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97화 (1,777/2,000)

1797. 구원회-2-

[내부에 자이로 센서가 탑재되어 사용자가 어떤 자세를 취하건 화면을 같은 각도로 투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이거 렌즈에서 빛이 나오는 거 같은데 들키는 거 아니야?'

[주인님 정도의 발달된 시력이 아닌 이상 감지조차 어렵습니다. 암실에서나 겨우 보일 정도니까요.]

'암실? 하긴 시험장에 정전이 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겠군.'

도훈은 백지 위에 투사된 정답을 확인했다.

꼼꼼히 읽은 결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정답이었다. 흠잡을 데가 없었다.

'와, 대박. 완벽하게 풀었는데?'

[당연하죠. 정답률이 무려 99.99%에 이르니까요. 발달된 인공지능은 해당 분야의 석학급 문제 해결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학자들의 논문을 분석해서 제공하니까요.]

'근데 정답이 너무 완벽하면 괜히 오해 받는 거 아니야? 아무리봐도 학부생이 제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데?'

[그땐 주인님이 적당히 고쳐주시면 됩니다. 정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 썼다간 채점자가 되려 당황할 테니까요.]

'오케이. 아무튼 이것만 있으면 이번 시험은 문제 없다는 소리구나.'

아이템 테스트까지 마친 도훈은 모처럼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책상 위에 잔뜩 쌓인 교재가 짐덩이처럼 느껴졌다.

'진짜로 책은 싹 다 버려도 되겠네.'

하지만 아직 학기의 중간밖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교재를 버린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도훈이 컨닝 연습을 마무리하던 찰나, 대포폰으로 최번개의 전화가 걸려왔다.

작업을 착수한 지 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 역시 사람은 이름 따라 간단 말이야?'

[네?]

'번개처럼 일을 빠르게 처리하니까.'

"어, 번개야."

-행님, 통화 가능하십니까?

"그래. 벌써 조사 끝냈어? 역시 돈이 좋긴 좋구나."

-아니 그게 아니고···. 약간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번개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긴장된 음색이었다.

도훈도 자세를 고쳐 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문제라고? 무슨 문제?"

-행님 말씀대로 최대한 많은 인력을 동원해서 서초동 소재의 구원회를 탐문 조사 하던 중 놈들이 정보원을 눈치 챈 모양입니다.

"뭐?"

-죄송합니다. 원래 탐문 조사는 상대가 눈치 못 채도록 장시간 공을 들여야 하는데, 주어진 시간이 촉박하다보니···.

결국 도훈이 다그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도훈은 순간적으로 감정을 추스를 수 없었다.

"아니, 넌 대체 무슨 일처리를 그딴 식으로···."

-면목 없습니다, 행님.

도훈은 몹시 짜증이 났지만, 최번개만의 책임으로 돌리기엔 본인의 재촉이 발단이 되었으므로 그 쯤에서 화를 그쳤다. 최번개입장에서 생각하면 억울하다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이었다.

"···됐고, 눈치 챘다는 게 무슨 뜻이야? 어디까지 들킨건데?"

-다행히 저희가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는 것 같습니다. 다만 놈들이 워낙 폐쇄적이고 은밀하게 교단을 운영하는 지라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놈들을 조사하는 무리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조사하는 무리라니?"

-기자나 형사 같은 사람들이죠.

"잉? 좀 더 자세히 설명해봐."

-현재 까지 파악된 정보에 따르면 놈들은 종교 단체를 표방한 일종의 사이비 단체입니다. 구린 구석도 많고 실제 피해자도 너무 많아서 사방에서 놈들을 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니까, 놈들이 우리 쪽 정보원도 그런 거라고 오해했단 말이지?"

-네. 그나마 다행이죠. 아무튼 더 이상 탐문 조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놈들이 경계를 바짝 올리고 있어서, 해당 신자가 아니면 교회 근처로 접근도 못하는 실정입니다.

한마디로 조사가 망했다는 소리였다.

최번개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듯 도훈에게 말했다.

-행님께 정말 죄송합니다. 이번 건은 제 실수이므로 따로 비용 계산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알아서 하시고, 뭐 더 알아낸 건 없어? 설마 이게 끝이야?"

-일단 몇 가지 파악한 게 더 있습니다.

"뭔데?"

-놈들은 정식 기독교 단체 사이에선 이단으로 취급된다고 합니다. 성경을 제멋대로 해석한다고.

"제멋대로라니?"

-구원회의 교주는 장만석이라 불리는 인물인데, 속칭 'JMS'라고 불립니다.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요.

"계속 해."

-장만석은 본래 정식으로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실제로 젊은 시절에 그가 사역했던 교회가 여전히 남아있기도 하고요.

"진짜로 목사야? 아깐 사이비라며?"

-네. 쉽게 말하면 교단에서 파문 당한 목사지요.

"파문을 당해? 무슨 일로?"

-어느 날 기도를 올리다 신탁을 받았다면서,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경의 말씀을 전했다고 합니다.

"전혀 다른 방식?"

-가령, 선악과를 따먹는 것에서 따먹다라는 단어가 사실 남자가 여자를 따먹는 것으로···.

"개미친 사이코 새끼잖아?"

-아무튼 대충 그런 식이었습니다. 특히 스스로를 현세에 재림한 예수로 칭하며, 묵시록을 제멋대로 해석해 종말론적 세계관을 설파한다고 합니다. 곧 세상이 멸망할 것이며, 재림 예수인 자신이 유일한 구원자가 될 것이라고요.

"그래서 교단 이름이 재림 예수 구원회야?"

-네. 맞습니다. 또 구원의 방법이 조금 독특한데, 전재산의 90%를 헌금으로 받치고 종말을 대비에 휴거를 준비하거나, 여신 도의 경우는 자신과 동침을 하면 바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식으로 신도들을 세뇌한다고 합니다.

최번개의 설명을 듣고 있던 도훈은 점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얼토당토 않은 사이비라는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그걸 믿는다고?"

-네?

"아니, 누가 봐도 개소리가 분명하잖아. 그걸 믿는 사람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도훈은 대가리에 총 맞은 거 아니야? 라고 표현 하려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김비서의 어머니가 떠올라 다소 표현을 완화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다.

-저도 그 부분이 수상해서 정보원 몇 명을 해당 신도들에게 접근시켰습니다. 놈들이 대체 어떤 방식으로 포교를 하길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드는 지 궁금해서요.

"근데 발각되어 버렸다?"

-네. 보통 내기가 아닙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곧바로 눈치를 채더라고요.

"흐음, 결국엔 내가 직접 부딪혀 보는 수밖에 없다는 건가."

-네? 행님이 직접요?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튼 알아낸 건 거기까지라는 거네?"

-아,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뭔데?"

-교회 재단 이름으로 사업체도 여럿 운영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크더라고요. 아마도 자금 조달과 돈 세탁 용도로 사용되는 것 같습니다. JMS의 공개된 재산만 500억이 넘습니다.

"아주 가지가지 하는 구먼. 그러니까 신도들 돈을 끌어다가 사업체도 굴린다는 소리지?"

-또 그곳에서 일부 신도들에게는 일을 시키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최저 시급도 안 주면서요.

"얼씨구? 근로기준법 위반까지?"

-아마도 사업체가 계속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는 인건비를 대폭 절감한 부분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신도들에게 보수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노예처럼 마구 부리니, 당연히 순익이 많이 남을 수 밖에 없겠더라고요. 재무 상태도 확인해 봤는데 예상 외로 건실한 기업이었습니다. 운영 능력이 탁월하더라고요.

번개의 설명을 모두 들은 도훈은 JMS라는 인물에 대해 혀를 내둘렀다.

'하-. 하여간 이놈의 나라는 사기꾼 천국이라니까?'

[네?]

'대한민국이 배출한 세계적인 사기꾼이 엄청 많거든. 장만석이라는 놈도 그런 부류 중 하나인 가봐. 하여간 좋은 머리 가지고 왜 그렇기 사기를 쳐 대는지.'

[한데 이해가 잘 되질 않습니다. 누가 봐도 사기가 분명한데 대체 어떤 방식으로 신도들을 끌어 모으는 걸까요? 단순히 종말론을 내세우는 것만으로 지금처럼 교세를 확장할 수 있다는 건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분명 뭔가 더 있는 것 같아.'

"알았어. 거기까지 알아봐 준 것도 수고했어. 그리고, 조사비지출된 건 예전에 준 돈에서 차감해."

-아닙니다 행님, 이번 건은 제 실수로···.

"번개야."

-네, 행님.

"나 쪼잔한 사람으로 만들지 마라."

-해, 행님.

"사람이 일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고, 가끔 잘 안 풀리기도 하는 법이야. 이제껏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줬다는 거 알고 있어.

이번 건은 지난 일을 봐서 그냥 넘어가도록 하마."

-행님!

수화기 너머로 번개의 울컥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암튼, 그렇게 알고 끊는다."

-행님, 제가 정말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그럼 다음엔 실수하지 말고 잘해 인마."

-네, 행님!

도훈이 전화를 끊자 로시가 물었다.

[웬일입니까? 최번개를 쉽게 용서해 주시다뇨.]

'사람의 마음을 사는 건 의외로 간단해. 잘했을 때 칭찬하고, 실수했을 때 격려하는 거. 최번개가 이번 일을 실패하긴 했지만, 이미 엎어진 일에 대해 짜증내봐야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럴 땐 차라리 번개의 충성심이라도 높여주는 게 낫지.'

[과연···. 주인님의 용인술은 가끔 놀라운 데가 있단 말이죠.]

'원래 사람을 썼으면 믿어야 하고, 믿지 않으면 쓰지 말아야지.

최번개는 이번 실수를 넘어가 준 걸로 다음 번엔 더 열심히 나를 위해 일할 거야.'

[돈으로 움직이는 최번개에게 인간적인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군요.]

'그렇지. 돈이 최고인 놈들일수록 가끔 의리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거든. 사소한 것에도 감동해서 정말로 충성을 바칠 테니까.'

[역시 주인님은 보통 배포가 아닙니다.]

'어차피 나에겐 푼돈인 것도 있고.'

[마지막 말은 덧붙이지 않았으면 더 멋질 뻔 했습니다.]

번개와 통화를 끝낸 도훈이 생각에 잠겼다.

'내일이 일요일이지?'

[네. 맞습니다.]

'일요일은 교회가 열리는 날이고.'

[그렇죠.]

'안 되겠다. 정보원 탐문에 실패했으니 내가 직접 선수로 뛰어야겠어.'

[어쩌시려고요? 놈들이 바짝 경계를 세우고 있을 텐데요.]

'그 정도 가지고 포교를 멈출 놈들이었으면, 지금처럼 교세를 확장하지도 못했을 거야. 분명 어딘가 빈틈이 있을 거야.'

[조심하십시오. 괜히 무리하시다 일을 키우지 마시고요. PK단에게 주인님의 행적이 노출되는 순간, 미션이고 뭐고 목숨도 부지하기 힘들지도 모릅니다.]

'그거야 늘 염두에 두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도훈은 내일 아침 직접 교회를 찾아보기로 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 * *

일요일 아침.

도훈은 일찍부터 나갈 채비를 꾸렸다.

'일단 얼굴부터 바꿔야겠어.'

[역용 마스크를 쓰시려고요?]

'어. 지금의 얼굴은 너무 눈에 띄어. 잘생긴 얼굴은 어딜 가나 주목받기 마련이지.'

[성난 도훈 쪽이 오히려 더 튀지 않을까요? 인상이 보통이 아닌건 알고 계시죠?]

'그건 더 못 쓰지. 그냥 최대한 평범한 얼굴로. 안경도 좀 쓰고.'

도훈은 역용 마스크와 만능 변장 도구를 통해 변신을 시도했다.

한참을 공들인 결과, 평소와 전혀 다른 이미지로 거듭날 수 있었다.

근육질의 몸은 축골공을 이용해 바짝 압축시킨 마른 체형으로 바꾸었고, 잘생긴 얼굴 또한 착해 빠진 평범한 대학생처럼 꾸밀수 있었다.

키가 살짝 크긴 했지만, 그것 말곤 외적인 매력이라고는 찾기 힘든 흔남 중의 흔남이었다.

'좋아. 의상도 딱 마음에 드는군.'

체크 남방에 후줄근한 면바지를 입은 그는 커다란 백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일부러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초동에 도착한 그는, 아침 일찍 교회 근처에 도착해 서성거렸다.

높은 첨탑을 자랑하는 구원회의 새 건물은 멀리서도 눈에 확 띄었다.

'이햐. 저게 다 신도들의 고혈을 빨아서 세워 올린 거란 소리 네? 진짜 엄청 나구나.'

평범한 교회 정도로 생각했던 도훈은, 수천명이 한번에 예배가 가능한 거대한 크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여의도의 모 교회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위세였다.

'분명 포교하는 신도들이 주변에 있을텐데.'

도훈은 매의 눈으로 교회 주변을 관찰했다.

검은 바지에 흰 셔츠를 입은 사내들과, 마찬가지로 검정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젊은 여자들이 유독 교회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뭐지? 설마 저런 차림으로 교회 예배를 보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일부러 복장을 통일한 느낌이군요.]

도훈이 의아한 눈으로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말을 건 사람은 도훈 또래의 여자였다.

끽해야 대학생 정도로 되어 보이는 그녀는 유난히 눈이 크고 얼굴도 참했다. 이마에 '나 착해요.'라고 써 붙인 인상이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형제님 눈이 엄청 맑아 보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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