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 구원회-10-
"면접이요?"
양 권사가 대답했다.
"신체적인 스펙은 입단에 있어 응당 갖춰야 할 필수 요건일 뿐 이네. 그것이 곧 합격을 보장하진 않지."
"아···."
양 권사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더니 인상을 찡그렸다. 대답을 듣고 실망하는 도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반응이었다.
"아직 어린 양이라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구만."
"죄송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자네가 이곳에 일주일만 있었어도 성기사단이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했을 걸세.
성기사단이 수호천사 등급이라는 건 알고 있지?"
"네. 이서에게 대충 설명은 들었습니다."
"우리 교회 주일 정규 예배 출석 인원만 만 명이 넘는다네. 평일 수요 예배나, 주일 오후 예배, 그리고 교인으로 적을 둔 인원을 모두 포함하면 5만명도 넘지."
"우아."
"나는 지금 교인수가 많다고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그중에서 수호천사에 해당하는 인원은 1% 남짓일 정도로 되기가 어렵다는 뜻일세."
"거기까진 미처 몰랐습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성기사단을 관장하고 있고 말이야."
"그러시군요. 몰라뵀습니다."
[양 권사의 거드름이 저것 때문이었군요.]
'지금 자기가 템플 나이트의 수장이라고 유세부리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주인님을 뽑아주고 말지를 결정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언급한 것 같군요.]
'미친놈. 내가 교회 계급에 목메는 사람도 아닌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주인님은 물론 그렇겠지만, 수많은 엔젤들이 간절히 원하는 자리라는 뜻이겠죠.]
'알게 뭐람? 좆같은 새끼.'
"하면 자네는 왜 평신도들이 수호천사에 오르고 싶어 하는 건지도 모르겠군."
"네, 그것도 잘···."
"수호천사 등급엔 매달 2달란트가 지급된다네."
"2달란트요?"
"참고로 달란트 한 개를 현금화 했을 땐 500만원이고."
"그럼 두 개면···."
"그렇지. 한 달에 무려 천만원이 기본급인 셈이야. 아무것도 안하고 단지 성기사단 소속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정도 품위 유지비가 제공되는 것일세. 성기사단은 우리 교회의 정예 중에 정예니까."
"저, 전혀 몰랐습니다."
월 천이라는 말에 도훈이 깜짝 놀란 척 했다. 그에게 돈은 큰 의미가 없었지만, 놀라길 바라면서 꺼낸 말을 무시하면 괜히 그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았다.
"물론 전도를 하면서 받는 성과 보수는 보너스고. 그것도 몰랐겠군?"
"네. 몰랐습니다."
"뭐, 사실 돈이 중요한 것은 아니긴 하지만 혹시나 왜 다른 신도들이 성기사단이 되고 싶은지 궁금해할까봐."
"그, 그렇군요."
도훈은 일부러 자세를 고쳐잡으며 양 권사의 말을 경청하는 것처럼 연기했다. 비로서 얼굴이 밝아진 양 권사가 다시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그럼, 입단 심사의 다음 단계를 한 번 진행해 보겠네."
"다음 단계라면···."
"아주 간단한 면접일세. 일종의 질의 응답이랄까? 단, 내가 말하는 것에 솔직히 답해야 한다네. 주님은 거짓말을 싫어하시니까 말이야."
"네."
거짓말이라면 도가 튼 도훈이었기에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상관없었다. 심지어 철저한 대비로 신분도 미리 위장했기 때문에 정체를 들킬 우려도 없었다.
그때 갑자기 양 권사가 내선 수화기를 집어 들더니 말했다.
"조양. 테스터기 챙겨 오게나."
'엥? 테스터기라니?'
[대체 뭘 테스트한다는 걸까요?]
'글쎄?'
도훈이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아까 시크한 표정으로 방을 나갔던 조양이 커다란 007 가방을 들고 다시 들어왔다. 은색으로 된 케이스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을 따라다니는 수행원의 핵가방과 비슷했다.
"이건 뭔가요?"
"별 것 아닐세. 혹시 거짓말 테스트기라고 들어봤나? 경찰들이 쓰는 그것과 동일한 모델일세. 어렵게 구했지."
'?!'
[아, 아니 무슨 이렇게까지.]
'좃됐네.' 조양이 007가방을 펼치자, 내부에 노트북을 닮은 복잡한 기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니터 본체, 다양한 부속품들이 가지런히 담겨 있었다. 양 권사가 가방 안에서 주렁주렁 전선을 꺼내며 말했다.
"하하, 긴장 풀게나. 이건 형식적인 절차니까 말이야."
"아···. 네."
"그럼, 조양. 상의 탈의를 도와주도록."
"네."
조양이 또 다시 시크한 표정으로 도훈의 상의를 벗기기 시작했다. 단추를 하나씩 풀 때마다 도훈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젠장. 이게 대체 뭐람? 정말 이렇게까지 한다고?'
[사이비 단체의 비밀이 철저히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이런 보안 시스템에 있었군요. 사람 하나 선발하는데 이렇게 유난스럽게 검증할 줄이야.]
'어떻게야 하지? 진짜 대가리 쪼개고 튈까?'
[기다려 보십시오. 제가 방법을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도훈이 당황하는 사이 조양이 그의 셔츠 단추를 풀러 좌우로 벗겨냈다. 근육질의 몸을 압축하긴 했지만, 여전히 멋진 몸매였다.
오히려 커다란 근육이 이소룡과 같은 조밀한 근육으로 압축되면서 훨씬 쫄깃한 느낌이 났다.
시종일관 무표정하던 조양의 눈빛이 도훈의 쫄깃한 복근을 보는 순간 이채가 돌았다.
'근데 이 여잔 대체 뭐야? 시키는 대로 따르는 로봇도 아니고.'
[양 권사의 비서에 발탁될 정도면 수호천사 중에서도 에이스에 속하는 인재가 아닐까요? 무례할 정도로 권위적인 양 권사 앞에서 철저하게 감정을 숨기는 것 같습니다.]
'근데 방금 전 살짝 눈빛이 달라지지 않았어?'
[네 저도 봤습니다. 아마도 주인님의 몸매 놀란 눈치입니다.]
'하여간 이놈의 근육은 압축해도 너무 멋있어서 문제라니까?'
[지금 농담할 데가 아닙니다. 거짓말 테스트기를 통과하지 못하면 내부 침투는 물 건너 갈지도 모릅니다.]
'맞다. 방법은 알아냈어?'
[해당 장비는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때 자율신경계에서 나타나는 심장 박동, 호흡, 혈압, 땀에 의한 피부 전기 반사등을 정밀하게 측정하는 장치입니다. 즉, 방금 말한 요소를 완벽히 통제할 수만 있다면 거짓말 탐지기를 속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걸 어떻게 통제하라고? 자율 신경은 내 의지랑 상관없이 작동해서 자율 신경 아니야?'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주인님은 초인 아닙니까? 분명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 이런 무책임한 비서 같으니라고.'
도훈의 상의를 벗긴 양 권사와 조양이 그의 몸에 부지런히 측정장비를 달기 시작했다. 심전도 측정기를 가슴에 붙이고, 팔에는 혈압계를, 손끝에도 땀을 측정하는 골무 같은 것을 끼웠다. 기계에서 뻗어나온 전선이 주렁주렁 도훈의 매달리는 와중에 도훈은 로시가 설명한 자율 신경계를 통제하는 데 집중했다.
한 번도 시도해 본적은 없지만, 신체 컨트롤이 극한에 다다른 그였기에 어쩌면 가능할 것도 같았다.
'까짓거 한 번 해보지 뭐. 어차피 거짓말 탐지기가 법정에서 효력을 인정 받지 못하는 건 100%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잖아. 즉, 원리만 알면 충분히 속일 수 있다는 거지. 숙련된 일반인도 가능한 일을 플레이어인 내가 못 할리 없어.'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도훈은 일단 호흡부터 통제하기 시작했다. 긴장으로 빨라지던 호흡이 완만해지자, 그와 동시에 심장 박동과 혈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었다. 동시에 손끝에 살짝 열기를 끌어내 땀이 흐르지 않고 곧바로 증발하도록 만들었다. 손가락 끝 표면 온도를 끌어 올려 땀의 발생을 원천 차단한 것이었다.
그사이 거짓말 측정기 세팅을 완료한 양 권사가 모니터링 화면에 떠오른 그래프 수치를 보고 도훈에게 물었다.
"자넨 긴장을 별로 하지 않는 타입인가 보군. 그래프가 무척 안정적이야."
"아, 네. 제가 원래 심장이 남보다 느리게 뛰는 편이라서요."
"심장이 느리게 뛰어?"
"네. 그것 때문에 중학교 때부터 흡연을 시작 했는데도 늘 오래 달리기에서 1등을 하곤 했습니다. 군대에 있을 때도 맨날 1등했고요. 저희 하사관님이 육상부 출신이라 알려줬는데, 저보고 오래 달리기에 최적화된 심장을 타고 났다고 하시더라고요."
도훈의 장황한 대답에 양 권사가 조용히 모니터 화면을 응시했다.
진실을 말한 것처럼 그래프는 여전히 안정적이었다. 만약 과장이나 허세가 있었다면 그 미묘한 반응조차 감지되었을 것이다.
"그렇군. 자 그럼 질문을 시작해도 되겠나?"
"네."
"이름과 나이, 그리고 현재 소속을 말해보게."
"이름은 박민용이고, 24살, 성국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아버님 성함은?"
"박 자 수 자 근 자 쓰십니다."
도훈은 잠시의 딜레이도 없이 곧바로 대답했다.
양 권사는 질문을 던지면서 그래프를 힐끔거렸고, 그의 옆에 선조비서가 서류철에 뭔가를 기록했다.
조양은 기록을 하면서도 계속 도훈의 몸매를 힐끔거렸는데, 눈썰미가 좋은 도훈은 그녀의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어쭈. 저 여자 잦이 빨때는 아무렇지 않더니 막상 벗은 몸 보고는 관심을 보이는데?'
[주인님. 질문에만 집중하십시오. 지금 여자에게 한눈팔 때가 아닙니다.]
'아니, 가슴 없는 이서를 따먹었더니 살짝 부족했던 모양이야.
양 권사의 비서가 훨씬 먹음직 스럽잖아.'
"응? 왜 박동이 올라가지?"
"네?"
"자네 긴장되나?"
"아, 아닙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네. 잠시 질문을 멈출 테니 심호흡 좀 하게나."
"네."
[거 보십시오. 여자보고 흥분하니까 박동이 흐트러졌잖습니까.]
'쏘리쏘리. 지금부터 빡 집중한다.'
도훈이 다시 의식적으로 심장의 박동을 조절했다. 원래는 불가능한 행위였지만, 신체 컨트롤이 극에 이른 도훈이었기에 심장이 뛰는 속도까지 조절이 가능했다.
"좋아. 다시 안정적이군. 그럼 이번에는 조금 민감한 질문을 하겠네."
"네."
"자네, 혹시 불순한 목적으로 우리 교회에 들어오려는 건 아니지?"
"······."
날카로운 질문에 도훈도 순간 움찔했다.
인적 사항을 파악하는 사소한 질문 뒤에 허를 찌르는 질문이 이어질 것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단독직입적으로 들어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혈압이 올라가는 느낌이 드는 순간 도훈이 빠르게 숨을 들이마셨다. 보통의 사람보다 배는 넘는 폐활량이 주변의 공기를 빨아들였고, 그의 호흡이 현저히 느려지며 올라가는 혈압을 늦추었다.
"아닙니다."
"···확실한가?"
"네. 전혀 아닙니다."
양 권사가 쓰고 있던 안경을 들어 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모니터링 되는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도훈을 계속 압박했다.
"그런데 왜 그래프는 거짓이라고 말하고 있을까?"
도훈은 그 순간 그의 안경 랜즈에 반사된 화면을 읽었다. 여전히 그래프는 안정적이었고, 평온했다.
'수준 낮은 훼이크를 쓰고 있군.'
"그럴리가요. 저는 사실대로만 말했습니다."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그렇다면 기계가 고장인가 봅니다."
도훈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당당하게 맞섰다.
처음으로 보이는 단호한 태도에 양 권사의 비서인 조양도 흥미로운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
윗 입술을 살짝 핥는 동작에는 모종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하! 이 친구 의외로 담대한 성격이었구만. 방금은 농담이었네. 이해하게."
"네?"
"자네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그냥 한 번 찔러 본 것일세."
"아···. 어쩐지."
"그래. 그럼 몇가지 더 질문하고 마치겠네."
"네."
"자네가 들어오려는 성기사단은 최고의 대우를 받는 만큼 주어진 임무도 쉽지 않은 편이네. 감당해낼 자신은 있나?"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몰라서 대답이 어렵습니다."
"대답이 어렵다?"
"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종류의 일인지 듣고 대답하겠습니다."
"여전히 당돌하군. 좋아. 가령 육체봉사 사역이라는 게 있네.
우리는 그걸 몸신공양이라고 부르지."
"몸신공양이요?"
"그렇지. 성기사단의 성은 성스럽다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섹스를 뜻하는 성이라네."
"아···."
"우리 교단에서는 섹스로 얻는 쾌락이야 말로 하느님이 주신 궁극의 선물이라고 여긴다네. 즉, 육체적인 봉사를 통해 신실함을 증명하는 것일세."
"네."
"따라서 성기사단은 언제 어디서든, 명령에 따라 몸신공양을 해야 한다네. 가령, 고액 헌금을 한 노부인을 수행하는 일도 포함되지."
"노부인이라면···."
"50대, 아니, 60대 더러 있지."
'아니, 할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