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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19화 (1,799/2,000)

1819. 구원회-24-

"벌써? 새벽 기도 나왔다고 한 거 아니었어?"

"실은 오늘 애들 소풍이 있어서 마누라가 도시락 싼다고 일찍 일어났거든. 지금 안 가면 점심 챙겨준다고 교회로 나올지도 몰라."

'마누라? 잠깐, 장만석이 유부남이었다고?'

도훈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건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이 아닌가?

유부남 목사와 독실한 처녀 여신도.

그리고 불륜.

'이게 무슨···.'

[장만석이 유부남인 상태로 미숙과 정을 통했었군요. 그래서 정보창에서 노리개라는 표현이···.]

'헐, 진짜 어이가 없군. 그럼 미숙은 애초에 본인이 유부남과 만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거잖아?'

[당연히 그렇겠죠?]

'근데 왜 결혼이 어쩌고···. 아, 설마 그건가?'

[네?]

'왜 미혼 여성과 만나는 유부남 중에 그런 사람들이 있거든. 나중에 마누라랑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겠다고 거짓말하는.'

[아!]

'어쩌면 장만석이 순진한 시골 처녀였던 미숙을 감언이설로 꼬드긴 게 아닐까 싶어. 그리고 나중에 차버린 거지. 심지어 다른 신도랑 중매까지 맺어 주는 방식으로 손절하면서.'

[정말로 최악이군요, 장만석은.]

'근데 확실히 이때는 플레이어가 아니었을 것 같다는 거야.'

[어째서입니까?]

'교회 내부를 둘러보라고.'

도훈은 사이코메트리 영상을 멈춘 뒤 교회를 빙 둘러보았다. V R 가상 현실에 들어온 것처럼 관찰자인 도훈의 시선에 따라 교회내부가 빙글 돌아갔다.

채 20평도 안 될 것 같은 비좁은 공간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오래된 벤치 의자가 주르륵 놓여 있었다.

안에서 보이는 모습으로 봐선 외관 역시 볼품없을 것은 명약관화였다.

'아무리 개척교회라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썩다리 교회잖아. 만약 장만석에게 지금과 같은 세뇌 능력이 있었다면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았겠어?'

[흐음, 그렇다면 장만석은 이후 플레이어의 계시를 받고 능력을 사용해 교회를 키웠다는 의밀까요?]

'그럴 가능성이 높지.'

도훈이 영상을 건너뛰자 장만석의 모습은 사라지고, 교회 안엔 젊은 시절의 미숙만 남았다. 그녀는 의자 구석에 앉아 성경책 위에 손을 올리고 기도를 올리는 중이었다.

"···부디 만석씨가 부인과 얼른 이혼하고 저에게 오도록 해주세요."

중얼거리며 기도하는 소리가 밖으로 다 들릴 정도였다. 도훈은 남의 불행을 비는 미숙의 못된 심보에 혀를 끌끌 찼다.

'미친년. 쟤도 저 때부터 정상은 아니었네. 유부남 목사랑 만나면서 부인과 이혼하길 신에게 빌다니. 그걸 지금 소원이라고···.'

[반지를 차고 있는 걸 보면, 저 때 이미 장만석에게 거짓 청혼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그래서 지금 영상이 반지 속에 담겼을 테니까. 시간을 좀 더 빨리 돌려 볼까?'

도훈이 더욱 빠르게 영상을 스킵했다. 인상적인 장면을 기록하는 사이코메트리 스킬의 특성상 장소가 순간이동 하듯 휙휙 바뀌었다.

허름한 시골 교회 배경이 사라지고 어느새 대도시 가운데 위치한 중형 교회의 공사 현장이 나타났다.

안전모를 쓴 장만석은 예쁘게 차려입은 미숙 앞에서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우리도 이제 고생 끝이야. 전남 시골 바닥에 처박혀 있던 우리가 이런 대도시까지 진출할 줄 누가 알았겠어? 이제 이 교회만 완공되면···."

"만석씨. 교회를 키우는 것도 좋지만 저흰 언제쯤···."

"쉿-. 부정 타는 소리 말라고. 그 얘긴 다음에 다시 하기로 했잖아."

미숙이 섭섭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죄송해요. 실은 지난달부터 생리가 멈춰서···."

"뭐?"

만석이 노한 표정으로 미숙을 쳐다보더니 그녀를 끌고 인적 드문 공사장 뒤편으로 끌고 갔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만석이 그녀를 다그쳤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똑바로 다시 말해봐."

"생리가 안 나와요. 임신한 것 같아요."

"아니 이런 씨팔···."

만석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이마를 짚었다.

"피임약 제대로 안 먹었어? 나랑 지금 뭐하자는 건데?"

"먹었어요. 먹었는데···. 매일 먹어야 하는 걸 깜빡할 때가 있어서···."

"하-. 진짜 누구 인생 조질일 있어? 나 유부남인 거 몰라서 그래? 결혼도 안 한 니가 애를 배면 어쩌자는 건데?"

"마, 만석씨···."

"시골에서부터 졸졸 따라올 때부터 뭔가 수상하더니만, 너 나한테 찐따 붙으려고 일부러 그랬어?"

"아, 아니···."

"하여간 걸레 같은 년.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만석은 교회 목사답지 않은 거친 언사를 쏟아내더니 울먹이는 미숙에게 소리쳤다.

"당장 애 때. 안 그러면 확···."

만석이 당장이라도 미숙을 때릴 것처럼 위협적으로 손을 쳐들었다. 미숙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바짝 쫄은 모습이었다.

"저 혼자서 어떻게···."

"그럼 내가 같이 가리? 유부남이 처녀를 임신시켜서 중절하러 왔다고 소문 다 나라고? 명색이 목사가?"

"······."

"가만있어봐. 너 한명중이 알지?"

"하, 한 권사님이요?"

"그래. 한 권사에게 연락해 놓을 테니 둘이 가서 오늘 당장 수술하고 와. 보호자 있으면 상관없잖아."

"······."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아예 한 권사랑 결혼하는 건 어때?"

"저랑 한 권사님이랑요?"

"왜? 한 권사도 우리 교회를 위해 얼마나 헌신하는데? 머리가 일찍 벗겨져서 그렇지 나름 성실한 사람이야."

"목사님···. 아니 만석씨."

"뭐야? 싫어?"

만석의 협박 장면을 지켜보던 도훈은 뭔가 위화감을 느꼈다.

'잠깐. 영상 멈춰 봐.'

[넵.]

'아까부터 이상했는데, 장만석이 미숙을 협박할 때 좀 부자연스럽지 않아?'

[어떤 점이 말입니까?]

'잘 보면 반쯤 협박하듯 윽박지르는데, 미숙이 아무런 저항도 못 하잖아. 마치 절대 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사람처럼.'

[미숙이 어려서부터 장만석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글쎄, 그렇다고 치더라도 너무 부자연스러운데. 마치 미숙이 자신의 명령을 절대 거역할 수 없다는 것처럼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잖아. 하지만 내가 볼 땐 장만석이 절대적으로 갑의 위치는 아니란 말이야. 두 사람의 불륜이 까발려지면 더 많은 타격을 입는 쪽은 오히려 교회를 새로 이전하는 장목사 쪽일 테니까.'

[주인님의 의견은 뭡니까, 그럼?]

'지금 보면 시골 교회 가난한 목사였던 장만석이 대도시에 번듯한 교회를 신축했잖아. 아마 이때부터 장만석은 자신의 능력을 개화했던 게 아닐까?'

[능력이라면 정액을 이용한 세뇌 말씀인가요?]

'그렇지. 그걸 이용해 헌금을 빡세게 거두고, 교세를 크게 불린 거지. 또한 연인 관계였던 미숙 역시 세뇌가 끝난 상태였을테니 장만석이 무슨 짓을 하든 거부할 수 없었던 거야. 임신한 아이를 떼라는 둥,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하고 결혼하라는 둥 말도 안 되는 명령을 내려도 말이야. 이미 심리지배가 끝난 상황이면 충분히 가능하지.'

[일리가 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봐선 미숙은 장만석의 정액을 자주 섭취했을 테니까요.]

'흐음. 그리고 이미 능력을 개화한 장만석의 입장에선 미숙은 더이상 특별한 연인이 아니었겠지. 타고난 대물과 자신의 세뇌 능력을 이용하면 어떤 여자든 자신의 육노예로 만들 수 있었을 테니. 애초에 이혼 안 하고 질질 끈 것만 봐도 순진한 시골 처녀였던 미숙을 가지고 놀 의도가 뻔하거든.'

[정말이지 인간쓰레기가 따로 없군요.]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어.'

[뭡니까?]

'이때의 상처로 관계가 완전히 틀어진 미숙은 장만석을 무척 증오하게 됐잖아.'

[그렇죠.]

'만약 세뇌가 영구적인 것이었다면, 그게 불가능하지 않았겠어?'

[그렇군요. 쉽게 말해 장만석의 세뇌는 유통기한이 있는 거군요.]

'그런 것 같아. 이후 미숙이 한 장로와 결혼했고, 이후 장만석과 관계하지 않았다면 세뇌의 힘은 점점 약해졌겠지. 그래서 결국 모든 현실을 똑바로 직시한 미숙이 장만석에게 앙심을 품은 게 아닐까 싶어.'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조금 이상합니다.]

'뭐가?'

[세뇌가 풀렸다면 장만석에 대한 증오로 진실을 모두 폭로하거나 다른 사달이 벌어졌어야 하지 않을까요? 미숙은 여전히 구원회의 권사 자리에 있으면서, 한 장로와도 겉보기엔 부부관계를 잘 유지하지 않습니까?]

'흐음. 세뇌가 풀린 뒤에도 복수하지 않고 현실에 순응한 게 이상하다는 거야?'

[그렇죠.]

'그거야 사람마다 다르지.'

[네?]

'나중에 세뇌가 풀린 미숙은 당연히 만석에게 복수하고 싶었을 거야. 하지만 이미 너무 커져버린 장만석에겐 계란으로 바위치기였겠지.

재산도 권력도 너무 강해진 장만석에게 덤벼봐야, 도리어 자신만 매장 당했을 테니까. 그의 정체를 까발리고자 했다면, 임신을 했을 저때가 가장 가능성이 높았거든. 하지만 이미 애는 지워버렸고, 그것도 지금 결혼한 한 장로와 함께 병원에 갔으니 기록도 남아있지 않을 테고.'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현재 상황에서 미숙이 할 수 있는 최선이 뭐겠어?'

[현실을 받아들이는 거요?]

'그렇지. 어쨌든 남편은 대형 교회 장로에, 자신은 권사야. 게다가 구원회 구조상 다단계 회사처럼 높은 직급에게 매달 품위 유지비로 만만치 않은 달란트가 지급되거든.'

[미숙이 분노를 삭이고 현실에 순응하는 쪽을 택했군요.]

'맞아. 어린 성기사단 청년들하고 실컷 즐기면서 음욕을 채우는 쪽으로 현실적인 타협을 본 것 같아. 어쨌든 이 교회에 붙어 있으면 장만석의 비호 아래 죽을 때까지 호사를 누릴 수 있을테니까.

장만석은 자기 부하와 결혼을 시킨 것으로 미숙을 거둔 것 같거든.'

도훈이 다시 영상을 빠르게 넘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교회의 규모는 갈수록 커져갔다.

조그만 시골의 개척교회에서부터 대도시의 번듯한 교회로. 그러다 대형교회를 두어 번 거치더니, 최종적으로는 현재 서울 강남한복판의 초대형 교회까지 외연을 확장시켰다.

이것이 불과 15년 남짓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거의 3년에서 5년마다 교회를 옮긴 셈이다.

'장만석, 이 미친 새끼. 정액 세뇌 능력 하나로 교회를 이만큼이나 발전시켰던 건가?'

[세뇌 능력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방식을 혼용했군요. 몸 전도라든가, 집단 난교 등등을 이용한 공격적인 포교 활동. 그리고 자신에게 모든 재산을 바치게 만드는 식으로 돈을 빼앗기까지.]

'흐음. 플레이어가 작정하고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참으로 난 놈은 난 놈이네.'

영상의 마지막은, 미숙이 젊은 남신도들을 집으로 불러 떼 씹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하나같이 거대한 물건을 지닌 이들의 정체는 성기사단으로 보였으며, 다섯명에 이르는 사내들과 발가벗고 뒹구는 모습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었던 도훈이 끝내 영상을 외면했다.

'역겹기 짝이 없군. 저건 뭐지? 출장 성기사단 서비스 같은 건가?'

[혼자서 젊은 사내 다섯을 상대하다니···. 미숙의 음욕도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군요.]

'처음엔 이해가 안 됐는데, 장만석의 사이즈를 보니까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해. 그런 괴물 같은 사내를 어린 시절부터 오랫동안 받아낸 걸 보면, 미숙도 보통내기는 아닌 셈이지. 마치 변강쇠가 옹녀를 만난 꼴이랄까? 둘이 아주 죽이 맞았을 거야.'

[이후 변강쇠가 플레이어의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조강지처를 버린 꼴이군요.]

'조강지처는 무슨? 어차피 본처는 따로 있었으니, 첩이 정확한 표현이지.'

[아, 그렇죠.]

'어쨌든 이쯤이면 대충 감은 잡았어.'

도훈이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종료했다.

그 순간 멈춰있던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며 도훈의 머리가 핑 돌았다.

"으윽-."

평소보다 오랜 시간 스킬을 발휘해서인지 도훈은 머리가 평소보다 유독 어지러웠다. 계속된 스킬 활용이 마나의 고갈을 가져왔고, 그 후유증이 한꺼번에 밀려온 것이었다.

아무리 초인에 가까운 몸이라도, 플레이어의 능력을 남용하면 육체적인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응? 왜 그래?"

애무를 하던 도훈이 갑자기 머리를 붙잡고 어지러워하자 놀란 미숙이 물었다.

"뭐야? 어디 아픈 거야?"

도훈이 괜찮다는 듯 손사레를 쳤지만, 그 순간 코피가 왈칵 터져나왔다. 갑작스럽게 피를 보자 도훈도 놀라고 미숙은 더더욱 놀랐다. 도훈이 고개를 뒤로 젖히며 코를 붙잡았다.

"코피 나잖아 지금? 정말 괜찮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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