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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1777화 (1,757/2,000)

1777. 빌드 업-112-

-안녕하세요. 추격60분 강나래PD입니다.

제보자님이 보낸 자료 잘 받았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저희 제작진과 인터뷰가 가능하시면 아래 남긴 연락처로 연락 한 번 부탁드립니다. 혹시 통화가 불편하시면 이메일로 서면 제출도 가능합니다. 소정의 사례비와 더불어 제보자님의 신원 정보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보장 해드립니다.

도훈은 메일 아래 남겨진 폰 번호를 보더니 곧바로 대포폰을 꺼내 들었다.

[전화 하시게요? 메일로 답변하지 않고요?]

'신원 보장을 해준다잖아. 어차피 내가 직접 만나지 않으면 사실 확인 절차 때문에 방영이 늦어 질거야. 태오도 자수하러 간 마당이니, 얼른 협조해서 빨리 치워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렇군요.]

도훈이 대포폰으로 전화를 걸자, 메일을 보낸 당사자인 강나래 PD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일전에 투명인간으로 변해 서류를 제출했던 그 여자PD였다.

-네, 추격60분 강나래입니다.

"전화 달라고 하셔서."

-누구시죠? 혹시, 호빠?

"네. 제보자가 바로 접니다."

-아, 바로 전화 주실 줄은 몰랐네요. 혹시 인터뷰 가능하신가요?

"가능은 한데 그쪽에서 혼자 나오시는 조건입니다."

-호, 혼자요?

"누구든 상관없고요. 괜히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럼 저도 곤란하니까."

-음···. 저희 프로그램에선 제보자를 경찰에 넘긴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최소한으로 팀을 꾸려도 카메라맨이나 음향장비 때문에···.

"그냥 없던 일로 하죠. 참, 이 번호는 추적해도 아무 소용없을 겁니다. 다른 사람 명의의 대포폰이니까요. 그럼 이만."

도훈이 곧바로 전화를 끊으려 들자 나래가 급히 소리쳤다.

-자, 잠시만요!

"왜요?"

-저 혼자서라도 갈게요. 정 안되면 음성으로 녹취만 해도 상관없으니까요. 어디로 가면 될까요?

"지금부터 장소를 협의해보죠."

-혹시 죄송한데 기왕이면 공개된 장소면 더 좋겠어요.

"공개된 장소라뇨?"

-직접 갈건데 저도 사실 무섭거든요. 여자 혼자서 취재하러 가는 게···. 오, 오해는 마시고요.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니까.

도훈은 나래의 솔직한 대답에 신뢰를 가졌다. 아무 말 없이 혼자 찾아오겠다고 했으면, 더 의심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죠, 그럼."

-어떻게요?

"어차피 녹음만 할 거면 장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테니, 그쪽 방송국 주차장에서 만나는 걸로요."

-아, 저희 방송국 주차장이요?

"네. 거기면 사방이 트여있으니까, 겁날 것도 없잖아요. 그쪽 홈그라운드이기도 하고. 지금부터 30분 뒤 주차장 차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직접 갈 테니까."

-아···. 그래주시면야 저야 고맙죠. 차종이랑 차량 번호 알려 드릴게요.

약속을 잡은 도훈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택시를 잡았다. 혹시 녹취를 한다고 해놓고 몰래 영상을 찍으면 곤란했기 때문에, 정체불명의 모자를 눌러써 얼굴을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택시를 타고 방송국에 도착한 도훈은, 주차장에서 나래가 알려준 차종과 차량 번호를 찾았다.

차량을 일일이 뒤지고 있는데, 구석에서 비상 깜빡이가 켜진 차량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저 차인가?'

[맞는 것 같습니다. 차종도 차번호도 강PD가 알려준 것과 일치 합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쓴 도훈이 차량으로 접근했다.

다가가면서 보니 일전에 마주친 여자 피디가 초조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앉아있었다.

'내가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뭘 저렇게까지 겁내는 거지?'

[영상으로만 봐선 범죄자로 오해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주인님을 변심한 공범쯤으로 생각할테니.]

'실제론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그런 오해를 받는 건 좀 억울한데.'

도훈이 소리없이 접근해 불쑥 보조석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래가 놀라 소리쳤다.

"어, 엄마야!"

"뭘 그렇게 놀라요?"

"죄송해요. 제가 보기보다 겁이 많아서···."

"겁나면 다른 남자 PD를 보내면 되지 왜 직접 왔어요?"

"그쪽 분이 저한테 제보 자료 보내신 거 아닌가요?"

모자를 눌러쓴 도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그냥 퀵서비스 기사한테 전달하라고만 했어요. 하필 그게 그 쪽한테 갔나보네."

"아···."

"뭐 누구한테 제보하건 제 입장에선 방송만 타면 되니까. 암튼, 그쪽이 강나래씨 맞죠?"

"네. 그냥 편하게 강PD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저는 서준입니다."

"가명인가요?"

"선수명이죠. 호빠 선수들은 아무도 본명 안 써요. 호빠 한 번도 안 와보셨나 보구나."

"아···. 네, 일이 바빠서. 흠흠. 암튼 서준씨. 그럼 지금부터 저랑 나누는 대화를 녹취하시는데 동의하시죠?"

나래가 손에 고성능 녹음기를 꺼내며 물었다. 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대신 방송에 나갈 땐 음성변조 부탁드릴게요."

강PD가 녹음 버튼을 누르며 답했다.

"그 부분은 걱정 마세요. 신원에 대해선 철저히 비밀 보장합니다. 경찰이 요구해도 제보자에 대해선 절대 함구하는 게 저희 프로그램 제작 원칙이거든요."

"근데 경찰은 왜요? 저는 죄지은 게 하나도 없는데?"

"···예?"

"저는 놈들의 범행에 동참한 적 없습니다.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그 부분은 확실히 해야 할 것 같군요."

하지만 나래는 도훈의 말을 전혀 믿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보낸 투고는 너무나 디테일했다. 해당 범죄에 깊이 연루된 내부자가 아니면 도저히 기술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다.

"전혀 안 믿으시는 눈치네?"

"아, 아니에요."

"참고로 저 그 호빠 들어간 지 일주일도 안 됐습니다."

"뭐라고요?"

"근데 평범한 호빠 영업을 하는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르고 있길래, 증거를 확보해서 제보한 것 뿐이라고요."

나래는 어디서부터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분명 영상에서 보았던 그는 너무나 노련한 호빠 선수처럼 보였다.

그런데 일주일도 안 된 신입이라니?

"그치만··· 영상에서···."

"마지막 장면요?"

"네. 룸 안에서···."

"보셨으면 알겠지만, 그건 이번 범죄와는 무관합니다. 여자 손님은 물뽕을 전혀 마시지 않은 상태였거든요. 몰래 약을 타서 억지로 한 게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당연하죠. 제가 같이 보내드린 물뽕은, 마시면 1분 안에 기절하는 제품입니다. 못 믿겠으면 샘플로 드렸으니 확인해 보시든가요."

"아, 아니에요."

"해당 영상에서 여자 손님이 기절이라도 하던가요?"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럼 어떻게 된 거죠?"

나래의 순진한 물음에 오히려 도훈이 반문했다.

"호빠 선수가, 호빠 놀러 온 아가씨랑 룸에서 떡치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예, 예?"

"아가씨한테 돈을 받은 것도 아니니 성매매도 아니고, 그냥 둘이 좋아 즐긴 거니까요. 그냥 원나잇 같은 겁니다."

점점 내용이 적나라해지자 나래도 부담을 느끼는지 화제를 바꾸었다.

"아, 알겠어요. 그건 그렇다고 치죠."

하지만 도훈은 대충대충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치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단 말입니다. 아니, 인터뷰를 하러 왔다면서 인터뷰이 말을 못 믿으면 제가 어떻게 그쪽과 계속 대화를 할 수 있겠어요? 지금이라도 그만둘까요?"

도훈의 논리적인 지적에 나래도 뜨끔했는지 자세를 고쳐잡고 사과했다.

"알겠습니다. 불쾌하셨으면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오해가 있었던 것 같네요. 제보자님의 진술을 전부 신뢰하겠습니다."

"흠, 아무튼 절 만나서 확인하고 싶은 게 뭔데요?"

다시 인터뷰로 돌아가자 나래가 수첩을 꺼내더니 미리 준비한 질문 내용을 확인했다.

"혹시 영상에 나오는 장면은 직접 촬영하신 건가요?"

"네."

"실은 저희 CP님이랑 같이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분명 몰카각도로 보이는데 화질이 너무 선명해서요. 8K 카메라로 촬영을 하셨던데···."

"예?"

[카메라 화질을 뜻합니다. UHD 4K보다 훨씬 좋은 영상입니다. 정확히는 4k 4개를 바둑판처럼 이어붙인 화소수가 8k입니다.]

'아니 그걸 몰라서 물은 게 아니고 몰래 카메라 화질이 왜 그렇게 좋은건데?'

[당연히 천상계 기술이니까요. 단추 구멍 크기밖에 안 되지만, 성능은 지상계 어떤 물건과도 비교 불허의 수준입니다.]

'자랑 좀 그만해. 그것 때문에 지금 의심받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자랑질이냐?'

[앗, 죄송합니다.]

"네 뭐···. 좋은 장비로 촬영했으니까요. 근데 그게 중요한 질문인가요?"

"어떻게 그런 고급 카메라를 안 들키고 촬영했는지 궁금해서요. 보통 그 정도 카메라면 렌즈도 대구경이니까···."

"그러니까 지금, 촬영 장비가 너무 좋아서 문제라는 거죠?"

"아, 아뇨. 그건 기술적인 부분이니까 넘어가도록 하죠. 실은 너무 화질이 좋아서 CP님이 페이크 다큐가 아닌지 의심했었거든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런건 절대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두 번째로, 혹시 제보 내용은 누가 기술하신 건가요?"

"제가요."

"지, 직접요?"

"왜요? 그것도 문젭니까?"

나래는 이번엔 진짜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도훈의 제보는 전문 편집자가 붙은 심층르포 수준이었다. 한 달에도 수백통씩 수많은 제보를 받는 프로그램에서 그 정도의 퀄리 티의 제보는 이제껏 받아본 적이 없었다.

따라서 PD끼리 회의에서의 결론은 기자급 인력이 잠입 수사를 했다거나, 혹은 그런 수준의 조력자가 제보문을 쓰는데 상당한 도움을 준 것으로 추정하고 있었다.

한데, 눈앞의 약관을 갓 넘긴 청년이 직접 기술한 것이었다니 놀랄 수밖에. 심지어 호빠에서 일하는 선수가 말이다.

나래가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도훈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뭐하는 사람이지? 끽해야 대학생 정도로밖에는 안 보이 는데···. 그 정도 문장력이면 자유기고가 같은 걸 해도 먹고 살실력 아닌가?'

도훈 역시 신빙성에 의심을 받기 시작하자 점점 짜증이 올라왔다.

'저 여자 지금 날 전혀 못 믿는 거 같지?'

[그래 보이는군요. 아무래도 촬영된 영상의 퀄리티나 제보의 수준이 너무 빼어나 도리어 의심을 받는 상황 같네요.]

'나참, 업적도 아닌 일로 일주일간 좆뺑이 쳐서 제보까지 해줬더니만 이런 대접은 몹시 곤란한데···.'

너무 영상을 잘 찍고, 제보문을 잘 써서 문제라니.

본인에게 아무 이득도 없는 범죄 행위를 처단하기 위해 시험 공부할 시간도 줄여가며 매달렸던 도훈에겐 다소 황당한 결론이었다.

페이크 다큐라는 의심이나 받고, 심지어 자신을 반쯤 범죄자 취급이라니.

빈정이 상한 도훈이 삐딱한 표정으로 강PD를 쳐다보았다.

"으음···. 딱히 문제는 아니지만···. 사실 좀 놀랐어요."

"왜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보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나래이션으로 옮겨도 될 정도로 완벽했거든요. 저희가 추가 취재를 할 필요가 전혀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서 쓴 것이 아닌가···."

"정말 사람을 못 믿네요."

의심받는 상황이 너무나 불쾌했던 도훈이 불쑥 정체불명의 모자를 벗어 던졌다.

"앗!"

모자를 벗자 전혀 의외의 얼굴이 나타났다.

분명 모자를 쓰고 있을 땐 키만 큰 평범한 대학생으로 보이던 도훈이, 갑자기 근육질의 훈남으로 돌변한 것이었다.

"어차피 카메라 촬영 안 한다니까 얼굴 까고 할게요."

"네···."

나래의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상대가 예상을 뛰어넘는 미남이기 때문이었다.

여자 중에서도 잘생긴 남자에게 유독 맥을 못 추는 타입이 있는 데, 나래가 바로 잘생긴 남자에게 말 한마디 못 붙이는 숙맥이었다.

"뭘 그렇게 빤히 봐요? 제 얼굴에 뭐 묻었어요?"

나래는 얼굴이 빨개져서 시선을 회피했다.

"아, 아뇨. 어, 음··· 인터뷰 계속할게요."

"저기, 혹시 호빠 선수 실물로 처음 봐요?"

"예? 아, 예 뭐 바빠서 그런 곳에 가볼 일이 없었거든요."

호빠를 못 가본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지만, 강PD는 자꾸 도훈 앞에서 주눅이 들었다. 상대가 너무 잘생겼다는 생각에 스스로 가 창피해진 것이었다. 더구나 밀폐된 차 안에서 나이차가 얼마 안 나는 사내와 단둘이 있는 상황 자체가 그녀의 긴장감을 끌어올렸다.

'아아, 내가 왜 이러지 창피하게. 그냥 취재하러 온 건데 너무 긴장한 것 같아···.'

"음, 누나는 왠지 좋아할 것 같았는데."

"예, 예? 누나요? 지금 저 말씀 하신거예요?"

"네, 저보다 누나 아닌가? 전 아직 학생이거든요."

"아···. 서준씨 대학생이셨구나."

"네. 호빠도 알바 삼아 한 거였어요. 편의점이나 PC방에서 일하는 것처럼, 일당 받고 가게 놀러온 여자들이랑 수다 떨면서 시간 보내는 알바요."

"네···."

"그러다 마음 맞으면 한 번쯤 배꼽인사도 할 수 있긴 하지만."

"배, 배꼽 인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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