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8. 빌드 업-113-
도훈이 손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상스러운 손동작을 선보였다.
탁탁탁-
"떡치는 거요."
"아···. 아이고, 이런. 네. 죄송해요. 제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도훈이 운전석 헤드레스트에 손을 뻗더니 나래를 얼싸안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갔다.
"이런, 이런. 큰일이네. 취재하러 오신 분이 이렇게 정보가 없어서야."
"네, 네? 아, 아니···."
"호빠 선수를 취재하러 왔으면, 최소한 호빠에서 좀 놀아본 누님이 오셨어야지. 이렇게 공부만 한 순진한 사람을 보내면 뭐하자는 건지."
도훈이 불쑥 들이대자 당황한 나래가 아무 말이나 막 쏟아냈다.
"흐, 흠! 꼭 경험해 봐야 취재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누나. 공부 엄청 열심히 했구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왜? 꼬시고 있잖아. 보다시피.'
[아니, 느닷없이 시사 프로그램 PD를 왜 꼬시냐는 겁니다. 주인님이 여자만 보면 발정 나는 짐승입니까?]
'설마 내가 여자가 궁해서 꼬시겠냐? PD치곤 예쁘긴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을?'
[그럼요?]
'나랑 각별한 관계를 맺어놔야, 방송이 잘 될 것 같으니까 그렇지. 아까 봤잖아. 내 말을 전혀 신뢰하지 못 하는 거. 제보가 너무 뛰어나니까 오히려 의심이나 받고.'
[그렇긴 하지만 강PD를 꼬시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요?]
'당연히 되지. 여자들은 원래 공사구분이 남자보다 훨씬 느슨하거든. 반응을 보니 의외로 너무 순진해서 골려주고 싶기도 하고.'
[하아-. 정말 주인님은 못 말리겠군요.]
'맞아. 난 짱구니까.'
[네? 그게 무슨···.]
'원래 짱구는 못 말린다잖아.'
[아재요···.]
"고, 공부는 갑자기 왜요?"
"아니 PD 되려면 공부 잘해야 하지 않아요? 아닌가? 무슨 시험같은 거 봐서 들어가던데?"
"그, 그쵸."
"누나 대학 어디 나왔는데?"
"서, 서울대···?"
"와, 이 누나 완전 인텔리였잖아? 그래서 그런가?"
"뭐가요?"
"원래 공부만한 아가씨들이 되게 못 놀거든. 호빠에 전문직 누님들도 자주 와서 만나봤어요."
"저, 정말요?"
"의사랑 변호사도 많고, 언론인도 있었죠. 기자라든가 뭐 아나 운서였나? 암튼."
"와···."
"근데 그거 알아요?"
"뭐, 뭔데요?"
"똑똑한 여자들이 의외로 성욕이 엄청 센 거."
도훈이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나래는 갑작스럽게 들이대는 도훈의 육탄공세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여자 혼자서 호빠 선수를 단둘이 만나러 온 것 자체가 무리수같았다.
"자, 잠시만요!"
놀란 나래가 급히 차량 창문을 내렸다. 이대로는 숨이 막혀 호흡곤란이 올 것 같았다.
"창문을 왜 내려요? 혹시 누구한테 사인 보내는 건가? 제가 분명 혼자서 오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아니에요. 담배라도 한 대 피우려고."
"담배도 펴요?"
"네. 뭐. 어쩌다 보니."
도훈이 씩 웃었다.
"잘 됐네. 나도 같이 피워도 돼죠?"
"어, 얼마든지."
도훈도 보조석 쪽 창문을 같이 내렸다. 그 사이 나래가 심호흡을 하면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긴장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였다.
'후웁-. 말려들어선 안 돼. 정신 똑바로 차리자, 강나래. 지금 넌 취재하러 온 거야.'
나래가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담배를 입에 물던 도훈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 라이터를 어디 흘렸나?"
담배를 입에 문 도훈이 앉은 자리를 뒤적거리더니 갑자기 나래의 담뱃불에 자기 담배를 가져다 댔다.
"누나, 불 좀 빌릴게요."
"아, 아!"
마치 두 남녀가 빼빼로 끊어 먹기를 하는 것처럼 두 개의 담배가 허공에서 얽혔다. 정면으로 도훈의 얼굴을 마주한 나래는 숨이 멎을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너, 너무 잘생겼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간접 키스처럼 담뱃불을 붙인 도훈이 연기를 내뿜으며 감사를 표했다.
"누나, 땡큐요. 라이터를 흘렸나봐요."
"흐, 흠···."
"아, 근데 이 누나 다시 보니까."
"네?"
나래가 긴장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 누구야. 영화배우 걔 닮았구나."
"누구요?"
"심민아. 맞죠?"
"처, 처음 듣는데요?"
금시초문이긴 했지만, 칭찬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특히 심민아는 청초한 얼굴과 상반되는 빼어난 몸매로 유명한 중견배우로, 큼지막한 골반으로 유명했다.
'내, 내가 무슨 심민아를···. 하긴 얼굴은 아니지만 몸매는 비슷하려나?'
괜한 칭찬에 우쭐해진 나래는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도훈을 향해 물었다.
"근데, 서준씨라고 했죠? 그쪽은 그럼 몇 살이에요?"
"저요? 스물 셋요."
"아···. 생각보다 엄청 어리구나."
"누난 몇 살인데요? 가만있어봐. 스물 다섯?"
실제로 스물 아홉인 나래는 자기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무, 무슨···. 내일 모래면 곧 서른인데."
"진짜요?"
도훈이 깜짝 놀란 연기를 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와, 대박. 제 또랜 줄 알았어요. 그래도 방송국 PD라니까 대학은 졸업했다 싶어서 스물 다섯이라고 올린 건데."
"아, 아니에요. 그 나이에 PD는 좀 무리죠. 설사 PD가 됐다고 해도 고발 프로그램은 5년차 이상부터 지원이 가능해서."
"그렇구나. 이야, 근데 솔직히 제가 빈말은 잘 못 하는 성격이 네, 누나는 다 가졌네요."
"다 가지다니?"
"서울대 나왔으니까 공부도 잘하지, 얼굴도 심민아 닮아서 예쁘지. 거기다 잘나가는 프로그램 PD까지···. 진짜 빠지는 데가 하나도 없잖아요."
너무도 과한 칭찬이었다.
평소의 도훈이라면 이렇게 상대를 띄워주는 화법은 거의 구사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냥 잘생긴 얼굴로 쓱 쳐다보기만 해도 여자들이 알아서 넘어왔기 때문에 입을 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도훈이 입까지 신나게 털어댔으니, 나래로서는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하아-. 뭐지, 진짜. 이게 호빠 선수의 매력인가? 사람 엄청 설레게 하네.'
나래 역시 도훈이 의도적으로 자신을 띄워준다는 것을 알았지만, 설사 아부라도 할지라도 잘생긴 미남의 칭찬은 듣기 좋을 수밖에 없었다.
[주인님답지 않게 엄청 열심히 시군요.]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립서비스 좀 해주면 어때? 이 정도면 호감도 좀 올랐으려나?'
[아마도요.]
'좋아, 그럼 이 타이밍에 정보창 한 번 띄워봐. 공략 가능한지 견적 내보자.'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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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강나래(비처녀, 일시 26세 8개월)
나이 : 29 #열혈#안경 찐따#순정파
호감도 : 71/100
개방성 : C
성감대 : 클리토리스, 허벅지, 젖꼭지
*애무 포인트 : 예쁘다는 칭찬에 껌뻑 죽음.
성욕지수 : 보통
공략팁
*위 대상은 당신에게 호감이 있습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 <추격60분>의 막내 PD입니다.
-살면서 1등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수재로서, 최연소 언론고 시 합격 하는 등 이른 나이에 공중파 방송사 PD 자리를 꿰찼습니다.
-학창 시절엔 머리를 질끈 묶고 안경을 쓴 공부 벌레로만 살았습니다.
-남자를 전혀 만나보지 못하고, 늦은 시기에 연애를 시작했기 때문에 나이에 비해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워커 홀릭이라고 자부할만큼, 일에만 매진하는 성격 때문에 잠깐 만났던 남자와도 금방 헤어지고 마는 등 현재는 오랜 기간 혼자 솔로로 보내온 상태입니다.
-어려서 외모를 꾸미지 못했던 탓에, 뒤늦게 타고난 미모가 빛을 발한 타입입니다.
-몸매 라인이 매우 빼어나지만, 본인의 성적인 매력을 잘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추천멘트 : 누난, 눈이 참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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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훈은 공략멘트를 보고는 빵 터질 뻔했다.
'푸핫-. 저게 뭐야? 진짜로 저런 순진한 멘트가 먹힌다고?'
[상대가 직업이나 나이에 비해 굉장히 숙맥으로 보이는군요.]
'그러게. 시사고발 프로그램 PD가 이렇게 세상물정을 모를 줄이야.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일 줄 알았는데···. 그래도 공부는 진짜 잘했구나.'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면 주인님보다 더 잘한 거 아닙니까?]
'그건 아냐.'
[왜 그렇죠?]
'1등을 계속 해왔다고 해도 끽해야 초중등 다니는 동안일 거란 말이지. 1000명 중에서 1등 하는게 사실 대단한 건 아니거든. 그건 서울대쯤 가는 애들이라면 대부분 획득하는 타이틀이니까.'
[그렇군요.]
'그리고 언론고시를 봤다는 걸 보면 신문방송학과 정도 나왔을 텐데, 거기서 수석한다 해봐야 의대나 법대 최상위권이랑 같이 경쟁한 건 아니니까. 자기들 사이에서나 천재지.'
[그래도 똑똑한 거 아닙니까? 최연소 언론고시 합격이면.]
'내가 법대를 갔으면 사법고시가 최연소였을 걸? 행정학과를 갔으면 행정고시를 최연소로 합격했을 거고. 저건 그냥 말장난에 불과해.'
[하여간 주인님은 재수없는데 뭔가 있단 말이죠. 그래봐야 지금은 빠가시면서.]
'빠가는 아니지. 아이큐 100은 넘는데.'
"흠흠. 담배 다 피웠으면 다시 인터뷰할까요
"네. 질문하세요."
"그러니까···. 제보의 요지는 호빠에서 여자 손님들에게 마약을 몰래 타서···."
"강간을 했죠. 아니, 수면간이라고 해야 하나?"
"수면간?"
"이쪽 업계에선 보통 골뱅이라고 부르거든요. 술 취해서 정신 해롱해롱 여자들요. 그런 여자들은 자기들이 누구한테 따먹히는 줄도 모르고 당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뽕약 이용해서 골뱅이를 유도한 거죠."
"세상에···."
"제가 보내드린 영상에 보면, 놈들이 작업했던 장면을 찍어 놓은 게 있을 거예요. 그놈들은 작업할 때마다 싹 다 영상으로 남겨놓았거든요."
"흐음···. 그럼 그렇게 찍은 영상으로 협박을 했다는 건가?"
"네. 영상을 뿌린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궁지에 몰리게 만든 거죠."
"어째서 피해자들이 성폭행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 바로 경찰에 알렸으면 금방 범죄가 탄로가 났을 텐데."
"그게 가장 악질적인 점이예요. 피해자들이 나이가 어린 대학생들이다 보니 세상 물정을 잘 모르잖아요. 괜히 신고했다가 강간 당하는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가버리면, 남은 인생을 망칠 수 있다고 겁을 먹은 것 같아요. 원래 성매매하는 여자애들도 제일 두려워하는 게 자기가 하는 일이 아는 지인들에게 드러나는 거거든요."
"흐음···. 그럼 지금 피해자들은···."
"저도 짧게 있어서 잘 모르겠는데, 지방 오피 같은 데 팔려갔다고 들었어요."
"지방?"
"아마 본인들도 그쪽을 더 원했을 거예요. 괜히 여기서 일하다 아는 사람 만나기보다, 서울에서 멀리 벗어날수록 얼굴 팔리는 일은 드물테니까."
"이건 너무 악질적인데···. 솔직히 인신매매랑 다를 바 없잖아?"
강나래가 주먹을 콱 쥐고 분개하며 말했다.
빼어난 커리어로 사회고발 프로그램에 자원했던 건 사회 정의에 대한 감수성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고발하고 개혁하려는 급진적인 사상의 소유자기도 했다.
도훈도 그녀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에 동조했다.
"그러니까요. 제가 첫날 일하러 갔는데 거기 마담이 이 얘기를 해주더라니까요? 듣는 순간 깨달았죠. 아, 여긴 완전 범죄자 소굴이구나."
"그럼 서준이 넌 그때부터 몰래 카메라로 찍으면서 증거를 수집한 거야?"
어느새 마음이 편해졌던지 나래가 갑자기 반말을 하며 물었다.
나이가 한참 어린 동생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말을 놓은 것이었다.
"네. 제가 비록 떳떳한 일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죄는 짓지 말고 살자는 주의거든요."
"그렇구나. 하긴, 아무리 봐도 범죄자 같은 인상은 아니긴 해."
도훈에게 호감을 가진 나래는 호빠 일을 하게 된 도훈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이렇게 착한 애가 어쩌다 그런 일을 하게 되었을까?'
나래는 취재를 핑계 삼아 사적인 질문을 묻기 시작했다.
"근데 서준이 넌 어쩌다 호빠 일을 시작한 거야?"
"네? 저요?"
"으, 응. 아무래도 취재원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어야 프로그램제작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돈이 필요했어요."
"돈이? 그냥 평범한 알바를 해도···."
"아뇨. 알바로 벌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큰돈이 필요했거든요."
"왜?"
도훈이 한숨을 푹 쉬더니 담배를 다시 꺼내 물었다.
"누나, 더 한 대만 더 펴도 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