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3. 구원회-28-
* * *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제가 몸까지 팔려고 했는데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그럴 마음은 먹었지만, 실제로 판 건 아니잖아. 네 말마따나 돈 받고 여자랑 잔 적은 없다면서?"
"그치만 생각은 있었죠. 호빠 선수를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그만 둬서 기회가 없었던거죠."
"어쨌든 안했잖아."
"미수에 그쳐도 범죄는 범죄예요."
계속된 나의 거부에 나래가 세게 나왔다.
"서준아. 난 네가 실제 몸 팔던 애라도 상관없어."
"뭐라고요?"
"네가 진짜 호빠 선수였어도 아무 상관없다고. 사정이 급해서 그런거라며?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실수 할 수 있어. 실수를 한 것 보단, 두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게 더 중요한 거야."
"아니···."
"내가 널 고쳐줄게. 그렇게 해주고 싶어."
나래가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었다.
간절히 키스를 원하는 눈빛이었다.
[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아무리 주인님이랑 한 번 잤다고 , 저렇게까지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요? 강나래양은 나름 훌륭한 학벌에 배울만큼 배운 여자가 아니었습니까?]
'머리가 좋다는 것과,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 사이에 별 관련성이 없다는 거지.'
[네?]
'누구보다 똑똑해 보이는 사람도, 순간적인 감정을 못 이기고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는 게 인간이라는 존재거든. 뻔히 좆될 줄 알면서도 도저히 자제가 안되는 거랄까? 지금 나래는 이성적인 판단이 완전히 마비되어 있어. 그 똑똑한 머리를 본능의 요구에 맞춰 스스로 논리를 합리화하는 데만 쓰고 있지.'
[주인님에게 너무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린다는 뜻인가요?]
'그렇다고 봐야지. 지금도 봐. 내가 정말 창남이었더래도 상관없다잖아. 자기가 나를 고쳐 줄 수 있다면서. 그게 말이야 방구야? 사람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는데.'
[한마디로 사랑에 눈이 멀었군요.]
'사랑이 아니라 욕망이라고 봐야겠지. 마약같은 중독성이랄까?'
[마약요?]
'그래. 마약이라는 비유가 가장 적절하겠군.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정의감 넘치던 열혈PD 강나래가, 단 한번의 섹스로 완전히 뽕 맛에 빠져버린 거야. 자다가도 벌떡 생각날 만큼 너무 좋았으니까.'
[역시, 늦바람이 더 무섭다더니···.]
'이쯤 튕겼으니 마지 못해 한 번 받아줘 볼까?'
나래의 기습 키스를 도훈이 피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담배가 필터까지 타들어 가고 있었으나, 나래는 오랫동안 멈추지 않고 키스를 퍼부었다. 겨우 입술을 뗀 나래가 격정적인 눈빛으로 속삭였다.
"하아···. 너무 보고 싶었어, 서준아."
"누나."
"일주일 동안 참느라 죽는 줄 알았잖아."
"일주일이라뇨?"
"나랑 스폰 하기로 한거 기억 안나? 한 달에 4번씩 데이트 하는 조건으로. 그럼 일주일에 최소 한 번씩은 봐야지."
"그땐 스폰 안한다면서요?"
"어쨌든. 용돈은 준다고 했잖아. 안 그래도 너 오늘 만나면 주려고 현금도 뽑아 왔어. 가방에 있는데 지금 줄까?"
나는 당시 나래를 공략하기 위해 그녀에게 스폰을 제안했다.
한 달에 4번의 데이트를 해주고 100만원씩 용돈을 받는 조건이었는데, 당시 나래는 한사코 스폰이란 표현을 쓰지 말라며 호의로 용돈은 줄 수 있다고 했다. 그걸 기억하고 굳이 현금을 찾아온 것이었다.
"아니에요. 그 돈 안 받을래요 그냥."
"왜? 돈 필요 한 거 아니었어?"
"누나한테 돈 받으면 제가 더 비참해 질 것 같아요. 그땐 제가 말이 헛나온 것 같아요. 용돈은 괜찮아요."
"아니야, 서준아. 그렇게 생각 안해도 돼. 너 돈 필요하잖아. 이건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야. 스폰 그런거랑 상관없어."
나래가 급하게 핸드백에서 현금 뭉치를 꺼내더니 5만원권 묶음을 내 손에 건넸다. 두께만 봐도 약속한 100만원보다 많아 보이는 금액이었다.
"받아. 부담 가질 필요 전혀 없어."
"어떻게 누나한테 돈을 받아요? 그리고 이건 너무 많아요."
"괜찮아. 제보자 보호 프로그램 예산에서 현금으로 쓸 수 있는 활동비가 있어서 좀 보탰어. 지난번 인터뷰 해준 비용이라고 생각해."
"아니, 누나···."
"그럼, 이제···. 씻을래?"
화대까지 선불로 지불했으니 당장 섹스 하자는 소리처럼 들렸다.
정말이지 머릿속에 나와의 섹스로 가득찬 사람 같았다.
[그 똑똑했던 강PD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군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과정이라고 봐야지.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나래는 지금 마약중독자의 뇌상태랑 비슷하다고 보면 돼.'
[마약중독자의 뇌상태요?]
'마약에 중독된 사람에겐 다른 건 아무것도 눈에 안 들어오는 법이거든. 살면서 가장 짜릿한 쾌락을 맛보고 나니까 다른 모든게 의미없어 지는 거야. 그게 사랑하는 가족이건, 소중한 직장이건, 혹은 돈이건.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야. 마약 한 봉지만 구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내다 버릴 수 있지.'
[스스로를 너무 고평가 하시는 거 아닙니까? 주인님과의 섹스가 마약중독에 비견될 정도라고요?]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게 아니고, 적어도 지금의 나래에게는 그렇다는 소리야. 그만큼 좋았다는 뜻이겠지.'
나래는 본디 선천적으로 좁디 좁은 구멍을 가진 여자였다.
한 번 사귀었던 전 남자친구마저 보기드문 실잦이였기 때문에 섹스를 할 때도 오르가슴을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따라서 태어나 처음으로 나를 통해 섹스의 쾌감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 감각이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저렇게 바리바리 돈까지 싸들고 찾아오고 말았다. 한 번더 그걸 맛보기 위해.
"누나···. 근데 저희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절 여기서 지내라고 한 이유가 혹시···."
내가 정곡을 찌르자 나래가 뜨끔했는지 과하게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아, 아니야! 오해하지 마. 난 널 지켜주려고···. 단지 그것 뿐이야."
강한 부정은 늘 강한 긍정이다.
"추호도 그런 마음은 없어. 서준이 네가 지금 오해하는 거야."
"제 오해군요."
"그래."
'돈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람이 제일 위험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지.'
[왜 그렇습니까?]
'그 사람은 진짜로 돈에 미친 사람이거든. 섹스에 생각이 없다는 나래의 변명을 들으니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는 군.'
[그 말은 설마 나래양이 섹스에 미친···.]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보이는군.'
"알겠어요. 저는 누나가 갑자기 저한테 돈도 주고 호텔까지 잡아 주길래 혹시나 싶어서요."
"아, 아니야. 네가 정말 오해하는 거야. 그냥 이건···. 뭐랄까, 그렇지 우연이야."
"그렇죠? 우연이죠?"
"으, 응."
"알겠어요. 그럼 오해는 안 할게요."
속내를 들킨 나래가 뻘쭘해졌는지 민망하게 볼을 긁적였다. 말만한 처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물쭈물 거리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그런 말까지 꺼낸 마당에 이제와 달려들면, 진짜로 다른 꿍꿍이가 있어서 그렇다는 걸 증명하는 셈일테다. 그렇다고 단둘이 호텔방까지 와서 가만히 있자니 좀이 쑤셔 가만있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미 방금 전 키스로 몸이 각성해 버렸을테니까. 도화선에 불은 붙였는데, 불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랄까?
[나래양을 너무 괴롭히시는 것 아닙니까? 돈까지 두둑하게 받아 챙기셔놓고요.]
'자기 입으로 절대 스폰 아니라잖아. 도와주고 싶어서 용돈 준 거라는데 뭘?'
[하, 주인님 이러면 진짜 양아치 되는 겁니다.]
'돈 받았다고 대뜸 해주는 것도 내가 너무 싸보이거든. 최대한 원하는 걸 얻어낼때까지 뜸을 들일 생각이야.'
[원하는 거라뇨?]
'나래와 굳이 다시 만난 건 구원회 제보 건도 있으니까.' 소파에 앉은 도훈이 안절부절하는 나래를 향해 물었다.
"맞다. 누나 저 뭐 좀 물어볼 거 있는데."
"뭐, 뭔데?"
당장 섹스를 하는 줄 알고 들떠있던 나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못잡고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그 와중에 질문이 들어오자 얼결에 대답했다.
"혹시 누나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사이비 종교단체 같은 것도 제보를 받나 해서요."
"사이비 종교?"
"제 이야기는 아니고 제 친구한테 들은 이야긴데요."
나의 말에 나래가 흥미를 보이며 소파에 옆으로 나란히 앉았다.
"응, 말해봐."
"예수 재림 구원회라고 강남에 있는 교회 혹시 알아요?"
"지금 구원회 말하는 거야?"
나래가 들어봤다는 것처럼 곧바로 구원회의 이름을 언급했다.
"네, 아세요?"
"잘 알지. 작년에 한 번 보조PD로 취재 겸 따라간 적 있었어."
"취재를 하셨다고요?"
"안 그래도 그 교회에 관련된 제보가 굉장히 많았어. 문제가 있는 단체라고 판단하고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달려들었거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음, 그게 그러니까···."
섹스에 목말라 안절부절 할때와는 확실히 다른 표정이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할 때의 모습이 훨씬 그녀답고 섹시했다.
나래의 말에 의하면 당시 취재를 맡았던 담당PD는 확실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구원회 문제에 접근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간에 조사를 이어가던 중 일이 엎어졌다고.
"네? 설마 방영도 못 한 거예요?"
"어떻게 알았는지 구원회 쪽에서 방송을 제작하기도 전에 방영금지가처분을 걸어버렸더라고. 잘나가는 로펌까지 동원해 사방으로 압박하는 통에 그냥 조사 단계에서 흐지부지 되고 말았어. 제대로 촬영도 못 한 셈이지."
"설마 방송국 안에 구원회 사람이 잠입해 있는 거예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유난히 윗선에서 압박도 심했고."
"흐음."
"그런데 구원회는 갑자기 왜?"
"제 친구가 거기에 들어가더니 연락이 두절 됐거든요."
"설마 실종 사건?"
"아뇨. 실종은 아니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야 하나?"
나래도 들은바가 있는지 곧바로 맞장구를 쳤다.
"뭔지 알 것 같아. 우리가 처음 구원회를 조사해 보기로 결심한 것도 비슷한 제보를 받아서였거든."
"비슷한 제보라뇨?"
"주로 구원회 신도가 된 자식을 빼내고 싶다는 제보가 많았어.
구원회에 들어간 젊은 신도들이 아예 집을 나와서 거기서 합숙 생활을 한다는 거야."
"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이게 좀 애매해. 대상자들이 모두 성인인데다, 딱히 강압이나 협박으로 인한 감금이 아니었거든. 실종이 된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기 위해서라면서 직접 인터뷰까지 했고."
[구원회에서 젊은이들을 착취하기 위해 아예 합숙을 시키나 보군요.]
'그렇구나. 이건 몰랐네.'
"아마 서준이 네 친구도 비슷한 경우가 아닐까 싶어."
"그럼 구원회에 들어갔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나온 사례는 없었어요?"
"음, 당시 취재 했을 때는 한 명도 못 봤어."
"한 명도요?"
"아마 가족들은 미칠 노릇이겠지. 멀쩡히 집에서 살던 자식이 종교에 미쳐서 갑자기 출가를 한 셈이니까···."
"음···."
나래가 파악한 내용은 지엽적인 부분에 머물러 있었다. 사이비종교로 인해 가족이 해체되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던 모양이었다.
"혹시 거기 교주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셨어요?"
"교주? 누구였더라? 그땐 이름을 알았는데···."
"장만석이요. 스스로를 재림예수라고 부르는."
"아, 맞다. 장만석. 딱히 교주에 대한 조사는 안 들어갔어."
"네? 구원회를 조사하면서 교주에 대해서는 안 알아보셨다고요?"
"그게···. 내가 담당PD는 아니라서···."
"아, 맞다. 죄송해요."
"당시에 듣기론 전혀 정보가 없는 인물이라고 들었어."
"정보가 없다고요?"
"장만석의 경우는 다른 사이비 종교 단체 교주와 달리, 진짜로 목사였거든. 그래서 사이비라고 칭하기도 좀 애매했어."
"아."
"개척교회 시절부터 교세를 확장해서 대형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었다는 것 밖에는···. 아 맞다. 사업수완이 굉장히 좋은편이라 교회 재단에서 운영하는 회사들 실적이 꽤 괜찮긴 했을 거야. 뭐, 그 정도?"
'나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군.'
[장만석에 대한 진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군요. 철저하게 자신을 감추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쓰레기 같은 놈이 잘도 숨어 있었구나.'
"누나. 혹시 그럼 이번 마약건 끝나면 구원회에 대해서 방송해볼 생각 있으세요?"
"구원회? 이걸 다시 들춘다고?"
"네. 아까 그 연락 두절되었던 친구가 엊그제 갑자기 저한테 연락을 해왔더라고요. 잘하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흐음···. 일종의 내부고발자 형식인건가?"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