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812화 (1,792/2,000)

1812. 구원회-17-

* * *

···정액이라고?

순간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로시가 동시에 같은 단어를 소리쳤다.

'플레이어?' / [플레이어!]

'잠깐만 이거···.'

[주인님. 뭔가 수상합니다. 만약 세뇌의 매채가 정액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내 마법의 정액과 비슷한 효과란 거야? 아니지, 나도 그런 능력은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만약 장만석이 진짜로 플레이어고, 해당 스킬을 부여받았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긴 합니다다. 마법의 정액에 들어있는, <화학적 정조대> 같은 마법 역시 정신 조작의 일종이니까요. 이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정의의 여신이 내린 미션을 받고 찾아 왔는데, 대적해야 할 상대가 나와 같은 플레이어 일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되잖아?'

[뭐가 말입니까?]

'장만석 교주의 정액이 무한 생성되는 화수분도 아니고, 오만 명이 넘는 신도들에게 어떻게 일일이 정액을 먹인단 말이야? 게다가 수호천사에 오른 사람만 성은을 입는다면서? 나머진 그럼 먹을 일도 없었을 텐데. 어떤식으로 세뇌를 시켰다는 건데?'

[만약 정액을 희석 시켰다면요?]

'희석이라고?'

[정액을 성수 같은 음료수에 탔다면 충분히 가능 합니다. 물론 세뇌 효과는 훨씬 떨어지겠지만, 반복적인 섭취를 통해 약간의 복종심 정도는 이끌어 낼 수 있을 겁니다. 수호천사 이상에겐 원액을 먹여서 심복으로 만들고요.]

'아니···. 이게 무슨···.'

언젠가 한 번 그런 괴담을 들어본 것 같았다.

특정 종교 재단 명의로 운영하던 유명 음료 업체의 원액에 몰래 교주의 정액을 타 유통시킨다는.

그럼 포교가 더 잘 이루어 진다나 어쨌다나?

만약 장만석이 위의 사례처럼 자신의 정액을 이용해 상대의 정신을 조정할 수 있는 류의 플레이어고, 또 그것을 희석해 대량 유포했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여전히 말이 안 되긴 마찬가지다.

'그럼 지금 플레이어가 혹세무민을 하고 있다는 소리야? 스스로를 신이라 참칭하고, 신도들의 재산을 갈취하며 성적인 착취를 위해 플레이어의 능력을 쓴다고? 그거야 말로 말이 안 되잖아?'

[음···.]

날카로운 지적에 로시가 입을 다물었다.

'그런 짓을 벌였다간 벌써 신벌을 받아도 수백번도 받았을걸?

신벌 정도가 아니라 능력을 회수당하고 진득 처형 됐겠지.'

[···음, 물론 플레이어라면 그렇습니다만.]

'뭐? 그 소린. 설마 내가 모르는 비밀이 더 있는 거야?'

[이 이야기는 원래 주인님 등급에선 알면 안 되는 기밀이지만, 사정이 급박하니 오픈할 수 밖에 없군요.]

'해봐. 난 지금 무척 납득이 안 되고 있으니까.'

로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본래 플레이어의 능력을 남용하면 자동으로 금제가 작동합니다. 신의 힘을 헛되이 쓰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죠.]

'알지. 나도 이 개 목걸이···. 아니, 꼭 그런 뜻은 아니고. 어쨌든 스마트 워치에 매여 있잖아.'

[네. 하지만 우연한 계기로 금제를 스스로 풀어내는 플레이들도 존재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원래 불가능하지만 어쨌든 금제에서 풀려난 플레이어들을 '탈주자'라고 부릅니다.]

'탈주자?'

[네. 탈주자는 능력을 사사로이 쓰더라도 제제를 받지 않습니다. 스스로 신과의 교감을 끊어버린 셈이니까요. 대신 두번 다시 미션을 받지도 못하죠. 미션을 못 받으니 보상 또한 불가능하고요. 더 이상 플레이어가 아닌 셈이니까요.]

한마디로 로시의 말에 따르면 장만석이 만약 플레이어라면 지금은 탈주자라는 의미였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사사로 이 발휘하여 사이비 종교단체를 설립한 뒤 지금의 방식으로 혹세무민을 하고 있다는 것.

'이게 무슨···.'

[본래 탈주자에 대한 정보는 고수 등급 이상부터만 개방됩니다. 고수쯤 오른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사명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고 플레이어로서 충분히 성숙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죠. 물론 어떻게 해서 탈주가 가능한지 그 방법은 누구도 모릅니다. 오직 탈주자 본인만 알고 있겠죠.]

'고수 등급까지 알고 있다면, 제주도에 있는 보미는 이미 탈주자의 개념을 알고 있었다는 소리네?'

[네. 맞습니다. 하지만 주인님이 물어보지 않으셨으니 설명할 필요도 없겠겠죠.]

'하-. 이건 무슨···.'

[주인님. 너무 동요하지 마십시오. 탈주자는 어차피 PK단과 다른 의미에서 플레이어의 위협이 되는 존재입니다. 신의 사명을 거역하고 자신의 존재조차 부정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1순위 처단 대상이거든요.]

'처단 대상? 설마 탈주자를 잡으러 다니는 플레이어도 있다는 소리야?'

[네. 어떤 플레이어는 탈주자들을 처단하는 일을 부여 받기도 합니다. 그런 이들을 사냥꾼, 혹은 헌터라고 부릅니다. 전투형 플레이어 중에서 가끔 임명됩니다.]

'하-. 어이가 없네. 사이비 교주 장만석이 플레이어였다니.'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건 비약에 비약을 거듭한 추측일 뿐이니까요.]

'가만. 그럼 놈이 PK단일 확률은? 능력자가 꼭 플레이어만 있는 건 아니잖아.'

[그건 아닐 겁니다. PK단은 애초에 규율이 엄하기 때문에 사사로이 힘을 쓰지 못하거든요.]

'···뭐?'

엄청난 아이러니다.

플레이어 중에선 탈주자가 나올 수 있지만, 오히려 PK단은 엄한 규율로 인해 탈주자가 발생할 수 없다니.

이쯤 되면 누가 더 나쁜 놈들인지 분간이 안 될 지경이다.

세상에 해악을 미치는 건, 오히려 플레이어 출신 탈주자가 아닌가?

하지만 이 생각을 입 밖으로 냈다간 로시가 나의 신실함을 의심할 것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을 삼킨 뒤 로시에게 다시 물었다.

'아무튼 전직 플레이어 출신의 탈주자일 순 있지만, PK단일 확률은 전혀 없다는 거군. 그럼 내 입장에선 오히려 상대하기는 편한 건가? PK단은 단체지만, 놈은 혼자일 테니까.'

[꼭 그렇진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생각해 보십시오. 주인님은 고수 플레이언 보미양과 정면으로 겨루어서 이길 자신 있으십니까?]

'내가 보미랑?'

보미는 쉽게 말해 마법사다.

그것도 풍(風)계열의 고급 스킬을 여럿 보유한 전투형 마법사.

육체적 능력이면 내 쪽이 훨씬 우월하겠지만, 그녀의 마법을 정면으로 받게 된다면 나의 강인한 육신도 걸레짝처럼 찢기고 말 것이다. 그 위력은 충분히 눈으로 확인했다.

'으음···. 어렵지 싶은데. 동귀어진까진 어떻게 가능하려나?'

[마찬가집니다. 상대의 능력과 등급도 모른 상태에서 플레이어 출신으로 추정되는 장만석에게 바로 들이대는 것은 목숨을 건 도박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놈은 고작 정액에 세뇌 능력을 섞는 변태 능력자일 뿐이잖아? 로시 넌 내가 정말 장만석을 못 이긴다고 생각해?'

[주인님도 겉으로만 보면, 성기 길이나 늘릴 줄 아는 호색한 플레이어 쯤으로 보이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주인님이 절대 약한 편은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측정 범위를 벗어난 규격 외 플레이어라면 모를까.]

'아···. 그 소리였어?'

[네. 놈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가까이 접근해선 안 됩니다. 만약 놈이 주인님보다 능력이 뛰어나고 주인님의 정체가 먼저 탄로난다면 오히려 이번 미션에서 주인님이 크게 위험해질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흐음···.'

[정 안되면 정의의 신께서 하사한 천상의 미션을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상보다 훨씬 리스크가 커졌으니까요. 이젠 미션의 보상이 절대 후하다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로시가 합리적인 선택을 제안했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그건 아니 될 말이지.'

처음 김비서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재산을 노린 사이비 종교 나부랭이 범죄 집단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파면 팔수록 재림예수 구원회는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될 불의한 집단이었다. 심지어 이런 모든 부조리들이 교주의 세뇌로 말미암은 것이라면 절대적으로 분쇄되어야 할 집단이었다.

장만석에게 홀린 신도들을 해방시키기 위해서라도 미션을 계속 진행할 필요가 있었다.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겁난다고 피해버리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어. 만약 정말로 장만석이 탈주자라면 오히려 더 잡아 족쳐야 하는 거 아니가? 플레이어의 명예를 먹칠한 놈들이니까.'

[흐음.]

'어쨌든 뜻밖의 정보를 알게 되었으니 앞으론 신중하게 움직일게. 최대한 놈의 감시망 밖에서 능력을 파악해 봐야겠어. 만약 조사했는데 탈주자가 아니라면 더 좋지. 그러면 평범한 인간이란 뜻이고 좆밥이라는 말과 등치되니까.'

[알겠습니다.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주인님.]

이후 목욕재계를 끝낸 나는 승아와 함께 탈의실로 빠져나왔다.

승아는 사우나를 나오면서 연신 투덜거렸다.

"뭐야, 때 많다더니 얼마 나오지도 않는구먼?"

"설마 때가 안 나와서 삐진 거야?"

"아니, 나한테 거짓말 한 거잖아."

"알고도 속아 넘어가 준 건 아니고?"

내 질문에 승아가 팔짱을 끼더니 나를 째려보았다.

"어쭈. 이제 본색을 드러내시겠다?"

"왜, 좋았잖아, 결과적으로."

"이런 식으로 스터디하는 여자애들 꼬신거니?"

"뭐? 나름?"

아무것도 입지 않고 팔짱을 끼고 있으니 승아의 젖가슴이 위로 밀려 올라왔다. 풍만한 그녀의 가슴을 보고 있다니 갑자기 좆 끝에 미동이 오기 시작했다.

움찔-.

그 모습을 용캐 봤는지 승아가 갑자기 혀를 낼름 핥았다.

"뭐야? 다시 살아났네?"

"내가 좀 회복이 빠른 편이라."

"그럼 한 번 더?"

"잠깐 여기서?"

"왜 아무도 없잖아?"

그녀의 말대로 넒은 탈의실에는 우리 둘뿐이었다. 족히 100명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사우나 시설이었지만 지금 시간엔 이상할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승아가 군침을 삼키며 잦이를 빨려고 덤벼드는데,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와와, 드디어 기다리던 주일 예배다!"

"오늘도 목욕재계 깨끗하게 하고 가야지!"

젊은 남자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에 놀란 승아가 재빨리 뒷걸음질 치며 시치미를 뗐다. 잠시 후 십 수명에 이르는 건장한 청년들이 사우나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그들은 나와 승아를 한 번 쓱 쳐다보더니 곧바로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아아, 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 드려야 겠어."

"난 통성기도 할 때마다 눈물이 나더라."

"기도 끝나고 난 뒤를 기대해서가 아니고?"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건 눈물 만이 아니라는 거지."

"푸하하하!"

청년들은 몹시 들떠 보였다.

아마도 그들이 말하는 주일 예배라는 것이, 이서의 사이코메트리 영상으로 확인한 난교 파티를 말하는 것으로 보였다.

'흥분할만도 하겠네. 공식 떼씹이면.'

[그런데 왜 남자들만 왔을까요?]

'여자들은 따로 씻나 보지. 아님 먼저 씻었거나.'

[흐음. 아마도 저것 때문에 사우나 시설에 사람들이 많이 없었나 보군요. 예배 직전에 맞춰 우르르 몰려온 걸 보면요.]

탈의실 내에서 유일할 홍일점이 된 승아는 쪼르르 자기 로커 앞으로 달려가 후다닥 옷을 입었다. 나는 그녀의 옆으로 이동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직 몸 덜 닦은 거 아니야? 좀 말리고 입지?"

"돼, 됐어."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 여긴 혼탕이라며. 이런 장면 익숙한 거 아니야?"

승아의 행동은 분명 우르르 몰려든 젊은 사내들을 피해 달아난 모양새였다. 승아가 속삭이듯 대답했다.

"아무리 혼탕이라도 남자 신도랑은 같이 있고 싶지 않아서 그래."

"왜? 너보다 계급 낮다고 설마 차별하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어느새 속옷과 치마까지 입은 승아가 계속 대답했다.

"일전에 한 번 청년부 남자들이랑 같이 사우나를 쓴 적 있거든.

원래 여신도들을 훨씬 일찍 씻고 준비하는데, 그때 다른 일 때문에 나 혼자 늦었어."

"그래서?"

"아무리 사우나 내에서 부정한 짓을 금기로 해 두었지만, 시선까지 강요할 순 없잖아. 보는 걸 막을 수 없으니까."

"그렇겠지?"

"그때 우르르 몰려왔던 청년부 애들이 내 몸을 보더니 다들 발기해서 막 껄떡거리는데···. 어휴, 너무 부담스러웠어."

"아···."

그 사건은 승아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된 것 같았다.

하긴 누구라도, 십수명의 벌거벗은 남정네들이 자신을 보고 잦이를 발딱 세워 껄떡이고 있으면 공포스러울만도 했다. 설사 어쩔 수 없이 난교를 해야하는 처지의 여자라도 말이다.

"그랬었구나. 그럼 얼른 나가자. 나도 바로 입을게."

"넌 네 옷이 아니라 가운을 입어야지."

"가운?"

"아까 말했잖아. 가운으로 갈아입고 바로 윗층으로 올라가면 된다고."

"아, 맞다."

"흠. 그럼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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