 지 여부를 알 수 없을 거야. 나랑 24시간 붙어 있는 건 아니니까. 나래가 오는 날에만 호텔에 꼼짝없이 있는 척 하면 돼.'
[주인님도 정말 피곤하시겠군요.]
'어쩔 수 없잖아.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매듭을 짓는 수밖에.'
* * *
"안녕하십니까, 금일 광수대로 파견 배치되었습니다!"
가죽 재킷을 걸친 왕빛나가 광역수사대 총괄 반장에게 꾸벅 인사했다.
그녀는 커다란 가슴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자켓을 껴입고 어깨를 움츠린 자세였다.
"마약반에서 신참 하나 보냈다더니, 그게 너야?"
"넵. 왕빛나 입니다."
"그래, 이름은 지금 말해봐야 까먹을 거고. 다들 정신없는 거 보이지? 왕형사는 지금 바로 CCTV 자료 찾아가지고 주요 참고인 몽타주부터 확보해."
"···CCTV요?"
빛나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지만, 반장은 관심없다는 듯 손을 저으며 물리쳤다.
"야, 눈치껏 알아서 좀 움직여. 사람 부족해서 지원 요청했더니 너같은 초짜를 보내면 어쩌겠다는 건데? 아무리 거기도 사건 터져서 바쁘다고 해도···. 참나."
"죄송합니다."
"아냐, 신참 니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혹시 모르는 거 있으면 저기 오 형사에게 물어보고."
"아니, 반장님. 저도 바쁜데 왜 던지기 하십니까?"
"뭐래냐? 그건 자다가 맹장 터져 입원한 네 파트너한테 얘기하시고요. 안 그래도 인력도 딸리는데, 형사라는 자식들이 빠져가지고."
"맹장이 터질 줄 알았겠냐고요."
광역수사대 사무실은 한마디로 돛대기시장 같았다. 본래 마약반에 배속해 있던 빛나는 처음 파견 온 광수대의 분위기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네.'
하지만 빛나는 곧바로 의지를 다졌다. 어떻게 올라온 형사인데,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마음이었다.
빛나는 사실 과거 도훈과 얽혔던 가슴 큰 여자 순경이었다.
경찰 공채로 들어온 빛나는 예전부터 형사가 되고 싶었는데, 지구대 근무 이력을 채우자마자 수사국 형사과에 지원했다. 그리고 석 달 전 마침내 마약반으로 발령나게 되었다.
본래는 강력반을 지원했으나, 아무래도 강력반은 여형사 TO가 없는 편이라 그나마 현장 근무가 잦은 마약반으로 우회 지원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순경에서 형사가 된 빛나는 난데없는 광수대 파견을 오게 되었다. 최근 광수대로 넘어간 사건이 점점 덩어리가 커지면서 부서별로 인력 충원을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어이 신참. 지금 수사 인력 많이 모자라니까 일단 오늘은 너 혼자가서 CCTV 영상 확보해봐."
"저, 저 혼자사요? 본래 2인 1조로 움직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뭐래냐? 바쁘다는 말 못 방금 들었어? 그리고 쫄지마, 이 친구야. 현장이라고 해봐야 이미 폐업된 호스트 바니까. 바로 위치 알려줄게."
그렇게 혼자서 현장으로 CCTV 영상을 확보하러 나온 왕 형사는 긴장된 표정으로 폐업한 가게로 들어섰다. 사실 확보하라고 했던 CCTV는 가게 내부가 아니라 바깥의 도로변이나 인근 건물이었지만, 빛나는 처음부터 꼼꼼하게 다시 찾아볼 생각이었다.
곳곳에 출입 통제선이 쳐진 현장엔 후배 순경들이 입구를 지키고 서 있었다.
'···여기가 살인 사건이 났던 곳이구나.'
광수대 파견 전 미리 파악한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폐업된 가게에서 칼부림이 있었다고 했다.
호빠 마담 조태오가, 휘겸이라는 청년을 칼로 찔러 살해한 사건이었다.
범인이 직접 자수를 하면서 사건이 단순하게 마무리되나 싶었으나, 곧 방송국 측 제보로 해당 건물에서 마약 투약 및 인신매매의 증거가 발견되면서부터 사건이 커지기 시작했다.
일개 경찰서 규모의 수사 역량을 벗어나게 되면서 사건은 광역수사대로 이관되었고, 빛나는 바로 그곳에 보충인력으로 파견된 것이었다.
'나참. 마약이랑 엮힌 관련 수사를 하나보다 했더니 난데없이 제보자 CCTV 영상 확보라니···. 이럴거면 굳이 마약반에 왜 지원충원을 요청한 거람? 아무나 해도 될 일을.'
패용증을 내보이며 통제선을 위로 젖히고 들어간 빛나는, 순경들이 자신을 쳐다보며 꿀꺽 침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피식 웃었다.
'하여간 사내들이란···.'
빛나는 순경으로 재직하던 당시에도 커다란 가슴 때문에 이목을 끄는 타입이었다. 특히 순경복 상의 단추가 제대로 잠기지 않아. 늘 앞이 벌어지는 편이었는데, 그럴때마다 남자들이 보내는 노골적인 시선을 느끼곤 했다.
이후 형사가 되면서는 사복이 허용되었기 때문에 일부러 가죽잠바로 가리고 꽁꽁 숨기고 다녔음에도, 방금처럼 목에 걸린 패용 증을 내보이기 위해 재킷을 살짝 벌린 것만으로 순경들의 눈길을 끌고 만 것이었다.
꾸, 꿀꺽.
"추,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