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 구원회-3-
"저요?"
형제님이란 단어를 듣자마자 도훈은 그녀가 구원회 소속의 포교원임을 깨달았다.
'호오, 운 좋게 바로 만났군.'
도훈은 일부러 쑥맥인 것처럼 얼굴을 붉혔다. 여자와 대화를 거의 못 해본 사람처럼 시선을 피하면서 말을 더듬자, 그녀가 자신감을 갖고 더욱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혹시 어디 가시던 길이세요?"
"어, 저는···. 도서관···."
"어머. 공부하시는 분이구나?"
"네.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
"혹시 공부하러 가시기 전에 잠깐 저랑 말씀 나누실 수 있을까요?"
"네?"
"별건 아니고요. 눈이 참 맑아 보이셔서, 좋은 말씀 전해드리고 싶어서요."
도훈이 스마트 워치로 시간을 확인하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게. 오늘 스터디가···."
"아, 다른 모임이 있으신가 봐요?"
"바로는 아니고, 점심 먹고요."
"그럼 잘 됐네요. 저는 잠깐이면 되거든요. 30분? 그 정돈 시간은 내주실 수 있죠?"
"30분요?"
"네. 저 앞에 커피숍에서 딱 30분만 내주세요."
그녀가 허락도 없이 도훈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도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호오, 미인계? 의외로 고전적인 수법이군.'
[주인님은 의외로 찐따 연기를 잘하시는군요.]
'당연하지. 내가 이래 봬도 전생에 한 찐따···. 아니지. 방금 말은 취소야.'
[아닙니다. 정말 영혼이 느껴지는 연기십니다.]
'그런 건 칭찬하지 말라고. 기분 더러우니까.'
커피숍에 도착하자 포교원으로 보이는 여자가 상냥하게 커피를 대접했다. 그리 비싼 음료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처음 보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보아 분명히 다른 목적이 있어 보였다.
예상대로 여자는 커피를 마시기도 전에 본론으로 들어갔다.
"형제님은 따로 종교가 있으신가요?"
"저요?"
도훈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어렸을 때 절을···."
"어머, 불교 신자셨구나!"
"아니 뭐, 신자까진 아니고요. 엄마 손 잡고 몇 번 따라다닌 게 전부라···. 중학교 땐 집 근처 성당을···."
"천주교세요, 그럼?"
"아, 아뇨. 세례 받기 싫어서 관뒀어요. 나중엔 고등학교 때 만난 친구가 외국인이었는데 같이 이슬람 사원을 다니자고 해서 ···."
"이, 이슬람요?"
"네. 거기서 코난을 좀 공부했습니다."
[코난이 아니라 코란 아닙니까?]
'그냥 멍청해 보이려고 하는 거야.'
[그렇다면 대성공입니다. 여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인님을 쳐다보는군요.]
'어리숙해 보일수록 좋아. 그래야 내가 만만해 보일 테니. 똑똑하면 오히려 의심할 거야.'
"근데 거기도 돼지고기를 못 먹게 하길래 관뒀어요."
"그러셨구나. 형제님은 그럼 지금 무교시네요?"
"이것저것 다 경험해 봤는데 종교는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도훈은 일부러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쭉 빨아 먹다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제 손으로 머리를 마구 때렸다.
퍽퍽퍽-!
"어, 어머 형제님!"
"으윽, 찬 걸 단숨에 마셨더니 머리가···."
"···네?"
[아니, 컨셉이 너무 과하신 거 아닙니까? 이건 어리숙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바보 수준인데요?]
'상관없어. 바보 천치로 보여도. 근데 진짜 머리 아픈데.'
"흠흠, 형제님은 엄청 재밌으신 분 같아요."
"제, 제가요?"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분명 키도 크고 얼굴도 멋지셔서 있으시겠다."
도훈은 포교원의 말을 듣고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미친. 아주 대놓고 사람을 호구 취급이군. 역용 마스크로 일부러 평범하게 만들었는데 이 얼굴이 멋있다고?'
[그냥 아무 말이나 하는 것 같은데요?]
'암튼 호응해 줘야겠지?'
"하하, 제가 좀···. 지금은 공무원 시험 준비하느라 여자를 못만나긴 하지만."
"공부도 엄청 열심히 하시나 봐요."
"네. 일찍 시작하면 좋다고 해서 스무 살 때부터 학점도 포기하고 계속 도전했습니다."
"아···. 혹시 지금 나이가."
"스물 다섯이요. 그러니까 다섯 번 떨어졌네요."
"공무원 시험이 많이 어렵긴 하죠? 7급 준비하시나 봐요?"
"9급인데요."
"9, 9급도 경쟁률 엄청 높잖아요. 그쵸?"
"네. 근데 혹시 남자친구 있으세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찐따미를 폭발시키던 도훈은 이제 젯밥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굴었다.
도훈이 역으로 질문을 던지자 이제는 여자가 살짝 당황하기 시작했다.
"저, 전 이서라고 해요. 최이서."
"그쪽은 이름이."
"박민용입니다. 이서씬 몇살이에요? 남자친구는 있어요?"
"하하, 저는 스물셋요. 민용씨는 저보다 오빠네요.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네. 남자친구는 있냐는 질문에는 왜 대답 안 해줘요?"
도훈은 일부러 같은 질문을 집요하게 반복하며 성가시게 굴었다. 상대가 미인계로 나온다는 것을 알자 일부러 학을 떼게 만들 작정이었다.
하지만 이서도 전도 경험이 많은지 노련하게 응대했다.
"후후, 아직 없어요. 저는 기왕이면 같은 교회에 다리는 남자친구를 만날 생각이라."
"교회요?"
"네. 민용 오빠는 혹시 기독교에 관심 없으세요?"
"글쎄···."
"다양한 종교를 다 경험해보신 것 같은데, 교회는 한번도 안 다녀 보신 것 같아서요."
"교회는···. 부활절 날 달걀 준다고 해서 한 번 따라간 적 있긴 한데···."
"호호, 잘 됐네요. 마침 오늘 저희 교회에서 오후 예배가 있는데 한 번 와 보실래요? 좋은 말씀도 많이 듣고, 나중에 간식도 실컷 드실 수 있거든요."
"오후 예배요?"
"네."
"근데 오후엔 스터디 모임이···."
"맞다. 스터디 모임이 있다고 하셨구나. 꼭 오늘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다음 주라도 상관없어요."
"다음 주요?"
"네. 연락처 하나만 알려 주실래요? 혼자 오시기 뻘쭘할 테니까 제가 데려가 드릴게요."
이서의 전도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하자 도훈도 컨셉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 뻘소리를 했다.
"혹시 이서씨가 다니는 교회에 예쁜 여자들 많나요?"
"네?"
"아니, 이서씨처럼 예쁜 여자들 많으면 한 번 가서 다녀보고 싶기도 해서."
"어머, 정말요?"
이서는 당황스러운 질문에도 오히려 활짝 웃으며 도훈의 흥미를 돋울 만한 이야기를 했다.
"잘 됐네요. 안 그래도 저희 교회에 외로워하는 언니들 진짜 많은데···. 오빠도 저희 교회 다니시면 금방 여자친구 만드실 수 있을 거예요."
[아주 드러내놓고 미끼를 던지는 군요.]
'내가 일부러 여자를 밝히는 티를 내서 더 그럴 수도 있어. 전도만 성공할 수 있다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군. 어디 한번 더 찔러볼까?'
[더 찌르다뇨?]
'선을 넘어 보면 전도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할 수 있겠지. 한 번 어디까지 받아주는지 보자고.'
"근데 이서씨도 지금 남자친구 없다지 않았어요?"
"네? 그, 그쵸?"
"다른 여자들은 어차피 얼굴도 모르니까, 전 이서씨랑 사귈 수 있다면 교회 나가보고 싶기도 해서···."
"저, 저랑요?"
[와우, 갑자기 이렇게 들이댑니까?]
'자, 이제 어쩌나 지켜 보자고.'
"왜요? 아깐 같은 교회 다니는 남자 만나고 싶다면서요? 저는 이서씨를 위해서라면 오늘 당장 스터디 포기하고 갈 수 있는데."
"정말요?"
"전 별로 마음에 안 들어요? 남자친구 삼기엔?"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에이, 별론가 보네. 그럴 줄 알았어요. 교회 다니라고 꼬셔 놓고, 막상 가면 모른 체 하려고 그랬죠? 제가 이런 수법 한 두 번 당해 본 줄 알아요? 암튼 커피는 공짜로 잘 마셨어요. 전 이만."
도훈이 일부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자 이서가 갑자기 도훈의 손목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민용 오빠."
"왜요?"
"잠깐만 다시 앉아보세요. 아직 30분도 안 지났잖아요."
"참나."
도훈이 마지 못한 척 다시 자리에 앉자, 이서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도훈에게 속삭였다.
"정말로 저랑 사귀고 싶어요?"
"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요?"
"이유가 뭐겠어요? 그냥 뭐···. 사귀면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지."
도훈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맞은편에 앉아있던 이서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도훈의 옆자리로 옮겼다. 일부러 몸을 밀착하며 도훈의 손을 맞잡은 이서가 유혹하듯 속삭였다.
"그러니까요, 오빠. 구체적으로 저랑 뭘 하고 싶으신 건데요?"
'호오, 이것 봐라?'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갠데요?]
'무슨 논개전술 같은 건가? 이걸 받아준다고? 평소 모습도 아닌데?'
이서가 강하게 나오자 도훈 역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구 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포교 방식을 알아내기 위한 위장 얼굴이었기 때문에, 실패하면 얼굴만 다시 바꾸면 그만이었다.
"섹스요."
"후후."
'어? 웃어?'
[와, 이게 다 뭡니까? 처음 보는 여자한테 섹스하자고, 사귀자고 하는데 저런 반응이라니?]
'나도 이건 좀 당황스러운데.'
"갑자기 왜 웃어요?"
"오빤 정말로 제가 섹스해 주면 저희 교회 다닐 거예요?"
"진짜요?"
"왜요? 난 상관없는데. 오빠, 설마 농담이었어요?"
"아직 저에 대해 잘 모르지 않아요?"
"그거야 차차 알아가면 되죠. 말씀 공부 같이 하면서요."
도훈이 일부러 거리를 벌리며 슬쩍 물러났다.
앞에서 찐따로 위장했는데 갑자기 너무 쉽게 제안을 받아들이면 의심을 살 것 같았다.
"에이, 농담하지 마요."
도훈이 옆으로 도망치자 이서가 다시 따라붙으며 도훈에게 밀착했다.
"전 농담 같은 거 안 하는 데요?"
"지, 진짜라고요?"
"왜요? 거짓말 같아요?"
"아니 그래도 우리 오늘 처음 봤는데···."
"오빠. 제가 재밌는 거 하나 알려드릴까요?"
"뭐, 뭔데요?"
이서의 눈빛이 살짝 이상해졌다.
순진한 전도사의 눈빛이 아니라, 약에 취한 것처럼 살짝 흐릿한 눈빛이었다.
"저희 교회에 청년부라고 있거든요. 20대만 활동하는."
"그, 근데요?"
"청년부에선 매주 일요일 저녁에 모임을 가져요. 저희 교회 기도원에서."
"무슨 모임인데요?"
"아무튼 따라와 보시면 정말 재밌을 거예요. 오빠가 좋아하는거 실컷 할 수 있거든요. 상대가 누구든."
[이, 이게 다 무슨 소립니까?]
'와, 잠깐만 뉘앙스로 봐서는 이거···.'
[설마 구원회에서 난교를 제공한다는 뜻인가요?]
'아무래도 정황상 그래 보이는데? 하-. 이게 폭발적으로 신도를 모았던 비결이었나?'
도훈은 일부러 못 알아듣는 척 딴청을 부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제가 사실 머리가 별로 안 좋거든요.
공무원 시험 다섯 번이나 떨어졌다고 했잖아요."
"괜찮아요. 한 가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저랑 같이 청년부에 들어가시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그 청년부란 곳에 여자도 많아요? 이서씨처럼 예쁜?"
"어휴, 말이라고요? 남자보다 여자가 더 많죠. 당연히 예쁜 언니들도 많고."
"음···. 잠시만요."
[저 말이 다 사실일까요? 주인님을 끌어들이기 위해 과장해서 거짓말하는 건 아닐까요?]
'그러게. 그 가능성도 확인 해봐야겠는데.'
[어떻게 하시려고요?]
'저 목걸이.'
[네?]
'이서가 차고 있는 십자가 목걸이 말이야. 몸에서 한번도 떼질 않았을 테니, 저 목걸이가 보고 들은 것이 많지 않겠어?'
[호오. 사이코메트리 스킬을 쓰실 생각이군요.]
'그렇지. 준비해줘.'
멍청한 표정으로 이서의 말을 듣고 있던 도훈이 불쑥 손을 뻗어 이서의 십자가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근데 이거 진짜 금인가?"
"네, 네?"
그 순간 도훈의 머릿속으로 영상이 펼쳐졌다.
* * *
-전도에 성공하면 한 명당 500만원씩 드립니다.
-오오, 할렐루야!
-구원하소서!
-청년부 여러분은 저희 구원회의 뿌리이자 기둥 같은 존재입니다. 여러분의 열정을 보여주세요!
교회로 보이는 공간에서 늙은 사내가 설교를 하는 장면이었다.
전도에 성공하면 현금 오백만 원을 지급한다는 말에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헐, 이거였구나. 이래서 이서가 처음 보는 나에게 바로 대준다고 한 거였어. 데려만 가면 두당 오백만 원이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만 하네. 텐프로 에이스도 한 번에 오백은 못 벌 테니.'
[정말 어이가 없군요. 아무리 봐도 정상적인 포교 방법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저게 유지가 가능한 방법인가?'
[나중에 전재산의 90%를 빼앗을 수 있다면 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어이가 없군. 일단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 보자.'
도훈이 손짓하자 순식간에 장소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